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축제, Book Festival이 뜨겁다. 영국에서만 한 해 300개가 넘는 책축제가 열린다. 대부분 2천년대 들어 생겨났다. 첨단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 문화가 범람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그것은 역설적으로 종이책을 대체하리라고 여겼던 이북과 인터넷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분석이 있다. 독자들이 범람하는 인스턴트 정보에 식상해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날로그 문화에 대한 향수는 종이책을 넘어 책축제라는 독특한 문화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큰 책축제에는 20만 명이 넘는 독자가 몰린다. 입장료를 낸 관객만 헤아린 것이다. 먼 길을 달려와 저자와의 대화 프로그램에 우리 돈 1,2만 원씩 내고 입장하는 현상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우리나라에서는 인기작가를 초청하는 무료 프로그램에도 청중이 들지 않아 주최측이나 작가나 머쓱해하기 일쑤이거늘.인도나 동남아시아처럼 독서 문화와 거리가 멀던 사회에도 책축제는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오고 있다. 인도의 사막도시 자이푸르에서 열리는 ‘자이푸르 문학축제’(유럽을 위시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책축제와 문학축제를 동의어로 사용한다. 책축제는 문학축제를 지향하고, 문학축제는 시인, 소설가를 넘어 인문학자, 과학자, 아티스트, 심지어 코미디언에 이르기까지 외연을 확장하는 까닭이다)에는 무려 3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몰려온다.에든버러 국제책축제는 가장 지적인 관람객이 찾고, 외부 관객이 많은 축제로 정평이 높다. 해외 관객도 10%가 넘는다. 웨일스의 작은 책마을 헤이온와이에서 열리는 헤이 축제는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라’(Imagine the world!)고 외친다. 독자들만 책축제로 달려오는 게 아니다. 저자들 역시 독서 대중과 다른 지식사회 동료에게서 지적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책축제장을 찾는다. 책축제는 우리네가 상상하듯 신변잡기나 이야기하고, 한물 간 책을 덤핑판매하고, 체험부스가 코흘리개 아이들을 잡아끄는 공간이 아니다. 우리나라 책축제는 외국의 대표 책축제에 견주면 소꿉놀이 수준이다. 가능성을 보이던 책축제들도 한참을 뒷걸음하였다.돌이켜 보면 과거로 소급해 갈수록 인간은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며 지식을 습득하였다. ‘이제 스무 살의 젊은이가 마치 5천 년을 산 사람처럼 되었다.’ 언어의 탄생 장면을 이처럼 멋지게 표현한 사람은 움베르토 에코다. 원시 동굴의 화톳불 가에서 인류는 비로소 사회적 기억을 축적해 가기 시작하였다. 문자가 발명되고 나서도 대화는 진리를 탐구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근대 인쇄술의 시작과 함께 독서 문화가 태동한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문화는 살롱, 카페, 독서 클럽을 거쳐 책축제로 진화하였다.이 책의 1부에서 책축제의 역사적 여정을 되짚어본 이유다. 2부는 책축제가 어떻게 조직되고 운영되는지 책축제의 보편적인 모습을 도출하기 위한 시도다. 전세계의 100여 곳이 넘는 책축제를 더듬어 기획, 예산에서부터 마케팅, 국제 네트워크에 이르기까지 20여 개의 주제를 살폈다. 3부 ‘지구촌의 책축제’는 개별 책축제를 분석하는 섹션이다. 책축제의 규모나 영향력만이 아니라 하고많은 책축제의 다양성을 아우르겠다는 관점을 반영하였다. 그리고 필자가 직접 가본 축제를 중심으로 하면서 누락된 부분을 보완하였다.저자는 편집기획자 출신으로 헤이리 예술마을을 만들고 파주북소리 축제를 운영하는 남다른 세계를 경험하였다. 좋은 지식축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함빡 미련만 남겨둔 채 파주북소리의 꿈을 접어야 했다. 아쉬움 탓에 파주북소리를 떠난 다음 본격적으로 세계의 책축제를 탐구하였다. 십여 년에 걸쳐 자료를 모으고 탐구한 성과물을 비로소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내놓는다.세계의 책축제를 광범위하게 분석 소개한 책은 세상 어디에도 아직 없다. 책축제는 어느덧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마당이자 아이디어를 나누는 지식 공유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다양하고 선진적인 책축제의 풍경과 목소리에 우리 사회가 새롭게 눈뜨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