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게토_Ghetto] 중세 이후의 유럽 각 지역에서 유대인을 강제 격리하기 위해 설정한 유대인 거주 지역 (네이버 지식백과)
강렬한 눈빛을 쏘아대고 있는 검은 고양이와 강아지의 눈빛을 마주하고, 게토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읽기 시작했다. 끝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잔인함의 민낯에 몸서리치게 된다. 버려진 반려견의 안타까운 생존의지로부터 시작한 글은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바깥 세계와 격리되어 사라져가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치열하게 살아가고자 몸부림치는 동물들의 생존기를 포르노를 보듯 희열을 느끼는 사람까지... 인간은 그들과 공존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잔인한 사냥꾼에 불과했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가 천만 가구를 훌쩍 넘어가고 있다. 가난한 집의 사람으로 태어나기보다는 부잣집의 반려동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귀하게 여겨지는 반려동물들도 많다. 하지만, 인간의 이기심은 동물들의 본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스스로의 욕심을 따라 그들과 함께 한다. 아기 때의 귀여움이 없어졌다거나, 생각보다 덩치가 크다거나, 시끄럽다거나, 털이 많이 빠진다거나,,, 동물들이 선택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인연을 끊어버리는 파렴치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면서 말이다.
강아지 공장에서 태어나 동물보호소를 거쳐 자신을 무한하게 사랑해 줄 것 같은 부부에게 입양되었으나 덕근은 '기다려'라는 말과 함께 차디찬 공원의 벤치 아래에 버려진다. 버려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주인을 기다리는 덕근. 검은 길고양이 칠백을 만나 자신이 버려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인간과 공존할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천천히 길에서의 삶에 적응해간다.
"하지만 그들은 덕근을 버렸다. 양쪽 모두가 욕구를 충족시킬 도구를 잃었다. 주인은 더 이상 덕근을 귀여워하지 않았고, 덕근은 더 이상 충성할 대상이 없었다. 관계는 끝난 것이다. 그런데도 덕근의 마음은 끝내지 못하고 있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p.77)
그러나 잔인한 인간들은 덕진의 희망을 무참히 밟아 버리고, 이를 계기로 덕근과 칠백은 서로 다른 생각으로 인간과의 공존을 계획한다. 인간과의 상생을 꿈꾸는 칠백과 인간에게 두려움을 안겨주고 싶은 덕진 그들은 서로 다른 생각의 합일점을 찾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고 덕근은 뜻을 함께하는 친구들과 인간에 대한 복수를 계획한다. 자신들의 야생성으로 인간에게 두려움을 안겨주고 그들만의 터전을 만들고 싶다. 덕근은 인간에 대한 복수를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철장 안의 삶은 즉, 죽기 위한 삶이다. 오늘 그곳을 빠져나온 이상 우리는 살기 위한 삶을 산다." (p.180)
덕근과 칠백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글은 인간에 대한 복수를 꿈꿀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인간의 터전을 빼앗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계획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나 역시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 그리고 강아지가 아주 아기였을 때 키우기가 편해진다는 이유로 서슴없이 중성화 수술을 했다. 백 프로 나의 입장을 반영한 행동이었다. 강아지의 본능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채 집안에서 키우기 좋은 생명체를 만들어 가고 있는 나를 뒤돌아 보게 한다. 과연, 반려견을 입양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함께 하는 것만으로 나의 책임을 다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 역시 우리 강아지를 게토에 가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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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은 왜 가난한가(엘렌 레이저 글, 강은지 옮김, 글담출판사 펴냄)’를 처음 접했을 때의 자극이 꽤나 깊었던 모양이다. 제목을 보고는 ‘그래, 밀레니얼 세대는 왜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진정 답이 없는 문제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흑/백/적색의 구성만으로 이루어진 표지 디자인에는 대놓고 마르크시즘이라 주장하는 듯해서 호기심이 고개를 쳐들었더랬다.
한 예로 나의 노동계급 친척들은 지금도 호주에서 우리가 노력하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들은 내가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한 것이 작금의 전 사회적인 경제 문제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나는 그저 게으른 놈팽이일 뿐이다. (본문 p.160)
내가 쓴 거 아닌가 싶은 호주 상황에 대한 위와 같은 서술은 우리가 사는 땅덩이만 다를 뿐 똑같은 고민 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 같은 엿 같은 상황, 엿 같은 삶, 엿 같은 시간(‘엿 같은’은 실제로 빈번하게 등장하는 표현이다)을 박살내자며 작가의 일갈은 시종일관 계속된다. 작가는 밀레니얼 세대가 실업률과 불완전 고용 증가에 대한 불만을 갖는 데에 그치지 말고,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몰고 오는 불평등한 상황과 이미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이들이 지키려 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냉철한 자각을 바라고 있다.
자신을 신자유주의에 젊은 시절을 다 바치고 늙고 실패한 X세대로 인정하고, 밀레니얼 세대의 단결과 쟁취를 지지한다는 작가의 이 책에는 사회주의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 노동과 자본이 주로 등장하기는 하나 이데올로기와 여성, 인종 등의 소수자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책의 구성이 약간 불만스럽다. 넓게 보자면 모두 빈곤으로 귀결하는 문제이니 함께 다룰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책 제목을 원서대로 ‘Total Propaganda’로 했어야 맞지 않았을까 싶다.
호주에서 활동하는 헬렌 레이저는 자칭 '철저하게 의식화된 끝내주는 마르크스주의자'이고, 이론적으로 '나의 마르크스주의는 비주류 이단에 가깝다'라고 커밍 아웃한다.
강렬한 표지가 눈길을 확 잡아끄는 <밀레니얼은 왜 가난한가>(이하 <밀레니얼>, 원제 Total Propaganda)는 최초로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라는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현대판 사회주의 복음서를 표방한다.
냉전 시대 이후 전 세계에서 공산주의 국가가 대부분 자취를 감추고, 자본주의 일당독재의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그 자본주의의 폐해는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에서 보듯 자본주의의 심장이라 할 미국 금융가에서조차 '도대체 이게 뭐니! 내가 이러려고 뼈빠지게 일했나?'하는 자괴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시위에서는 소수 1%의 부자가 대부분의 부를 독점하고, 나머지 99%는 변두리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처절한 빈부격차를 분노의 발화점으로 삼았었다.
이 책 <밀레니얼>에 따르면 지구상의 가장 가난한 절반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부를 단 여덟 명이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 갈수록 돈의 흐름은 상위 극소수 부자들에게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고 중산층은 붕괴하고,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밀레니얼 세대는 '긱 이코노미'(임시직 선호 경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프레카리아트1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 프레카리아트 precariat '불안정한'이라는 뜻을 지닌 precarious와 프롤레타리아트를 합성한 조어.
불안정한 고용, 노동 상황에 놓인 비정규직, 파견직, 실업자, 노숙자들을 총체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 P 90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무덤에 들어가 있던 마르크스가 다시 복권되고 주목을 받고 있다. 왜냐면 마르크스야말로 어느 누구보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시스템, 즉 자본주의에 대해 깊이 고찰했던 학자이고,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른 문제점을 예견하고 거기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제시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지금 서구에서 사회주의는 철 지난 유행가가 아닌 '섹시'하고 '핫'한 이론으로 재조명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가장 날카롭게 통찰한 사상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많은 문제가 드러나면 날수록, 마르크스는 다시 회자될 수밖에 없는 이름이다.
<밀레니얼>은 마르크스주의를 가장 쉽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소개하는 책이자 코빈, 샌더스, 그리고 사회주의에 대해 한 번도 들어 본적 없는 사람들을 위한 마르크스주의 입문서가 되려는 취지에서 쓰였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영원한 그림자다." - P 255
이 책은 '어떻게 희대의 말썽쟁이 트럼프가 클린턴을 제치고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나'로 시작한다.
트럼프의 선거 슬로건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ke America Great Again'였다. 반면 힐러리 클린턴이나 찬조 연설을 한 미셸 오바마는 그 정도로 미국, 특히 중산층이 위기는 아니라는 정서였다.
트럼프 당선의 비결은 프레카리아트 신세로 몰락한, 발버둥 쳐도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 밀레니얼 세대가 '못 먹어도 고, 묻고 더블로 가!'한 결과다.
자본주의는 문자 그대로 돈이 주인인, 돈이 돈을 버는 사회다.
"자본주의의 유일한 도덕률은 이윤이다." - P 103
내 짧은 식견으로 볼 때 자본주의의 핵심이자, 가장 큰 문제점은 근로소득은 물론 심지어는 웬만한 사업소득조차 자본소득을 이길 수 없단 점이다.
생각해보라. 연봉 5천도 안 되는 근로소득자가 평당 5천만 원이 넘어가는 강남 아파트 주인이 된다는 희망사항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 '조물주 위에 건물주'란 말은 자본주의를 정의하는 진리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창출한 풍요는 극소수에게만 허용되고 있다." - P 114
저자의 이름에 걸맞게 이 책의 논조는 자본주의에 대해 레이저를 쏘는 듯 격하고, 날선 분노에 차 있으며 선동적이라 독자들을 격발시킨다.
책 제목보다 훨씬 말랑말랑하지 않은 내용을 다루는지라 만만히 페이지가 넘어가진 않는다. 설사 페이지가 넘어간다 하더라도 그 내용을, 저자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저자가 좌파주의를 다룬다는 팟캐스트 내용이 책으로 된 것인지, 다소 내용이 책에 적합하지 않고 방송용인 듯 느껴지기도 했다. 조금 장광설에다 초점이 한 군데로 모아지는 일목요연한 맛은 덜하다.
비단 밀레니얼 세대뿐 아니라 자본주의 세상에 불만이 많은 동지들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