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릭스 코브 저/정지인 역
유시민 저
안데르스 한센 저/김아영 역
레이첼 카슨 저/김은령 역/홍욱희 감수
김범준 저
유선경 저
[예스24 인문 MD 손민규 추천] 2020년 기억에 남는 인문 교양 4권
2020년 11월 23일
조지 오웰이 살아 있다면 사랑했을 책. 책을 수식하는 표현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체 게바라가 그러하듯 조지 오웰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되는 하나의 상품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가난했지만 역경을 딛고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식의 글이 지난날 수많은 아이들의 인생을 이끌었던 것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과연 어떤 이야기를 난 마주하게 될 것인가. 유럽연합에서 벗어나 독자노선을 걷기로 선언한 영국이라는 나라와 가난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주제 같았다. 어느 사회에나 빈부 격차는 존재한다지만 적어도 나에게 유럽은 부유함의 상징인양 여겨졌던 게 사실이었다.
1984년생.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1980년대라 했을 때 절대 가난에 빠져 허우적거린 나라 중 영국은 없었다. 그는 배고픔을 모르고 자랐을 것이며, 훌륭하다고까지 보긴 힘들어도 어느 정도 갖추어진 사회 안전망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듯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풀록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의 설명이 옳다면 말이다. 아파트는 좁은 공간에 과도하다 싶을 만치 인구가 모여 사는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형태로 손꼽히곤 한다. 아파트 단지 안에는 기본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는 상점이 하나 이상 존재한다. 규모가 좀 큰 단지인 경우에는 초등 교육 기관도 위치해 아이들은 안전하게 걸어서 등하교 할 수 있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는 부동산 가격은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의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와도 같다. 영국에서 아파트는 선호하는 형태의 주거 지역이 아니다. 한 번 집에 들어가면 내려오기가 쉽지 않다. 위아래 옆집에서 누가 무얼 하고 있는지, 애써 귀 기울이지 않아도, 듣고 싶지 않음에도 들을 수밖에 없다. 가능하다면 기꺼이 다른 지역, 다른 형태의 집을 찾아 이주할 테지만 그곳은 어쩌면 사람들에게 허용된 유일한 주거지일 수도 있다. 저자는 어떠한 이유에서건 사람들이 충분히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그와 같은 이유로 존중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아무리 논리에 매달려도 투박하다는 평을 듣는다.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얽매인 논쟁에서 곧잘 배제된다. 으레 그래도 상관 없다는 듯. 그리하여 모든 게 결정되고 난 뒤에 행하는 그들의 저항은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지기 일쑤다. 오랜 기간 동안 형성된 공동체는 힘 없이 무너지고, 다들 뿔뿔이 흩어져 서로의 존재를 잊고 살게 된다.
제3 자의 위치에 선 인물에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형태의 삶은 그저 난해하게만 여겨질 게 분명하다. 저자는 원하진 않았을 테지만 스스로 체득한 삶을 털어놓는 것으로 가난에 대해 서술했다. 오래 전 세상을 떠난 그의 어머니는 기록에 따르면 술과 온갖 약물의 도움을 받아가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는 아이를 낳았지만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알지 못했고, 알려주는 이도 아마 없었던 게 분명하다. 무얼 해도 삶이 나아질 리 없다는 확신에 취해 있었기에 앞을 내다볼 시도 따윈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누릴 수 있는 쾌락을 탐하는 것도 버거운 이의 눈에 남(정녕 그 대상이 제 자녀였을지라도)이 보였을 리 없다. 잔인하게도 부모의 계급은 고스란히 자녀에게 이어진다. 그는 자신에게 행해지는 대우로부터 어떠한 이상도 감지하지 못했다. 어쩌면 주변의 다른 가족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았을 수 있다. 차라리 부모가 없으면 낫을 거 같다는 합리적 의심에 빠져들기도 했다. 어린 아이의 눈에도 제 부모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만은 철썩 같이 보였던 것이다.
얼마든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지독한 부조리를 걷어 내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패망해야만 한다는 식의 극단적 사고를 견지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걸 기억했다. 노숙자로 길거리에 내앉을 상황에서 그에게 손 내민 건 다름 아닌 자본주의 사회의 안전망이었다. 자신이 사회를 증오하는 순간에도 사회는 어찌 됐건 자신에게 꾸준히 무언가를 베풀었다. 결정적으로 가정을 꾸리면서 더는 증오심으로 스스로를 불태우지 않게 됐다. 그가 택한 노선은 타협이었다. 하층 계급의 분노가 적절치 못한 반응이라는 식의 고백을 한 그를 과연 조지 오웰이 좋아했을지는 의문이다.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한 글도 물론 존재한다. 저자의 경우엔 제 안에 쌓여 가는 상처의 배출구가 필요했다. 현대 사회는 경쟁 사회라 약점을 드러내는 건 위험하다. 곧장 누군가의 먹이감이 될지도 모르는 위험 부담을 알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펼친 용기야말로 이 책에 지닌 힘이 아닐까 한다.
왜 가난은 단절되지 않고 대물림돼는가?, 참으로 오래됐지만 새로운 주제다. 어떤 때는 게으른 개인의 탓으로, 또 어떤 때는 사회구조의 문제로, 분석의 대상과 촛점에 따라 술, 폭력, 범죄에 노출된 환경, 그렇다. 가난한 이들은 그들의 문화, 거주 환경 등 복합적인 요소가 결합돼 나타는현상이 가난이요. 그 환경에 대한 변화 없이는 대물림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책은 가난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지은이 대런 맥가비가 자신의 성장경험(열아홉 살에 어머니의 죽음을 겪으면서 우울증과 정신이상에 시달리며 오랫동안 약물과 알코올 중독자로 지냈다)을 바탕으로 아동청소년과 교도소 재소자 대상 랩 워크숍을 하면서 만난 빈민층, 하층계급의 이야기로 한 래퍼이자 사회활동가의 작은 성공담이다 "성공"이란, 가난이 만들어낸 감정의 늪을 정확히 파악하고 여기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바로 그 자체를 말한다.
지은이는 "가난탈출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스코틀랜드의 좌우파 모두에게 문제제기를 하고있다. 먼저 가난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력을 정확히 알아야한다고 말한다. 가난을 겪는 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가난에서 탈출하려 노력하는가, 그런데 왜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이 제대로 되지 않는지를 여러 각도에서 뜯어보고, 들여다보며, 톺아본다. 그리고 그는 나름대로의 해법을 제시한다.
우리가 눈여겨 봐야할 점은 지은이가 어떻게 하나 하나 뜯어보고 분석해내는 지 그 과정이다. 성공유무가 아닌 가난이라는 현상과 그 원인, 그로부터 비롯된 모든 것들이 개인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말이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는 옛말은 이제 아니다. 가난은 나랏님이 아닌 가난에 빠진 자 스스로가 주변이 사회가 조금만 신경을 쓰고 진지하게 천착해준다면, 우리 모두 가난해지지 않을 수 있다. 절대적으로는 가난한 사람(일정기준 이하로 떨어진 사람들이 없다는 면에서)없더라도 상대적으로 가난함을 느낄 수도 있다(북유럽의 복지국가, 복지사회). 아직도 시행착오 속에서 실험은 진행 중이다. 가난의 문법은 필연적이지 않다. 바꿀 수 있는 힘은 가난한 자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며(강점기반 접근), 여러 이론을 바탕으로 가난한 이가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판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