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진,양재웅 공저
김창옥 저
원종우,이명현 공저
김미경,김상균,김세규,김승주,이경전,이한주,정지훈,최재붕,한재권 저
김미경 저
최재천,유성호,김상균 등저
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
법의학자의 예리한 시선과
인문학적 통찰로 풀어낸 죽음 지침서
◎ 도서 소개
서울대 학생들이 듣는 인기 강의를
일반인들도 듣고 배울 수 있다면?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 강의를 책으로 만난다! 현직 서울대 교수진의 강의를 엄선한 ‘서가명강(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시리즈가 출간됐다. 역사, 철학, 과학, 의학, 예술 등 각 분야 최고의 서울대 교수진들은 2017년 여름부터 ‘서가명강’이라는 이름으로 매월 다른 주제의 강의를 펼쳤으며, 매회 약 100여 명의 청중들은 명강의의 향연에 감동하고 열광했다. 이 배움의 현장을 책으로 옮긴 서가명강 시리즈는 앞으로 독자들에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교양을 선사할 예정이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의 교수이자,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자문을 담당하고 있는 유성호 교수의 교양강의를 바탕으로 한 책이다. 법의학자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죽음’은 어떤 것인지 다양한 사례와 경험들을 소개하며, 모호하고 두렵기만 했던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시한다. 또한 죽음을 진지하게 공부하는 과정 속에서 오히려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서가명강 오프라인 강연 www.book21.com/lecture
* 서가명강 팟캐스트 audioclip.naver.com/channels/345
◎ 출판사 서평
내 삶에 교양과 품격을 더해줄 지식 아카이브
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서가명강’
★★★★★ 직장 생활에 지친 나에게 주는 선물 같다!
★★★★★ 내 인생에 필요한 진짜 공부였다!
★★★★★ 배움에 대한 내 안의 열정을 다시 깨워준 명품 강의!
서가명강은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대학인 서울대학교 강의를 엮은 시리즈로, 현직 서울대 교수들의 유익하고 흥미로운 강의를 재구성하여 도서에 담았다. 서울대생들이 직접 뽑은 인기 강의, 전공을 넘나드는 융합 강의, 트렌드를 접목한 실용 지식까지, 젊고 혁신적인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서가명강의 다채로운 인문학 콘텐츠는 도서뿐만 아니라 현장 강연과 팟캐스트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다. 출퇴근길을 이용해 교양 지식을 쌓고자 하는 직장인, 진로를 탐색하려는 청소년, 나아가 늘 가슴에 공부에 대한 열망을 품고 사는 대한민국의 모든 교양인들에게 우리나라 최고의 명강의를 손쉽게 보고 듣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유성호 교수의 최고의 ‘죽음’ 강의!
죽음은 두려운 것인가? 품위 있는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을 계획할 수 있는가? 죽음을 비켜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죽음은 늘 생경하고 아득하다. 매주 시체와 마주하는 법의학자에게도 죽음은 항상 낯설다.
매주 시체를 만나는 법의학자에게 죽음이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지닐까?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의 유성호 교수는 20년간 1500건의 부검을 담당했다. 누구보다 많이 죽음을 만났고, 누구보다 깊이 죽음을 고찰한 그는 끝에 죽음을 가까이 할 때 역설적으로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성호 교수는 죽음에 관한 다양한 논제들과 부검 사례를 엮어 ‘죽음의 과학적 이해’라는 서울대학교 교양강의를 개설했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죽음을 인정하고, 바로 보기 시작한 학생들은 자신의 인생을 더욱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헤쳐 나가게 되었다. 학생들은 “단언컨대, 서울대학교라는 이름에 걸맞는 최고의 강의였다!”, “이 강의를 들을 수 있어 영광이었다!” 등 환희에 젖은 수강후기를 남겼다.
서울대학교 대표 교양강의를 엮은 이 책은 법의학과 관련된 폭넓은 경험들, 죽음을 둘러싼 수많은 논제들, 죽음에 관한 정의들을 소개한다. 지금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헤매고 있거나 일상이 만족스럽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삶의 가치와 방향을 찾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자살, 뇌사, 안락사, 존엄사, 유서, 유언…….
죽음에 관한 가장 뜨거운 이슈를 모았다!
우리 모두 피할 수 없지만, 결코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는 ‘죽음’. 유성호 교수는 오히려 죽음을 공부하고 먼저 준비할 것을 권한다. 삶에 명확히 마감이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자신이 추구하려는 가치관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즉 죽음을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오늘’ 그리고 ‘삶’이 갖는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이 책은 그러한 과정을 위한 ‘죽음 지침서’다.
1부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에서는 법의학자의 시선으로 죽음을 풀어나간다. 법의학자는 무슨 일을 하는지, 법의학적으로 죽음은 어떻게 구분되는지 소개한다. 그리고 〈그것이 알고 싶다〉, 〈궁금한 이야기 Y〉, 〈KBS 뉴스〉 등에도 소개되었던 부검 사례를 살펴본다. 평범한 사람들의 억울한 죽음, 갑작스러운 죽음 은 죽음이 우리 삶의 뒷면에 항상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2부 ‘우리는 왜 죽는가’에서는 생명과 죽음의 정의,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죽음관의 변천, 죽음의 원인을 밝힌다. 다음으로 뇌사, 존엄사, 안락사, 자살 등에 관한 사례와 주장들을 소개한다. 죽음이 스스로에 의해, 타인에 의해 선택될 수 있는 것인가? 유성호 교수는 이러한 질문에 명쾌한 해답과 따듯한 조언을 제시한다.
3부 ‘죽음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서는 죽음을 예감하고 남겼던 유언들을 소개하며,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반드시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리고 죽음 앞에 놓인 인간은 어떻게 사고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여러 사례들을 소개한다.
이처럼 죽음에 관한 폭넓은 경험과 다양한 논제들을 전함으로써 독자들은 ‘죽음’을 좀 더 쉽고 자주 떠올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죽음을 공부하고, 죽음이 더해진 삶의 풍경은 훨씬 더 다채로워질 것이다.
◎ 책 속에서
죽음은 우리 인생의 마지막 과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평소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하려 하지 않고, 될 수 있으면 언급 또한 피하려고 한다. 더욱이 현대사회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죽음을 우리 삶과 철저하게 분리한 채 우리에게 죽음의 민낯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생각해본 적도 없게 되고, 삶을 그저 닥치는 대로 면서 일시적인 위안과 위로에 현혹되기 쉽다. (…) 그러면 막상 죽음이 닥쳤을 때 우리는 비참함과 슬픔에 사로잡혀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또한 다른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도 감정의 둔마를 겪게 되고 더 나아가서 무관심하게 될지 모른다.
【들어가는 글 : 15-16쪽】
오늘도 지금 내 가방 안에는 두 사람의 죽음 기록이 들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기록을 통해 그 사람이 지나온 삶을 더듬어본다. 혹자는 이를 두고 죽음 기록이 어떻게 한 사람의 온전한 인생을 드러낼 수 있겠느냐고 말하겠지만, 얇은 죽음 기록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내게는 거의 책 한 권 분량의 무게로 느껴진다. 그 사람의 삶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떻게 종결되었는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1부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 : 22-23쪽】
한편 아내의 양 손목에는 억압의 흔적으로 볼 수 있는 묶인 자국이 있었다. 그러나 그 손목의 끈 자국은 손목에 손수건을 대어 희미했다. 즉 끈이 손목을 조일 때 아프지 않게 한 것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소견이었다. 종합적으로 사망 종류를 결정한다면 남편은 자살, 아내는 타살이었다. 그렇지만 촉탁살인의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평소 사이가 좋았던 부부 관계를 여러 사람이 증명했으며, 최근 건강이 나빠진 상황에서 상해보험을 여러 개 가입한 정황이 있었다. 이와 함께 목을 조르는 행위에서 최소한의 방어흔이 없었고, 목에 저항 흔적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촉탁살인의 가능성을 배척하기는 매우 곤란하다고 판단했다.
【1부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 : 91쪽】
그렇듯 우리가 자살에 대해 갖고 있는 상식, 즉 죽고 싶어 죽는 것이라거나 즉흥적인 판단의 결과라는 것은 모두 틀린 말이다. 세상에 진정으로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법이다. 죽음의 이유는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찾아야 한다.
【2부 우리는 왜 죽는가 : 176쪽】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기보다 어떤 질병에 의해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급속도로 삶이 무너져 사망에 이르렀던 반면 이제는 의학의 발전으로 질병에 걸렸다 해도 완치율이나 생존율 또한 점점 높아져가고 있다. 게다가 뒤에서 다시 살피겠지만, 콕 집어 2045년이 되면 놀라운 과학의 발달로 영생의 가능성까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그래서 더더욱 죽음을 멀리하고자 하는 사회 풍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죽음을 방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생을 잠시 보류한다면 어쨌든 우리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렇기에 미리미리 죽음이라는 것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두자는 것이다.
【3부 죽음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 240-241쪽】
그러나 삶의 마지막 여정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여야만 현재 우리의 삶을 더 온전하게 살 수 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 현재를 즐겨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던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에 앞서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어떠한 모습이기를 바라는지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깊은 의미를 품는다.
【3부 죽음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 266쪽】
|
지금은 TV를 못본지가 1년이 넘었지만,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만해도 나는 TV를 자주 봤다. 주로 시사, 교양, 다큐를 시청했다. 그러다보니 스브스에서 방영하는 《그것이 알고싶다(속칭 그알)》 라는 프로그램도 매주 본방사수했다. 그알에는 법의학자들이 자문을 위해 자주 출연한다. 자주 출연하는 법의학자 중 한 명인 유성호 교수님은 서울대에서 ‘죽음’과 과련된 교양과목을 강의하시는데, 이 과목이 워낙 인기가 많아서 수강 신청이 어렵다고 한다. 어떤 강의인지 정말 궁금했었는데, 한 예능에 출연한 유성호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야. 인기가 많을 수 밖에 없겠더라.
하지만 일개 직장인이자, 심지어 지금은 몸이 열개라도 부족한 워킹맘은 그런 강의를 들을 방법도 없을 뿐더러 애초에 시간도 없다. 그나마 유성호 교수님의 강의를 살짝 엿볼 수 있는 방법이라곤, 시간이 날 때마다 교수님이 쓰신 책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간다』를 읽는 정도다. 생각해보면 이 책을 산 지는 꽤 오래되었다. 신간 발매 당시 샀으니 어휴. 몇 년을 책장에 묵혀둔건지! TV를 못보고, 1분 1초라는 찰나의 시간마저 아쉬워하는 지금에서야 읽게되었다.
책을 읽고나니 알겠다. 왜 20대 대학생들이 유성호 교수님 강의를 듣고자 하는지!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싶지만, 여의치 않은 20대들이여!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간다』 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그알에서 얼핏 보았던 법의학자들. 그들이 하는 일은 정확히 무엇일까? 죽음을 맞이한 시신을 검시하고,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과 사망 종류등을 정의한다. 무엇보다도 법의학자들이 시신 검시를 함에 있어서, 대다수는 검찰청, 경찰, 보험회사 등 여러 기관의 의뢰에 기인한 경우가 많다. 이들 기관이 의뢰하는 시신들은 대체로 사건, 사고에 휘말려있는 시신들이고, 그 시신들의 신원 확인이 필요하다거나 혹은 어떻게 죽었는지를 명확하게 파악해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법의학자로서 월요일마다 검시를 한다. (…) 검시란 시체에 대한 조사 행위를 총괄해서 이르는 말인데, 검시는 다시 검안과 부검으로 나뉜다. 검안은 그야말로 시체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눈으로 확인해서는 사망 원인이나 사망 종류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부검이 필요한데, 부검은 해부를 통해 종합적으로 사인을 규명하는 작업을 말한다. 이러한 검시에서 가장 우선적인 일은 시신의 신원 확인이다. p 024
신원을 확인한 뒤 검시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사항은 ‘왜 죽었는가?’다. 즉 의학적인 사망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다. 의과대학에서 배운 수많은 질병명이 사망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다음으로는 ‘어떻게 죽었는가?’하는 죽움의 방식, 즉 사망 종류를 가려낸다.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었던 ‘백남기 농민사건’에서 의학적인 사망 원인은 아마도 고칼륨혈증, 신장부전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그전에 그러한 질환을 유발한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죽었는지를 살폈을 때 머리의 경막하출혈이 원사인으로 기재되었다면 외인사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말이다. p 026
법적 및 의학적인 의미의 죽음은 사망 원인과 사망 종류를 통해 정의된다. 이 두가지는 분명 다른 것인데 일반인들은 이를 헷갈리기 쉽다. 우선 사망 원인은 의사의 진단명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위암이다, 간암이다 하는 것은 사망 원인이다. 추락사로 사망했으면 그것이 사망 원인이 되는 것이다. 사망 종류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자연사, 즉 병사다. 두 번째는 외인사, 즉 외적 원인에 의한 사망이고, 여기에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한 불상이 포함된다. (…) 외인사는 크게 자살과 타살, 사고사로 구분하는데 한 사람의 죽음이 이 중 어디에 속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된다. p 028 |
생명의 시작, 인간의 시작 그리고 죽음
인간의 시작은 언제부터일까? 자궁에서 정자와 난자가 만났을 때? 아니면 태아의 형태가 만들어졌을 때? 그도 아니면 온전한 팔, 다리등이 생성된 태아일때? 그도 아니면 엄마 뱃속에서 나왔을 때? 놀랍게도 인간의 시작에 대한 정의는 개인(또는 집단)의 가치관에 따라, 보는 시각에 따라 달랐다. 심지어 대한민국인이라면 지키고 따라야할 ‘법’에서 조차도, 어떤 법이냐에 따라 인간의 기준이 달랐다.
가톨릭교회 등에서는 사람의 시기를 수태된 때부터라고 보지만, 법적으로는 이와 다르다. 법적으로는 크게 민법과 형법이 있는데 형법에서 적용하는 대표적인 학설은 진통설이다. 형법은 어떠한 행위의 범죄 처벌 여부와 그 처분의 정도나 종류를 규정한 법으로, 진통이 있다면 그때부터 사람으로 보아 법을 정용할 수 있다. 만약 진통 전의 태아를 사망하게 하면 살인죄가 아닌 낙태죄를 적용하게 된다. 그러나 진통이란 여성의 자궁 경부가 열리면서 아기가 머리를 내밀기 전에 이미 시작된다. 따라서 만일 그 때 누군가가 아기를 살해했다면 살인죄가 되는 것이다. p 107
민법에서는 또 다르다. 민법은 사람의 권리와 의무를 지우는 법이다. 예를 들어 언제부터 내가 내 손자나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줄 수 있는지는 민법에 따라 결정한다. 민법에서는 아기가 자궁 경부를 통해 완전하게 신체를 노출했을 때부터를 사람으로 본다. 이처럼 민법과 형법에서 적용하는 학설은 약간 다르며 관련 학설 또한 진통설, 일부노출설, 전부노출설, 독립호흡설 등 여러가지다. p 108
수정된 정자와 난자의 움직임은 유튜브 영상으로도 확인해볼 수 있는데 일주일을 두고 자궁으로 천천히 움직이면서 2개, 4개, 8개, 이렇게 반반씩 쪼개지면서 수정란이 되고 그다음에 자궁에 딱 붙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자궁벽에 잘 붙지 못하고 그냥 쓰러지는 수정란이 절반이 넘는다. 이렇듯 임신이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수정이 되어 자궁에 붙은 후에도 임신 초기에 자궁벽에서 떨어져 그냥 쓸려나가는 경우가 더 많다. 결국 임신 8주정도 까지는 유산 가능성이 높아서 여성 스스로도 임신한 줄 모르고 있다가 유산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생명은 사실상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난 것 자체가 그렇다는 말이다. p 109 |
인간을 시작을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를 떠나서, 일단 엄마 배속에서 무사히 자리를 잡고 열달 내 건강하게 있다가, 무사하게 세상 밖으로 태어나는 것 그 자체는 그야말로 신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나 임신 과정 내 어떠한 이벤트가 있을지 모르는 일이고, 그로 인해 유산이 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한 번의 유산을 경험한 적이 있어서 그럴까. 뿡뿡이가 내 뱃속에서 무사히 있다가, 건강하게 세상 밖으로 나와준 일이 얼마나 기적같은 일인지를 몸소 깨달았다.
TMI이긴 하지만, 이렇게 기적같이 태어난 아이들을 학대하는 인간들은 정말 쓰레기만도 못하다. 이 책에는 저자가 검시한 시신들의 여러 사례가 있었는데, 그 중에 유독 유아 살해 사건은 정말. 말 못하는 짐승들도 제새끼는 보호하는 세상인데, 어찌 그럴 수 있는지!
다들 알았으면 좋겠다. 무사히 태어나서, 지금까지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마저도 기적이라는 사실을.
배아상태는 분명 생명이기는 하지만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사람을 죽인 것과 같은 죄를 묻는다는 것이다. 황우석 박사 사태 당시에도 문제가 되었던 것이 배아의 생명성이었다. 당시 연구팀은 건강한 여성의 난자와 정자를 합친 수정란을 만들어 스템셀이라고 부르는 줄기세포를 얻어냈다. 그들은 이를 어디에 쓰려고 했을까? (…) 만약 줄기세포로 장기를 키울 수 있다면, 그 장기를 이식할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 아닌가. 내 몸에 맞춤한 장기를 쉽게 얻을 수 있으니 이것은 거의 기적의 의술이 되는 것이다. 만약 허리를 다쳐서 겆디 못하는 상태인 사람에게 줄기세포 이식을 하면 줄기세포는 엄마 배 속의 수정란처럼 무엇으로도 다 문화가 되므로 척추가 새로 자라나게 되며, 이로써 일어나서 걸을 수 있는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줄기세포 연구는 그러한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p 111 |
종교에서, 법에서 인간의 시작이 어디서부터인지 기준을 정했다. 그렇다면 인간과 생명은 같은 의미로 볼 수 있을까? 임신 8주 이전의 상태인 배아는 생명체이며, 인간이라 볼 수 있을까? 초음파 사진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임신 8주 이전은 아기집만 겨우 보일 뿐이다. 최소 2주 이후가 되야, 기껏해야 몇 mm 정도의 쥐콩만한 태아가 보인다. 배아, 임신 초기 태아, 중 후기 사람의 모습을 갖춘 태아. 어디서부터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반대로 이를 인간이 아니라고는 할 수 있을까? 어려운 문제다.
무엇보다 지금은 의료기술 발달로 과거라면 죽었을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 밑바탕에는 수많은 연구가 있었다. 앞으로의 의료기술 발달은 어떻게 될까? 책에서 말하는 황우석 박사 사태는 엄청난 이슈였고,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사례중 하나다. 현재 의료기술 발달을 위한 연구를 보면 질병을 낫게하는 선을 넘어서 생명 복제, 유전자 편집 등을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아주 당연히 인류를 위한다는 명목이다.
자, 그렇다면 인간은 인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어디까지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며, 연구 범위에 있어서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연구를 위해서 인간은 생명의 기준을 어느 시점부터 잡아야하는걸까? 이는 지금까지도 명확한 해답이 나오지 않은 난제다.
죽음은 생명의 대척점에 있는 용어지만 그 실체를 설명하거나 입증하기는 어렵다. 여러 종교나 철학적 사유에서 이를테면 영혼 등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를 육체와 영혼의 결합과 분리, 즉 삶과 죽음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는 객관적으로 임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가설과 검증에 익숙한 과학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따라서 죽움은 다만 살아 있지 않은 상태로 표현되거나 증명될 수밖에 없다. p 120
많은 경우 죽음은 보통 어떤 순간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표현되나, 사실은 어느 기간에 발생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사회적으로나 법률적으로는 편의상 어느 순간, ‘몇 날 몇 시 몇 분’에 일어난 사건으로 이해한다. (…) 그리고 법의학자는 이러한 사람의 죽음을 세포사, 장기사, 개체사, 법적 사망의 단계로 분류한다. p 121
법의학 중 특히 법의병리학의 역할은 사망 원인과 사망 종류를 판단하는 것이다. 사망 원인이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질병, 병적 상태 또는 손상’이다. 세계보건기구는 1977년 죽음을 초래했거나 죽음에 기여한 모든 질병, 병적 상태 또는 손상, 그리고 그러한 손상을 일으킨 사고나 폭행을 사망원인으로 정의했다. 사망원인은 막연한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생물학적 또는 의학적인 구체적 개념으로 의학적으로 검토되고 과학적으로 타당한 결정이어야 한다. 특히 법의학적으로는 사망 원인의 결정에 죽음에 대한 법적 책임의 유무 또는 책임의 경중 등이 걸려 있어 매우 중요하다. p 125 |
자연스러운 죽음은 무엇인가
내가 처음 마주했던 죽음은 7살인가 8살이었나? 꽤 어렸을적, 할아버지의 죽음이었다. 당시 부모님은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니 얼른 내려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학교를 조퇴하고 시골에 내려갔다. 할아버지는 안방에 누워계셨고, 다른 어른들은 이미 와계셨던 걸로 기억한다. 노환에다, 지병도 있으셨다. 다들 할아버지의 죽음을 예견했고, 미리 준비했고, 그렇게 할아버지는 집에서 돌아가셨다. 이게 내가 처음 마주했던 죽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주한 ‘자연스러운’ 죽음이었다. 할아버지 장례도 시골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질병으로 인한 생의 ‘말기’적 증상에는 다음과 같은 신체적 징후가 수반된다. 당연히 통증이 이을 것이고, 피곤하고, 힘이 없고, 입이 마르고, 손발이 저리고, 가렵고, 어지러운 증상들을 겪게 된다. (…) 이외에도 환자가 사망하는 과정에서 가장 흔하게 겪는 일반적인 징후는 졸음이다. 굉장한 졸음 때문에 환자는 혼미한 그로기 상태에 빠져 깨워도 계속 존다. p 031
그런데 의학 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현대에는 죽음을 판단하고 대처하는 데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바로 연명의료다. 의학과 의료의 발전으로 그동안 생각하지도 않던 문제가 논쟁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중환자 의료의 발달로 치명적인 상황에 빠진 환자를 상당수 살려낼 수 있게 되었으나, 이면에는 더 이상의 의료가 소용없는 경우 이를 중지하고자 할 때 그 절차와 시기가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를 함께 가져왔다. 즉 이제는 자연스럽게 죽음으로 가는 단계라고 보는 졸음의 단계, 혼수상태를 무한정 연장할 수 있다. p 033 |
할아버지 죽음 이후 마주한 두번째 죽음은 내가 성년이 된 이후다. 정정하셨던 외삼촌이 갑자기 급성 백혈병에 걸렸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돌아가셨다. 어렸을 적 할아버지의 죽음과는 달리, 외삼촌의 죽음은 나에겐 꽤 무겁게 다가왔다. 젊었고, 건강했고, 무엇보다 외가에서 스타나 다름없던 다정했던 외삼촌이었다. 그런 외삼촌이 하루아침에 병을 얻게 되었고, 갑작스레 돌아가신거다.
이때 비로소 깨달았다. 태어남에는 순서가 있지만,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는 걸. 더군다나 이제는 죽음을 앞둔 사람과 인사하는게 어려워졌다는 걸.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죽음을 판정할 수 있는 사람은 의사인데, 의사만이 정확히 그 사람이 몇 시 몇 분에 사망했는지를 판정할 수 있다. 나 또한 죽음을 판정하고 시체 검안서를 작성할 때 가족에게 기일을 언제로 하면 좋을 지 여쭤본다. 왜냐하면 밤 12시 전후로 돌아가시면 날짜가 바뀌니 가족들이 원하는 날로 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당시 의사는 그 시간에 맞춰 마지막 숨을 불어넣었던 인공호흡기를 떼고 사망 진단을 했다. 그리고 그 즉시 여섯 명의 환자에게 최요삼 선수의 건강한 장기가 이식되었다. p 140
이 숭고한 미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의사가 1월 3일 0시 1분을 기다려 사망 진단을 했다는 것이다. 즉 의사가 마음만 먹었으면 1월 3일이 아니라 더 길게 끌 수 있었다는 것이다. 뇌사자의 심장을 한정 없이 계속 뛰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은 누구라도 뇌사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리고 뇌사가 자연스럽게 죽음으로 인정된 오늘날 새롭게 등장한 논쟁거리가 생명의 자기 결정권 문제다. 의사 조력자살 또는 의사조력사망 문제 등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현재 우리 사회의 첨예한 논쟁거리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p 141 |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땐 다들 죽음을 예견했고, 죽음을 앞두고 할아버지와 인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외삼촌의 죽음은 달랐다. 몇 번의 고비를 넘기셨지만, 마지막 한 고비를 넘기시지 못했다. 호흡기를 달고 계셨고, 주로 눈을 감고 계셨다. 외삼촌과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이미 진작에 사라진터였다. 그렇게 외삼촌은 돌아가셨고, 의사는 사망진단을 내렸다.
지금은 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노환으로, 지병으로 집에서 자연스레 생명을 다하는 경우는 없다. 무조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틀에 박힌듯 연계된(또는 계약된) 장례식장으로 시신을 옮기고 장례를 치룬다. 행여나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남은 가족은 무조건 경찰을 불러야 한다.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이 이렇게 바뀌어버린 건, 빠르게 발달한 의료기술과 최근 20여년 간 일어난 죽음을 둘러싼 수많은 의료 법적 분쟁에 기인한다.
연명치료 거부라는게 있다.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으로 생겨난 제도다. 말그대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않고, 인간답게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이야기다. 이 역시 수많은 의료 법적 분쟁을 거쳐 시행된 제도다. 뇌사자 장기기증 역시 오랜 논쟁을 거쳐서 비교적 근래에 만들어진 제도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아마 이후로도 죽음과 관련된 여러 법정 분쟁이 생길 것이다.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 탄생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죽음이니까. 오히려 이런 제도가 너무 늦게 마련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과거에는 죽음을 터부시하고, 언급하기를 꺼려했기에 어쩔수 없었겠지만. 그로인해 죽음을 대하는 제도 마련이 미진했고, 오랜기간 시행착오를 겪게 된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사는 지금 죽음의 형태는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그렇기에 지금이나마 죽음과 관련된 논쟁이 지속되고 제도가 생기는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가까운 시일 내에 교수님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마침 책을 구매해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예스24를 통해서 구매했습니다. 빨리 배송을 받았어야하는데 정말 빠르게 배송이 되더라고요!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덕분에 강연 전에 책을 미리 받은데다가, 읽어보고 강연을 들울 수 있었어요. 책에도 사인을 받았습니다. 강연도 유익했고 책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완전 만족스럽습니다. 추천하는 책입니다. 읽어보시길!
정말 멋진 책입니다. 저는 삶과 죽음이 결단코 동떨어진 개념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삶을 이해하려거든 죽음도 이해해야한다고 늘상 생각하고요.
죽음을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삶의 일부라고 보지 않을 거예요. 누군가에겐 무서운 주제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어려운 주제이고, 어떤 사람에겐 피하고 싶은 주제이겠죠.
그러한 주제를 삶의 영역으로 끌어와 업으로 삼고 있는 유성호 작가의 인생에 찬사를 보냅니다. 정말 멋진 분이십니다. 의사로서 삶의 쉬운 길이 눈앞에 있는데도, 그것을 마다하고 정말 사회에 보탬이 되는 길을 택하셨어요. 좋은 책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읽는 내내 배움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