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연 저
빌 버넷,데이브 에번스 저/이미숙 역
서메리 저
세상에 절대적인 무언가는 없었다. 어린 시절에는 공부를 잘 하고 좋은 대학에 하면 인생이 술술 풀리리라는 어른들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그러나 공부에 매진한다고 성적이 늘 좋지는 못했으며, 대학에 진학했지만 취업이 저절로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이는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고민은 매 순간 끊임없이 생성됐으며, 고뇌가 곧 존재의 이유인 것 마냥 매 순간 굴고 있는 내 모습에 지치는 일이 잦아졌다. 도처에 “헬 조선”을 외치는 사람들이 넘치는 걸로 보아 나만 이렇지는 않은 듯하다. 적잖은 것을 소유했지만 결코 행복하지는 못한 삶, 이유는 모르나 문제가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남들과 다른 시도를 행한 사람들의 소식이 반가웠다. 그들의 성공이 나의 조바심을 조금이나마 식혀주지 않을까란 기대가 컸다. 물론 난 그들처럼 용기를 내기 힘들 테지만, 적어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한 기분만은 덜어낼 수 있을 거 같았다.
이웃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났다. 제목은 <달을 보며 빵을 굽다>. 제빵사를 직업으로 택한 여성의 이야기였다. 오래 전 인류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삶을 살았다. 정확히는 그럴 능력이 부족했다. 해가 뜨고 날이 밝으면 일어나 생활했다. 모든 게 어둠속에 잠기면 원치 않아도 잠을 잤다. 인위적으로 불을 켤 수 있게 되면서부터 하루가 길어졌다. 그렇게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일하며 보냈으니 피로가 나날이 누적된 건 당연했다.
제빵사는 무척이나 강한 노동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다. 이른 새벽 출근길에서 부지런히 빵을 굽는 제빵사들의 모습을 스치고는 한다. 더구나 저자는 혼자 일한다. 과연 제대로 쉬는 날이 있기는 할까 싶었으나, 예상대로 그의 삶에는 휴식이 필요해 보였다. 아니면 함께 일하는 동료를 들이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그가 추구하는 게 남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했다. 빵을 굽는 게 아무리 좋아도 돈을 버는 게 우선이라는 사고에 강렬히 사로잡혀 있었던 것도 같다.
남들처럼 취업을 했던 그가 돌연 제빵사가 되겠다며 퇴사를 결심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대개가 말렸다. 이미 그 나이 또래 제빵사들은 여러 해의 경력을 갖추었다. 늦은 출발이 끊임없이 그의 발목을 잡을 거라는 우려도 일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의 그가 초보의 티를 팍팍 내며 시니피앙 시니피에에서 버티는 모습이 대견하게까지 여겨졌다.
현재 그는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달의 주기에 맞추어 빵을 굽는다. 철저히 자연의 시간에 자신을 맡긴 셈인데, 이는 주문이 아무리 밀려 들어도 변하지 아니 한다. 손님 중에는 무려 5년째 기다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는 말에 질겁했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우리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꼭 우리나라가 아니어도 어느 누가 빵을 먹겠다며 5년을 기다릴 수 있을지. 사람마다 반응은 제각각이어서 묵묵히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격렬한 항의를 선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쪽이 더 많은지 알 길은 없으나, 나로서는 가게가 무너지지 않고 유지된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돈이 목적이 아니어서 가능했던 거 같다. 빵에 쓰이는 재료는 대부분 산지 생산자들로부터 직접 얻었다. 여러 해 쌓인 신뢰가 보다 맛난 빵의 탄생을 이끌었다. 모양은 멋드러지지 않을지라도 맛은 일품인 제철 곡물과 과일을 받아 세상에 단 하나뿐인 빵을 만들었고, 그렇게 탄생한 빵의 일부는 다시금 생산자들의 식탁에 올랐다. 해를 거듭할수록 관계가 끈끈해진 건 당연한 결과다.
여러모로 신기했다. 한 번도 꿈꿔 보지 않은 형태의 삶이라서 그랬다. 부럽기도 했다. 삶을 지탱하는 일은 고됐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가치있다 여기는 마음이 저자에게서 강하게 느껴졌다. 과연 나는 충분히 생산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여기서 생산적이라 함은 내가 탄생시킨 무언가가 시장에서 비싼 가격에 팔리는 걸 뜻하진 않는다. 남들과 비교했을 때 일하는 시간 대비 연봉이 높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왠지 모든 걸 돈으로 환원하느라 정작 중요한 건 놓쳐 온 것만 같아 허무했다.
빵을 만드는 일 그리고 삶, 그 조화로움에 관한 이야기
달의 움직임에 따라 20일간 빵을 굽고, 10일은 여행을 떠나는 어느 빵집주인에게서 일과 삶의 의미를 찾다
나는 빵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빵을 만드는 이야기의 책이 손에 잡혔다. 빵을 만드는 사람의 독특한 삶과 철학에 끌렸다.
치열한 자본주의 시장에서 빵집을 운영하며 자신의 철학을 지키고 확장시켜나가는 저자의 삶이 궁금했다.
일본 효고현의 작은 마을인 단바에서 여행하는 빵집 ‘히요리 브롯HIYORI BROT’. 이곳은 저자의 빵을 만드는 빵집이 아니라 작업실이다.
인터넷으로 받은 주문을 하루 14건 배송처리를 한다. 혼자 하는 작업이고 한 달에 20일만 빵을 굽다보니 5년 이상 주문이 밀려있는 상태이다.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만들고 싶은 빵을 만들며 이따금 여행을 떠나는 자유로운 작업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제철 식재료를 때에 맞춰 빵으로 만들어 고객에게 전달한다. 때문에 레시피와 재료 배합은 매일 달라진다.
저자는 달의 주기에 맞춰 빵을 굽는다. 월령 0일에서 20일 사이가 빵을 만드는 시간이다. 달이 찰수록 발효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자연의 힘에 따르면서 그것에 맞춰 빵을 굽는다.
월령 21일에서 28일 사이는 여행을 떠난다. 그 다음 빵을 만들기 위해 식재료를 찾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빵을 만들게 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히요리 브롯이 선보이는 빵은 7종류(약 36,000원), 11종류(약 60,000원), 14종류(약 80,000원)로 구성된 세트 메뉴로 이루어진다. 바게트나 식빵 같은 기본 메뉴 외에도 제철에 주문한 신선한 재료를 넣고 만든 빵을 급속 냉동해 고객에게 배송한다.
히요리 브롯은 단바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식재료에 전국의 생산자들이 직접 보내는 밀가루와 체소, 과일, 달걀, 우유를 더해 그 시기에만 맛볼 수 있는 재료로 맛있는 빵들을 선보인다.
대학을 졸업하고 리쿠르트에 입사한 저자는 다양한 직업을 알아가면서 인생에 있어 일이란 무엇이고 일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지 제대로 고민해볼 수 있었다.
리쿠르트에서 퇴사를 하고 7년 동안 시니피앙 시니피에서 빵의 거장인 시가 셰프로부터 트레이닝을 받게 된다.
빵 만들기의 기본은 해야 할 일을 거르지 않고 꼼꼼히 하는 것이다. 청소도 빵 만들기의 한 과정이다. 절대 소홀히 하지 않는다.
히요리 브롯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 가지 가치가 있다.
함께 빵을 만드는 생산자들과의 인연, 자신이 일하고 머무는 단바에 대한 애정, 그리고 빵을 만든다는 것의 의미.
저자의 철학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돈 버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더라도 일을 지속할 수 있으려면 일정 수준의 수입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주문을 받은 후 빵을 만드는 방식으로 재고를 없앴고, 빵에 본인이 생각하는 적정 가격을 책정했는데, 평균적인 빵 가격보다 비싸다.
이것은 ‘정성을 다해 만든 맛있고 몸에 좋은 빵을 싸게 대충 팔지는 않겠다’는 자신의 가치관을 실현시킨 것이다.
“나는 나답게, 작지만 매일의 행복을 만들어 나가가는 일을 하고 싶다.”
좋았어요. 사은품으로 받은 달 거울도 너무 예뻤구요. 저 또한 꿈이긴 하지만 이런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진정한 힐링도서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의 워너비 인생입니다. 근데 누구나 이렇게 살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도 이렇게 살아보려고 노력은 해보고 싶어요. 작가가 정말로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빵 먹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