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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옥남 | 양철북 | 2018년 9월 18일 한줄평 총점 8.0 (29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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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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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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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아흔일곱 살, 한 사람의 기록
우리 어머니 이야기이기도 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강원도 양양 송천 마을에 사는 이옥남 할머니가 1987년부터 2018년까지 쓴 일기 가운데 151편을 묶어서 펴낸 것이다.
할머니는 어릴 적 글을 배우지 못했다. 아궁이 앞에 앉아 재 긁어서 ‘가’ 자 써 보고 ‘나’ 자 써 본 게 다인데, 잊지 않고 새겨 두고 있었다. 시집살이할 적엔 꿈도 못 꾸다가 남편 먼저 보내고 시어머니 보낸 뒤 도라지 캐서 장에 내다 팔고 그 돈으로 공책을 샀다. 글씨 좀 이쁘게 써 볼까 싶어 날마다 글자 연습한다고 쓰기 시작한 일기를 30년 남짓 썼고 지금도 쓰고 있다.
할머니는 아흔일곱 살이 되어도 뭣이든 들여다보고 있으면 신기하다. 그래서 할머니 눈으로 만난 새소리와 매미 소리, 백합꽃, 곡식마저도 새롭게 다가온다. 도시로 나가 사는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 작은 벌레 한 마리도 예사로 보지 않는 따뜻한 눈길…… 커다란 사건이 있는 게 아닌데도 다음 장이 궁금해진다. 다음 날엔 또 어떤 이야기가 있나 하는 마음으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한 사람의 삶에 푹 빠져든다. 자식들 이야기에서는 뭉클하기도 하고. 그래서 문득 어머니가 생각나 멈추게 된다.
한 사람의 지극한 이야기에서 어머니를 만나고, 또 어느 순간에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습을 보게 된다. 사람들은 더 크고 더 좋은 것을 바라며 살아가지만 사실 우리 삶은 일하고, 밥 먹고, 자식 생각하며 그렇게 하루하루 사는 것이지 않을까. 참 평범하지만 소박한 일상이 주는 힘. 더구나 자연 속에서 평생을 한결같이 산 한 사람의 기록이 더할 나위 없이 맑고 깊다. 그래서 그 삶이 우리 삶을 위로해 준다.

목차


투둑새 소리에 마음이 설레고
풀과 꽃은 때를 놓칠까 서둘고
개구리 먹는 기 입이너
손자 자취방
나간 돈
꿈에 본 것 같구나
까마귀는 일 하나도 않고
늘 곁에 두고 보고 싶건만
하눌님이 잘 해야 될 터인데
뭣을 먹고 사는지
고 숨만 안 차도
작은 딸 전화 받고 막내아들 전화 받고
오래 살다 보니
조팝꽃 피면 칼나물이 나는데
여름
풀이 멍석떼처럼 일어나니
디다볼수록 신기하게만
비가 오니 새는 귀찮겠지
사람도 그와 같았으면
호호로 백쪽쪽
꿈같이 살아온 것이
다 매고 나니 맘에 시원하다
한티재 하늘
강낭콩 팔기
빨간 콩은 빨개서 이쁘고
돈복이가 잘 부르는 노래
지금은 내 땅에 심그니
친구 할매
매미가 빨리 짐 매라고
어찌나 사람이 그리운지
가을
사람도 나뭇잎과 같이
산소에 술 한잔 부어놓고
점심도 안 먹고 읽다 보니
사람이라면 고만 오라고나 하지
도토리로 때 살고
편지
거두미
그 많던 까마귀는 어딜 갔는지
메주 쑤기
부엌이 굴뚝이여
방오달이
믹서기
겨울
뭘 먹고 겨울을 나는지
묵은 장
겨우 눈을 쳤지
왜 그리 꾀 없는 생각을 했는지
〈작은책〉을 들고 읽다 보니
사람이고 짐승이고 담이 커야
마을회관
오늘은 내가 제일인 것 같구나
사는 게 사는 거 같겠나
자다가도 이불을 만자보고
나 살아완 생각이 나서
동생 머리가 옥양목 같아서
손으로 뭘 만져야 정신이 드니
어떻게 이해성이라고는 없는지
노래 글씨가 나와서 보고 불렀다
또 봄일 하느라고 바쁘겠지
책을 내면서
할머니 이야기(손자 탁동철)

저자 소개 (1명)

저 : 이옥남
1922년 강원도 양양군 서면 갈천리에서 태어났다. 열일곱에 지금 살고 있는 송천 마을로 시집와 아들 둘, 딸 셋을 두었다. 복숭아꽃 피면 호박씨 심고, 꿩이 새끼 칠 때 콩 심고, 뻐꾸기 울기 전에 깨씨 뿌리고, 깨꽃 떨어질 때 버섯 따며 자연 속에서 일하며 산다. 글씨 좀 이쁘게 써 볼까 하고 날마다 일하고 집에 돌아와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30년이 넘었다. 글쓴이가 만난 자연과 일, 삶을 기록한 글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1922년 강원도 양양군 서면 갈천리에서 태어났다. 열일곱에 지금 살고 있는 송천 마을로 시집와 아들 둘, 딸 셋을 두었다. 복숭아꽃 피면 호박씨 심고, 꿩이 새끼 칠 때 콩 심고, 뻐꾸기 울기 전에 깨씨 뿌리고, 깨꽃 떨어질 때 버섯 따며 자연 속에서 일하며 산다. 글씨 좀 이쁘게 써 볼까 하고 날마다 일하고 집에 돌아와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30년이 넘었다. 글쓴이가 만난 자연과 일, 삶을 기록한 글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출판사 리뷰

아흔일곱, 할머니가 짓는 맑은 하루하루
그 삶이 주는 다정한 위로

할머니는 아흔일곱 살이 되었다.
눈 뜨면 밭에 가서 일하고, 산에 가서 버섯 따고 나물 캐고, 그걸 장에 내다 팔아 아이들 키우고 이때까지 살아왔다.
일곱 살에 여자는 길쌈을 잘해야 한다며 삼 삼는 법을 배웠고, 아홉 살에는 호미 들고 화전밭에 풀을 맸다. 여자가 글 배우면 시집가서 편지질해 부모 속상하게 한다고 글은 못 배우게 했다. 글자가 배우고 싶어서 오빠 어깨 너머로 보고 익혔지만 아는 체도 못 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남편 죽고 시어머니 돌아가신 뒤에야 글을 써 볼 수 있게 되었다.
“글씨가 삐뚤빼뚤 왜 이렇게 미운지, 아무리 써 봐도 안 느네. 내가 글씨 좀 늘어 볼까 하고 적어 보잖어” 하시며 날마다 글자 연습을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적은 글은 일기라기보다는 시가 되었다. 그 기록이 소녀처럼 맑다.

할머니는 그저 잠만 깨면 밭에 가서 일한다. 김을 매면서 뽑혀 시든 잡초 보고 미안하고 미안해서 사는 게 모두 죄짓는 일이라 한다. 눈 쌓인 겨울에는 산짐승들이 무얼 먹고 사나 걱정이 한가득이고, 불난리에 집 잃은 이웃을 위해 고이고이 아껴 둔 옷가지를 챙긴다. 농사지은 것들을 장에 내다 팔고 먼 데 자식들 소식에 전화를 기다리고 다시 맞는 저녁에는 그리움이 밤처럼 쌓인다.
그러다 가끔, 몸에 좋다며 개구리를 잡아먹던 갑북네 할멈도 먼저 갔다고 나직이 내뱉고, 비오는 날 일 못 하고 집에 있는데, 옆집 세빠또 할멈이 어찌나 말 폭탄을 터뜨리는지 내일 또 비 오면 올 텐데 어쩌나, 걱정하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빵 터진다.
강낭콩을 팔려고 오색에 갔다가 나이 들어서 젊은 사람한테 ‘사시오, 사시요’ 하니 부끄럽지만 그래도 애써 가꾼 생각하며 문전 문전 다닌다. 아흔일곱 살이 되었는데도 어디서든 만나면 깜짝 놀랄 만큼 싫은 사람도 있다. 이웃한테 싫은 소리 듣고 와서 분해하기도 하고, 송이 따러 갔다가 잡버섯에 속았다고 신경질도 낸다. 또 어느 날 하얀 백합을 보고는 깨끗하고 즐거워서 사람도 그와 같으면 좋겠다 한다.
어디 가든 늘 둘이 함께였던 동무 할매도 저세상으로 가고, 먼 산에 눈 오려는지 아지랑이처럼 안개 돌고 바람 부는 날. 밖에 비 오고 조용한 빈방에 똑딱똑딱 시계 소리만 들리는 저녁. 별이 총총 뜬 밤을 지나는 할머니의 날들에서 조용한 풍경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도 할머니처럼 나이를 먹어 간다. 맑고 소박하고 다정하게.

‘봄날은 간다’
젊고 눈부셨던 그날들이 아스라이 멀어지는 경험을 한 이들이라면, 한번쯤은 읊조리듯 내뱉었을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 뒷면에서 나이 든 부모들의 시간을 낡고 바래 가는 희미한 시선으로 보지는 않았나 화들짝 놀란다. 할머니의 “글자들”을 읽으면서, 그 하루하루를 보면서. 그 삶이 어쩌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이 걸어온 길이기도 하고,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기도 하기에.
이옥남 할머니의 하루하루는 늘 새것이다. 글을 읽으면 할머니의 봄날은 흘러가 버린 것이 아니라 아흔일곱 세월의 주름 속에 수줍게 숨어서 머물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하루하루 정성을 다해 살아가고 또 그걸 글에 담았다. 한 자락도 꾸밈없고, 관념 없이 투명하고 맑다. 세상에 익숙하고 길들여질 이유 없는 자연과 마주하며 일하고 살아서 그랬으리라.
그 맑음과 정성 다한 하루에서 할머니의 삶이 주는 다정한 위로가 배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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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프**나 | 2022.11.15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이옥남 할머니가 30년 동안 쓴 일기 중 몇몇 일기를 가려 실은 책이다. 1922년 강원도에서 태어난 이옥남 할머니는 글이 배우고 싶어도 아버지의 반대로 배우지 못하고 어깨너머로 오빠가 글공부하는 걸 보고 글을 깨우쳤다고 한다. 그렇게 배운 글을 알아도 아는 척도 못하고 사시다가 시부모가 돌아가시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비로소 일기를 쓰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처음에는 글씨나 잘 써볼까 하고 시작한 일기였다고 한다. 그날그날 있었던 일을 때로는 짧게, 때로는 길게 적으셨다. 가슴속 담긴 원망, 애잔함, 설움, 고마움, 느낀 바를 일기장에 털어놓으셨다. 이옥남 할머니가 일기만 쓰신 것은 아니다. 잡지에 실린 글이나 시, 책을 읽으시고 그것에 대한 감상도 때론 일기에 적어놓으셨다.

 

한평생 농사만 짓고 죽도록 일만 하고 살아온 할머니는 다른 복은 없고, 일복만 많다고 일기에 적어놓으셨다. 시부모에게 학대를 당하고, 무심하고 무능한 남편을 둔 덕에 평생 고생만 하셨지만, 자식 넷을 낳아 기르시고 그 자식들과 손자들을 보는 재미로 사신다.

 

자식들이 뭔지 늘 봐도 보고 싶고 늘 궁금하다. (57)

 

꿈같이 살아온 것이 벌써 나이가 팔십셋이 되었구나. 그러나 지금은 자식들이 멀리 살지만 다 착해서 행복하다. (91)

 

일기를 읽다 보면 할머니의 켜켜이 쌓인 슬픔의 세월이 그대로 들여다보인다. 그래서 마음이 애잔하다가도 풀 한 포기나 작은 생명까지도 사랑하는 할머니의 순수함 앞에서는 깊은 존경심이 든다. 티브이를 보시다가 불행을 만난 이들을 보면 가엾다고 한숨짓고, 가진 건 없지만 조금이라도 나누려 하시는 그 마음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뭣이든지 키우기 위해 무성하게 잘 크는 풀을 뽑으니 내가 맘은 안 편하다. 그러나 안 하면 농사가 안 되니 할 수 없이 또 풀을 뽑고 짐을 맨다. 뽑아놓은 풀이 햇볕에 말르는 것을 보면 나도 맘은 안 좋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할 수 없이 또 짐을 매고 풀을 뽑으며 죄를 짓는다. (73)

 

책에 실려 있는 할머니의 친필 글씨를 보고 마음이 괜스레 슬퍼졌다. 힘든 농사일을 마치고 집에 오셔서 더러워진 옷을 빨아 널고, 비로소 방에서 일기를 쓰셨을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니 거룩하기도 하다. 일기를 쓰는 행위가 평생을 외롭고 서러웠을 할머니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을까? 도라지 팔아 산 공책에 일기를 적으며 그 순간만큼은 할머니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꼭 그랬었다면 좋겠다.

 

일기에 적힌 할머니의 고운 마음을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마음은 우리가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마음이고 삶이다. 때가 되면 곡식을 심고 거두고, 애처롭게 우는 새를 가여워하는 할머니의 마음, 이제는 그런 것들을 점점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되어 간다. 그래서일까, 할머니의 이야기가 자꾸만 과거 일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할머니의 그런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할머니의 일기를 자꾸만 꺼내서 읽어야겠다.

 

콩을 심는데 바로 머리맡에 소나무가 있는데 소나무 가지에 뻐꾹새가 앉아서 운다. 쳐다봤더니 가만히 앉아서 우는 줄 알았더니 몸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힘들게 운다. 일하는 것만 힘든 줄 알았더니 우는 것도 쉬운 게 아니구나. 그렇게 힘들게 우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고 짐승이고 사는 것이 다 저렇게 힘이 드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힘들게 운다고 누가 먹을 양식을 주는 것도 아닌데 먹는 것은 뭣을 먹고 사는지. 몸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힘들게 우느라고 고생하는 것을 보니 내 마음이 아프다. (45)

 

 

#이옥남할머니 #아흔일곱번의봄여름가을겨울 #양철북 #할머니의일기 #힐링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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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244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
내용 평점3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숲*래 | 2022.11.04

숲노래 책읽기 2022.11.3.

인문책시렁 244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

 이옥남

 양철북

 2018.8.7.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이옥남, 양철북, 2018)을 읽었습니다. 1922년에 시골에서 나고자라서 시골사람으로 살아온 나날을 틈틈이 글로 남긴 할머니 삶길을 옮긴 책입니다. 무척 뜻있다고 여기지만 여러모로 아쉽기도 합니다. 이 책은 할머니 하루쓰기(일기)를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누는데, 할머니 하루쓰기를 뒤죽박죽으로 엮었습니다. 철에 따라 나누었다지만, 해도 날도 오락가락일 뿐 아니라, 꼭지마다 글이름을 새로 붙였는데 ㄱㄴㄷ으로 벌이지도 않았어요.

 

  왜 이렇게 해야 했을까요? 할머니가 오랜 나날 이녁 삶을 옮긴 하루쓰기는 그저 ‘해·날에 따라’ 옮기면 됩니다. 모두 시골살이를 담았고, 모두 아이를 그리는 마음을 담았고, 모두 숲빛을 헤아리고 읽는 나날을 담았어요. 처음 쓴 글부터 맨 나중에 쓴 글까지 차곡차곡 담으면 될 뿐입니다. 할머니가 걸어온 나날을 할머니 손끝으로 읽도록 엮어야 알맞습니다.

 

  하나 더 아쉬운데, 글씨가 너무 커요. ‘할머니가 읽기에 좋도록 큰글씨’로 하려면 따로 내서 드려야지요. 할머니가 읽을 책도 어린이가 읽을 책도 아닌, ‘할머니를 이웃으로 여기면서 마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읽을 책’이라면 구태여 큰글씨로 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글씨를 줄여서 할머니 하루쓰기를 더 담아내어 보여줄 노릇입니다.

 

  그리고 책끝에 풀이말을 길게 안 적어도 돼요. 할머니가 적은 맺음말이면 넉넉합니다. 또한 책을 두툼종이(양장)로 여미었는데, 책이 무겁기까지 합니다. 할머니 하루쓰기를 넉넉히 담지 않은, 고작 224쪽짜리인데 왜 두툼종이까지 써서 책값을 올려야 할까요? 수수한 시골 할매가 투박하게 여민 글씨로 숲빛으로 들려주는 하루쓰기를 그야말로 수수하고 투박하면서 숲빛으로 엮어서 선보였다면, 할머니하고 새록새록 마음읽기를 펼 뿐 아니라, 서울 아닌 시골이라는 터전을 새롭게 바라보는 길잡이로 삼을 만했으리라 봅니다.

 

  시골 할머니가 남긴 애틋하고 알뜰한 하루쓰기를 살려내지 못 한 엮음새가 대단히 아쉬운 책입니다.

 

ㅅㄴㄹ

 

큰딸이 온다기에 줄려고 개울 건너가서 원추리를 되렸다. 칼로 되리는데 비둘기가 어찌나 슬피 우는지 괜히 내 마음이 처량해져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네. (2002.3.20./28쪽)

 

오늘은 날씨가 맑아서 앞밭에 감자밭을 맸다. 풀이 재잔은기 어떻게 많이 올라오는지 매는기 더디다. 감자가 먼저 올라온 건 벌써 이파리가 너불너불하다. (2015.5.4.맑음./60쪽)

 

건너 밭에 깨 모종을 심었다. 어제 심다가 못 다 심어서 오늘도 가서 심었지. 심는데 새소리가 들리는 것이 별 새가 다 있다. 호호로 백쪽쪽 하고 버드낭그에 올라앉아서 우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겠는가 하고 아무리 찾아봐도 못 찾아서 결국은 못 보고 말았네. (2003.6.26.흐림/86쪽)

 

오늘은 벌써 투둑새가 운다. 날씨는 추운데 봄은 가차운 모양이다. 안 울든 새가 다 운다. (2009.2.20.맑음/19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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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 이옥남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쏠*쏠 | 2022.05.30

이 책은 이옥남 할머니께서 30년 넘게 적어오신 일기를 손자가 책으로 엮은 것이다. 내용은 단출하다. 농사이야기, 자식이야기, 동네사람들 이야기, 봄 여름 가을 겨울 해마다의 일과가 들어있다.

할머니들은 저마다 기구한 사연 하나쯤은 가지고 계신다. 이옥남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열일곱에 이 마을로 시집와서는 시집살이를 호되게 겪으셨다. 시어머니가 머리 끄댕이를 잡아끌고서 느이 집으로 가라고 내쫓아도, 남편이 바람나서 집 밖으로 나돌아도 할머니는 어김없이 밭에 나가 일을 하셨다. 집에 정을 붙일 일 하나 없으니 하루 종일 김매고 곡식 영그는 거 바라보는 게 낙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시가 식구들이 하나둘 다 돌아가신 뒤에야 도라지 판 돈으로 공책을 사서 글을 쓰기 시작하셨던 것이 30년 넘게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자식들 이야기하시는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자식 이야기를 하실 때면 글에서 기쁨, 슬픔, 쓸쓸함, 섭섭함, 미안함 등 온갖 감정이 나타난다. 자식네가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시다가 자식네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적적해진 집 안에 가만히 누워 쓸쓸해하신다. , 없이 살아 자식들에게 해준 게 없다고 슬퍼하시고, 딸들이 사다 주는 사탕 한 봉지에도 고맙고 미안해하신다. 그리곤 늘 곁에 없는 자식들을 그리워하신다.

우리 자식 된 입장으로서 그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냐마는 어미의 마음을 한 자락씩 엿볼 때마다 먹먹해지고 죄송스러워진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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