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천선란 저
김호연 저
백온유 저
기억이 있는 한, 나는 늘 문구를 좋아했다. 한국에서 자란 문구인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기억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린시절부터 다양한 종류의 펜을 모으고, 판박이 스티커부터 볼록한 스티커까지 여러 스티커들을 수집하고, 3공 다이어리(그때는 그냥 다이어리였다)와 자물쇠 달린 교환일기를 썼다. 우리 집 근처의 대형 마트에 가면 그곳의 문구점에서 30분이고 1시간이고 구경을 했다. 아직도 어렴풋이 어느 위치에 책이 있고, 노트가 있고, 파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는걸 보면 어린 시절의 나에게 참 소중한 공간이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문구라면 절대 지나치지 못하는 문구인으로 자란 나는, 2월의 어느 날 교보문고를 돌아다니다 ‘나의 문구 여행기’라는 제목의 책을 지나치지 못하게 된다. 그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혜택들을 꼼꼼히 따져가며 책을 구매해왔다. 침대 머리맡에 두고 매일 밤 자기 전 야금야금 아껴 읽었지만, 책은 금방 끝을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좋아하는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늘 내겐 즐거운 일이다. 저자가 문구를 대하는 태도나 생각들 중에는 공감되는 이야기들도 많았고, 한편으론 나는 생각도 해본 적 없는 부분 또한 있었다.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는 점으로는 문구점을 들어가서 문구점을 ‘감상’하는 태도가 있겠고 ?‘감상’이라는 표현은 본문에 등장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작가가 문구점을 세세하게 살펴보고 문구들 하나하나에 관심을 쏟는 모습이 마치 감상하는 것처럼 느껴져 사용한 표현이다.-, 나와는 다른 점으로는 문구를 사용하고 어떤 문구를 구매할 지 고르는 태도를 꼽을 수 있겠다. 그리고 공감되었던 점들은 문구를 좋아하는 그 모습, 그리고 여행을 하며 따라오는 현실적인 고민들이 있겠다. 두 달간의 문구 여행, 그저 상상만했을 때엔 즐겁고 환상적이다. 하지만 그저 즐겁고 환상적인 이야기만 했다면 동경하되 공감하지는 못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가 공감되었던 것은 여행 속에서 수많은 현실적인 불안과 고민들을 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더 좋아하기 위한 용기를 찾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여행지에서 들렀던 수많은 문구점들부터 며칠 전에 들렀던 동네 문구점까지 기억을 더듬어가며 떠올렸다. 덕분에 마치 나 또한 내 추억 속에서 문구 여행을 할 수 있어 즐거웠다.
작가가 여행을 하며 끊임없이 함께하는 질문 ‘문구란 무엇인가’, 나도 책을 읽어가며 함께 고민해보았다. 내가 문구란 무엇일까? 문구를 왜 좋아하는 걸까? 사실 아직 답을 찾지 못해 이 글에는 남기지 못하지만, 이후에 실마리를 잡으면 다시 추가해보기로 한다. 이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당 사실 올해 상반기에 유럽과 북미로 문구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취소하게 되어 이 이야기가 더 내겐 가깝게 느껴졌던 것도 같다. 어서 상황이 나아져 문구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살아가는 것에 용기와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 시대다. 무엇보다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할 수 있어야만 하니까. 먹고 살아 있어야 좋아하는 일도 계속 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니까. 그래서 그런가, 다루는 소재나 대상이 다를 뿐, 비슷한 의도를 가진 글이나 책을 종종 만난다. 약간의 지루한 맛을 느끼면서도 딱 끊지 못하고 내가 자꾸 들여다보는 것은 아직 내 안의 용기를 찾지 못한 탓이 아닌가 싶다.
글쎄,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여정을 따라가며 끊임없이 떠올리는 물음. 지금 한창 자라고 있는 청소년도 아니고, 한 차례 삶을 정리한 은퇴까지 한 상황에서도 나는 여전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묻는다. 이건 아직도 내가 계속 살아갈 의지를 갖고 있다는 뜻일 것이고, 남은 날들에 기대를 품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절대로 무작정 살지는 않겠다는 것, 그저 살아남지는 않겠다는 것, 사는 동안에는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끝없이 탐색할 것이며 하루하루를 챙기는 데에 소홀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문구를 좋아해서 문구와 계속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낸 작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앞으로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그것을 지키기 위한 일에 몰두하며 사는 기쁨과 보람이 어떠한 것인지 알아버렸으니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으리라.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알기 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
나는 내가 문구도 참 좋아하고 여행도 참 좋아하는 줄 알았다. 이 책도 잠깐 잊고 있었던 나의 해묵은 습관에 따라 골랐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보니 알겠다. 나는 문구를 좋아하는 것도 수집을 좋아하는 것도 여행조차도 그다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남들처럼 따라 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강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을. 좋아 보였으나 딱히 갖고 싶은 마음이 안 들어서 마음이 무척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