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선한 사람입니까, 악한 사람입니까?
우리는 매일같이 범죄 뉴스를 접한다. 또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사나 이기적인 친구, 말이 통하지 않는 파트너로 인해 갈등을 겪으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세상이 이상해졌어.” “그 인간은 미쳤어.” 그런데 이상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면 그것을 과연 이상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악한 인간이 여기저기 널렸다면 그를 마냥 사악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가 선이고 어디서부터 악일까? 저 못된 사람과 나 사이에는 어떤 기준이 있을까? 혹시 누군가 나를 악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을까?
인류 역사에서 전형적인 악인 중 하나로 취급받는 히틀러조차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은 신경학적 프로파일을 가진 인간이었다. (중략) 이 책에서 우리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고, 우리의 가치관과 어긋나고, 악이라는 낙인이 찍힌 인간의 행동이 안고 있는 여러 측면을 탐험할 것이다.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내용도 피하지 않을 것이며, 스스로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질문을 반복적으로 던질 것이다. “이것은 악한가?”
(55쪽)
이 책은 우선 우리가 흔히 ‘악’이라고 생각하는 주제들을 범주화한 다음 이야기를 시작한다. 각종 영화나 드라마에 빈번히 등장하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 오르내린 사이코패스 성향과 살인 충동, 기술 발전과 함께 새로이 등장한 각종 사이버범죄, 변태 취급받기 십상인 이상성욕, 특히 심각하게 다룰 만한 문제인 소아성애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범죄와 이상행동 외에도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공격성, 군중 심리, 소위 ‘쎄하다’는 말로 표현되곤 하는 소름 끼침(creepy), 편견과 차별, 불의에 대한 침묵 등 ‘악’을 불러일으키지만 특별한 악인이 행사한다고 보기 어려운 보편적인 현상과 주제에 대해서도 폭넓게 다룬다. 다소 자극적인 소재들에 거리감을 느끼던 독자도 어느새 이 논의에서 자신을 완벽하게 제외할 수는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점이 바로 이 책의 의의이자 가치이기도 하다.
알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저자는 각종 범죄 행동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거나 평범한 사람들이 악한 행동을 저지르게 되는 메커니즘을 밝힐 때, 우선 도덕적 가치 판단은 배제한 상태에서 신경과학, 심리학, 사회학 등을 근간으로 하여 현상을 분석하고 사실 관계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방식을 자주 사용한다. 이는 악을 옹호하거나 변호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이 과정을 따라가며 독자는 서둘러 옳고 그름을 재단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거나 이런 것들은 논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질 수도 있다. 저자는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악에 대해 잘못 고착된 우리의 관점을 깨고자 다양한 실험들과 다소 충격적인 연구 결과들을 소개한다.
가장 문제적이면서도 인상적인 부분은 아마도 이상성욕과 소아성애에 관한 논의일 것이다. 이상성욕 중 어떤 것들은(예컨대 사디즘이나 마조히즘 등) 이상성욕으로 치부하기에는 상당히 흔하다는 점, 그것들이 단지 ‘상식’이나 ‘의지’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 또한 그러한 기질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발현되지는 않는다는 점 등을 짚어가며 현상을 다각도로 파악할 수 있도록 독자를 안내한다. 특히 소아성애자가 반드시 아동 대상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며 아동 대상 성범죄자가 꼭 소아성애자도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대목은 다소 충격적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편견이 더 큰 범죄를 방조하거나 놓치게 만들 수도 있다는 통찰에 이르면 불편한 충격은 이내 지적인 각성으로 이어진다. 좋은 게 좋은 것이고, 나쁜 건 나쁜 거라는 식의 태도는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데에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 회피는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우리 안의 악마』는 알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해 알려주는, 조금은 낯설고 도발적인 책이다. 이 책에서 반복되는 ‘악에 공감하고 악을 이해하자’는 메시지가 처음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다 읽고 나면 분명하게 남는 것이 있다. 우리는 악해지지 않기 위해 더더욱 악에 대해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는 진실이다. 인간은 악해지지 않기로 선택할 수 있으며 그럴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