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복하지 않는 예술가들의 분투
예술가 중에는 초기부터 인정받고 성공을 거두는 이들도 있지만, 뛰어난 능력에도 기성 권력에 부딪쳐 험난한 시기를 보낸 이들도 많다. 1권은 그야말로 인상파 화가들이 ‘살롱전’으로 대표되는 기성 화단과 치르는 기나긴 전투라 할 수 있다. 거듭되는 낙선에도 꾸준히 살롱에 출품했던 마네 같은 이가 있는가 하면 모네와 모리조, 르누아르, 시슬레 등의 화가들은 인상파 전시회 등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자 했다. 로댕조차 서른다섯에 이르러서야 살롱전에 입선했고, 2년 뒤에 출품한 「청동시대」는 너무나 뛰어난 나머지 ‘모델에 직접 석고를 입혀 본을 떴다’는 소문이 돌면서 미술계에 파문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러한 논란은 결과적으로 그의 명성에 득이 되었다.(1권 122쪽)
모리스 라벨과 같은 작곡가는 그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콩세르바투아르에서 두 번이나 퇴학을 당했으며, 계속된 도전에도 로마대상 경연에서 결국 탈락하고 만다. 마지막으로 탈락했을 때 그는 이미 「물의 희롱」, 「현악 4중주」 등의 곡으로 평판을 얻고 있었기에 이 사건은 스캔들로 비화되기까지 한다. (2권 184쪽)
르코르뷔지에나 만 레이처럼 처음에는 그림 쪽에 야망이 있었지만, 다른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이들도 있었다. 르코르뷔지에는 건축가로 일하면서도 진정으로는 화가가 되길 원했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처럼 1차 대전의 정전협정이 조인된 날은 하필 그가 전시회를 열기로 한 날이었고, 이 때문에 그의 전시회는 연기되고 만다. 어쩌면 그가 미술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현대 건축은 한 발 빨리 변화했을지도 모른다.
가장 위대한 작품들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재미는 역시 위대한 예술가들이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다. 자유의 여신상이나 에펠탑처럼 한 권 전체에 걸쳐 완성되어 가는 대작을 보는 것도 즐겁고, 피카소의 「인생」이나 조이스의 『율리시스』 같은 잘 알려진 작품들의 뒷이야기를 듣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자유의 여신상 같은 대형 프로젝트에는 대개 거대한 이상과 가치가 담기기 마련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독립을 축하하는 프랑스인의 우정의 선물이었지만, 이는 동시에 혁명과 반동 사이에서 부침을 거듭해온 프랑스 국민들에게 ‘자유’라는 이정표를 세우는 행위였다. 이 여신상의 외관은 바르톨디의 것이었지만, 내부 구조는 에펠이 담당하여 거대한 외형을 떠받칠 철탑을 고안했다.(1권 178쪽)
한편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또 한번의 만국박람회에 무언가 ‘진짜 볼만한 것’을 내놓자는 제안에서 시작된 에펠탑은 원래 ‘에펠’탑이 아니었다. 애초에 철탑 아이디어를 냈던 것은 에펠의 조수들이었는데, 에펠 본인은 처음엔 이 계획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았으나 당시 박람회 행정위원장이 이 제안에 크게 흥분하자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재고하여 특허권을 사들였다.(1권 244쪽)
피카소의 청색시대 걸작으로 평가되는 「인생」은 충격적인 개인사와 그에 얽힌 복합적 감정이 담겨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나체의 한 남자와 여자가 나온다. 남자는 피카소와 함께 바르셀로나에서 파리로 온 친구 카사헤마스이고, 여자는 그가 사랑했던 여자 제르멘이다. 카사헤마스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제르멘으로 인해 절망에 빠진 나머지, 여러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녀를 쏘고 뒤이어 자기 자신에게도 방아쇠를 당긴다. 다행히 제르멘은 살아났고, 이후 피카소의 애인이 된다. 「인생」에 엑스레이를 쬐어 보면 카사헤마스의 그림 밑에 원래 피카소 자신을 그렸다고 한다. 이 그림의 의미는 피카소 자신조차 확실히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2권 146쪽)
책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프랑스를 여행할 때 꼭 들르는 곳이 아마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일 것이다. 이곳은 이후 파리에 거주하던 영미 계통 작가들의 삶을 크게 바꾸었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의 운명도 바꾸었다. 미국 잡지에 연재되던 이 작품은 ‘외설물’ 혐의로 고발되어 게재 중단의 위기에 처한다. 출판업자를 구하지 못하여 좌절한 조이스에게,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창업자인 실비아 비치가 출간을 제안한다. 출판 경험도 자본도 없었던 이 용감한 여성 덕분에 조이스는 『율리시스』를 끝까지 써 내려갈 수 있었다.(3권 160쪽)
편견을 부수며 전진한 굳센 여성들
급격한 변화의 시기, 전위적인 시기였다고는 해도 선구적인 이들이 길을 트기는 녹록지 않았고, 여성들에게는 이 길에 ‘여성’에 대한 제약이 더해져 더욱 험했다. 그러나 앞서 나간 여성들은 어떤 편견과 부당한 대우에도 굴하지 않았다. 시리즈 전체에 걸쳐 위풍당당함을 보여준 대배우 사라 베르나르는 햄릿 같은 남자 배역도 마다하지 않았고, 조각에도 열정을 보였으며, 만국박람회 때 선보인 열기구를 타보는 모험을 한 뒤, 이 이야기를 책으로 써내기도 했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누가 뭐라고 하든 하고야 마는 성미였던 것이다.
상류 부르주아 가문에서 태어난 베르트 모리조는 일찍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고, 그의 부모는 그런 그녀에게 미술 선생을 구해주었다. 상류 계층의 여성이 ‘교양으로’ 그림을 배우는 것은 바람직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욕구가 아마추어리즘을 넘어서기 시작하자 그녀의 부모는 난감해했다. 모리조는 자신의 성별 때문에 동료 화가들과 함께 어울리기 어려웠음에도 자신만의 비전과 테크닉을 개발했다. 결혼 증명서와 사망 증명서에 그녀는 ‘무직’으로 기록되었으나, 그녀가 그린 뛰어난 작품들은 현재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에 다른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걸려 있다. (1권 30쪽)
마리 퀴리에게도 학업과 연구는 쉽지 않았다. 그녀는 폴란드 출신이었는데, 당시 바르샤바 대학교는 아예 여학생을 받지 않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장장 5년 동안 가정교사로 일한 끝에 그녀는 파리로 유학을 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생활고와 임신과 출산 등 온갖 어려움에도 연구를 계속하여 방사능을 발견했다. 그러나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는 마리의 기여도를 의도적으로 무시하여 노벨 물리학상에서 그녀를 배제하려 했다. 다행히 이런 시도를 미리 안 피에르가 손을 씀으로써 마리는 의당 받아야 할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녀를 향한 학계의 차별은 계속 이어진다. 피에르가 마차 사고로 죽은 후에 피에르의 소르본 교수 자리를 마리에게 정식으로 주지 않고, 교수직은 공석으로 두되 ‘마리가 피에르를 대신하여 강의와 연구를 수행하는 것’을 제안한 것이다. 끝없는 차별에도 두 개의 노벨상을 탄 그녀는 선구자들은 인생의 아늑한 구석에 정착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