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저/이선희 역
레이미 저/이연희 역
권일용 저
줄리아 쇼 저/김성훈 역
알렉스 마이클리디스 저/남명성 역
“ 괴물과 싸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괴물과 싸우는 동안 자신 역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깊은 심연을 바라보면 그 괴물 역시 당신을 바라본다 .”
개인적으로 이 문구를 참 좋아하는 편이다. 존경하는 철학자 “ 니체 ” 가 [ 선악의 저편 ] 이라는 책에서 다루었던 문구이기도 하고, 또 최애 스릴러 " 해리 보슈 시리즈 " 에서 주인공 형사 해리 보슈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읊조리는 문장이기도 하다. 범죄 영화에서 가끔, 마약범을 처단하려고 스스로 마약 소굴에 뛰어든 형사가 마약쟁이가 되기도 하고 누구보다도 근면 성실했던 경찰이 뇌물의 단맛에 길들여져 부패경찰로 전락하기도 한다. 위의 문구는 애초에 정의를 실현하고 범죄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악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강력한 경고를 내리는 문구같다.
프로파일러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형사나 탐정보다도 범인의 어두운 심연에 더 가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범죄 심리학자 이수정 교수님의 말씀처럼, 범인들의 잔혹한 범죄 행위 그리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끝없이 마주해야 하고, 인간의 어두운 면을 계속 들여다보기에 심리적으로 황폐해지기 쉬울 수 있다. 즐겨듣는 범죄 팟 캐스트의 진행을 맡고 있는 전직 프로파일러도 자신이 그만 둔 이유를 정신적인 황폐화로 돌리고 있다.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범죄와의 전쟁에서 전략가 역할을 하는 프로파일러들이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 프로파일러는 어떻게 범인의 심리를 꿰뚫어 진실을 밝힐까 ”
그렇다면 프로파일러들은 어떻게 범인의 심리를 꿰뚫어 진실을 밝힐까? 범죄 프로파일링 분야는 전문적인 분야라 이 책의 내용이 어려울 것 같았지만 저자가 의외로 영화나 드라마의 예를 들면서 쉽게 풀어주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그는 1992년 개봉한 영화 [ 양들의 침묵 ] 을 통해 [ 프로파일링이란 무엇인가? ] 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FBI 신입요원 스털링은 커다란 여자들만 골라 살해하는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서 연쇄 살인 범죄를 저지르고 수감된 한니발 렉터 박사를 면담한다. 그를 면담해서 연쇄 살인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다가 역으로 심리 프로파일링을 당하는 바람에 혼쭐나는 스털링... ... 이 장면은 진짜 압권이다.
사실 이 영화의 원작을 쓴 토머스 해리스는 직접 미국 콴티코에 있는 기지에 가서 FBI 아카데미에서 개최한 훈련과정에 참여하고 난 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는 [ 양들의 침묵 ] 에 나오는 연쇄 살인범 " 버팔로 빌 " 이라는 캐릭터는 당시 훈련 과정에서 사례로 활용된 세 사람의 진짜 살인 과정을 섞여서 재창조한 인물이라고 한다. 여자의 피부 가죽을 벗기는 것은 시체 애호가 에드 게인의 수법, 장애를 가장해 여성의 동정심을 자극한 뒤에 허점을 노려 공격하는 것은 테드 번디의 수법, 여자들을 집 안 구덩이에 가두고 대가족을 이루려던 살인마는 게리 하이드닉이라고 한다. 실제로 FBI 가 살인범 테드 번디에게서 다른 연쇄 살인범에 대한 프로파일링 조언을 받았다고 하니, [ 양들의 침묵 ] 에 나오는 한니발 렉터의 실제 인물은 테드 번디인가?
이 외에도 흥미로웠던 에피소드나 이야기를 들자면, 첫번째로
" 우리나라 과학 수사의 역사 "
우리나라에 과학 수사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지는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지만 의외로 조선 시대에도 범죄 수사가 꽤 과학적으로 이루어졌음을 가리키는 역사적 사료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독살 여부를 살피기 위해 은비녀를 죽은 사람의 입안과 식도에 밀어 멀어서 변색 여부를 살핀다거나 밥 한 숟가락을 입이나 식도에 넣어두었다가 닭에게 먹여 죽으면 독살로 판단했다고 한다.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 확증 편향에 빠진 형사와 프로파일러 "
확증편향이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 는 식이다. 어떤 용의자가 범인이라고 확신이 되면, 그 용의자가 범죄자라는 증거만 수집하게 된다는 것. 주로 형사가 많이 빠지지만 프로파일러가 그런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하나의 예로써, 그는 중학생을 꼬드겨서 성폭행을 하고는 산에 내버려두고 온 한 대학생 이야기를 한다. 그는 그 대학생이 살인범이라고 확신하여 그가 하는 말이 모두 거짓말로 들렸는데, 나중에 산에서 내려오는 중학생의 모습이 담긴 CCTV 를 보고는 강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확증편향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한다는 저자.
저자 고춘재 프로파일러는 강호순 연쇄 살인 사건, 오원춘 살인 사건과 같은 강력범죄 사건 수사에 참여해왔다고 한다. 풍부한 현장경험과 매끄러운 글쓰기 능력을 발휘하여, 저자는 [ 범죄 심리의 재구성 ] 라는 퀄리티높은 프로파일링 기본서를 작성한 듯 보인다. 프로파일러가 될 수 있는 방법이나 그들이 하는 일과 같은 기본적인 이야기부터, 프로파일러가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 이야기, 그리고 세상을 놀라게 했던 센세이셔널한 범죄들도 예를 들어주어서 더욱 더 흥미로운 책이었던 것 같다.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현직 프로파일러가 썼음에도 전혀 자극적이지 않고 '범죄' 그 자체보다는 그걸 '예방'하고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둔 내용이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구체적인 사건을 예로 들면서도 관계자의 이름이나 사건을 그대로 싣지 않고, 사건 개요만 간단하게 짚으면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히 했더라고요. 개인정보 침해나 2차 가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사건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드러낸 인터뷰나 저서도 많은데 (특히 법조계,경찰계,의료계 쪽에서 이런 케이스를 많이 봤어요) 그에 비해 사건 피해자 혹은 관계자를 꼼꼼히 신경쓴 모양새여서 마음에 들어요.
전체적으로 '이렇게 우리나라에 이렇게 잔인무도한 사건이 있었지! 이런 범죄자들!' 하고 사건을 늘어놓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모양새입니다. 이러이러한 이론이 있는데 역사는 이렇고, 현재 현장에서 활용되는 모양새는 이렇고, 관련 직종에서 일을 하고 싶다면 이러이러한 자격증을 딴 후에 이러이러한 시험을 치면 됩니다~ 하고 알려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요. 저도 쉽고 재밌게 읽었지만 앞으로 경찰 쪽에서 프로파일러로 일하고 싶은, 아직 진로가 열려있는 청소년이나 대학생들이 읽으면 엄청 도움이 될 듯 합니다!
우리나라 경찰에서 과학수사요원이 되려면 크게 두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첫 번째는 기존 경찰관들을 대상으로 하는 내부 선발과 전공 학위 및 자격으로 선발하는 경력 채용이다. 과거에는 형사 경첨이 있는 경찰관 중에서 뽑는 내부 선발 위주였으나, 범죄 수법이 발전하고 연쇄살인, 묻지마 범행 등이 늘어나면서 과학수사에 대한 전문성의 필요성이 커져 2013년 처음으로 일반 과학수사요원을 특채하기 시작해 매년 20여 명의 과학수사요원을 경력 채용하고 있다. 과학수사요원 경력 채용 제도는 법과학, 과학수사 관련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일반과학수사, 화재안전, 생체증거, 영상·광원 등 분야별로 시행되고 있다. - p.104
이런 식으로 챕터 끝마다 항상 관련된 분야와 직업은 무엇이고,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자격증이 필요하며, 사람은 몇 명 뽑고 현재는 어떤 식으로 경찰 내부에서 일하고 있다 하고 꼭 짚어줘서 막연하지 않고 굉장히 구체적인 조언이라는 느낌이에요.
제가 제일 흥미로웠던 건 '범죄예방환경설계(CPTED)'라는 개념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범죄자가 범죄 기회를 잡기 어려운 구조의 설계로,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예방한다는 것이죠. 최근 대두되고 있는 개념이라는데, 어릴 때 비슷한 사례를 보고 막연하게 생각한 적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CCTV가 없는 길목이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길목보다 당연히 범죄자 입장에서는 더 일을 저지르기 좋겠죠? 사람들의 목격이 쉽고, 도주가 어렵고, 사각이 없는.. 그런 건물을 설계한다면 그렇지 않은 건물보다 범죄발생율이 훨씬 낮아질 거라는 개념입니다. 범죄라는 게 한 번 일어나면 피해자나 그 주변의 회복이 너무 어렵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범죄를 미리 예방하는 게 범죄를 잡아내 처벌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지 싶어요. 관련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네요!
프로파일러의 눈으로 바라봄 한국의 잔혹 연쇄살인범들~ 한국 사회의 어두움~ 이런 걸 강조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그런 걸 기대하고 보시면 실망하실 거예요. 오히려 경찰이라는 조직 안에 형사와 프로파일러 외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으며, 그게 다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한 책입니다. 저는 만족, 매우 만족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