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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의 책] 오늘부터 한 장씩 읽어 봅시다 - 하자까 편
2020년 08월 04일
제목에 이끌려 보게 된 책, 카카오 브런치 대상작이라니 많은 사람들을 끌리게 하지 않았을까 해서 보게 됨.
제목이 좋다...안 느끼한..
https://blog.naver.com/mate3416/222054881490
< 책방 하고싶은 면서기 >
두어 해 전까지만 해도 ‘청년’이라는 사회집단에 내가 속할까 아닐까 (괜히 나 혼자) 생각해보곤 했었다. 이런저런 구차한 구실을 붙이면―이를테면 어느 농촌마을에서는 70세까지는 청년회라더라 하는―다소 억지스럽지만 끼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완전히 글렀다.
"청년"이란 19세 이상 34세 이하인 사람을 말한다.
「청년기본법」이 이달 5일에 시행되었다. 청년세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의 필요성을 법제화한 것은 (아주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반가운 일이다. 연령의 범위를 명확히 하여 각종 정책과 사업에 있을 수 있는 혼란을 방지한 것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하지만 좀 섭섭하다. 누가 물은 적도 없고, 억지스럽다는 것 잘 알지만 그래도, 혹시나, 어쩌면, 좀 찔리지만, 나도 청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낭랑한 미련을 빼앗겨버렸으니 난감하고 속상하다.
푸릇한 기운과 설렘, 무한한 가능성과 싱싱한 체력, 청, 춘, 맑고 깨끗하게 바깥세상으로 나아가는 발음조차 유혹적인 청년의 시절.
하지만 요즘 들어 자꾸만 그 시절을 넘어선 나의 지점을 고맙게 여겨야 할 것 같아진다. 직장생활 15년차, 결혼 11년차, 육아 10년차. (현실감 없는 대출금과 꼬박꼬박 갚아나가는 이자에 고단하지만 어쨌거나) 집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이유들로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미안해해서, 딱하게 여겨서 또 미안하다.
청년시절이 고생스럽지 않았던 시대가 있었느냐, 어른들이 물을지 모르겠다. 그들에게는 그리 물을 자격이 있다. 내가 본 모든 사진 속 젊은 그들의 기름기 없는 몸에는 잉여 칼로리 대신 절대 빈곤이 있었고, 내가 들은 모든 사연 속 젊은 그들에게는 가족부양과 몸과 마음을 바쳐야하는 조국충성의 의무가 있었다. 얼마나 지긋지긋 했을까, 종종 생각한다.
그때와 지금은 다릅니다, 청년들이 답할지 모르겠다. 노력하면, 포기하면, 애쓰면 무언가가 될 수도 있었던 시절이지 않았습니까,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무런 대답도 질문도 내놓지 않을 것도 같다. 무서운 일일 텐데, 정말 아무것도 답하지 않고 묻지 않는다면.
『안 느끼한 산문집』은 막내 방송작가로 사회초년을 살아가는 강이슬의 에세이다. 『혼자를 기르는 법』은 강이슬과 비슷한 시기를 홀로 살아가는 20대 여성을 그린 웹툰의 단행본이다. 이 두 청춘은 서울이라는 어른의 세계, 돈의 세계, 기회와 패배와 희망과 포기의 세계로 터를 옮겨 청년시절을 시작한다.
“우리가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은 둘 다 아는 사실이었다.”
- 『안 느끼한 산문집』 中 「보증금, 너에게 청춘을 바친다」
수도가 얼어 수많은 엉덩이들이 닿았을 술집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고 강풍이 불면 생존을 두려워해야 하는 옥탑방에서 강이슬과 동거인 친구는 “야, 시발. 진짜 이 집 무너지면 어떡하지?” 목숨을 위태로워하며 열심히 돈을 벌자 다짐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바닥이 꺼지지 않은 집, 똥 냄새가 나지 않는 집에서 살 수 있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버스의 교통카드 인식음이 두려워 ‘볼이 썰릴 것 같은’ 겨울에도 40분을 걸어 일터에 가고, 방송 소품으로 쓰다 버려진 도시락을 챙겨와 냉동실에 넣어두고 끼니를 해결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더’ 열심히 살라 말할 수 있을까.
『혼자를 기르는 법 1』의 <단념이라는 이름의 어댑터> 편은 서로 다르게 생긴 어댑터들이 “잘 가! 모두 맞는 길을 찾길 바랄게!” 인사하며 각자의 길로 힘차게 뛰어가는 컷으로 시작한다. 자기에게 맞는 콘센트를 찾아 걷는 이들에게 어른들이 말한다. “다 맞추면서 사는 거다. 세상 일이 네 맘대로 될 것 같냐. 맞는 거 하면 행복할 것 같지?”
흩어졌던 어댑터들은 결국 한 자리에서 만나 이런 대화를 나눈다. “아무 데나 들어가면 됨?” “어어, 일단 맞는 척하래.”
“웃긴데 짠해.” 동생에게 책을 권하던 메시지를 ‘짠한데 웃겨’로 보낼 걸 그랬나 싶다. 그 말이 그 말 아니냐 묻을 수 있겠지만 어쩐지 나는 아닌 것 같다. 아니었으면 좋겠다.
학교교육 지원과 장학사업 업무를 하면서 여러 학생과 연을 맺었다. 초 중 고등학생에게 다양한 직업군의 진로탐색과 직업인 멘토링의 기회를 만들어주면서 아이들이 진심을 다해 꿈을 꾸고 희망에 부풀기를 소망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이들의 미래를 축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생들, 청년의 시절을 시작하여 이제 곧 어른이 되어야 하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마음이 무거웠다. 작곡을 공부하는 ○○가 꿈꾸는 큰 무대를 들려주었을 때, 국문학과의 △△가 이주민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했을 때, 뇌과학을 전공하는 □□가 우리 지역에 연구소를 차리고 싶다했을 때, 컴퓨터공학과의 ◇◇가 백신을 개발할 거라 했을 때 마음이 참 어려웠다. 나는 진심으로 이들을 좋아했다. 그래서 미안했고 마음이 아팠다.
“저 서류 붙었어요!” “취업 스터디 하고 있는데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인턴 한 달 남았어요. 세 명 중에 한 명만 사원 된대요.” “알바 시작했어요.” “저 그냥 군대 왔어요. 힘든데 제가 잘 버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떤 심정으로 겪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누구나처럼 세상을 몸으로 배워가는 청춘들에게서 가끔 안부가 오면 반가운 마음이 달려나간다. 면접을 앞두고 긴장한 청춘에게 뜨끈하고 푸짐한 감자탕을 사먹이고, 낯선 공장에서 수습을 하고 있다는 청춘에게 치킨 쿠폰을 보내고, 공무원 시험에 떨어져 풀죽은 청춘에게 내가 얼마나 썩은 몰골로 그 시절을 보냈는지―도서관의 먹을 것들을 훔쳐가던 거지 아줌마가 나를 보고는 “으이그” 하면서 에이스랑 레쓰비를 내밀었던 굴욕을―이야기 해준다. 너희 모두를 내가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고, 그러니 다 잘 될 거라고 주문을 걸며 단톡방에 랜덤 선물을 띄운다.
정부와 공공기관에서는 애쓰는 청춘들을 위해 여러 정책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근로장려금, 구직활동비, 직업훈련비를 지원하고 직업능력 교육이나 도제식 교육훈련, 해외취업의 기회를 제공한다. 지역마다 청년 창업이나 주거, 복지 정책을 만들어 시행한다. 물론 자격요건과 예산의 한정이 있으니 모두가 혜택 대상이 될 수는 없을뿐더러 이런 몇 가지 사업을 통해 청년세대의 삶이 하나같이 꽃다울 수는 없다. (‘꽃’하니까 생각났는데, 도서관 거지 아줌마에게 과자 받아먹던 시절, 엄마가 친구분에게 “얘는 이 나이에 피지도 못하고 이렇게 확 졌잖아.”라고 나를 소개했었다. 나도 그런 청년시절을 보냈다.) 또, 세부기준을 들여다보면 합리적이지 않은 부분도 있다. 면사무소에 찾아와 장려금을 받기 위한 소득 자격기준을 보고는 “그럼 장려금 계속 받으려면 일하지 말라는 거네요?” 어처구니 없어하며 신청서를 쓰고 간 청년의 비아냥이 가시지 않는다.
모르겠다. 잘은 모르겠지만, 더디긴 해도 정치와 행정, 언론을 포함한 사회 전반에서 움직임이 일고 있고 지금의 청년들 역시 어느 시절의 젊은이들 못지않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여러 것을 포기한 세대라고 하지만 대의를 찾고 소중히 여기는 분야가 다른 것뿐일 수도 있다. 독재 타도 대신 환경과 생태와 동물권을 중히 여기고, 조국에 충성을 바치는 대신 나의 육체와 감정에 충만한 생生을 바치는 것이 어쩌면 지금의 청춘들에게 주어진 소명일지도 모르겠다. 소명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시대적 흐름과 뚝 떨어져 있어도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없다.
두 권의 독서후담이 과도한 감상을 벗을 수 있도록 시간을 두어 기다렸다. 조금 정리가 된 듯하다.
청년이 아닌 나는 강이슬의 이유있는 ‘시발’들과 웹툰 주인공 이시다의 ‘치사량까진 아닌 밤’에 과하게 공분하지는 않는다. 무한히 딱해하지도 않는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할 감상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피드백을 실천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청년이 아니라 청년인재를 영입하는 정당의 포퓰리즘을 비판하는 정치인의 칼럼에 호응하고,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들의 허점 보완을 건의하는 것, 우선은 내가 일하는 지역의 청년들만이라도 행정기관과 지역공동체로부터 쓸모있는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내 할 바를 하는 것이 소용없는 분노와 동정보다 필요치 않겠는가 생각한다.
다만 너무 딱딱한 건 또 별로니까, 자신의 매일을 나름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을 위해 기꺼이, 두 팔 높이 들어 그들의 충만한 날들을 축복하는 것을 잊지 않겠다. 취업과 사회생활에 어떤 팁도 될 수 없겠지만 누군가 ‘정말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보내는 것이 그들에게 나쁠 것도 없으니 그렇게 축복하련다.
- 「청년기본법」 제2조 제1항
이 법은 청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으며 건전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한다.
- 「청년기본법」 제2조 제2항
기본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 다음 각 호의 사항을 고려하여야 한다.
1. 청년 개개인의 자질향상과 능동적 삶의 실현
2. 청년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모든 분야에 대한 참여 촉진
3. 교육, 고용, 직업훈련 등에서 청년의 평등한 기회 제공
4. 청년이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ㆍ경제적 환경 마련
부디, 이 약속이 청춘들의 삶에서 실재하기를 바란다.
덧붙여,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 중년中年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아니 뭔 중년의 시작이 이렇게 빠르다냐…
제목에 끌려 구매했다가 이제야 읽어보았습니다. 신인 방송 작가로 시작해 이런저런 일을 겪기까지. 작가가 서두에 적어둔 것처럼 오글거리지 않거, 일명 느끼하지 않게 써내려면 이야기들은 미사여구로 꾸민 문장들보다 더 와닿았고,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살면서 겪는 수많은 일들, 그 중에 옳다 그르다로 판별할 수 없는 일들과 소소하게 즐겁고, 감동적이고, 서운하고, 슬프기도 한 이야기들을 담담한 문체로 만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에세이를 주로 다루는 글어플 '브런치'에서 1등을 한 작품이고, 브런치에 소개되어 있는 몇몇의 글을 미리 읽어본 바 얼른 이 책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도서 작가이기 이전에 방송 작가였기 때문에 글에도 위트가 있다고 해야되나. 책임에도 불구하고 예능을 보는 것 처럼 낄낄거리면서 본듯하다. 사실 나는 따로 북클럽을 결제해서 보고 있지는 않은데, (그렇게 많은 책을 사고있음에도...) 이 책때문에 좀 고민했단 말이지 정말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게 이런것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