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라는 책을 세 번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원인은 수학 기초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까지 나왔지만 졸업 후 거의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소수(prime number)와 소수(0.####)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고 유리수와 분수가 같은 것이라는 것도 다 잊어버렸다. 그런 상태에서 불완전성 정리를 이해하겠다고 했으니, 초등학생이 미적분 풀겠다고 덤빈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기본으로 돌아가서 기초 수학책 여러 권을 탐독하고 있다.
이 책도 수학을 주제로 쓴 수필이랄 수 있겠다. 초보자를 위해서 최대한 쉽고 자세하고 재밌게 쓰려고 노력하신 것 같다. 술술 읽힌다. 퇴근 후 저녁 먹고 편안한 소파에 느긋하게 반 정도 누운 자세로 읽다보면 식곤증과 함께 노곤한 수면 세계로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어느 순간 책이 손에서 툭, 떨어진다. 밤늦도록 수학 학원 다녀온 딸내미가 책을 주워 제목을 본다.
"세상에, 이 징그러운 수학을 휴식 시간에 보는 변태가 우리 아빠라니..."
아... 글쓴이께서 정말 걱정하고 있는 현실이 그대로 재연되고 있구나...
"따님아, 수학은 정말 아름다운 학문이야. 네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단지 시험 때문에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 대신..."
"아빠, shut the mouth!"
"응... 미안..."
이 책이 재미있는 건 0이 생겨난 배경과 곱셈에 대한이야기다. 0이라는 개념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0이라고 표시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없다는 것의 의미는 철학과 종교적인 의미가 있어서 쉽게 0로 표시할 수 없었지만 0이 도입되고 부터는 숫자로 표현되는 범위가 넓어졌다. 구구단을 외우면 비교적 쉽게(?) 계산할 수 있는 곱셈도 엄청난 창의력의 결과물이라는 게 신기하다. 숫자 표기의 혁신이 기본 셈의 혁신을 이뤘다고 한다. 아이들 입장에선 이런 혁신이 결코 달갑지 않았겠지만. 조선시대와 고대 이집트의 곱셈법은 보기만 해서 머리가 아프다. 결국 곱셈을 하는 사람은 일부고 그걸로 먹고 살 수 있었다는 것도 재미있다. 만약 지금도 곱셈으로 먹고 살 수 있다면 우리는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다. ^^
수학 문제를 푼다는 것은 다양한 문제 해결 방법과 사고력을 키운다. 모두가 A라는 방법으로 문제를 풀 때 B라는 방법으로 문제 푸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 물론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부의 머리 좋은 사람이나 호기심이 강한 사람들이 수학을 발전시킨다고 할 수 있지만 일반인인 내가 참고할 수 있는 건 끊임없는 질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는 것. 그런 감각들인 꼭 수학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빛이 날지 모르겠다. 책을 읽는다고 수학 문제를 잘 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책을 읽는 이유는 수학적 사고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이지 않을까? 일반인인 나는 다소 어렵게 느껴졌지만 수학을 감각적(?)으로 푸는 아이들이라면 재미있지 않을까? ^^ 그리고 나는 수학의 감각이 없는 걸로.
처음, 이 책을 잡았을 때 기대했던 내용은 '수학사'에 가까운 내용이었습니다.
조승연의 공부기술이라는 책을 아시나요? 중학교 시절 학원 선생님이 읽어보라고 선물해주셨던 그 빨간 책을 저는 제법 감명깊게 읽었답니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말이지요.
그 책에서, 이제는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제법 쉬이 만나볼 수 있게 된 저자는 수학사를 자신이 찾아보며 왜 그렇게 되었는지, 왜 함수가 나왔는지, 데카르트가 무엇을 했는지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납득했다고, 그리하여 수학이라는 과목을 단순한 수의 나열이 아닌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답니다. 제게는 그 말이 일루미나티에 휘감겨 있는 음모론보다 더욱더 비밀스런 무언가 같았지요.
그러니까 저는 어쩌면 지금까지도 막연한 환상이 남아있었던 거겠지요. 뭔가 다른 수학. 뭔가, 아무튼 뭔가 다른 수학. 내 쪽에서 부득불 다가가는 수학이 아니라 저쪽에서 확, 하고 나를 끌어당겨주는 수학이 세상 어딘가에 있으리라는 환상 말입니다.
짐작하셨다시피 이 책은 그런 제 환상을 만족시켜 주지는 못했답니다. 뭐, 당연하지요. 그런 환상은 무지개 끝은 없고, 그 끝에 금이 묻혀있을 리 없다는 것을 깨달을 만한 나이에 깨어나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이런 환상을 가지신 분께 이 책은 추천드릴 수 없답니다.
수학에 대한 어떤 조리깊은 이해나 통찰을 원하시는 분께도 제 짧은 소견으로는 부적합하며(그런 텍스트는 논문저널에 있겠지요) 조금 더 깊은 수적인 이해를 원하시는 분들께도 목적에 맞지 않는 선택이지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무한급수 이후 수학에 대한 사그라진 흥미를 되살리고자 마음먹으신 분들께도 이 책을 추천드릴 수 없다는 점이 슬픈 점이로군요. 그런 분들께는 이 책은 어렵고(제게 그렇듯), 너무 개괄적인 내용만 있는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수학적인 감각과 사고가 없는데 인문학적인 이해를 얹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야말로 사상누각이지요.
우리 아이가 수학을 좋아하는, 수학적인 사고를 하고 나아가 인문학적인 사고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원해. 라고 생각하시는 중학생 이하 자녀를 두신 부모님께서 만약 이 책을 검색하셨다면, 아이들의 흥미를 위해서는 판타지 수학대전이라는 책이(만화책입니다) 훨씬 더 아이의 흥미나 수학적인 고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그 학습만화를 고등학교 때 접했지만, 다음 권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그 책에 빠졌었답니다. 무한에 대해 이 책은 한 장을 할애했습니다만, 적어도 그 만화책은 개념적인 무한에 대해 한 권을 다룬답니다. 주인공이 쓰러트려야 할 보스가 아예 무한의 마왕이니 말 다했지요.
요릿집에 와서 남의 집 요리만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금 그렇네요. 말은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퇴근길에, 업무 시작하기 전에 짬짬이 읽었어요. 재미 외에 다른 것을 얻지 못했다는 것 뿐이지요. 사실 이 책에서 제가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것은 그저 제가 선종에서 말하는 돈오에 닿을 자격이 없는 둔한 인간이기 때문이겠지요. 제 부덕을 좋은 책의 탓으로 돌리려는 것 같아 부끄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