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저
마르조리 물리뇌프 저/배영란 역
피터 스완슨 저/노진선 역 저
2022년 04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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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파트에 비해 분량이 제법 되지만, 푸코에 관한 책을 읽을 터라 정신병원 역사를 살펴봄직했다. 정신병원은 중세부터 사회적 골칫거리, 특히 행려병자를 처박아 넣던 수용소에서 출발한다. 한번 들어가면 죽어서야 나와 자체 묘지를 두었다는.
제목대로 역시나 19세기 벨기에의 <치유 공동체>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조현병이나 조울증을 앓는 정신장애자를 손님이나 “하숙인”으로 받아들여 일정기간 숙박 제공 후 원래 자리로 복귀하도록 돕는 모델인 까닭이다. 다름과 차이를 앞세워 배척하고 감금하는 게 아니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일거리를 제공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도록 돕는다.
조현병이나 조울증이 계속 악화되는 비가역적 정신질환이 아니라는 점이 동거인들이 힘을 내고, 보살핌을 공동체와 연대한다면 가장 이상적이겠다. 정신적인 위기로부터 완전무결하고 방부처리된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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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지구와 내가 속한 종, 인간에 대해 나는 왜 아무것도 묻지 않았던 걸까. 저자는 지구라는 행성에 원시생물체가 있고, 오랜 진화 끝에 복잡한 지적 고등생물에 이른 시간을 더듬는다. 나는 그냥 이 세상에 갑자기 내던져진 (에밀 졸라의) 자연주의 회의론적 존재가 아닌 것이다(뭉클!).
저자가 좋아하는 에스에프 소설들(웰스, 보니것, 포스터 등)과 우화에 귀가 쫑긋 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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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것을 즐겨먹지 않는 내게 해산물은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존재다. 마치 청어 축제를 와인 품평회에 다녀오는 것처럼 즐기는 저자를 보면서 그저 감탄할 뿐이다. 식도락과 다양한 요리로의 변주마저 지극히 열성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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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미국 콜로라도스프링스를 사십 년 만에 재방문한다. 젊었을 때 Revisited로 시작하는 에세이를 보면 가슴이 몹시 뛰었었다. 영국인인 그가 미국에 대한 환상을 품고 캘리포니아 전역을 모터사이클로 누볐던 시절이 영화처럼 되감긴다. 반려견과 같이 모터사이클은 길 위에서 격 없는 대화를 가능하게 했던 소통 매개였다. 아, 바깥으로 열린 귀와 가슴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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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는 모든 생명체에 진심이다. 양치식물 애호가로 활동했던 실험과 탐사를 회고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속성상 그의 발걸음과 눈길과 심장은 양치류(펀fern)처럼 늘 어딘가로 옮겨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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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의 115번, 즉 새로운 원소의 등극에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저자는 이것이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것과 같다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그의 말대로 과학은 “냉철함이나 계산보다는 열정, 낭만, 갈망으로 가득 차(311쪽)” 있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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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명명의 대가, 올리버 색스. 그는 자기 취향과 선호를 확실히 알고 삶에 충실히 반영한다. 뭐든 자신에게 맞고 어울리는 최적합 형태를 발굴하면서. 과학도답게.
이번에는 종이책 애호가이자 활자로 책 읽기를 고수하는 집념을 밝힌다. 어떤 사람은 그때의 감정을 기억하고, 어떤 사람은 오고간 말을 저장한다. 이처럼 다르기에 다양한 포맷의 책들이 공존해야 한다. 다양한 종처럼 큰글자책도, 전자책도 같이 살아남을 때 상호보완적일 수 있겠다.
독서는 단순한 언어적 행위가 아니라 감각이 교환되는 적극적인 활동인지라, 내 페이스대로 고유한 물성과 냄새 같이 ‘감각적’으로 기억하는 뇌의 적극적인 가담을 요구한다. 안과를 자주 드나든 한해인 만큼 <깨알 같은 글씨 읽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모두는 독특한 개인으로. 매우 개별화된 수요와 선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선호는 우리 뇌의 모든 수준에 내장되어 있으며, 우리의 개별적 신경 패턴과 신경망은 저자와 독자 사이에서 매우 사적인 교제의 가치를 열어준다. (3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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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달리는가와 관련된 논문을 읽으며 저자는 인간과 동물의 움직임을 포착한 19세기 두 사진작가(자칭 솔닛 키즈는 막 심장이 나댔더랬다)를 호출한다. 영화 기법이 대중화되기 전의 사진 연속 촬영으로 잡아낸 결과를 토대로 동물과 인간의 뛰기의 정의와 적용을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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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생명체에게 한시도 눈길을 거두지 않고 경이로워하고 신나한다. 독자도 물든 나머지, 땅바닥에 우수수 떨어져 심지어 짓밟힌 낙엽의 다채로운 색깔과 형상의 아름다움에 어제 하루 꼼짝 못하고 말았다. 오늘은 구슬픈 눈물 같기도 하고, 갑자기 추운 날씨에 오금 저려하는 계절 같은 비가 내렸다….
이번 파트에서는 영장류와의 눈맞춤과 친밀하고 즉각적인 동류의식을 짧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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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과학자인 저자는 ‘정원과 음악’의 치유력을 높이 산다. 영국 태생이지만 인턴부터 대부분을 미국 시설에 귀속되었던 의사는 미국 식물원의 진가를 피력한다. 자연은 뇌를 “진정”하는 효과와 “정돈”하는 메커니즘을 제공한다고. 창이 있고 녹색 기운이 감도는 공간에 나를 자주 방목해야겠다.
자연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뭔가에게 말을 거는 게 틀림없다. ‘자연’과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생명애biophilia는 인간됨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3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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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월이면 황금빛 부채들로 길바닥을 채우는 은행나무의 생존력에 대해 말한다. 매연으로 가득 찬 뉴욕 거리를 지키는 자연의 수호신으로 숭배함이 억지스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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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오필리아 증상을 보이는 저자는 정통 유대 가정 문화에서 자랐다(필립 로스가 부각된 이유였다). 안식일 생선 요리를 어머니와 가정부와 개량 판매 제품을 거치며 이어간다. “인생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찬미한 피시를 누릴 날이, 저물 날이..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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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인용문은 지나친 우려의 말일까. 나 역시 조심스럽게 오래 품었던 생각이라 따갑게 읽었다. 인간 역사의 새로운 판도와 적응력을 인정하면서도 소셜미디어와 게임에 중독되어 쏟아(게워)내고 죄다 공개해버리는 “찰나적 감각”에 치우침을 몹시 걱정한다. 인간 본성과 사회에 대한 이해는 고요한 사유뿐 아니라 자연이나 사회적 “친밀한 접촉”, 즉 다양한 만남과 경험을 통해 인류애나 지구애로 뻗어나가 굳건해짐을 믿기 때문이다.
그는 과학이 윤리를 바탕으로 자유 평등 사상에 기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경학적 재앙”으로 직결될 것이라고 매섭게 경고한다. 뇌와 시신경과 심장을 극도로 자극하고 내모는 상태에서 벗어나 차분하고 심오한 접촉에 물드는 노력이 시기적으로 시급하다.
이런 가상세계의 덫에 걸린 사람들은 결코 홀로 있을 수 없으므로, 조용히 자신만의 방법으로 인식하거나 집중할 수 없다. 그들은 문명의 편익과 성과를 대부분 포기했으므로(내맡겼으므로?) 예술 작품, 과학 이론, 일몰 또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호젓함과 여가, 자유재량, 건전한 몰입감을 느낄 수 없다. (3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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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백신이 전국민 대상으로 접종되면서 뇌병변이나 척수염, 혈소판 이상 반응으로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되는 사례가 간간이 들린다(남은 가족은 백신과의 인과성을 직접 소명해야 하는 이중의 고통을 겪는 중이다).
척추동물의 신경계란 복잡하고 뇌는 통증을 느끼지 않아 뇌 관련 이상은 조기발견이 힘든가보다. 장기간 멈추지 않는 딸꾹질이나 기침이나 특정 소리 내기가 뇌의 문제를 예고한다니 알아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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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 장애와 강박증을 보이는 투렛증후군은 자의로 통제가 안되는 불수의적 폭언과 폭행 증세를 동반하기도 한다. 유전력이 있는 신경질환이지만 즉흥적인 창작행위의 기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스펙트럼이 넓고 다양하다는 뜻이다.
몸이 아프니 한번씩 “이 사람은 보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피해 가세요”라는 전광판이 스마트폰에 잡히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것은 배려와 공존의 푯말이 될까, 아니면 또다른 낙인과 족쇄와 편견의 표식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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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식이나 충동적 성욕과 감정조절 실패가 신경학적 문제로 인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가능성이 면밀히 고려되어야한다. 그 이유인즉 한국은 이 점을 법적 허점으로 악용할 뿐더러 음란물시청이나 음주나 성범죄에 비교적 관대하고 경각심이 매우 떨어지는 편이다. 언급한 문제들이 강력 범죄로 취급되지 않는 데에는 가부장적 사고, 즉 남성 중심의 가치관이 짙게 깔려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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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긴 글이며, 신경학적 문제로 강박과 충동, 더 나아가 자살충동을 느끼는 환자의 사례를 다룬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중간지대가 없는” 정신 상태는 열정과 충동 사이를 공중곡예 하듯이 오간다.
그러다가 유전적인 요소와 운명의 질긴 반복에 결국 굴복하는 엔딩이다. 안타깝게도 “2년간의 고통으로 충분해요(아하, 울컥)”라는 색스의 말이 환자를 원래의 창의적이고 강렬했던 시절로 되돌려놓지는 못한다. 오직 전신마취만이 잠시 그를 부정적인 감정에 처박히지 않게 건져 올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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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월 만에 복용약을 두 알 줄였다. 평소 영양제도 안 먹던 내게는 숙제였기에, 일종의 해방이었다. 기쁨도 잠시 관절 문제로 다시 두 알이 추가되었다. 밤과 아침을 무겁고 두렵게 하는 통증은 사람을 메마르고 비관적으로 만든다. 요즘 들어 내 성격이 별생각 없이 진행성 혹은 퇴행성.. 수식어가 붙은 질환을 담담하게 수용하면 덜 힘들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경험상 스테로이드 주사뿐 아니라 호르몬 조절약으로 인한 부작용을 누구 하나 설명하지 않았다. 약은 약사가 조제하고 그에게 물으라지만. 마약성 약물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엄중히 다스리면서 좀 이상하다. 임상실험 테스트지 경고문이 다 내 이야기일 때 속에 열불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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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빈혈과 영양 결핍을 진단 받고 육개월 동안 적색 약을 먹었던 터라, 영양소 비타민 B12 결핍에 따른 치매 증상에 관심이 머문다. 오십대 이상의 채식주의자가 앓을 수 있는 영양소 장애이자 노년 질환과 직결된다니 기억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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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프지만, 인생 말년은 노환이나 뇌졸종과 발작으로 요양원 신세를 부득이 지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적 섬세함과 판단력”을 지닌 의사를 만나는 건 천운에 가깝다.
소설 <다시, 올리브>에서도 정돈된 일상생활과 화초에 물주기와 같은 돌봄을 유지하는 게 노인의 정신건강과 정서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몸담았던 병원의 환자가 되는 신세에서 우리는 질환은 목표물을 가리지 않고 날아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겠다(믿기 힘들겠지만 환자들 앞에서 자신의 건강 수치를 호기롭게 자랑하는 대학병원 의료진을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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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든 뇌와 노쇠한 뇌>는 지금까지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다.
몸이 산발적으로 동시에 아프니 아무래도 조바심이 나고 두렵고 쉽게 암울해진다. 이에 대해 인간은 단편적으로 결핍된 존재가 아니며, “전인적, 유기적 관점”에서 본래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능력이 있다는 말이 힘이 된다. 모든 노년은 몰개성적이지 않고 다형적 임상 소견을 보인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사는 유연한 적응과 “재범주화”가 얼마든지 가능한 발달단계라고 강조한다.
만성질환과 노화가 모두 신경질환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므로, 뇌/마음을 건강하게 관리하며 정신적 에너지를 적어도 자체적으로 떨어뜨리는 행위만은 중단해야겠다. 노년이 주는 지혜와 통합적 사고와 삶의 경이로움을 향해 걸어가자.
뉴런에 구현되어 있는 자아는 극도로 강인한 것 같다. 개인의 모든 지각, 행동, 사고, 발화에는 개인의 경험과 가치체계를 비롯한 모든 특징이 깃들어 있다...
뉴런이 광범위하게 손상된 상황에서도 개인성(자아)이 매우 오랫동안 끄떡없이 보존되는 것도 결코 놀랍지 않다. (210~211쪽)
경험은 획일적이 아니라 늘 변화하고 도전적이며, 시간이 경과할수록 더욱 더 포괄적으로 통합을 요구한다는 게 ‘진짜 삶’을 사는 것의 본질이다(다가오는 시간을 살아내는 복무가 삶의 핵심이다).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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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계 뇌질환 중 전염되는 경우를 소개한다. 뇌조직이나 내장, 사체를 섭식하거나 수술이나 수혈 과정에서 감염된다(코비드 바이러스를 연상시켜 소름 돋았다!). 차이가 있다면 세균이나 바이러스처럼 몸에 침투하는 게 아니라, 뇌단백질에 혼란을 야기해(소설 <고양이 요람>의 아이스나인의 핵형성처럼!) 잠복기를 거쳐 폭발적으로 확산될 우려와 위험이 따른다.
저자는 “감염으로부터 안전하다고 간주될 수 있는 식품 원료는 단 하나도 없다(226쪽)”고 엄중하게 경고한다. 병든 가축의 내장이나 뼈를 갈아 만든 사료는 결국 인간의 몸으로 다시 들어와 오염시키고 생명을 위협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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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길지만 <광란의 여름>답게 조울증, 즉 양극성장애에 대해 기술한다. 추천도서 <햇빛이여, 서둘러 비추라>는 딸의 허락하에 십 이십대에 겪은 양상과 치료와 발작과 재발 등을 아버지가 소개하는 구성이다.
1
요즘 자신에게 맞는, 평생 함께할 운동을 찾는 노력이 필요함을 체감한다. 물과 한 몸이 되는 “건강한 도취감”에 중독된 (살아생전에) 저자는 축복 받은 사람이다.
2
소년은 과학박물관에서 평생 함께할 “삶의 원형이자 신념”을 만났다. 보석 결정체 같은 무생물의 결정이 그의 뇌리를 장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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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환경과 관심사가 묶여준 또래 삼총사는 생물학 실험에 진심이었다. 동식물과 자연 탐사 문화가 자연스레 자연과학자를 양성한다는 사실에 밑줄 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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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의 이상인 험버트 데이비에 대해 긴 지면을 할애하는 파트다. 마치 영국 화학 계보나 화학사의 한 챕터를 잇는 듯하다. 무엇보다 색스와 정재승 박사의 연결점을 추측해볼 수 있어 좋았다. 지금은 융합적 사고와 결합이 일반적이지만 그렇지 않던 19세기에 “화학의 시인”이었던 데이비는 대중강연 인기와 학술적 기여와 실용화학자 등의 여러 입지를 단단히 다졌던 것이다.
자연은 우리를 결코 기만하는 법이 없으며, 바위와 산맥과 시내는 (시대를 초월한) 늘 똑같은 언어로 이야기한다. (56쪽)
과학은 하나부터 열까지 인간이 하는 일로, 갑작스러운 분출과 정지, 낯선 일탈을 동반하며 유기적, 진화적, 인간적으로(인간과 유사하게) 성장한다. 과거의 티를 벗고 성장하지만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는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도 유년기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58~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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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인 양친과 세 형들의 책이 놓인 서재를 누볐을 색슨. 그러다 도서관에서 탐독하며 글을 쓰다 만나는 우연한 인연들에 매료된다. 디지털화된 도서관의 변화에 적잖은 상실감과 물성의 노스탤지어를 토로한다. 그도 그럴 것이 도서관에서 동명이서와 조우해 첫 책 <편두통>을 집필했던 사연이 중심에 있다.
내 스스로, 내가 원하는 것을, 내게 가장 알맞은 방법으로 배워야만 했다. 나는 좋은 학생이라기보다는 좋은 학습자였다.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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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순환계 문제가 신체 곳곳을 점령하며 괴롭히는 요즘,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좌절감을 느끼곤 한다. 내가 유일하게 오래 사랑한 독서와 글쓰기를 방해하는 신체적인 불편은 아무리 멘탈을 붙잡으려 해도 피식 꺼지기 일쑤이다.
저자가 의학적 회고록 중 손에 꼽는 카린시(헝가리 남성 작가)의 뇌병변 경험을 담은 책은, 병원 오디세이를 겪으며 잔뜩 나약해진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환자의 증상을 제대로 듣지 않고, 진찰도 멋대로 건너뛰며 잘라 말하는 “독선적” 진단과 진료가 만연함을 문제 삼는다. 의료진의 언행이 환자를 “동료 인간”이 아닌 표본이나 망가진 신체로만 다루어 소외된 채 정신적으로 힘겨워짐을 대신 말해주니 고맙다.
의료체계를 정비해서라도 병의 진단과 수술과 경과나 예후에 대한 투명하고 친절한 설명이 뒤따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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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행위에 있어 살리려다 죽이는 아이러니에 대해 말한다. 체온과 의식과 활력을 점차 잃고 혼수상태나 다름없이 지내는 동안 자라지 않고 동결되었던 종양이 환자의 체온이 정상화되자 급성 암으로 돌변해 사망에 이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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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몸과 정신세계는 신비하고 신기한 영역이다. 무의식적인 마음이 ‘꿈’으로 출현해 어떤 병적 징후를 예지하거나 모니터링하기도 한다. 의학적 검사를 능가하는 한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고감도 지표”를 마냥 소홀히 할 수는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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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년 사이 척추마취를 두 번 하면서 신경과 근육의 소멸(손실)을 겪었다. “신체의 확실성”이 사라지자 정신도 걷잡을 수 없이 같이 뒤흔들렸다. 삶에서 무와 소멸은 응당 당연한 것인데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로 배제했던 오만함과 무지에 가슴 치며 눈물 흘렸던 무수한 밤이 기차처럼 지나갔다.
요컨대, 궁극적으로 역설적인 의미에서 무와 소멸은 현실이다(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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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유체이탈이나 임사체험 상태에서 보고되는 “발작성 황홀경”과 환각에 대해 소신 발언을 한다. 깨어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초현실적 감정 상태로 보고, 영적인 느낌을 경험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 중 하나로 인정한다. 하지만 소설적 내러티브와 의미부여 정도까지만 허용하며 냉철하게 선을 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