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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 작가, 출판인, 기자, MD 50인의 '올해의 책'
2020년 12월 01일
제목이 재밌네..라는 생각에 읽었는데, 알고보니 꽤 유명한 책이였다. 책의 작가는 일본인이고, 그런 작가는 영국에서 공부를 했고, 아일랜드인 만나 결혼해 영국에서 살고있는 칼럼니스트이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고, 그런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고, 아들과 나눈 대화, 아들과 있었던 일을 기록한 에세이이다. 책의 부제는 “차별과 다양성 사이의 아이들” 이다.
저자의 아들은 소위 명문 초등학교인 카톨릭 초등학교를 나왔으나. 본인의 선택으로 공립 중학교로 진학한다. 소위 ‘구 밑바닥 중학교’. 중학교 이름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붙이 별칭이다. 공영주택지에 있는 학교로 하층민이 다니던 학교였는데, 그런 공여주택지가 민간에 분양되었고, 말그대로 학교의 수준이 올라가게 된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구 밑바닥 중학교’라고 말한다. 여기서 재밌던 점은, 영국에서는 백인들이 많은 학교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백인 노동자계급 아이들이 많은 학교’는 기피 대상이라는 것이다. 반면 인종적 다양성이 많은 학교를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소위 ‘다양성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아들은 자신이 졸업한 명문학교인 카톨릭 초등학교에서 카톨릭 중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으나, ‘구 밑바닥 중학교’를 선택한다. 작가의 배우자는 아들이 카톨릭 중학교로 진학하길 원했으나, 아들의 선택을 지지한다. 책은 아들이 중학교에 진학하며, 배우고 자신의 부모와 나눈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책을 읽으며, 영국은 다문화에 대하여 꽤 다양한 교육을 시도하고 있다는점을 알았다. 다문화에 대한 지식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는 능력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스스로 남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 p.84
엠퍼시가 무엇이냐고 묻는 아버지의 대답에 아들이 답한 답이다. 엠퍼시. 우리가 공감으로 알고 있는 단어. 그 단어의 뜻이 뭘까.라는 말에 아들이 스스럼없이 답한답. 나는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사실 좀 울컥했다. 누군가에 대한 동정이나 안쓰러움(심퍼시)는 감정이지만, 엠퍼시는 능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맞다. 누군가의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에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은 우리가 실제로 하고자하는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아이도 스스럼없이 답하는 저 단어의 뜻을 우리는 왜 모르는 것일까.
아이는 저 단어를 단순히 단어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배워간다. 누군가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고, 선의로 받아들이고자하는 노력. 그리고, 다름과 틀림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친구에게 계속해서 다가가며, 그것이 아니라고 설득하는 노력. 그리고 자신에 대한 차별이나 멸시를 알고 부당함을 알지만, 그럼에도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는 노력을 말이다. 또한 자신과 같은 다문화 친구들에 대한 걱정을 ’걱정이라는 이름의 편견‘으로 바라보지 않으려는 노력을 말이다.
그런 아들을 비롯 아이들의 마음을 저자는 ‘선의 마음을 지닌 아나키스트 p.192’라고 말한다. 그런 아이들이 사회를 배워갈수록 이런저런 틀에 갖혀 생각의 자유로움과 명랑함을 잃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과연 우리는 하고 있는가. 아이들만이 갖는 수백만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어떻게 하나로 정형화 시켜가고 있는 현실이 자꾸 떠오르는 것에 씁쓸함은 어쩔수가 없었다.
책은 엄마와 아이의 대화이기에 생각해보면 주제는 무겁지만 그 주제를 다루는 두 사람의 시선은 따뜻하면서도, 생그럽다고 해야 할까.
다양성이라는 단어를 지식뿐 아니라 마음으로 배워가는 아이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자니, 각종 편견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있는 나 스스로를 반성하게 한다.
책의 제목은 아이의 정체성과 감정을 담고 있지만, 책의 말미에 보여지는 지금은 '그린'이라는 단어는 방긋 웃음짓게 한다.
진짜 추천.
현대 사회에서 다양성은 피해가기 어려운 이슈가 되었다. 과거라고 다양성이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확대로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자기표현의 기회가 확대되었다. 과거 당연시되던 여성 차별이 "부분적인 수준에서나마" 개선된 것부터 다양한 성적지향의 표현도 명목상으로는 자유롭게 가능해졌다. 또한 서구에서는 인종주의자(racist)라는 표현은 욕이 되었다.
물론 여성차별이 부분적으로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지속적으로 강력히 존재하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LGBTQ+등 다양한 성적지향을 가진 개인들이 자기 선호를 표현하는 것은 자유이긴 하지만 때때로 단지 특정한 정체성을 지녔다는 이유로만 혐오의 대상이 된다. 서구에서 인종주의자가 욕이지만 반이민을 언급하는 극우정당이 급성장하는 등 인종주의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히 사회적 약자와 강자의 갈등이 아니다. 소수자 혐오와 극우정당 지지는 백인 노동계급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한 그들 대부분은 집안에서는 가부장적인 남성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미국사회에서 차별받는 인종인 흑인들의 아시아인에 대한 또다른 차별 문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법을 영국 잉글랜드 브라이튼에 소재한 학교에서 자신의 자녀(와 그 친구들)가 성숙해지는 과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영국 사회에서 저자 가족의 위치성은 흥미롭다. 저자는 일본인 여성이며 아일랜드인 남편과 결혼했다. 사실, 영국에서 아시아인은 소수인종이이다. 내전 문제로 아일랜드인은 영국의 억압을 경험했지만 영국에서는 반란을 일으킨 세력 정도로 치부되기도 한다.
저자는 자신의 아이가 중학교를 중산층 이상의 부모가 다수이고 인종적 다양성도 보유한 가톨릭학교를 선택하지 않고 백인 노동계급 자녀들이 다니는 공립학교를 선택하는 것을 보며 걱정이 앞선다. 빈곤한 노동계급 백인들이 다수인 학교에서 자녀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지 걱정한다. 이는 저자가 지각하듯이, 빈곤 문제에 비판적인 저자 또한 정작 그들을 두려워하고 차별적인 시선으로 대한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저자는 생각보다 학교에서 적응을 잘 하는 아이를 통해 새로운 꺠달음을 얻는다. 빈곤한 지역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라고 해도 아이들이 저자가 생각한만큼 불행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도 나름대로 차별과 혐오 문제를 직시하고 대응헤나가는 지혜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저자의 자녀는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는 동유렵계 백인 친구에 대해, 잘못은 했지만 앞으로 배우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누구든 모든 것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는 다들 다르다.
저자는 책을 통해 각자의 위치에서 열린 자세로 차별과 혐오문제를 조금씩 개선하는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로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차별과 혐오에 대한 지식들도 모두 다르다. 무엇보다 서로 배우고, 부족하면 함께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 또한 늘 부족하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학교에서의 아이들'은 흥미로운 소재이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편견으로 자유로운 상대적으로 투명한 시기이다. 그런만큼 새로운 것들을 빠르게 배우고 개선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아이들의 배우려는 자세들은 어찌보면 고정관념이 가득한 성인들이 배워야할 자세이고 다양성이 보다 폭넓게 확대되는 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물론 저자의 아이들에 대한 시선이 지나치게 긍정적인 부분은 우려스럽다. 아이들은 빠르게 학습하는 만큼 차별하는 방법도 폭력적으로 상대를 대하는 방법도 빠르게 학습한다. 성인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그 누구보다도 잔인할 정도로 폭력적인 이들이 아이들이기도 하다. 지금과 같은 차별과 혐오의 시대에 아이들에게 배우자는 얘기는 미래를 지나치게 낙관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래가 늘 열려있다는 점을 직시하면, 저자가 아이들에게서 긍정적인 희망의 요소를 찾는 것과 다르게, 답이 없다며 비관만 하는 것도 불행한 일일지 모른다.
독서 모임 발제 도서로 선정되어 읽게 된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리뷰입니다. 저자는 영국에 거주하고, 영국 사람과 결혼한 일본인 여성으로서 아들 하나를 슬하에 두고 있습니다. 아들은 초등학교 때 그 지역에서 명문이라고 불리우는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중학교는 학군이 별로인 곳에 입학하게 되면서 생기는 짤막한 에피소드와 그에 대한 작가의 단상이 담긴 책입니다. 저자가 지닌 통찰이 흥미로웠으며, 아이들을 키우면서 으레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에 호들갑 떨지 않고 아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지켜봐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