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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7월 22일
숲노래 책읽기 2022.12.15.
인문책시렁 269
《키키 키린》
키키 키린
현선 옮김
항해
2019.6.24.
《키키 키린》(키키 키린/현선 옮김, 항해, 2019)을 읽었습니다. 스스로 맡은 일을 해나가는 하루를 언제나 새롭게 바라보고 배우려는 발걸음으로 삼으려 했다는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배우려고 한다면 어디에서나 배웁니다. 배우려는 마음이 없으면 어디에서도 안 배웁니다. 배우려는 사람은 설거지를 하다가도 깨닫고, 비질을 하면서도 깨달아요. 안 배우려는 사람은 절집에 깃들어 비손을 오래오래 하더라도 못 깨닫습니다.
따로 배움터(학교)를 드나들거나 마침종이(졸업장)·솜씨종이(자격증)를 거머쥐어야 배웠다고 할 수 있을까요? 종이란 한낱 종이입니다. 종이로 배움빛을 밝히지 않습니다.
돈을 거머쥐어야 넉넉하다고 여길 수 있을까요? 돈은 그저 돈입니다. 돈으로는 살림을 밝히지 않아요. 돈이 많아도 마음이 가난한 나머지 살림이 메마른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책을 읽었기에 잘 알지 않습니다. 책읽기는 그저 책읽기입니다. 잘 알려면 몸소 맞아들여서 즐거이 누릴 노릇입니다. 풀꽃나무를 책으로 많이 들여다보았기에 풀꽃나무를 알 수 없어요. 풀꽃나무 곁에서 살아가면서 풀꽃나무를 이웃숨결로 받아들이는 하루이기에 풀꽃나무를 천천히 알아갑니다.
넘어져 보면서 아픈 줄 알고, 아픈 줄 알면서 이웃을 보고, 이웃을 보면서 둘레를 느끼고, 둘레를 느끼다가 새삼스레 ‘나(우리)’를 다시 바라봅니다. 내가 나인 줄 알 적에 나를 새롭게 느껴서 나한테서 배웁니다. 그래요, 나는 나한테서 배웁니다. 나는 남한테서 배우지 않습니다. 그대도 매한가지예요. 그대는 그대 스스로 배웁니다. 누가 그대를 가르치지 못 해요.
삶은 늘 오늘 여기입니다. 오늘 여기를 보려는 눈길을 틔우기에 차근차근 눈빛이 밝는 사람으로 고요히 설 수 있습니다.
ㅅㄴㄹ
그저 지금 내 상황이 어떤지에만 집중하니까, 불평할 겨를이 없습니다. (47쪽)
그때 데라우치 긴 역할을 하면서 크게 깨달은 것은, 할머니들이야말로 세상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겁니다. 흔히들 남자는 사회적 명예나 지위 같은 게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하는데, 여자에게는 그런 것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가 있죠. (117쪽)
한 번은 자기의 밑바닥을 본 사람이 좋다는 거죠. 그런 사람은 아픔이 뭔지 알기 때문에 대화의 폭이 넓고, 동시에 넘어진 자리에서 변화할 수도 있거든요. (127쪽)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이가 얼굴을 보고 싶다기에 보여줬어요. 그러자 딸아이가 하얀 천을 열고 시신을 쓰다듬더군요. 그걸 보면서, 실로 죽음이라는 걸 만져 보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제가 하는 교육이란 게 있다면 이 정도뿐입니다. (187쪽)
아이는 응석쟁이로 키우면 안 됩니다. 혼자 할 수 있는 건 스스로 하게 해야죠. 집안일도 부모가 할 때 같이 시켜야 한다고 보고요. (201쪽)
사실 키키 키린이라는 배우를 잘 모른다. 출연한 영화는 좀 보긴 했지만 우리나라로 따지면 강부자나 김혜자 같은 이름이 떠오르는 일본의 국민배우라는데 일본 사라이 아니라 모르겠고.
얼마전에 고인이 되셨다는 뉴스를 듣고 그런가 싶었는데 도서관에서 집어든 책의 몇 구절이 흥미로워서 다 읽었다.
옳은 말은 대부분 뻔하게 들린다. 읽거나 듣다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니 어디선가 들어본 거 같고 뻔하구나 싶다는 얘기다. 키키 키린의 이 책 또한 그런 범주에 들어가긴 하지만 살짝 삐딱하달까. 뭔가 고집스럽고 독특하게 살아온 그녀의 깨달음이 녹아 있다.
남이 뭐라던.. 내 멋대로 내가 마음 가는대로 평생을 살다가 결국 암에 걸려서 생을 마친 독특한 영화 배우의 삶이 녹아 있다. 짧은 결혼생활과 대부분의 별거 생활을 함께 한 남편과 개성 강한 자식.. 그리고 살면서 느낀 여러가지 감정들과 깨달음이 있다.
요즘들어 몸이 참 무거운데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얼마 안남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이 책이 좀 더 무겁게 다가온다. 나보다는 젊은 사람들이 읽어둘만한 그런 책이 아닌가 싶었다.
키키 키린은 일본에서 유명한 배우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던 배우였습니다. 1943년에 도쿄에서 출생하였고, 본명은 우치다 게이코입니다. 처음에 극단에 유키 지호라는 예명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하여 초기에는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인기를 얻었고, 2000년대 이후로는 영화에 출연하었습니다. 키키 키린이 출연한 영화는 유명 작품도 유명 영화제 수상작품도 적지 않기 때문에 출연한 영화를 본 적도 있는데, 평범한 가정의 할머니, 어머니 등으로 출연하지만, 늘 다른 느낌으로 영화 속에 있었던 배우였습니다. 2018년에 타계하였고, 이 책은 키키 키린의 생전의 말을 모은 책입니다. 표지의 이미지가 햄릿의 오필리어를 떠올리게 하는데, 책 내용은 유쾌하지만 좋은 내용이 많았습니다.
키키 키린이라는 배우를 알게 된 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통해서다.
평범해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자신의 배역 그 자체를 살아내듯 연기하는 그녀의 연기가 인상 깊었었다.
2018년 9월 15일에 하늘의 별이 된 그녀의 소식을 듣고 많이 안타까웠었다.
키키 키린의 살아 생전 인터뷰의 내용과 사진들이 유고집처럼 발간된 책을 알게 되어 내심 기뻤다.
개성 있는 자신만의 삶을 살다간 키키 키린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기억할만한 책이 있다는 것에 위안이 되었다.
"내 생각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요?
그게 '의존증' 이라는 겁니다. 스스로 생각하세요."
-'나이 듦' 과 '죽음' 을 주제로 잡지 인터뷰 중,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 말하며,
2017년 5월
삶의 연륜을 배우길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키키 키린이 하는 말은 정말 솔직하다 못해, 까르르 웃게 만든다.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고 나한테 물어봤자, 나도 안 죽어봐서 몰라요."
위의 문장을 읽고, 쉽게 답을 얻으려고 했던 내 마음을 들킨 것만 같았다.
정말 내 삶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나인데, 왜 자꾸 밖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을까.
암에 걸려 투병을 하는 중에도, 그 고통이 단순히 괴로움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또다른 재미로 느꼈다는 키키 키린.
스크린 속에선 평범함을 연기하지만,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살아간 비범한 영혼으로 기억될만한
그녀만의 목소리가 이 책 안에 담겨 있다.
가끔 그녀가 그리울 때, 다정한 말이 필요할 떄, 따끔한 조언이 필요할 때 간간히 펼쳐보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