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사랑'만큼 모호하고 어려운 개념이 또 있을까. 우리는 전 생애를 통틀어 사랑과 함께 했다. 탄생의 순간부터 사랑으로 축복받았던 나, (비록 내가 직접 알아채지 못했더라도) 나를 향한 많은 형태의 사랑들이 쌓여 빚어낸 지금의 나, 서로 다른 모습을 한 사랑들과 공존하며 누군가를 향해 사랑을 흘려보내기도 하는 나. 인정하니 마음이 편하다. 그 어떤 식으로 흘러왔든 그 무수한 사랑 없이는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그런데 궁금하다. 추상적 개념인 사랑이라는 것이 구체적 행위나 노력으로 발현될 때 그 모든 모습들이 단지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두 정당하고 바람직하기만 할까.
인에이블러(조장자)와 의존자의 역학관계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저자의 실제 경험담에 기반한 깨달음의 회고록이기도 하고,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당부의 호소문이기도 하고, 전혀 이 개념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시각이 열리는 계기를 제공하는 안내서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우울증을 앓았던 남편, 어느 날 갑자기 뇌 관련 질환을 앓기 시작한 아들. 불현듯 저자는 파도처럼 휘몰아친 현실이 이미 일상 속에서 예고되고 있었던 것들이었음을 직시한다. 그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다름 아닌 자신이었음을 인정하고, 변화하기 위해 노력했던 모든 과정이 담겨있다.
보살핌과 조장의 차이에 대해 고민해 본다. 한 드라마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인생이라는 것을 자동차를 타고 떠나는 기나긴 여행으로 비유했을 때, 내 인생의 길 위에서 운전대를 잡은 것은 바로 나다. 부모님은 조수석에 앉아 이 기나긴 여정이 힘들거나 지루하지 않게 말동무가 되어주고, 때때로 입이 심심하지 않게 간식이나 건네주며 함께 할 뿐이다. 엄마가 차에서 하차하거나, 아빠가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윽박질러도 끝까지 그 운전대를 놓아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보살핌은 그런 것이다. 운전대에 직, 간접적인 위력을 가하는 순간 조장자가 된다.
순응과 친절은 어떤가. 부탁은 수용과 거절 모두를 흔쾌히 받아들인다. 부탁한다는 것은 상대가 거절할 수 있음을 밑바탕에 깔고 건네는 제안이다. 상대가 거절했을 때 불쾌해하거나, 거절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다면 그것은 부탁이라기보다는 강요다. 상대가 무조건 수락해야만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제안이기 때문이다. 나는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는 데에 꽤 애를 먹는 사람이었다. 친절을 가장한 순응자였다. 그러나 부탁과 강요에 대한 구분이 마음에 들어오고 나서는 보다 편히 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거절로 하여금 겪게되는 이후의 마음과 판단은 상대의 몫으로 넘길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순응은 (친절한 사람이기를 원한다거나, 타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등의) 대가에 대한 기대가 깔려 있는 반면, 친절은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도움이라는 점에서도 구분이 가능하겠다.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자신을 마음 다해 받아주고 품어줄 상대를 귀신같이 찾아내는 의존자, 상대를 도와주고 배려하고 이끌어주는 모든 행위를 통해 존재의 이유를 찾는 인에이블러(조장자)의 상호부적응적인 순환고리를 따라가다 보면 끝을 찾을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힌 암담함에 잠식될 것만 같다.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행해지는 부적응적인 행동 패턴들. 이전까지의 일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책을 읽은 이상 앞으로는 그런 형태의 양상에 대해 무작정 덮어두고 사랑으로 포장할 수만은 없겠다.
내가 인에이블러인가, 라는 의심으로 시작한 이 책은 나는 생각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해 주었고 더불어 앞으로의 삶에서도 나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혹은 인에이블러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도록 지켜볼) 또 다른 안경 하나를 선물해 주었다. 비단 인에이블러만은 아닐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사랑이라는 커다란 지붕 아래 숨어드는 나쁜 마음들이 있다. 매 순간 깨어있는 것이, 알아차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한 번 더 마음에 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