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고대인들이 세계를 이해한 방법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의 인간들은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아니, 아는 것이 거의 없었기에 빈틈을 메울 이야기가 필요했다. 신화에 등장하는 수없이 많은 신들과 크든 작든 그들이 저마다 관장하는 영역은 세상을 보고 품은 궁금증에 대한 그리스 사람들 나름의 대답이었다.
세상에는 왜 서로 다른 피부색을 지닌 여러 인종의 사람이 있을까? 그것은 프로메테우스가 진흙으로 빚은 형상에 여러 가지 색소를 섞어 각양각색의 인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보라색이나 초록색 사람이 없는 것은 제우스가 실수로 인형을 망가뜨렸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은 왜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는 메마른 땅이 되었을까? 그것은 우쭐대고 싶었던 파에톤이 아버지 아폴론을 졸라 태양 전차를 미숙하게 몰다가 아프리카 지역을 지날 때 땅에 너무 가깝게 다가가 그곳을 바싹 태워버렸기 때문이다.
세상은 왜 고통과 질병, 전쟁, 번민 등으로 가득할까? 그것은 최초의 인간 여성인 판도라가 그것들이 갇혀 있던 항아리를 열었기 때문이다.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들었음에도, 결국 그것을 열고 만 것은 인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호기심’ 탓이었다.
이러한 거대한 세계의 원리 외에도 꿀벌이 침을 쏘고 나면 왜 죽게 되는지, 거미는 왜 끝없이 실을 뽑아 집을 짓는지, 산에 가면 울리는 메아리는 왜 생기는 건지 등 우리 주변의 자연 사물과 현상에 관한 신화 속 이야기들은 고대인의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그 대답들이 과학적 접근은 아닐지언정 저마다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신들의 만찬에 꿀을 대접한 꿀벌이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독침을 달라고 우기자, 제우스는 마지못해 소원을 들어준다. 그 대신 그는 정작 독침을 사용하고 나면 침에 쏘인 자가 아닌 그 침을 쏜 꿀벌이 죽게끔 침을 만들어준다. 이기적이고 오만한 자들에 대한 예시 혹은 윤리관을 암시하는 이런 이야기들은 그리스 신화에 수없이 많다.
신들의 모습과 성격 역시 그리스인들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 다른 어떤 신보다 ‘인간적’이라고 평가되는 그리스 신들은 그리스인의 가치관을 보여준다. 신이라고 해서 완벽하고 존귀하고 우리와 먼 존재가 아니다. 그들도 온갖 욕망에 들끓고 때로는 실수도 하고 후회도 하며 눈물도 흘린다. 사랑할 때는 더없이 낭만적이고 열정적이지만, 한번 분노하면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 마치 우리의 반영과 같아서 우리는 그리스 신들에게 그토록 매혹되어왔는지 모른다.
그리스 신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
―문학과 예술, 그리고 인생 곳곳에 숨어 있는 신화
책에는 34점의 도판이 실려 있다. 모두 그리스 신들을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이다. 그리스 신화에 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장간에서 번개 모양 창을 벼리는 대장장이가 헤파이스토스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또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지팡이를 쥔 이는 헤르메스라는 것도. 그리스 신화를 모르면 어느 귀족의 무덤에 실타래를 든 세 여자 부조가 왜 있는지 모르고 지나치겠지만, 신화를 알고 나면 이들이 인간의 생이라는 실을 잣고 재고 끊는 세 자매 신 모이라이이기 때문에 그곳에 조각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문학에도 그리스 신화는 속속들이 숨어 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속 비극적 연인들은 원수지간인 집안에서 태어나 서로 사랑했던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이야기에 그 전통을 두고 있다. 질투의 화신이며 남편 제우스가 바람을 피운 상대에게 가차 없이 복수하는 헤라는 이후 수많은 작품에서 성미 고약한 귀부인의 원형이 된다. 또 ‘뮤즈’라는 영어식 이름으로 친숙한 예술의 수호신인 무사(Mousa)들은 영감의 원천을 나타내는 고유명사처럼 쓰이며 많은 예술 작품의 주제가 되어왔다.
문학작품이 아닌 우리의 주변 곳곳에도 그리스 신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대표적 예로 별들의 이름을 들 수 있는데, 천문학자들은 태양계의 천체에 이름을 붙일 때 고전학자들의 자문을 구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많은 별과 행성, 위성 등에 그리스 신들의 로마식 이름이 붙었다. 예를 들면 금성(venus, 베누스=아프로디테), 화성(Mars, 마르스=아레스), 목성(Jupiter, 유피테르=제우스) 같은 것이다.
지금은 왜소 행성으로 강등된 명왕성(Pluto, 플루토=하데스)의 다섯 위성인 스틱스, 카론, 케르베로스, 히드라, 닉스는 모두 저승과 관련된 이름들이다. 하데스는 명계의 왕이며, 그곳에 흐르는 강이 스틱스, 그 강을 건네주는 뱃사공이 카론, 저승 입구를 지키는 괴물이 케르베로스와 히드라이고, 닉스는 밤의 신이다. 이런 이치를 알면 이 다섯 이름을 굳이 외우지 않아도 잊어버리기 힘들다.
폭넓고도 방대한 지식과 탁월한 통찰력
작가 스티븐 프라이는 영문학을 전공하기도 했지만 어휘와 표현력, 유머 감각이 뛰어나 오스카 와일드에 자주 비유된다. 이러한 재능을 바탕으로 프라이는 영국의 인기 퀴즈쇼 [QI]를 10년 이상 진행했는데, 이 쇼는 정답을 맞히는 사람이 아닌 가장 신선하고 흥미로운 대답을 하는 사람에게 점수를 주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능란하게 문제들을 다루며 출연자들과의 대화를 재치 있게 이끌어가는 그의 진행 덕택에 자연스럽게 견문이 넓어지고 창의성이 높아진다는 평을 받은 프로그램이었다.
마찬가지로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많은 지식들을 습득하게 된다. 예를 들면 유명한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의 에로스상은 사실 에로스가 아닌 안테로스의 동상이라는 것(섀프츠베리 백작의 박애주의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헌신적 사랑의 수호신인 안테로스 조각을 세웠다). 영어로 지도는 ‘아틀라스’라고 불리는데, 이는 고대 지도에 세계를 받치고 있는 아틀라스를 그려 넣은 전통에서 비롯되었다는 것(그러나 사실 아틀라스는 하늘을 떠받치는 벌을 받았기 때문에 엄밀히 이 그림은 오류라 할 수 있다). 원래 올림포스 12신에는 화로의 신인 헤스티아가 들어가 있었으나 뒤에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로 대체되었다는 것(3세대 주요 신인 하데스는 지하세계에만 머물렀기 때문에 올림포스 신이 아니다). ‘키타라’라는 악기 이름에서 ‘기타’라는 단어가 유래했다는 것(그러니 간혹 ‘키타’라고 발음하는 이들에게도 조금의 구실이 되지 않겠는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지식만이 아니다. 신화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통찰과 견해가 빛나는 순간도 많다. 이를테면 2세대 신들인 티탄족과의 10년 전쟁을 끝내고 마침내 승자가 된 제우스가 같이 싸운 다른 신들에게 각자의 영역을 나눠주는 장면이다. 작가는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현대의 기업과 정치에 빗대 묘사한다.
적대적 인수합병을 막 끝낸 최고경영자처럼 제우스는 예전 경영진을 쫓아내고 자기 사람들을 들여오고 싶었다. 그는 형제자매들에게 각각의 세력권과 신성한 의무를 할당했다. 영원불멸한 존재들의 대통령이 자신의 내각을 구성한 것이다._83쪽 [3세대] 중
그러면서 제비뽑기로 각자 바다와 지하세계를 나눠 갖게 된 포세이돈과 하데스의 심리는 다음과 같이 그린다. 신이지만 인간 못지않게 유치한 형제간의 심리를 그려내는 작가의 시각이 유쾌하다.
사이가 안 좋은 형제라면 으레 상대가 원하는 걸 욕심내기 마련이다.
‘하데스는 바다와 지하세계 중 어느 쪽을 원할까? 녀석이 지하세계를 원한다면 나도 그걸 갖고 싶군. 저놈이 열 받는 걸 보고 싶으니까.’ 포세이돈은 고민했다.
하데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뭘 고르든 만세를 불러야지. 저 머저리 같은 포세이돈 약 오르게.’_86쪽 [3세대] 중
남성과 여성이 한몸에 공존하는 신 헤르마프로디토스의 이야기를 할 때는 세계의 주요 박물관들이 이 자웅동체의 신을 묘사한 작품들을 감추어왔음을 언급한다. 이 간성(間性)의 신을 존중하며 심지어 숭배했던 열린 마음의 그리스인들과 달리 엄격하고 군국주의적이었던 로마 시대 이래 이런 존재들은 숨겨야 할 위협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 자신이 동성애자이기도 한 프라이는 이러한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최근의 움직임에 주목하며 여러 기관들에서 헤르마프로디토스를 표현한 작품들을 재발견하려는 시도를 젠더 유동성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는 흐름과 연결 짓는다.
이렇게 『스티븐 프라이의 그리스 신화』는 재담가가 들려주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홀려 있다 보면 다방면의 지식은 물론이고, 그 이야기가 현대에 갖는 의의까지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는 책이다. 물론 저자 자신은 이 책의 목표를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라고 한정했지만, 실제로 이 책이 담아낸 폭과 깊이는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다. 독자들에게는 즐겁고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스티븐 프라이의 그리스 신화』에 쏟아진 언론들의 찬사!
흥미진진하면서도 교훈적이다. 이보다 더 뛰어난 책을 바랄 순 없을 것이다.-《텔레그래프》
프라이의 비범한 지식과 엄청난 필력, 어마어마한 박식함과 열정이 묻어난 책.
-《메일 온 선데이》
활기 넘치고 유머러스하고 심오한 이 책은 정말로 매력적이다.-《가디언》
일상 언어를 사용하여 고대 전설을 현대적 맛으로 살린 책.-《더 타임스》
프라이의 생동감 넘치는 필력이 그리스 신화에 대한 그의 오랜 열정을 고스란히 전한다.
-《인디펜던트》
프라이는 고대 그리스의 신과 괴물, 인간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현대인들을 위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익스프레스 앤 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