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수,김경욱,김멜라,박솔뫼,은희경,최진영,최윤 공저
김멜라,김지연,백수린,위수정,이주혜,정한아,이서수 저
장은진,김종광,김채원,손보미,정소현,최은영,권여선 공저
동아는 자폐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 아이 덕분에 겸손과 불행한 사람들을 민감하게 바라보게 되었다는 부부는 어느날 대학 은사로부터 제안을 받게 된다. 마침 서울을 떠나 아이를 키우고 싶던 차에 유명한 계곡에 은사 소유의 집이 있으니 와서 살면서 상하지 않게 돌보아 달라는 조건이었다. 은사인 p교수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조각가이다. 어릴 때 부터 조각가의 꿈을 키워왔고 그의 작품을 경애해온 영어 교사와 결혼을 했고, 대학 시절 부터 그의 작품을 미술관에서 사들일 정도로 일찍이 매우 값이 나가는 예술가의 길을 걸은 사람이었다. 교수의 강의를 딱 하나 들었을 뿐인데 누구에게서 들었는지 부부의 딱한 사정을 알고 전화를 해왔는지 부부는 의아할 뿐이다.
그동안 고생한 부인은 서울 친정에서 지내기로 하고 주인공과 동아는 계곡 '산밑 집'에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소유의 문법> 제목처럼 경관 좋고 아름다운 계곡에 살고 있는 20여채의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소유의 방식을 보여준다.
첫번째 동아는 조약돌, 이파리, 씨앗 같은 것을 오래오래 바라본다. 동아는 자주 그렇게 오래 바라본 것을 아빠에게 보여준다. 때로 주머니에 넣어 집으로 가져온다. 작고 미미한 그것들은 어느 날 언어가 되지 않는다. 동아는 그것들을 다시 찾지 않는다.
두번째 주인공 동아 아빠의 직업은 의자를 만드는 목공일을 하고 있다. 계곡과 주변의 등성이에는 의자를 만들기에 좋은 목재용 나무들이 풍성하다. 참나무, 단풍나무, 오리목, 가문비나무, 편백나무들이 눈에 띄지만 모두 엉뚱하고 멍청한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세번째는 마을 사람들이다. 대부분 경사지에 평지를 만들어 집을 지었는데, 옆으로 건물을 들이고, 본채를 늘리고, 테라스를 집 주위에 두른다. 무엇보다도 게곡의 경치가 잘 보이고 빛이 더 잘 들어오도록 재래식 집의 창문이 있던 벽을 헐고 거기에 통유리를 끼우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런 구조변경이 위험하다는 것을 주인공은 의아하게 생각하지만 대목의 침묵앞에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네번째는 대니얼 장이다. 그도 p교수의 제자로 교수가 소유하고 있는 계곡의 두 집 중 한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도 교수의 제안을 받아 이 집으로 들어왔고 처음부터 그런 마음이 있지는 않았겠지만 집의 수리와 공사 비용을 근거로 소유권 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교수의 허락없이 3년동안 집을 고치는 것이 마땅한 것인지, 얼마에 양도하겠다는 구두약속만으로 법적 허용이 가능한지 잘 모르겠지만 마을사람들이 대니얼 장에게 동조하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다섯번째는 바로 p교수다. 그는 서울과 뉴욕 그리고 S계곡마을의 집까지 여러 채를 소유하고 있다. 아마도 경치면에서는 계곡집이 최고일 것이다. 살지 않으면서 소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마을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처지에 있다.
주말 오후에 이 계곡의 빛이 신비롭다 못해 바라보는 사람들을 거의 마비시킬 정도로 매력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 집의 실내가 자리 잡은 방향이나 통유리의 위치, 크기, 각도 같은 모든 세부는 계곡의 다른 집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자연의 빛과 경관이 가장 놀라운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고안된 것임을 알아차렸다. 이 지역을 잘 알고, 이 계곡의 자연을 오래 관찰한 사람이 지은 집. 나는 얼빠진 얼굴도 감탄을 머금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이동했다. p.26
밖에 나와서 보는 동일한 풍경에는, 바로 직전에 실내에서 본 그 농밀한 감동이 없었다.이게 대체 무슨 조화람! 영원에서 오려낸 최선의 순간. 나는 처음으로 조각가 은사의 미 관년의 정수의 한 귀퉁이를 맛본 듯했다. 미는 위험한 것이야! p.31
자연을 소유하려고 하는 인간의 덧없음을 알게 해주는 문장이다. 자연의 찰나는 느끼고 공유할 수는 있지만 소유할 수 는 없다는 걸.
이 책을 읽고 나의 '소유의 문법'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어떤 물건이든 손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을 즐기는 것이지 막상 내 것이 되면 심드렁해지는 건 뭘까? 제대로 쓰지 않아서 버리는 것도 많으니 소유욕이 강한 것인지 없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전원주택 이야기는 너무 먼 이야기라 크게 와 닿지는 않지만 동아처럼 작고 미미한 것들에 미련을 두지 않는 그 시크함을 배워야겠다.
갈수록 책을 안 읽지만, 그래도 소설은 읽으려고 노력한다. 잘 안 되지만. 요즘 어떤 소설이 잘 나가는 지 일일이 챙겨 볼 능력이 안 되어, 올해의 소설이나 문학상 작품집 정도는 한 두 권씩 보려고 노력한다.
2020년 이효석 문학상의 스펙트럼은 훨씬 넓어진 것 같다. 좋은 점은 이야기로서 완성도다. 하나같이 너무 재미있다. 과거 단편소설들이 '재미'라는 부분에서 아쉬움이 많았는데, 이효석 문학상이 뽑은 2020년의 최고의 단편 소설들을 하나같이 너무 재미있었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하나같이 끝이 다 아쉬웠다. 나쁜 말로 하면 '용두사미'인데. 글쎄 작가들의 노력이 들어 간 작품을 이렇게 한 단어로 표현해도 될 지 모르겠다. 항상 기대는 재미있으면서 여운이 길게 남는 소설을 원하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번 소설들 중에는 여운이 길게 남는 소설이 거의 없었다. 왜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독자 입장에서 그냥 그랬다.
아마 단편소설이라는 한계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한국 소설은 대체로 장편보다는 단편이 낫다. 그렇다면 단순히 장르적 한계라고 규정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계속 반복되는 아쉬움과 이야기로서 재미가 공존하는 책읽기였다.
단편집들을 보면, 한권의 책에서 다양한 주제의 여러 글들을 읽을 수 있어서 참으로 좋다.
이번에 읽은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 2020"도 그러했다.
단편이라고는 하나 페이지수만 적을 뿐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들의 깊이는 너무 깊었다.
술술 읽혀지는 소설과 달리, 한 문단을 읽어도 다시 곱씹게 될때가 많고,
다 읽고 나서도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하기 위해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책은 대상 수상작 '소유의 문법_최윤'을 비롯한 김금희 작가의 '기괴의 탄생', 박민정 작가의 '신세이다이 가옥', 박상영 작가의 '동경 너머 하와이', 신주희 작가의 '햄의 기원', 최진영 작가의 '유진' 등 5작품이 있었고, 기수상작가인 장은진 작가의 '가벼운 점심' 대상 수상작가 자선작 '손수건' 이 함께 수록되었다.
대상 수상작인 최윤 작가의 ' 소유의 문법'은 자폐아를 키우는 한 아버지가 대학 은사 P의 제안으로 한 산골마을에 이사하며 벌어지는 그곳 마을 사람들 간의 심리를 다루는 이야기이다. '소유'에 대한 사람들 간의 시선차이가 느껴지는 단편이었다. 은사 P가 생각하는 소유와 주인공인 '나' 가 생각하는 소유, 그리고 소유라는 것의 의미도 모를 '나'의 딸이 표현하는 '소유' 그리고 마을 사람 대부분이 느끼는 대중적인 '소유'의 의미까지...
나는 과연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이 정의 내린 소유의 의미를 품고 있는지 다시 되새겨본다.
김금희 작가의 '기괴의 탄생'은 단단했던 사제 지간의 관계가 스승의 불륜으로 어그러져 가는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었다. 존경과 사랑의 마음으로 생각했던 스승에 대해 그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제자인 주인공은 스승과의 선을 넘는 대화를 하고,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사제지간의 관계는 아슬하기만 하다.
박민정 작가의 '신세이다이 가옥'은 감옥과도 다름없는 어린 유년 시절 할머니 댁(신세이다이 가옥)을 떠올리며 회상하는 내용이다. 어린시절 할머니의 손에 외국으로 입양 보낸 친척 언니가 자신의 피붙이인 막내 남동생을 찾아 한국으로 오게 되면서,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유년 시절의 할머니 댁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주인공. 내가 경험하고 기억에 남긴 따스하고 푸근한 할머니 댁의 이미지와 정 반대이지만, 주인공의 할머니 댁을 일제시대 억압받던 한국의 신세이다이 감옥으로 표현한 것은 너무나도 잘 맞아 떨어지는 듯하다.
그리고 장은진 작가의 '가벼운 점심'은 비록 메뉴가 패스트 푸드라는 점에서 가볍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굉장히 어렵고 무거운 마음의 점심이다. 10년 전에 엄마와 자신 그리고 남동생을 버리고 간 아버지와의 재회의 공간이자 10년 만에 함께한 식사자리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생겨 어쩔 수 없이 함께했던 결혼 생활이 죽을만큼 힘들었다는 아버지는 남동생을 낳고, 두 아이들이 성인이 될때까지 시들어 버린 꽃처럼 살다가, 가족을 비롯한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꽃 피움을 위해 외국으로 떠나버린다. 죽음과 다름 없는 기나긴 세월을 살다가 정말로 숨쉴 수 있는 사람을 만나 해외로 떠나버린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와 자식들은 아비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래도 현명했던 아니면, 나름의 방식으로 자식들을 아꼈던 부모 덕에 아이들은 10년 간의 부재인 아버지를 원망하기 보다 이해하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빠르게 만들어져 소비자에게 소비되는 패스트 푸드 처럼 지난 날의 빠르게 되돌아보고, 빠르게 이해하고, 어쩌면 그래서 쿨하게 헤어질 수 있었던 부자지간의 가벼운 점심. 그들이 나눈 점심 대화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본다.주인공의 가족처럼 서로의 목에 밧줄을 감고 목을 옥죄며 살아가는 것이 가족이어야 한다면 그것은 비록 가족이라는 소중한 공동체임에도 칼로 끊어낼 줄 알아야 한다.
여러개의 단편을 읽으며, 전혀다른 생각의 장르를 겪느라 멍때리는 시간이 단편들 사이사이에 존재했던 거 같다. 여전히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박상영 작가의 '동경 너머 하와이'나 신주희 작가의 '햄의 기원', 그리고 최진영 작가의 '유진'. 책의 말미에 각 단편에 대한 설명들이 있지만, 그것은 그 글을 쓴 사람의 이해라고 생각하고 덮어두려고 한다. 나머지 단편들도 나만의 언어로 내 속에 들어올 수 있게, 다시한번 곱씹으며 읽어봐야겠다.
최윤 소설 속 인물들은 자주 정상성으로부터 어긋나며 소외되고 흐릿한 채로 존재한다.
최윤의 소설은 완결되지 않은 채로 독자에게 모호함과 찝찝함을 안겨주고, 그 찝찝함은 섬세한 문체로 인해 자꾸만 미끄러지고 의미를 확정짓지 못하게 만든다.
계속해서 사유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는 책.
여러모로 인터뷰가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