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17편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소설집이다. 삶과 죽음, 남녀 간의 사랑과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살아가면서 가질 수 있는 딜레마 등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각 단편 모두 몰입해서 읽게 된다.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이 있는 내용도 있어 흥미진진하다. 삶의 모습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작가는 판단하지 않고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고 있다.
17편의 단편 중 유명한 <라쇼몽>이나 <덤불 속> 보다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것은 <귤>이다. 피로와 권태로 가득한 화자에게 작은 사건 하나가 끼치는 영향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가슴을 설레게 할 정도의 따뜻한 햇살로 물든 귤 대여섯 개가 기차를 배웅하는 아이들 쪽으로 어느새 날아가 흩어”(p.97)라는 표현이 멋지고 감동적이었다. 귤에 스며든 햇살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소녀의 행동에 잠시라도 지루한 인생을 잊게 만든 화자의 감정에 동화되었다.
세 남녀의 이야기 <가을> 20년 전후의 만남을 그린 <오도미의 정조> 이성에게 느꼈을 감정 이야기 <인사> 이 세편의 사랑 이야기도 흥미진진했다. 반면 배우자의 불륜을 표현한 <두 통의 편지>나 <묘한 이야기>에서는 작가의 생각이 기발하였다. <두 통의 편지>는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남편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도플갱어로 회피했다면 <묘한 이야기>는 외도하려는 부인의 죄책감으로 빨간 모자를 등장시킨다.
한동안 리뷰를 쓰는 것이 내키지 않아 책을 읽고 한참만에 리뷰를 올린다.
“라쇼몽”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로도 유명한데, 영화는 책의 “라쇼몽”과 “덤불 속”이 합쳐진 내용이다.
영화를 아직 못 봤지만 위시리스트에 있는 작품이기는 하다.
라쇼몽은 짧지만 강렬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고 “덤불 속”은 영화로 만들기에도 괜찮은 내용이다.
저자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으로 안다.
그만큼 나름의 작품 세계를 가지고 있는 작가이다.
책은 단편들로 짧지만 다들 재미있고, 이 작가의 작품인 줄도 모르고 읽었던 것들도 있었다.
3/2/2019
라쇼몽은 처음에 영화로 알고 있었는데, 원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구입하게 되었다. 그 전에 다른 이름 없는 출판사의 번역본을 보고, 번역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고, 다시금 읽게 되었다. 라쇼몽을 보면 당시의 소설쓰는 분위기, 그리고 그 시대의 분위기를 잘 알수 있었고, 현시대에 봐도 그렇게 촌스럽다고 느껴질 요소들이 많이 없었다. 간혹 너무 친절한 설명?과 같은 부분이 있었지만, 어쩌면 그 시대의 트렌드와 같은 요소일 수도 있고, 글을 읽는데 방해가 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인문 고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십수년 전, 역사학입문 시간에 본 영화 라쇼몽으로부터 거꾸로 찾아 읽어낸 류노스케의 단편집 라쇼몽. 그 때 읽었던 판본에서는 산적 때 이야기가 마음에 닿아 오래도록 기억하였는데, 다시 읽은 문예출판사 판본에는 수록되지 않았다. 재차 읽고 싶었는데 아쉽다.
그럼에도 인간 심리의 침잠된 어떤 것들을 참으로 잘 헤집어 놓는 류노스케를 다시 만난 즐거운 독서였다. 재난 속에 아내를 죽인 남자 <의혹>, 얄궂게도 살아남아버린 시어머니 <흙 한 덩어리>가 좋았다. 특히 <남경의 그리스도>가 좋았다. 담배를 태우며 창녀에게 중국요리를 내어주는 예수는 고맙고 따스했다.
올해 그의 이름을 딴 안경테도 하나 가졌다. 그리고 올해부터 나는 류노스케보다 오래 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뿐이니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