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열,고산 공저
마티아스 도프케,파브리지오 질리보티 저/김승진 역
제롬 케이건 저/김성훈 역
대니얼 스탤더 저/정지인 역
야마구치 슈 저/김지영 역
홍성수 저
조슈아 키팅의 《보이지 않는 국가들》도 비에른 베르예의 《오래된 우표, 사라진 나라들》처럼 낯선 이름의 지명들이 무수히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다른 점은 베이른 베르예의 책이 대체로 이미 과거가 된 이름들이라면(물론 그 지역은 지금도 남아 있지만), 조슈아 키팅의 《보이지 않는 국가들》은 지금 현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낯선 지명들을 다룬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얘기일 수 있고, 또한 이는 미래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 낯선 지명들은 다음과 같다. 압하지야(Abkhazia), 아크웨사스네(Akwesasne), 소말린란드 (Somaliland), 쿠르디스탄(Kurdistan), 키리바시(Kiribati). 그리고 번외로 몰타기사단, 에스토니아의 전자여권, 리버랜드(Liberland), 국적이 없는 이들에 대해서도 쓰고 있다. 조슈아 키팅은 이 알파벳으로 쓰고 읽기에도 녹록하지 않은 이 지명들, 그 지역,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통해서 바로 현대의 ‘국경’에 대한 문제, 나아가 ‘국가’의 정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언뜻 생각하기에 국가란 명백해 보인다. 그리고 국가가 있으면 국경의 문제는 분쟁이 있는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역시 명백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조슈아 키팅의 이 책은 그런 인식 자체를 허물어 버린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국가를 “주어진 영토 내에서 정당한 물리력 사용의 독점권을 (성공적으로) 행사하는 인간 공동체”라고 정의했고, 이 정의는 국가의 요소로 ‘정부’, ‘영토’, ‘국민’으로 파악하도록 했다. 우리는 이 정의가 근대 이후의 국가를 정의하는 데 충분하다고 여겨왔다. 특히 우리의 경우는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해야 한다는 데 당위성을 느끼고 있기도 하다(‘민족’이란 개념 자체가 근대의 개념이라는 게 거의 밝혀지고 있지만). 하지만 조슈아 키팅의 이 책을 통하면 우리는 현재 이 정의가 통하지 않는 세계에 살고 있다. 그는 그 이유를 역사적으로 서방 강대국의 식민 통치의 잔재뿐만 아니라, 현재의 비국가 정치체, 미국(미군)이 동맹국과 적국 모두의 주권을 개입이라는 명목으로 침해로 인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앞에서 든,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지역들은 바로 그런 전통적인 국가 정의가 현재에 얼마나 잘 맞지 않는지, 허술한지를 보여주는 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압하지야는 옛 소련의 지배하에 있다 독립한 조지아 영토 내에 있으면서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조지아 정부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고 있지는 않지만, 국가 체제로서 국제적인 인정(이는 거의 미국의 인정과 동의어로 봐도 괜찮다)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아크웨사스네라는 지역은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 사이에, 아니 국경에 걸쳐 있다. 모호크족이라는 인디언이 이곳에 살고 있으며, 양쪽의 국민으로서 스스로는 동일한 지역에서 하루에도 여러 차례 여권을 내보이며 국경을 왕래하고 있다.
소말린란드는 ‘중간 세계’의 성격을 지닌다. 소말리아 북부에 존재하는 소말리란드는 소말리아라는 전혀 국가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국가에 한 지역으로밖에 인정을 받고 있지 못하지만, 소말리아보다 더 국가다운 곳이다. 그러나 역시 이곳도 국가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 다음은 쿠르디스탄이다. 언론의 국제뉴스에 자주 보도되기 때문에 가장 친숙한 이곳은 쿠르드족이 국가 수립을 염원하고 있는 곳이다. 아마도 이 책에서 가장 국가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 소개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끊임없는 배신으로 국가로 수립되지 못한 이곳은, IS에 맞서는 조직으로 효용가치를 높였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사정이 숨어 있으며, 과연 쿠르드족이 단일한 국가로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러한 의문은 현대의 국가라는 조직이 과연 단일한 형태를 띠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키리바시 역시, 그 이름 자체는 그렇게 낯이 익지 않지만 상황 자체는 낯이 익다. 태평양의 산호초섬으로 이루어진 키리바시는 영토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 기후 온난화로 인한 수면 상승은 영토(섬)가 바다 아래로 잠겨 버릴 것이란 공포를 심어주고 있다.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과연 키리바시라는 나라는 존속하는 것일까? 아니면 소멸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에 대해서 세계는 어떤 답변을 내놓을까
키팅은 현재의 국경 문제가 대체로 20세기 후반 들어 경직된 국경을 유지하려는 강대국(역시 대체로 미국에 해당한다)의 이해 관계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지금 좀 문제가 있더라도 이대로 유지하는 것이 말썽이 덜 날 것이라 여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 자체가 모순이다. 지금의 불완전하고 인위적인 국경을 만든 것은(아프리카나 중동 등지에서 특히)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새로 탄생한 주권국가들이 과거에 존재했던 국경을 보전해야 한다는 국경 점유의 원칙” (170쪽)을 내세우는데, 그 국경이 그 지역의 자연적인 상황에 맞지 않게, 그 지역의 사람들의 바램에 어긋나게 만들어졌음에도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신생국가들의 국경이 영토 자체에 살고 있는 민족의 현실과 연관을 맺고 그려진 게 아니라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유럽 열강의 정치에 의해 그려졌기 때문이다.” (169쪽)
그래서 국가나 국경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얘기한다. 거기에 영토를 가지지 않은 국제적인 조직이지만 UN에서 거의 국가에 준하는 대접을 받고 있는 몰타기사단, 전자여권을 발행하는 에스토니아, 어떤 국가도 점유를 탐하지 않는 틈바구니에 국가를 선포한 이들(이를 테면 리버랜드)을 소개한다. 미래에 국가와 그 국가의 국민이라는 틀이 얼마나 견고하게 유지될 것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국가의 틀과 그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 같은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역시 고민해야 할 지점은 차고 넘친다. 가장 중요하게는 북한의 문제가 있다. 우리의 국경은 어디인가? 북한은 국가인가, 아닌가? 등등. 현실과 당위 사이에서 질척거리고, 싸우고 있으며, 외부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일치하지도 않는다. 비록 이 책은 한반도의 문제를 바로 지적하고 있지는 않지만, 어쩌면 한 chapter를 더 썼다면 우리의 문제를 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국경에는 의문을 제기해야 하며, 국경이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그대로 유지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230쪽)
“’자연적인 국경’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산뜻하게 나누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에 선을 그리려고 할 때마다 결국 누군가는 어긋난 쪽, 자신이 원하지 않는 쪽에 있게 된다.” (184쪽)
“우리는 지금
시대를 세계화의 시대, 사람들과 자본이 유례없는 속도로 자유롭게 세계 어느 곳이건 돌아다니는 시대, 민족과 문화 사이의 구분이 점점 더 헐거워진 시대라고 여긴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지도상의 실제 국경선과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들의 배치는 고착돼버렸다.” (298쪽)
지도에 더 이상의 조정을 가하지 않으려는 까닭은 이해할 만하다. 예나 지금이나 국경선 변경에는 살상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p.74
조슈아 키팅의「보이지 않는 국가들」은 국가의 정의와 국경의 확고함에 의문을 던지는 책이다. 국가는 ‘정부’와 ‘국민’ 그리고 ‘땅’이라는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그렇게들 믿는다. 저자는 이러한 믿음이 모든 국가에 적용되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동질성을 지닌 문화를 공유하는 민족이 다른 나라의 이름 아래 존재하거나 여러 나라의 국경 사이에 끼어 있기도 하다. 또 국가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자치 정부가 활발하게 활동함에도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땅’이 없는 국가를 온전한 국가로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현재의 ‘국가’라는 기준을 고집한다면 이러한 나라들은 영원히 국가로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고 심지어 국가가 사라지는 일을 겪게 될 수 있다. ‘국가’와 ‘국경’의 정의를 고민해야할 때다.
우리는 지금 시대를 세계화의 시대, 사람들과 자본이 유례없는 속도로 자유롭게 세계 어느 곳이건 돌아다니는 시대, 민족과 문화사이의 구분이 점점 더 헐거워진 시대라고 여긴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지도상의 실제 국경선과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들의 배치는 고착돼버렸다. p.298
이는 현재의 지도가 가능성 있는 대안보다 반드시 더 낫기 때문이 아니라, 수백 년간의 경험이 국경 재편의 파국적 성격과 위험성을 가르쳐줬기 때문이다. p.310
‘국가’는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현재의 ‘국경’을 확정하게 되었을까? 국가의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강대국의 입김이 절대적이며 자를 대고 그은 듯한 일부 국경 또한 강대국들의 입맛이었다. 과거에 그랬고 현재도 여전히 그렇다. 분쟁을 겪고 있는 지역은 물론이고 자립적인 국가의 조건을 갖춘 나라들도 세계 정세를 좌지우지 하는 몇 나라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국가’가 될 수 없다. 인간의 진보는 약육강식의 시대에서 그리 멀리 가지 못했다.
법적?정치적?군사적 규범상 세계지도의 일방적 재조정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해도, 강대국은 이런 규범에 반하는 일을 벌일 수 있으며 결국에는 별 문제 없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관념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p.306
기존 세계지도를 거부하자는 말이 아니다. 현재의 국경 또는 국가에 대한 맹신에 대해 한 번쯤 의구심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환경 요소 또는 그 지역의 주민을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그어진 국경선들이나 국가라는 기존 개념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돌아보자는 말이다.
현상을 유지하려는 논거를 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정말 현상 유지가 옳은가 하는 물음은 던질 가치가 충분히 있다. 오늘날의 세계에 속하는 기존 국가들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는 조직체가 아니다. 이들의 유용성과 가치는 세계 전체뿐 아니라 국경 내에 살고 있는 자국 국민에게 안전과 복지를 제공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국가가 이런 순기능을 실행하지 못할 때 우리의 과제는 단순히 국경 유지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국경을 개선할 수 있는지 질문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p.311
국제 외교?정책 분석 전문가인 저자는 쟁점 발생 지역 또는 국가를 직접 방문하고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문제를 다각도로 바라보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 책 역시 압하지야, 아크웨사스네, 소말릴란드, 쿠르디스탄, 키리바시를 직접 취재한 결과다. 이 지역들은 모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쟁점’이 발생한 지역인만큼 입출국이 까다로운 경우가 다반사다. 저자는 무장경호원이 필요한 경우도 마다하지 않고 현장을 좀더 가까이 보고자 했다. 덕분에 책의 내용은 정치가나 권력자의 목소리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이야기까지 생생하게 담겨있다. 또한 한쪽에 편중된 의견이 아닌 여러 방향의 의견을 고루 제시하고 평가한다.
국제 문제의 정점이라 할 국가의 정의나 국경 문제에 정해진 답은 없다. 자연과 기후의 변화에 따라 국가의 기본 요소인 국토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서 구할 수 있는 도움도 없다. 저자는 오로지 국가에 대한 기존의 고정된 관념에서 떠나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래의 세계지도가 어떤 형태를 띠게 되든지 간에 다문화주의, 민주주의, 다원주의, 이동의 자유, 사상의 자유로운 교환을 믿는 이들에게는 창의적 사유가 가장 중요하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효한 세계지도를 만들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악의적 동기를 가진 주체들이 우리가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현재의 지도를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 p.316
무엇보다 사람이다. 각 지역의 주민들이 자신들의 터전에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지도를 만들 수 있는 미래가 오길 바란다. 쿠르드족 난민 캠프 주민의 말처럼 남는 건 사람들뿐이니까.
“나는 쿠르드 지역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렇지만 분열은 파괴만 몰고 오리라 생각합니다. 정부는 왔다가도 다시 가버리는 존재죠. 결국 남는 건 사람들뿐입니다.” p.247
우리는 세계지도를 보면서 '순수하게' 다양함, 자유, 평화 등을 상상하곤 한다. 어떤 대륙에 나라가 몇 개 있고, 각 나라는 다양한 사람, 동물, 자연, 문화적인 풍경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한다. 어떤 나라에는 어떤 민족이 살고 있으며,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나들면서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는 우리의 미래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세계 역사는 과거에 많은 전쟁이 있었고 지금도 약간의 분쟁이나 갈등이 있긴 하지만, 결국 우리는 UN과 같은 국제기구의 뒷받침을 통해 함께 평화를 지향하며 공존할 수 있다고 믿는다.
* 우리는 아이처럼 '순수한' 눈으로 세계지도를 보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순수한' 관점에서는 세계지도 뒤에 있는 보이지 않는 규칙과 압력을 간과하기 쉽다. 세계지도 속 국가, 경계는 모두 자연적으로 생겨난 게 아니라, 인간이 인위적으로 창조한 것이고, 그것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특정 집단과 권력자의 생각이 반영되고 시대와 지역의 맥락이 반영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지도만 순수하게 바라보는 것으론 이러한 규칙과 압력에 대해서 언뜻 알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국가와 경계 형성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이로 인해 삶에 제약을 받고 불편을 겪고 있지 않을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조슈아 키팅(Joshua Keating)는 국제정치, 외교 분야의 언론인이고 SLATE라는 매거진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전공이 지리학인지는 확실하진 않은데, 그의 기사*를 보면 '내셔널지오그래픽 비' 대회에도 출전한 적이 있고, 국제문제 이해를 위해 미국인들이 지리를 알아야 한다는 글도 써서 지리학에 관심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 문제를 다루는 언론인이 되면서 지금도 활발하게 현재 이슈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다. 직업상 세계지도 속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비판적으로 국제정치, 외교 분야의 기사를 쓰면서 기존의 당연시해오던 세계지도, 국가, 경계를 재검토하자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책을 쓰게 된 것으로 보인다.
* 키팅의 기사 1: 국제문제 이해를 위한 지리교육의 필요성
** 키팅의 기사 2: 홍콩, 카슈미르, 트럼프 이민자 추방 등이 끔찍한 세계관을 공유함
저자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계지도의 국가와 경계에는 모순이 내재하고 있고, 이로 인해 '보이지 않는 국가들'이 생겨난다고 본다. 세계지도 내의 모순이 내재하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민족국가(nation-state), 국제체제가 역사지리적으로 구성된 개념이기 때문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의 '탄생한' 민족국가 개념이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를 거치면서 시공간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들이 서로를 인정해주는 국제체제 형성 속에서 기존 국경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합의가 생기면서, 민족국가와 국제체제가 서로 모순되어버린 상황이 생겨났다. 그래서 특정 시기를 놓쳐 배제된 민족집단이 민족주의를 뒤늦게 주창하더라도, 기존 국경선을 바꾸었을 때의 기회비용을 치르고 싶어하지 않는 국가들과 특히 강대국 중심의 국제체제로 인해 독립이 힘들다는 것이다. 저자는 1장에서 민족국가 개념이 서유럽에서 '탄생'하고 식민지와 다른 지역으로 '수출'되며, 다양한 민족에서 다르게 '재해석'되고 국제체제가 형성되면서 '오용'되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오늘날 현대적 의미의 국가라고 인식되는 정치 단위들은 여전히 서유럽, 즉 전세계 땅의 2퍼센트 정도의 지역에만 국한돼 있었다. 동유럽은 계속해서 대규모 다국적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오스만제국, 러시아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유럽에서 주권 원칙이 발전하는 계기를 제공했지만, 그와 동시에 기독교 문명의 우월성에 대한 관념도 강화시켰다. (...) 중요한 점은 응집력을 갖춘 최초의 민족국가가 된 나라들은 하나같이 영국과 프랑스와 포르투갈과 스페인과 네덜란드처럼 가장 광대한 제국을 건설한 나라들이었다는 점이다. 국가 탄생의 큰 물결이 최초로 일어난 곳은 이 국가들이 부지불식간에 수출한 민족이라는 관념에 영감을 받은 식민지였다. (p.54)
오늘날 계속되는 분쟁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자결의 중요한 난제는 소수자들의 존재였다. 아이슬란드와 일본처럼 구성원의 정체성이 동질적인 섬나라를 제외하고, '민족'은 자신들을 어떻게 정의하건 지리학적으로 뚜렷이 구분할 수 있는 단위가 되지 못한다. 물론 이런저런 특정 집단이 우위를 차지하는 지역 주변에 선을 그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헝가리의 루마니아인이건, 크로아티아의 세르비아인이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인이건 간에 집단의 일부 구성원들은 결국 그어놓은 선의 반대편으로 가게 된다. 게다가 윌슨의 열내 게 조항이라는 보편적 원칙까지 받아 잔뜩 고무된 민족주의 원칙 아래에서 이 소수민족들은 자신들 역시 통일국가를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합리적 반론을 얼마든지 제기할 수 있다. 그렇게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런 요구는 민족국가 주권의 규범과 상충된다. (...) 윌슨은 외교 규칙을 새롭게 씀으로써 민족국가를 국제정치의 기본 단위로 만들었다. 그러나 민족이나 국가가 정확히 어떤 모습인가는 여전히 불명확했다. (p.66-68)
지도에 더 이상의 조정을 가하지 않으려는 까닭은 이해할 만하다. 예나 지금이나 국경선 변경에는 살상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국을 놓친 나라들에게는 정체 상태는 가혹한 처사다. (...) 요컨데 1990년대 초반까지 나라를 세우지 못했다면, 그런 집단의 운은 다한 셈이다. (p.74)
어떤 의미로 보면 세계지도는 윌슨의 민족자결 비전을 닮아가고 있다. 모든 민족에게는 국가가 있어야 하며, 국가에는 한 민족만 존재해야 한다는 비전. 민족자결이 실현되는 데 필요했던 것은 100년에 걸친 인종 학살, 전면전, 그리고 숨 막히는 전체주의였다. 캅카스에서 중동과 동남아시아까지 그 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p.81)
정말 그런 '보이지 않는 국가들'이 많은가? 예외적이고 극소수의 '과격 단체의' 사례가 아닌가? 등의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국가로 인정받지 못해서 월드컵에 출전못하는 소수민족 및 집단들이 모여서 하는 'CONIFA' 축구대회가 열리는 압하지아로 가서 취재를 하면서 여러 '보이지 않는 국가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 이처럼 직접 취재하고 조사한 사례를 통해, 우리가 당연시하고 있던 현재의 국가, 민족, 경계, 시민권 등의 개념을 재성찰해 보자는 제언을 한다. 저자는 이러한 곳들을 모두 '국가'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심층취재한 국가들에 대한 핵심은 다음과 같다. 국가 형성시기를 놓쳐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곳(압하지아), 역시 세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본국보다 오히려 안정된 국가로서 기능하는 곳(소말릴란드), 국가보다 앞서 존재하던 민족집단의 후손들이 국경이 놓인 뒤에 겪는 모순적인 상황(아크웨사스네), 우연적으로 놓인 국경을 고수하려는 강대국들의 부조리 속에서 피해받는 이들(쿠르디스탄), 기존의 국가 요소에서 영토가 만약 사라진다고 해도 국가로서 기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키리바시) 등이다. 저자는 여러 '국가'를 방문하여 정치인, 학자는 물론 평범한 주민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취재하면서, 이곳 사람들이 생각하는 국가와 지도 속 국가 개념의 괴리는 무엇인지,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과 대안이 무엇인지 조목조목 분석한다. 그리고 우리가 통상적으로 인지하는 세계관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고, 때로는 폭력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상기시켜준다. 다양한 위치와 집단, 계층의 목소리를 들어볼 필요성에 대해서 주목하는 것이다.
조지아 내에서 자치지역, 분쟁지역으로 여겨지고, 또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다는 이유로 서구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는 압하지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안타까웠다. 압하지야는 소비에트 연방 해체 때 바로 독립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실상 조지아와 분리된 문화권임에도 국가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유엔, 나토의 지원을 받고 곧바로 '국가'가 된 코소보와 비교하니 확 와닿는다. 2016년 CONIFA 대회 개최국이자 우승국이라고 하니, 이 대회에 대해 더 관심이 가서 찾아보고 싶어졌다.
코소보는 인본주의 개입으로 정당화된 NATO 주도의 공습 작전 이후 사실상의 독립을 획득한 국가로, UN의 평화유지 임무와 미국 및 EU의 지지 혜택을 누렸다. 반면 압하지야는 모스크바 당국에 저항하는 조지아를 벌주기 위해 푸틴이 지원하는 러시아의 프로젝트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됬다. (...) "우리는 이중 잣대와 위선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코소보에는 국가가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하지만 압하지야에는 독립국가건 다른 국가 내의 자치체건 간에 늘 일종의 민족국가가 있었습니다."(p.40-41)
미국과 캐나다는 아시아, 아프리카와 다르게 논란 없이 안정된 국가를 유지하고 있을것만 같다. 하지만 저자는 미국 동부의 캐나다 국경에 위치한 아크웨사스네의 사례를 들면서, 미국도 별반 다르지 않고, 국가와 경계가 형성되기 이전부터 국가와 유사하게 운영되던 민족집단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로쿼이인들이 자신들의 연맹 여권을 들고다니다가, 자신들의 조상이 만든 스포츠 대회에 참가하려고 영국에 가려다 입국거부를 당한 스토리는 정말 '웃픈' 이야기였다.
땅과 독립국가의 지위는 이로쿼이 정치 체제에서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근대 국가가 지리적 경계를 구분했던 것보다 훨씬 앞서 존재했던 연관성이다. (...) 미국이나 캐나다가 건국하기 전부터 이 땅에 들어와 두 나라 국경의 양편에 살고 있던 이로쿼이인들은 늘 민족의 위상과 주권을 주장해왔다. 특히 미국-캐나다 국경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권리가 문제였다. (p.108-109)
미국은 국경과 영토 분쟁을 중동이나 동유럽에서나 일어나는 일로 치부하지만 북아메리카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럽 열강들 사이에서, 그리고 정착민과 토착민 사이에서 분쟁이 끊이지 않던 땅이었다. 그리고 미국 정부, 특히 현 정부가 주력하는 문제가 외부 국경 문제라 하더라도 미국에는 내부 영토와 관련한 종결되지 않은 문제가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p.131)
소말릴란드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말 억울한 국가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가 없다. 나 역시도 '소말리아' 하면 기아, 빈곤, 분쟁, 해적의 이미지가 마구 떠오르고, 대부분의 다른나라 사람들도 그렇게 소말리아를 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북부에 위치한 일부 지역, 아니 스스로는 국가로서 칭하고 실제로 국가로 기능하는 소말릴란드는, 엄연히 소말리아의 상황과 별개이다. 혼란스러운 소말리아 정부로부터 독립을 1991년에 선포하고 독자적인 정부와 사회를 이루고 있음에도, 여전히 가난하고 자원도 없으니 강대국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최대한 국가의 분할을 억제하는 '안정된' 국경선을 유지하고 싶은 강대국들과 유엔의 입장으로 인해, 소말릴란드의 목소리는 국제사회에서 들리지가 않는 것이었다. 남수단의 사례를 보니 소말릴란드가 억지로 독립할 필요는 없겠다 싶으면서도, 그럼에도 소말릴란드 사람들의 특이한 정치 상황으로 인한 피해가 있으니 문제가 있다고 생각은 들었다.
남수단의 사례는 아프리카나 중동의 국경선을 재편하면 오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향해 던지는 분명한 경고다. 새로운 국가 창설은 새로운 갈등을 점화시킬 수 있다. 과거의 동맹들이 새로운 국민 경제라는 전리품을 놓고 싸우기 때문이다. 특히 남수단처럼 국가를 운영하기 시작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을 경우 이런 위험은 더욱 커진다. 남수단은 소말릴란드 같은 곳으로서는 딱히 모범으로 삼을 만한 사례가 아니다. (...) 그렇지만 외무부 장관 샤이어가 지적한 대로 소말릴란드는 이미 존재하고 있고, 국제사회는 벌써 오래전에 이 나라를 국가로 인정했어야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소말릴란드는 독립국가의 모든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소말릴란드의 독립을 반대하는 주장의 근거는 대개 이 나라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이다. 소말릴란드 관료들은 국제사회가 이들의 독립을 인정할 경우 민족주의 운동이 도미노처럼 퍼져 나가리라는 말을 질리도록 듣는다. 소말릴란드가 독립한다면 다른 지역이 동일한 시도를 하는 것을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p.178-179)
쿠르디스탄 이야기는 고등학교 세계지리의 '분쟁지역' 사례로서도 등장하기에 익숙한 편이었다. 국가가 없는 민족 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민족, 독립을 이룰 확률이 가장 높은 민족 등으로 유명하고,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에서의 이야기들이 기구했다. 강대국, 주변국들이 예나 지금이나 자신들의 필요 상황에서만 쿠르드족을 이용해온 역사가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쿠르드족이 단일한 정치체제가 아니고 부족들의 느슨한 결합체이다 보니, 하나의 민족국가를 이루기 힘든 상황도 있었다. 국가를 형성할 시기를 놓쳤다는 점도 있지만, 나중에라도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이었던 것이다. 안타깝기도 하면서도 시대를 잘못 타고났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반드시 독립국가를 이룬다기보다, 현재 국가 내에서 쿠르드족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정치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나아가 국가와 경계에 대해 새롭게 해석되는 시대가 오면 쿠르디스탄이 지금과 다른 방법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가 존재한다면 바로 쿠르디스탄이 그런 집단에 속할 것이다. 물론 이곳의 문화적 결속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다. 터키의 쿠르드족은 문화 및 정치적 권리를 얻고자 지난 수십 년동안 무력 투쟁과 평화 투쟁을 비롯해 다각도로 벌여왔지만, 이라크령 쿠르디스탄은 놀랍게도 터키의 수도 앙카라의 동맹이 됐고, 이라크 바그다드의 개입 없이 자국의 석유를 터키까지 연결한 송유관을 통해 판매한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 그뿐만 아니라 이라크령 쿠르디스탄은 내부적으로도 정치 지역이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지역은 각각 쿠르디스탄의 오랜 족벌 정당들 중 한 곳과 연합한 정당의 지배를 받고 있다. (...) 쿠르드족이 단일한 정치체라고 말하는 것은 아랍인들이 단일한 정치체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다. 쿠르드족을 대변하는 이들은 때로는 중첩되고 때로는 갈등하며 경쟁하는 정당, 집단, 정부, 민병대의 혼합물이다.(p.220-221)
국경의 변화는 예외 없이 더 많은 인종청소와 폭력을 부른다. 우드로 윌슨의 시대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사람들은 명확하게 가를 수 있는 지리적 단위로 스스로를 쪼개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시도들은 무엇이 됐건 간에 결국 특정 집단의 사람들이 새로 갈라진 국경선 양쪽 중 바람직하지 않은 쪽에 살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쿠르디스탄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p.232)
키리바시 이야기는 이전의 사례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지만, 이 역시 현재 국가의 의미에 대한 의문 제기로서 연관이 있었다. 현재 국가를 규정하는 데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물리적 영토'가 사라져도 국가로서 존재가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을, 태평양 가운데서 해수면 상승에 가장 취약한 섬나라인 키리바시로 드는 것이다. 한편 키리바시 내에서는 해수면 상승으로 국가가 소멸된다는 이슈를 만들어야먄 전세계에서 자국에 관심을 가져준다면서 좌절감을 가지는 이들도 있다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또 키리바시가 사라지는 것을 아예 부정하거나 국내 정치세력 간의 논쟁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영토가 없어진다는 공포가 나로서는 체감이 안가지만, 이들의 현재의 실존, 공포감과 회피 심리, 정치적 논쟁 등에 대해서 지금까지 공감을 못해줬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영토 없는 국가가 의미가 있는지라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역으로 저자는 영토 없이도 1만여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타국과 외교관계도 가지는 몰타기사단을 들면서(p.82-90), 키리바시도 혹시나 하는 미래를 그런 방향으로 잡는 선도적인 국가가 될수도 있겠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이곳 주민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고 느낀 것은 키리바시가 불운에 처해 있다고 말할 때에만 세계가 자신들의 나라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된 데서 오는 좌절감이었다. (...) 세계에 닥친 더 큰 문제의 상징 격으로만 도서국들의 문제를 보는 태도는, 대의명분에 순교자를 이용하듯 이들 국가를 대하는 대륙민의 이중적인 태도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p.280-281)
2013년 콜로라도대학교의 법학자 제니 그로트 스타우텐버그는 파국에 직면한 도서국들이 국제적 인정을 유지하려면, 최소한 해상에 물리적 구조물을 일부라도 유지함으ㄹ써 대다수의 주민이 이주하더라도 소수의 거주민은 그곳에 남게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군소 도서국의 국민은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발언권을 유지하고 싶은 것이고, 이전 영토 주변의 어장 및 천연자원에 대한 권리 등 보호해야 할 경제적 이익이 있는 것이다. (...) 국가를 규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창조적으로 사유해야 할 시점이 온 듯 하다. 현재의 정체 상태가 기후 변화의 시대를 만나게 되면 국가 자격에 물리적 영토가 꼭 필요한 것인지의 여부를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p.285-286)
그렇다고 해서 저자는 현재의 지도와 국제적인 합의를 모두 거부하자는 극단적인 주장은 경계하려 한다. 하지만 지난 한 세기 동안의 민족국가와 세계체제가 구성되었다는 점을 우리가 자각하여야, 여러 문제점이 발견되고 앞으로 변화하는 세계에 걸맞는 국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국가, 경계, 민족, 이주, 시민권 등의 주제에 대해서 여러 학자와 전문가들의 책, 기사 등을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정치지리학, 사회지리학에서 많이 관심을 가지는 주제와 관점이라서 저자의 책 내용이 흥미로웠다. 언론인이다보니 새로운 용어와 확 와닿는 표현, 즉 '국경은 경로의존성의 산물이다(p.310)'라던지 '베스트팔렌 강박(westphalian obsessiveness)(p.312)' 등으로 설명하는 것이 좋았다. 또 이론적인 내용만 전개하는 게 아니라, 저자의 직접적인 취재를 통해 주장을 논증하면서 책을 전개하여 더욱 흥미로웠다. 중고등학교 지리에서 다루는 여러 '분쟁지역', '민족, 종교의 갈등지역' 등의 내용요소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재구성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에서 직접 겹치는 사례는 쿠르디스탄, 키리바시 정도만 해당되어서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이 관점을 가져오는건 의미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맵헤드'와 같은 아이가 좀 더 고차적인 지리학의 개념, 이론을 접하면 이와 같이 국제문제 전문가로 진화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 책을 지도와 지리를 좋아하는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다. 물론 외교, 국제정치, 사회이슈에 관심이 많은 학생과 일반인에게도 추천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