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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도서 PD 뉴스레터] 추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 『타인에 대한 연민』 외
2022년 09월 06일
분노, 혐오, 시기가 만연한 시대다. 자신과 정치적 입장을 같이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 이는 좌든 우든 동일하다. 정치인들과 언론은 그런 편가르기로 먹고 산다고 하지만, 이제는 한국 사회를 완전히 좌와 우, 둘로 나눴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혐오. 장애인들, LGBT에 대한 혐오. 사회에서 성공한 여성들에 대한 시기.
이런 분노, 혐오, 시기는 민주주의를 좀 먹는다. 그리고, 이런 감정들의 바탕에는 '두려움'이 있다. 두려움은 원초적 감정이고, 정치인들과 언론은 이 감정을 키워 자신들의 이득을 얻었다. 하지만, 이는 황금알을 얻고자 거위의 배를 가르는 행위와 같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조금 훼손시키더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괜찮다는 사고 방식은 민주주의의 기본 틀마저 붕괴시킨다. 민주주의가 왜 중요한데? 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적어도 민주주의가 우리 삶의 기본 방식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두려움'을 직시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을 말해야 한다고 말한다. '두려움'에서 기인한 '분노, 혐오, 시기'는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봉쇄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찌 됐든 희망을 말해야 한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 너무 막연한가? 저자는 예술, 토론, 종교 등을 통해 두려움으로 인한 분노, 혐오, 시기의 시대를 건너 새로운 희망, 예를 들어 이주노동자도, 장애인도, 성소수자도 똑같은 인간으로 대접받는 시대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 밑바탕에는 '사랑'이 있다. 이 '사랑'은 '공익'을 위해 '사익'을 희생하겠다는 마음이다.
책은 어찌 보면 '선언' 위주의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말 위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분노, 혐오, 시기의 시대에 우리에게는 우리를 향해 그리고 사회를 향해 이런 새로운 희망의 선언을 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갈 길은 멀다. 동시에, 작고 지속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제목 때문에 오해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 같은데, 이 책의 원제와 부제는 『The Monarchy of Fear: A Philosopher Looks at Our Political Crisis』이다. 즉, 원제는 '두려움의 군주제'이고, 부제는 '우리의 정치 위기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다. 마사 누스바움이 이 책에서 서술한 내용을 살펴보자면, 원서의 제목과 부제가 내용에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어 번역본의 제목은 아마도 판매를 염두에 두고 잠재적 구독자들을 유인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튼,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fear', 즉 두려움이다.
사회가 두려움에 직면한 것은 결코 최근의 일이 아니지만, 작년부터 전세계가 직면한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 곳곳에서 혐오 범죄가 증가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두려움은 종종 인종 차별과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 무슬림 혐오 등의 원인이 된다. 극단적 혐오의 기저에는 항상 두려움이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몇몇 (저질) 정치인들이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이다(가장 대표적인 예가 트럼프일 것이다). 대중들의 두려움을 이용하고 혐오를 선동하는 포퓰리즘 정치가 세계를 좀먹고 있다.
하버드대와 브라운대에서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는 시카고 대학교 철학과와 로스쿨에서 법학과 윤리학을 가르치는 법철학자이자, 정치철학자, 윤리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은, 2016년 11월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에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쓰기 시작한다.
필라델피아의 상류층 거주 지역에서 살던 상위 중산층이었던 마사의 아버지는 인종 차별주의자였다. 노동자 출신의 남성이었던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여성들도 능력을 발휘한다고 생각하며 딸의 성공을 지지하는 좋은 아버지였으나, 일하던 아내는 결혼과 동시에 일을 그만두길 원한 모순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필라델피아의 상류층에서 마사가 접한 사람들은 대부분 공화당 지지자이자 자신의 아버지와 닮은 사람들이었다.
마사는 자신이 누렸던 행복한 삶이 '특권'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런 그녀조차 여성으로서 차별을 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하버드에서 종신 교수(tenure)가 되지 못한 유일한 이유는 그녀가 여성이었기 때문이었다. 결혼과 그 이후 가정생활을 재구성하는 것도 큰 문제였다.
마사 누스바움은 '미국인'으로서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해서, 미국사회에 편만한 두려움과 그 두려움이 낳은 괴물이라고 할 수 있는 혐오와 배제의 문제, 그리고 성차별주의와 여성혐오에 대해 기술한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설명하면서 그녀는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의 연구 성과들을 참조한다. 인간은 무력하게 태어나고 자기 중심적인 나르시스트이기 때문에, 생애 최초로 경험하는 감정이 두려움일 수밖에없다. 그러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것을 극복해야만 한다. 그러나 대부부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고통을 타인의 탓으로 돌린다.
이것이 '분노'가 두려움이 낳은 괴물인 까닭이다. 두려움이 낳은 이 분노에서 혐오와 배제가 배태되며, 그 대표적인 예가 성차별주의와 여성 혐오이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유럽의 이민자, 난민, 무슬림 혐오, 동성애 혐오 등 혐오와 배제에 기인한 혐오 현상들은 무한대로 증폭된다.
물론 한국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성, 이주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들을 어디에서건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사 누스바움은 이러한 현실 앞에서 낙망하거나 분노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희망'과 '대안'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두려움 뒤의 희망을 말하면서 품위 있게 투쟁하는 방법에 대해 서술한다. 좌우를 막론하고 극단은 그녀가 지양하는 바이다. 마사 누스바움은 마틴 루터 킹이나 넬슨 만델라의 예를 들면서 두려움과 혐오를 목도한 대중이 지향해야 할 것은 보복이나 증오가 아니라 희망과 화해, 사랑이라고 주장한다.
어렵게 성취한 민주주의가 두려움과 혐오에 무너진다면 군주제로 돌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들은 민주적 호혜의 정치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 직접 나서야 한다. 폭력이 아니라 대화로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 예술과 교육, 종교가 각자의 영역에서 제 역할을 잘 감당하게 하는 것을 통해 현대 사회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마사 누스바움의 주장이다. (종교에 대한 주장은 독자에 따라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백인인 그녀는 유태인 남성을 만나 결혼했다. 그것이 그녀의 기본적인 가치관이어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 그런 선택이 이후의 그녀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영향을 미친 것인지 그 선후 관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마사 누스바움은 종교의 영향력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현실의 혐오는 직접적인 데 반해 사랑과 포용적 연대라는 대안은 너무 막연하게 생각될 수 있지만(세계적으로 저명한 지식인이 현실 문제의 대안으로 '희망'을 말하는 게 타당한가와 별개로), 희망의 가능성이 아직 소진되지 않았다는 것을 믿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믿음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고 싶다.
부디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도 우아하지만 확고한 이 '품위 있는 투쟁'의 주체가 되기를 바란다.
타인에 대한 연민 이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덜컥 구매를 햇습니다.. 책 내용은 더욱 마음에 드네요.. ^^혐오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읽고 있는데 마사 누스바움이라는 이름을 기억해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인류의 두려움을 탐구하면서 통찰력 있게 사회현상 문제를 분석하며 해결책을 제시하는 부분이 마음에 드네요.. 특히나 한국사회는 부정적 감정시대를 통과하고 있는데 두려움의 기인한 인간 내면의 문제를 정치와 연결시켜 다시 한번 우리 사회와 이웃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책인 것 같습니다.. 강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