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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18일
어느 날 아침, 102세의 할머니, 베르트는 옆집 남자에게 총알을 날려 버린다. 탕! 탕!
총격전 신고 받은 경찰은 할머니의 집을 애워싼다.
그 경찰들에게 소리치는 베르트.
“지금 누굴 협박하는 게냐? 이런 후레자식! 네놈이 내 비상금을 노리는 걸 모를 줄 알고!”
그렇게 외치고 어영부영 스물두 방의 총알을 날린다.
이윽고 경찰서에 잡혀가 심문받게 된 베르트.
벤투라 반장에게도 한 소리 한다.
“경고하는데 요실금 때문에라도 날 여기 오래 붙잡아두진 못할 거다. 널 위해서라기보다 날 위해서 하는 얘기야. 난들 어쩌겠니, 아흔이 넘어봐라. 그냥 죄다 될 대로 되라야. 내 자동차와 달리 난 웬만한 돈으론 고치지도 못해. 1986년 이래로 몸값이 훌쩍 뛰었다고.”
이런 블랙 유머가 가득차 있는 책이다.
하하, 풋, 킄, ㅎㅎ, ㅋㅋㅋㅋ
웃음 소리를 낼 수 밖에 없는 책이다.
베르트는 102살이지만 치매 환자가 아니다. 오히려 여기 나오는 인물 중 제일 똑똑하고 행동력있고 누구보다 정의로운 존재이다.
102세가 될 때까지 경찰서에 갈 일 없었던 베르트는 전날 밤 찾아온 자동차 도둑 로이와 기메트를 만나게 된다. 장총으로 로이와 기메트를 제압하며 그들의 딱한 사연을 듣는다. 정의감에 넘치는 베르트는 로이와 기메트에게 달아날 시간을 충분히 주기 위해 옆집 드 고르의 엉덩이를 날려버리기로 한다. 경찰이 자신에게만 집중하길 바라면서. 귀여운 커플이 자유를 찾아 멀리 도망가기를 바라면서.
벤투라 반장은 베르트를 처음 만났을 때 총기를 난사한 이유를 찾고자 했다.
빨리 취조하고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려 했지만 시작부터 만만찮다.
벤투라 반장 : “통상적 절차로 시작하죠. 성명, 생년원일, 출생지부터.”
베르트 : “지금 나한테 수작거는 거냐?“
이 할머니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오늘 안에 취조를 마칠 수는 있을 것인가!
베르트 할머니는 자신이 태어난 직후부터 오늘까지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총이 어디서 났는지 왜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는지 설명하려면 자신의 탄생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늘어놓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베르트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던 벤투라 반장은 입이 딱 벌어진다.
지하실에 시체가 있다고요?
그것도 한 구가 아니라 일곱 구나?
네?
7명만 살인한 게 아닐 수 있다고요?
아침부터 그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지는 베르트의 살인 자백.
홀가분해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벤투라의 호의를 베르트는 거절하지 않는다.
한 명, 한 명 어떻게 죽였는지, 왜 죽였는지 말하면서 항상 약자로서 사회의 엄격한 기준과 이중 잣대에 눌려야 했던 베르트의 인생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프면 소리를 지르는 법이지.
난 아플 때 총을 쏴.
손가락질 받고 짓밟혔을 때 최약자인 베르트는 소리를 지르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그래서 베르트는 소리를 지르는 대신 총을 쏘아 고통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루거 총은 스스로를 보호하기에는 열악했고 도움도 받지 못했던 사람이 세계 대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치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야기에서 나왔다. 자신을 강간하려던 나치 군인을 죽이고 그가 가지고 있던 루거 총을 무기로 삼아 계속되는 공격을 대비한다.
자유를 구속했던 가부장적인 남편, 엄마에게 매달리는 마마보이, 예술병에 걸려 술이나 퍼마시는 화가, 자신의 콤플렉스를 인정하지 않는 댄서 등
베르트에게는 총알을 날릴만한 위인들이 도처에 깔려있었다.
자신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인간들. 극한까지 약자를 짓밟는 인간들.
존중을 표하지 않지만 자신은 존중받길 원하는 인간들.
베르트를 힘껏 밟으러 온 사람들은 루거 총에 관통당해 베르트가 사는 집 지하에 묻혀 버렸다.
베르트가 상당히 냉혈한같이 보이지만 자신을 존중해주고 진정 아껴준 사람에 대한 애정은 무한대로 가지고 있었다.
루터는 베르트가 이제껏 만난 사람들과는 달랐다.
그녀를 존중할 줄 알고 사랑할 줄 알았다.
루터가 베르트에게 소개해 준 시드니 베커의 서머타임의 선율처럼 루터와 베르트는 감미로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사람들은 흑인 루터와 베르트의 결합을 달가워하지 않고 결국 루터는 베르트의 곁을 타의에 의해 떠나게 된다.
베르트는 큰 충격을 받는다. 60살이 된 베르트는 자신의 친한 친구를 다시 한번 꺼내든다.
루터의 복수를 위해 루거 총을 한 번 더 장전했다.
그 모든 과정을 듣고 있던 벤투라는 ‘법’의 이름으로 베르트를 심판하려 한다.
˝왜, 당신이 보기에 난 생존자가 아닌 것 같아서?˝
방 안의 온도가 핵폭발 일보 직전이었다.
˝내가 어떤 길을 지나왔는지 당신은 상상도 못해.˝
p. 285
벤투라 역시 강자의 눈에서 베르트를 보고 있었으며 그녀를 판단하려 한다.
그녀가 원한 것은 단지 같은 인간으로서 존중받길 원했을 뿐인데.
긴 시간 사람을 괴롭히고 죽이는 구타와 학대는 강자의 이름으로 행해지지만 약자로서 참다가 참다가 총을 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102살이 되어서도 판단의 제물이 되는 베르트는 결국 벤투라를 집으로 초대한다.
과연 벤투라는 이 할머니의 지하실에 가게 될 것인가?
약자로서 한 세기를 보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듣다가 요즘 뉴스를 보다보면 세계는 아직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설의 힘이란 현실의 문제를 재인식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100년 전의 문제가 지금도 고스란히 계속되는 걸 보다보면 한숨도 나온다. 베르트가 날린 루거 총의 총알이 위안이 되는 것은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우리에게 대피소가 된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베르트는 살아냈노라고 소설 속 가상의 인물에게서 용기와 힘을 얻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최근에 읽은 소설 [연년세세]가 생각났다. 한국에서 전쟁을 겪고 살아 남은 한 여자[연년세세]와 프랑스에서 전쟁을 겪고 살아 남은 한 여자[루거 총을 든 할머니]의 이야기를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유머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베르트의 유머는 ‘루거 총’이라는 강한 무기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강자가 아무리 위협을 해도 웃음이 난다. ‘아, 참을 수 없으면 쏘아버려야지!’
나도 나만의 ‘루거 총’을 가지고 총알을 장전해서 유머로 날리고 싶다.
자신만의 무기를 개발하고 싶은데 롤모델이 없는 사람은 베르트의 이야기를 들어보시길!
누구보다 훌륭한 롤모델이 되어 베르트가 당신을 이끌어줄 것이다.
제목부터 끌린 이책을 처음 접한건 어떤 카드뉴스를 통해서 였던 것 같다. 할머니가 7명을 죽이고 시체를 집안에 숨겨두었다고 취조실에서 덤덤히 말하는 내용의 카드뉴스로 기억하는데 정확하진는 않다. 명확하게 기억 나는 것은 이 책을 꼭 봐야 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다.
아 뭐, 총 몇 방 쐈다고 삐지려면 삐지든가
처음 책을 펼쳤을때는 불친절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싶은 생각으로 책을 읽어내려 갔다. 도대체 왜 저런 상황에 할머니는 놓이게 된건지 궁금해서라도 책을 계속 읽게 만들려고 그랬나 싶다.
천연비누는 베르트의 일상에서 기쁨만큼이나 구하기 힘든 물자였다
참혹한 전쟁이라 제발 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바래서 '마지막 죽의 마지막'이라 불리는 전쟁을 갓 태어나서부터 경험한 베르트는 그당시의 참혹한 현실을 너무나 가벼운 문체로 이야기하고 있다. 당장 불황과 살육이 지척이었는데 말인다. 태어나자 마자 본 세상이 전생이라 비교 대상이 없어 이것이 보편적이 삶이구나 싶어서 였을까..
나나의 증류기는 순대가 되기 위해 전선으로 떠나는 병사들과 한두 군데가 떨어져나갔을지언정 운 좋게 살아 돌아온 병사들의 창자에 온기르 불어넣었고, 심장엔 연고가 되었다. 참호에 살덩이를 많이 남기고 온 방사들일수록, 나나의 할인율도 높아졌다.
이웃을 살인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할머니의 파란만장한 남자 살해기이다.
물론 남자 죽이는 이야기라고 축소하기에는 섣부르다. '루거총을 든 할머니'는 할머니의 진술을 따라 그녀의 인생을 함께 회상하는 식이다. 그 과정에서는 남자 죽이기 외에도 할머니의 사랑과 할머니의 생각 또한 엿볼 수 있다. 마치 맘마미아의 흑화 버전 같달까? 분명 순탄치 않은 인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의 할머니들이 그렇듯 주인공 베르트는 이 모든 것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녀의 지하실에 7명의 남자가 묻혀져 있다는 것을 읽고 처음에는 놀랐지만, 여자가 살아가며 만날 유해한 남자가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니 그닥 많은 숫자도 아닌 것 같다. 우리의 베르트 할머니는 인내심이 조금, 아주 조금 모자랐을 뿐이다.
베르트는 남자가 없는 세계에서 자랐다. 전쟁으로 인해 줄줄이 남편을 잃은 집안에서 태어나 할머니의 손에 길러진 베르트는 동네 사람들의 수근거림을 들을 만큼 '조신하지 못한' 여성이었다. 그런 베르트가 성인이 되어 다양하게 폭력적인 남성들과 싸워나가는 것이 이 소설의 주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내 행동이나, 전장을 피로 물들인 우리의 용감한 병사들의 행동이나 다를 바 없다고.' 베르트가 말한 것처럼, 전장에서 벌어진 병사들의 살인이나, 베르트의 남편 살인이나 본질적으로는 똑같은 살인이다. 그러나 여자들의 살인은 남자들의 살인과는 다른 취급을 받고는 한다.
흑인 소년인 무스가 폭력을 숭배하는 것처럼, 이 책은 소수자들의 피해자성만 부각하려 들지 않는다. 주인공 베르트만 해도, 무려 7명의 남자를 죽인 연쇄살인범이다. 물론 그들이 먼저 위협을 가하기는 했어도, 마지막 피해자인 세금징수관의 경우 베르트의 잘못이 맞다. 이처럼 작가는 인물들의 입체성을 부각하는 데에 집중한 듯 하다. 그러나 독자는 읽으면서 작가의 입체성 또한 인식하게 된다. 할머니의 입을 빌려 분명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작가가 여자를 그려내는 데에는 분명 '남성적' 시선이 존재한다. 그러니까 성관계에 대한 묘사가 장황하다던가, 몸매에 대한 서술이 지나치게 구체적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프랑스인 남자인 작가의 모습이 글자 뒤에 비치는 것 같아 꽤 불편헸었다(프랑스인 남자 작가에 대한 개인적 편견이 포함되어 있는 감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할머니들에게 매우 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 소설에 후한 평을 내려주고 싶다. 할머니들은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미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여성으로서 수많은 세월을 버텨내신 그분들은 마주하고 있자면 어렸을 때로 돌아가 옛날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르고 싶은 기분이 된다. 물론 어린이에게 들려주기에 이 책은 너무 잔인할 수도 있지만, 이미 어른으로 자라버린 우리에게는 딱 알맞을지도 모른다.
브누아 필리퐁 작가님의 루거총을 든 할머니를 구매하여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위즈덤 하우스의 출판사에서 나온 책 입니다. 할머니가 살아온 세상은 할머니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편견과 차별을 맛보여 줬습니다. 그래서 할머ㅣ는 극단적으로 살인을 하게되지만 이 살인에는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살인이 정당화될 순 없지만 할머니의 입장에 서서 한번 다시 생각해보게 될 수 있는 재미있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