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교수의 서울시장 출마여부와 관련한 내용들이 시끌시끌 장안의 화제이다. 이 글을 쓰고 난 며칠 후에는 그 결과를 알 수 있겠지만 집권당에서도 당황하는 기색이다. 여당에게 유리한 일이라고 히히낙낙하던게 엇그제인데 지지율 조사를 해보니 보수층에서도 집권당 바라보는 시각이 예사롭지 않음을 눈치챈(?) 모양이다. 사실 이번에 구케가 보여준 성희롱 발언 강모 의원에 대한 징계안 부결은 이 사회가 잘못가고 있다는 큰 우려를 던져주었다. 김 전 구케의장의 말은 가관이다. "강XX 의원에게 돌 던질 수 있나요?"..."이 정도 일로 제명한다면 우리 중에 남아있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라고 제명안 반대를 호소했다고 한다. 그리고 부결되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대로 올바른 사고로 행동하고 살아가는 국회의원은 없다는 자책의 목소리 아니겠는가. 지도자층의 생각과 행동이 이러하니 우리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권력과 금력만 있으면 무슨 짓을 해도 살아남는 자들에게 억눌리는 사람은 누굴까? 바로 서민. 우리 아닌가. 힘없고 약하고 소리낼 수 없는 바로 우리. 민초의 어려움을 살피고 보다듬어야할 위정자들이,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글로벌 시대의 선진조국을 만들어가야 할 그들이 권리만 챙기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이 행태를 어찌 정의롭다 할 것인가. 오호통재라...
평소에 정치 이야기를 안하고자 하나, 이번에 손에 잡은 <청소년을 위한 정의론>를 읽어나가면서 앞으로 동량이 될 청소년에게 말로만 정의를 외치는 기성세대의 부끄러움에 괜히 열을 올렸다. 참으로 부끄럽다. 이런 좋은 책을 아무리 많이 출판한 들 무슨 소용이 있을련지 회의가 인다. 당장 눈 앞에서 정의가 무엇인지 헷갈리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구태의연한 정의를 들먹이고 있는거나 아닌지 정말 부끄럽다. 아무리 정의는 상대적인 것이라며 한 발 물러설려해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잠시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와 트라시마코스가 나누는 이야기에서 정의의 개념을 잡아보자.
"정의가 무엇이냐고? 현실적으로는 정의가 있을 수 없어. 그런데 왜 우리들이 사회 정의를 이야기 하지? 정의란 올바름이야. 올바름이란 자유와 평등이 반드시 그 안에 담겨 있어야 해. 사실 정의는 우리 생각 속에 가지고 있는 이상(理想)이고, 이것을 현실 사회에 실현시키려고 우리가 정의로운 사회를 부르짖는 것이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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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현실적이어서 눈앞의 현상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그래서 돈과 권력의 힘을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돈과 권력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은 될 수 있어도 그것이 가진 힘이 정의가 될 수는 없어. 정의는 어디까지나 인간을 목적으로 삼는 사회 윤리적 덕목이야." (54쪽)
집권당은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안봐도 아는 분들이다. 다 똑똑한 분들 아닌가. 그런데 그러라고 있는 자리에서 불의에 가까운 일을 하고도 무덤덤하다는건 무얼 말하는가? 바로 '오만(傲慢)'이라 생각한다. 전 집권당도 이 오만스러움으로 미움 받았는데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거다. 이 땅의 보수를 믿고 있는거겠지만 내 또한 보수라 생각하는 사람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보수는 도덕을 잊고 있는 것이 아니다. 크게 목소리 낼 처지가 아닐 뿐이지 유교적 윤리마저 떠나보낸 것이 아닌 것이다. 나는 안철수 교수의 지지를 이런 기본윤리에 대한 그리움으로 생각한다. 뭔가 정치적으로 부족한 듯 하지만 바르게 행동한다는 그것. 적어도 뒷퉁수 때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자신의 아이들에게 정의에 어긋나는 어른들의 치부를 보여주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의 표출이라고 생각한다. 안 교수가 서울시장이 되든안되든 이 사회에 윤리의 경종이 울려 사람들의 마음을 깨우고 있다는 방증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청소년의 책에 너무 감정이입이 되어 부끄럽다. 하지만 바로 청소년의 정의론이기에 이러는거다. 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이기 위해서이다. 이 책은 하버드대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하고는 다른 책이다. 시기적으로 오해를 받을만한 제목이지만 갈래가 다르다. 철학자 강영계 교수가 청소년을 위해 쉽게 풀어쓴 정의에 관한 책인데, 상당히 괜찮다. 교정적 정의와 분배적 정의를 이해하고 개인의 평등과 자유, 권리의 중요성을 쉽게 일깨워 줌으로써 창의적이며 자발적인 정의론을 전달하고 있다는데 동의한다 (물론 청소년의 입장에서...). 문제는 이런 책을 어느 학생이 읽어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닐까. 작금의 제도권 교육 체제에서 이런 철학적 책을 생각하고 느끼면서 읽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님은 아이를 키워 봐서 안다. 조금만 한 눈 팔면 뒤쳐지는 경쟁의 학교에서 꿈같은 일 일거란 생각이다. 우리 시대엔 윤리란 교과목이 있어 이 비슷한 내용은 배웠지만 요즈음 이마저도 없는 것으로 안다. 청소년의 윤리교육을 위한 부교재로 추천해도 될 만큼 괜찮은 책이다. 오락성 환타지와 추리, 인터넷 게임에 몰입하는 청소년들이 어떻게 하면 이 책에 몰입하게 할 수는 없을까? 이 또한 어른들의 몫임을...
이 책에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별이 작아지고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삶의 다양한 기회를 평등하게 누릴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사회야말로 정의로운 사회(186쪽)"라고 하는데, 과연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걸가? 손을 가슴에 얹고 하늘 한번 보면서 생각 한번 해보자... 음...
(청소년에겐 필독서로 별 다섯. 어른들에겐 가벼운 내용이므로 확실히 별 넷이다. 청소년용임에 밑줄을 그으면 분명 별 다섯이다)
나는 윤리교육을 배우는 대학생이다. 윤리에 대한 필요성과 중요성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사람들끼리의 약속.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에게 도덕을 알게 하는 것만이 사회를 안정시키고 지키는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정권은 윤리를 없애려고 한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윤리..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윤리는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어려운 철학자들로 시작된다.
전공과목으로 배우고 있으면서도 가끔은 이 사람들의 학개론을 다 외워서 과연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식이 될까 싶었다. 그러나 청소년을 위한 정의론 이 책에서는 아이들이 알아야할 윤리의 핵심을 이해하기 쉽게 썼다고 볼 수 있다.
‘의리’에 관한 정의로 책이 시작된다.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있고 보다 가까이 하기 쉽게 하기 위하여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산다’ 라는 제목을 붙였다. 한국은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의리’라는 명목 하에 부조리한 일들을 이해하며 살아왔다. 청소년들은 의리와 정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 대한 정의를 확고하게 내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정확한 정의를 예를 통해 쉽게 이해 하도록 도와준다. 의리가 아닌 진정한 정의, 절대자에 있어서의 정의, 사회적 관습, 자연법, 공동체, 삶에서 활용하는 정의 이렇게 실용적이고 진짜 삶에서 발휘 할 수 있는 정의를 말해준다.
이렇게 쉽고 재밌는 것이 정의였다니! 윤리를 배우면서도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던 정의가 한결 쉽고 재밌게 느껴졌다. 아이들에게도 이만큼의 흥미를 일으킬 수 있는 책인 것 같아 배울 점이 참 많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