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주문을 하고 읽었는데 여러 잡지에 소개가 되더군요. 수중용접공은 우리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다들 하나식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엇. 그것을 안고 살아가죠. 포기할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그것을 끝까지 고수하지도 않은 채 그렇게 살아가죠. 그것이 트라우마일 수도 있으며 그것이 꿈일 수도 있는데. 그것에 대해 그린 작품입니다. 그 무엇을 잃고 싶지 않지만 왠지 이제는 보내줘야 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을지연습 덕에 평일 아침에 퇴근하는 즐거움을 도서관에서 느긋하게 즐기려 책을 빼들었는데, 아뿔싸, 이제 전 같지 않은 몸이 부족한 수면을 감당하지 못한다. 책장을 넘기는 손과 어깨는 무겁고 눈은 흐릿해지며 머리는 멍하다. 어젯밤에 전쟁을 겪느라 제대로 못 잔게 이렇게 힘들다니. 그래도 어떻게 얻은 평일 낮 도서관 시간인데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며 버티고 앉아 책을 넘겼다.
마치 흐릿한 내 머리 속처럼 어릴 적 살던 동네 앞 바다의 석유시추선에서 수중 용접공으로 일하는 재키라는 남자가 물 속을 넘나들며 20여년 전 바닷속 보물을 캘거라며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회한이 겹치며 물 속에서 과거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을 거쳐 현재의 나와 만나는 과정이 그림을 통해 그려졌다. 아득한 지금의 내 머릿속 상태와 같은 잠수과정이 더 실감나게 느껴졌다. 물 속에서 사고를 당하는 과정에서 과거 아버지를 만나고 어머니와 아내와의 대화를 통해 자기가 알던 아버지의 다른 모습을 알게되며, 이혼 후 엄마에게서 자라는 아들에게 잘하고 싶지만 술로 약속을 잊는 무능한 아버지가 그래도 아들에게 줄 선물을 건지러 바닷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그날, 아들은 아버지와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던 핼러윈 그날을 자신의 아이가 태어날 날이 되어 다시 떠올리며 지금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그림이 아니고선 이렇게 자연스럽게 표현되기 힘들다.
회상인 듯, 혹은 물 속 작업을 통해 흐려진 정신상태이던 간에 책 속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도록 그린 작가의 그림이 참 자연스럽고 좋았다.
지금 이렇게 피곤한 가운데 굳이 여기 블로그에 감상을 올리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이 느낌이 또 잊힐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의 이 피곤한 자유가 참 좋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그래픽 노블은 <설국열차>,<브이 포 벤데타> 등 채 5편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읽은 작품들 모두 수준있는 그림실력에다 탄탄한 스토리로 인해 지루하지 않고 1시간도 걸리지 않고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이번에 읽은 제프 르미어의 <수중 용접공>이라는 작품은 이전에 읽었던 다른 작품들이 주로 SF나 스릴러로 전개된 작품인데 반해,이 작품은 그런 장르적 설정 없이 철저하게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 기억을 바탕으로 한 거칠고 투박한 그림체의 드라마로 그려지고 있는 작품이다. 오히려 그런 점이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캐릭터와 성격,심리가 잘 드러나게 규정되었고 몇몇 암시를 주는 힌트들도 등장해서 결말이 어떻게 될까하는 궁금증도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주인공 잭은 10살 때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고향으로 돌아와 수중용접공 일을 하고 있다. 동료들은 그의 재능과 나이가 안타깝다며 다른 일을 권하지만 임신한 아내를 위해서라도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그러던 어느 날,우연히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게 되면서 아내의 만류에도 다시 수중용접공 일을 하겠다고 바다 속으로 들어간 이후 오래 전 아버지와의 추억들이 하나 둘 씩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래픽 노블 작품 중에서도 독특한 전개로 보이는 이 작품은 주인공과 주인공의 아버지,이들 사이에 일어난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하는 독특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 구성 자체가 주인공과 아버지를 이어주게 만드는 바다와 사라진 시계 등으로 은유되어 나타나고 있고 심리 상태 변화와 약간의 복선과 암시 같은 힌트들을 통해 수중용접공이라는 직업 자체가 물 속 기압을 견뎌내며 외부로부터 공기를 받아야만 할 수 있는 직업인 만큼 수중이 주인공의 과거 사라졌던 아픈 기억과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물 밖이 주인공이 살고 있는 현재이자 사라진 채로 살고 있는 현재의 기억과 임신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세상을 대비해서 비중있게 나타내고 있다는 점도 그래픽 노블이지만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또한 바다 속에 가라앉아있던 시계도 주인공의 어떤 사소한 행동 하나로 인해 결국 아버지가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멈춰있는 주인공의 과거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칫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치고는 재미와 구성 면에서 심심할 수도 있는 작품이었겠지만,오히려 이 작품은 그런 부분에서 주인공의 심리와 성격을 드러나게 만든 거칠고 투박한 그림체와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하는 듯한 현실과 상상 속의 구성을 조리있게 등장시키며 이 부분의 약점을 탄탄한 스토리와 구성으로 극복해냈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보다는 이런 그래픽 노블로 표현된 것이 주인공의 심리나 캐릭터를 표현해내는데는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처음에 <환상특급>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왠지 모르게 무섭고 충격적인 내용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내 기대는 후반부로 가면서 무너졌다. 그러나 실제 <환상특급> 에피소드들 중에서도 때로는 무섭지 않고 진한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에피소드들도 상당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 작품도 그런 범주 안에 포함된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2015/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