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조예은 저
사실 그래서는 안 되는 건데, 선입견이라는 게 있다.
비록 일천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내 경험과 내 취향, 그리고 인류가 진화해오면서 취득해온, 내 유전자에 각인된 습관 등등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선입견은 대체로 빠른 판단이 필요한 경우 상당히 유용한 메카니즘이지만, 종종 잘못된 판단을 유도한다.
YES24를 통해 이 책을 받고 나서도 그랬다.
우선 제목부터 그랬다. ‘예술감상 초보자가 가장 알고 싶은 67가지’라니... 제목 자체가 어떤 간략한 정보를 주기 위한 것인 느낌부터 팍팍 준다. 그냥 팁 정도?
표지를 넘기면... 저자가 소개되어 있는데... 낯익은 얼굴이다. TV에 나오는 이가 쓴 책이란 얘기다. 나도 모르게 책에 대한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그게 어떤 것이란 건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짐작할 만한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잘못된 선입견이란 게 다 그렇듯 몇 장을 넘기면서는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제목에 대해서는 아직도 할 말이 남았지만, 저자에 대해서만큼은 내가 정말 편견을 가지고 있구나, 라고 밖에 할 수 없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비록 TV에 얼굴을 비치는 기자이지만, 얼굴로 먹고사는 직업도 아니고, 또한 관련 분야에서 적지 않은 경험을 쌓으면서 남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얘기가 많았던 것이다. 기자들이 세상사를 접하는 양이야 다른 사람들과 비할 수가 있으랴. 아무튼 그렇게 몇 꼭지를 읽고는 그저 자기 광고를 위한 책은 아님을 알게 되고, 비딱한 마음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예술은 (저자인 김소영씨도 밝히고 있듯이) 정의내리기 힘들긴 하지만, 우리 주변에 늘 있다. 그 발생 기원에 대해선 진화학자들이 여러 모로 모색하고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티븐 핑커 같은 경우엔 다른 활동의 부산물로 보고, 제프리 밀러 같은 경우엔 그것 자체가 적응도를 높이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진화했을 것이라 보고 있다(공작의 깃털 같은 역할?). 그 밖에도 조금씩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데, 모두가 동의하고 있지는 못한 듯하다. 정의 자체도 힘든데 그것의 기원을 분명하게 얘기하는 게 당연히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동의하는 것은 예술의 진화가 부산물이든 자체로 적응도를 높이는 행동이었든 결과적으로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뜻 쓸데없는 것 같은 예술 활동이 계속 존속해왔고, 어느 시절에는 꽃을 피우고, 지금은 굉장히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분화되어 온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예술을 어려워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바로 곁의 일상적인 활동도 예술이라는 포괄적인 정의에서의 예술이 아니라 전문적인 활동의 결과를 예술이라고 했을 때, 예술은 전문적인 숙련의 과정을 거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을 아무런 노력도 없이 이해하고, 즐긴다는 것은 오히려 도둑놈 심보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가이드가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다. 그 안내서의 역할을 김소영씨가 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부터 지금 조금은 즐기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 자신의 문화부 기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감상 초보자’에게 조언을 해주고 있는 게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과, 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소개를 최대한 줄이고 눈높이를 맞추려 했다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서양에만 치우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것에만 천착한 것도 아니고 적절하게 분배하고 연결시키려 한 점도 그렇다. 또한 어느 한 분야만 소개한 것이 아니라, 그림, 클래식 음악, 오페라, 뮤지컬, 연극, 발레 등 다양한 예술 분야를 섭렵하고 있어, 형형색색 다채로운 반찬들을 접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현재 세계적인 문화의 추세와 우리나라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고, 또 어떻게 접근해야할 지도 감을 잡을 수가 있게 해준다.
그런데,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책의 성격이 모호하다. 제목은 분명히 ‘가장 알고 싶은 67가지’라고 해서 무엇을 알려주는 정보의 성격이 강한데, 사실 그런 글과 저자의 경험을 쓴 수필 같은 글, 예술 문화 정책에 대한 조언 혹은 비판에 해당하는 글 등 짬뽕이다. 그래서 독자 입장에서는 쉽게 읽히긴 하지만, 어떤 방향을 가지고 예측을 해 가면서 읽기가 좀 쉽지가 않다. 또한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고 있는 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단점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표면만 긁는 기분도 들어 읽다만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다.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그런데 세상은 늘 그랬다. 그럼에도 예술은 이어져 왔다. 저자인 김소영씨는 ‘예술을 삶을 바꾼다.’고 했는데, 내 삶을 바꾸는 예술을 만나는 계기가 만들어질 듯도 하다.
(2013. 4)
마르탱 파주의 소설 <여덟 살 때 잠자리>는 남에게 사기치며 먹고 사는 주인공이 미술계 거장과 얽혀 그의 후계자로 지목되면서 벌어지는 헤프닝을 다루고 있다. 하루 아침에 유명인사가 된 주인공의 그림은 공개된 적이 없는데도 호평과 혹평이 갈리면서 그림의 가치는 작품 외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정해진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프랑스에선 실제로 미술계를 조롱하려고 가상의 화가를 만들었는데 나중에 그게 당나귀였음이 폭로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마르탱 파주가 소설의 주인공을 사기꾼으로 설정한 이유를 알만하다.
p.58-임금이 나인에게 하룻밤 충동적인 성은을 내리면 다음날 후궁이 되듯이, 오늘날엔 평론가가 '이것이 예술'이라고 선택을 하면 작품은 예술품이란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일까. 현재의 예술은 과거의 예술과 동명이인처럼 '예술'이라는 이름만 공유하고 있는 전혀 다른 양태의 존재인가. "예술은 사기"라는 백남준의 말이 자꾸 생각난다.
매년 이맘때면 미대 입시에서 바닥에 석고상 그림을 쭉 펼쳐놓고 심사위원들이 점수 매기는 광경을 뉴스에서 볼 수 있다. 그 수많은 그림들 중, 다 똑같아 보이는 그림들 중 미래의 예술가를 골라낸다는 것이 가능할까 의문이 든다. 얼마전 <해피투게더> 야간매점 코너에서 영화배우 박중훈에게 맛을 평가해 달라고 했더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항목을 몇가지로 나누더니 소수점 단위로 점수를 매긴 적이 있었다. 기껏해야 밤참인데 소수점까지 들먹이는 건 좀 허세가 심한 것 같아 좀 삐딱한 성격의 나는 혼잣말로 유재석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라고 말하고 있었다. 과연 다시 점수를 매긴대도 같은 점수가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 슈퍼스타K를 비롯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과연 심사위원들의 눈엔 드래곤볼의 스카우터처럼 전투력, 아니 예술성이 수치로 보이는 걸까.
예술적 기준은 추상적이다. 꼭 아름다운 것만이 예술이 되는 것도 아니다. 실제와 똑같이 정직하게 그리는 것이 잘 그린 그림이라면 그림은 사진으로 대체됐어야 한다. 실제와 그림의 차이가 독특한 개성을 가질 때 가치가 생겨난다. 그래서 예술에 있어 '천재'의 반댓말은 '평범'이라고 할 수 있다. 가끔 평범한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생각 못할 작품에 대한 강박이 때로는 엽기적이고 혐오스럽게 표현되기도 한다. 뒤샹의 변기 '샘'은 약과로, 피에르 만초니는 자신의 똥을 작은 깡통에 담아 <예술가의 똥>이라고 이름 붙이고 같은 무게의 금값으로 가격을 매기기도 했다. 도를 넘어서 감탄보다는 거부감이 들지만, 자본주의 어쩌구 하는 설명을 들으면 나름 의미가 있구나 생각되기도 한다. 평론가의 설명을 참고하는 것이 수영하기 전에 준비운동하듯 예술감상에 뛰어들기 전에 기본적으로 꼭 갖춰야 할 소양일까. 누군가의 평론을 절대적 진리로 기억해야 할 필요는 없다. 예술 감상은 더 잘 보고, 더 잘 듣고, 더 잘 느껴서 감성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예술계의 적자는 우뇌의 적자, 감성의 빈곤인 셈이다.
돈과 시간을 핑계로 예술감상이 어렵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재미없을 것 같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 같다. 나부터도 오페라, 무용, 국악 등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TV에서 친절하게 설명해주는데도 아는 게 없어서라는 핑계를 대기 일쑤였다. 일단 발을 디디는 게 중요한데 말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MBC 문화부 기자로 처음 발령받고 무엇부터 알아가야 하는지 헤맸던 초보자 시절이 있었지만 자신만의 카테고리를 만들고 지식과 경험을 쌓으면서 보는 눈이 높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공간예술, 시간예술, 종합예술로 나눠 예술에 대한 전반적인 기본지식을 쉽게 알려주고 있다. 예술감상 초보자의 마음을 알아서인지 쉽고 친절하게 짚어준다. 평론가의 절대적 진리는 아니기에 부담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p.42-"인생이 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 그것이 모든 예술의 궁극적 목적이다."-헤르만 헤세
예술이 뭐길래 노숙자의 삶을 채색하고 우울감에서 빠져나오게 만들었을까.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 빗소리 바람소리에서도 리듬을 느낄 수 있고, 그림을 그리면 나뭇가지 구름한점도 세세하게 관찰하게 될 때가 있다. 그동안 못보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고, 인생을 새로 그리는 것, 한 번 도전해 볼 만하다.
주5일제로 바뀌면서 현대인들은 과거보다는 그래도 조금 더 여유있는 주말과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대인들의 취미 생활을 조사해보면 1순위로 대답하는 것이 바로 영화감상이다. 물론 영화 감상 또한 훌륭한 취미가 될 수 있지만 아직까지도 미술관이나 음악회를 가는 것이 꺼려진다고 대답하는 것은 무언가 점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이나 음악회를 잘 안가는 첫 번째 이유는 역시 그림과 클래식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전통 미술이나 음악도 잘 모르는데 서양 미술이나 음악은 더더군다나 어려울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예술 감상 초보자들을 위해 뉴스 앵커 출신의 저자가 쓴 이 책은 예술 전반에 걸쳐 초보자들도 쉽게 감상하고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정보들과 방법들을 담아내고 있다.
예를 들어서 예술 감상에 있어서 감정 이입은 필수다라는 주장에서부터 시작해서 예술작품 해석에 대한 찬반론까지 예술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들을 시원하게 말해주고 있다. 챕터 2에서는 서양화나 사진과 같은 공간 미술을, 챕터 3에서는 클래식이나 국악과 같은 시간예술 감상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렵게만 느껴지던 이런 예술 분야들이 조금은 친숙해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미술부터 국악, 무용까지 예술 전반의 영역을 다루다 보니 그 깊이 면에서 좀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다. 차라리 음악과 미술 분야로 나누어서 책을 출간했다면 조금 더 심도 깊은 예술 감상법을 배울 수 있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제목에서처럼 예술감상 초보자로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무려 알아야할게 67가지나 있다니 처음에는 다소 진입장벽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한편한편의 글을 읽다보니 67가지라는게 뭔가 외워야 한다는 압박감보다는 교양서적으로써 일종의 칼럼모음집 같은 성격이라 부담없이 각종 예술분야를 짚어나갈 수 있었다. 예술자체에 대한 생각에서부터 공간예술(서양화, 한국화, 사진), 시간예술(클래식, 오페라, 국악), 종합예술(무용, 연극, 뮤지컬)이라는 다양한 예술분야에 있어서의 정보를 담고 있는데 백과사전 식의 정보전달이 아니라 실제 예술인들과의 자신의 경험과 에피소드가 함께 어우러져 있어 정말 예술감상 초보자들에게 딱 맞는 책이 아닐까 싶더라는. 이를테면 지식채널 e시리즈에서 역사e시리즈가 파생되어 나왔다면 조금 과장해서 이 책은 지식채널 예술e라고 칭해도 될것 같다.
아, 그러고보니 저자의 이력에서도 초보자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것 같다. 저자는 문화방송 경제부 기자를 거쳐 갑자기 문화부로 발령, 공연을 찾아다니며 관람하는 시간마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초기에서부터 안목을 키우기 위해 작가 이름 순으로 폴더를 만들고 도록 등에 실린 대표작을 중심으로 정리하면서 차근차근 작품의 유형을 구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화나 가끔 보는 수준이지만 클래식이나 연극, 기회가 된다면 한국춤이나 국악, 뮤지컬에 대한 관심도 생겨났다. 당장 이 글을 쓰면서도 최초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는 카라얀의 클래식 음악을 들어보고 있다는. (주페의 경기병 서곡이라는 제목인데 인트로부터가 귀에 많이 익숙한 음악이다! 참고로 대중가요의 최초 뮤직비디오는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아, 그러고보니 이 정보는 이 책에 실린게 아니라 함께 보고 있는 다른 책, 김정운씨의 신작에 실린 내용이다. 동시에 읽고 있으니 이런 크로스 텍스팅-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도 일어난다.)
하여간 단순히 예술감상 포인트를 전달하는 책이 아니라 아이와 미술관을 함께 가는 경우의 팁이라던지(도록을 사서 몇개 그림을 찍어주고 이 그림을 찾아보라고 하는 식으로 그림을 익숙하게 만들라는.) 백남준씨의 열정(1965년 소니가 최초로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한 비디오카메라 3대중 한대를 예약구매한 사람이었다고), 그리고 국악에 대한 관심도 현저히 낮은 이 시기에 사라져가고 있는 여성국극에 대한 정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분야를 흥미롭게 접할 수 있었던 유익한 책이었다. 수년전 아버지가 수심가, 단심가 같은 판소리를 듣고 계실때 부끄럽게도 그소리가 듣기 싫어 한번 앉아서 들어보라는 말씀도 뿌리치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버리기 일쑤였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한번 들어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