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제동,박태식,박현도,이찬수 공저/윤유리 그림/최준식 추천
김혜정 저
박지혜 저
박경태 저/이영규 그림
김청연 저
라슈미 시르데슈판드 글/애덤 헤이즈 그림/이하영 역
얼마 전 읽은 <집으로 가는 23가지의 방법>이 은근히 내겐 재미있었다.
그래서 작가의 다른 책을 빌려 읽기로 했다.
<귀를 기울이는 집>이라니 어떤 의미일까?가족이 집에 모이면 가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이 열쇠들은 뭐야? 미션이 있는 거야? ㅠㅠ 소설은 어떤 걸 유추하고 읽는 것보다 그냥 내용이 더 궁금했다.
<귀를 기울이는 집>이 가지고 있는 비밀스럽고 특별한 이야기 말이다.
말하는 것이 어렵고 두려운 담이. 어린시절 선택적 함구증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 유명 작가이자 학자인 정인후 교수의 자택 기념과에 견학을 간 담이는 미로 같은 집을 헤매다 우연히 정교수와 마주치게 되고 정교수의 이야기를 받아적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정교수의 집을 드나들며 또래 유주와 유원을 만나 점점 가까워지게 되고 담이는 정교수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야기를 받아 적어나가는데....
정교수의 이야기는 벽을 넘은 사람들의 이야기자 자신에 관한 비밀이야기이며 이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은 정교수의 생각대로 진실의 벽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이야기는 재미있다. 상상을 자극한다. 정교수가 만들어 놓은 암호같은 방 앞에서면 저절로 단어를 떠올리고 말을 하게 하는 것 같다. 김혜진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우리가 만들어 놓은 언어의 벽, 진실의 벽에 서게 된다.
말이라는 것을 뱉는 순간부터 귀를 기울이는 순간까지 우리는 어떻게 뱉고 듣고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일까를 미스터리한 판타지 소설 <귀를 기울이는 집>을 통해 생각하게 된다.
"이 벽을 넘어가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가 묻자 모자 밑에서 지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방법은 하나뿐이야. 이 벽에 자네의 일부를 두고 가는 것일세."
"나를 두고 간다고요? 어떻게요?"
"벽이 스스로 자네의 일부를 가져갈 걸세. 벽을 속이려 든다면 자네는 벽 안에 갇히고 말 거야. 자네에게 더 이상 남기고 갈 것이 없다면 벽을 넘지고 못하게 되겠지."(p36)
됐어. 이름 같은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아무리 가볍게 지었더라도 곧 의미가 덕지덕지 붙어 무거워지고 말지. (중략)."
"거짓말? 거짓말이 뭐지?"
"틀린 걸......말하는 거요."
" 그럼 맞는 걸 말할 수도 있단 말이냐? 말은 언제나 틀려. 말은 언제나 어긋나지. 모두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고, 느끼지 못한 것을 느낀 것처럼 말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옳은 거야."(p64)
"무슨 말이든 될 수 있어. 그 낱말에서 이야기는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알겟니? 바로 그런 낱말 하나에서. 문 하나에서 모든 게 시작된다고."
(중략)
"그래, 맞다. 말이 섞여야 하지. 바로 그런 걸 듣기 원했고, 그래서 사람들을 이 집에 불렀어. 방들은 말을 서로 나누지 못하지만, 사람은 대화할 수 있으니까. 서로의 낱말을 섞이게 할 수 있으니까. ........"(p67)
"언제나 나를 둘러싼 벽들 때문에 괴로워했지. 벽을 넘고 나서 새 인생이 펼쳐지길 기대했어. 하지만 그 벽들이 바로 내 인생이었어.벽을 넘어가는 순간들이 내 삶인 거야."(p226)
.....그리고 좋았던 장면
1.담이와 유주가 친해지기 전 담이 이름으로
"너, 맏이야?", "덤 받아 본 적 있어?", "묻는 것 좋아?".....'담'이 '맏', '덤', '묻'으로 변형하여 질문으로 끌어냈다는 것을 풀어내던 모습. ㅎㅎㅎㅎ
2. 담이와 유주가 함께 비밀의 방을 찾아내던 모습, 그리고 그곳의 진실
정교수의 말처럼 말은 언제나 어긋나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가 내 생각대로 이해하고 따라 와주길바라고 또 바란다. 매번 나와 같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말이 글로 정리되어 나타날 때도 우리는 말을, 글을 곧이 곧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작가는 말이 뱉어지는 순간과 받아들이는 순간 언어 간격, 틈이 생긴다고 한다.
음.... 정말 그런 것 같다.
그런 간격을 해결하고자 담이와 유주는 진실을 다해 정교수의 말,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방을 찾고 벽을 찾아 해결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벽은 정교수가 만든 세상의 경계이자 새로운 세상으로 향해 나아가는 문이었다. 정교수의 집 문들이 저마다 다른 자음으로 되어 있는 것은 하나의 공간(세상)에 자신이 부여하는 이름 같은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이 부딪힐 벽에게서 진실로 벽을 향해 들어가는 열쇠를 찾을 수 있을 각자 자신에게 달린 일이었다.
책을 덮으며 뜬금없이 정교수의 집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나도 한 번 가볼 수 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담이와 유주와 함게 정교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행복한 시간이었다.
말이라는 것, 타인을 알아간다는 것, 평소에 생각지도 않았던 단어의 조합, 상상을 하며 읽은 잔잔한 감동이 오래도록 남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