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란 저
박은지(데조로) 저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
2023년 새해를 연 책.
내 오랜 염원인 내 집 마련과 페미니즘이 결합된 책이라니.
한 해를 여는 책으로 이보다 더 어울릴 수 있을까.
에세이 서술 중 처음부터 눈에 들어왔던 단어는 '그'였다.
처음에는 무의식중에 남성 호칭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려다 보니 '언니와 함께'라는 말이 있어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와 그녀를 나누어 표현하게 된 건 일제시대의 잔재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그'를 디폴트에 두고 만들어 낸 '그녀'라는 단어를 쓰지 않은 작가였다.
p27. 아, 세상은 결혼을 욕망하지 않아도 결혼에 이르도록 만드는 함정을 곳곳에 파두었구나.
결혼과 아이가 가점이 되는 청약주택.
미혼 세대주의 낮은 대출 한도와 아파트 면적까지 제한해 놓고 비혼인의 삶의 크기를 정해둔 사회.
결혼하려는 이유가 아니라 결혼하지 않는 비혼에 대한 이유를 대야 하는 사회.
나도 불러보자. Let it 비혼 ♪
p31. 젠장, 나는 왜 마동석이 아닐까.
내가 수없이 하는 생각을 비슷한 남들도 하고 있었구나.
내가 마동석이었다면 불쾌하고 억울한 경험을 덜 할 수 있었을 거란 확신이 든다.
마동석의 근육이 있거나 아니면 그 근육을 대체할 수 있을만한 부가 있거나 했으면 확실히 삶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졌을테다.
p63. 우리는 가부장제에 편입될 임시의 삶이 아니다. 비혼도 한 가구의 가장이며, 독립적 삶을 사는 존재란 말이다.
비혼 가구도 세금을 낸다. 왜 차별을 받아야 하는가. 기혼자들의 혜택을 내놓으라는 게 아니다. 적어도 혼자 살아가겠다고 마음먹은 여성들을 '억울하면 결혼하라'는 식으로 내몰지는 말아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누군가의 물음에 왜 나는 자취해요.라고 말했을까? 작가님의 표현에 따라 어엿한 1인 2묘 가구인데. 자취라는 말은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생활한다는 뜻이다.
이것도 남자를 디폴트로 두고 만든 단어일 거란 생각이 든다. 결혼해서 부인이 지어주는 밥이 아니라는 의미의.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 흔히 자취해요.라고 이야기 한다. 학생도 아닌데..
결혼 전 혹은 학업 중일때 '임시'의 의미가 들어간 느낌이다.
그러게. 나는 평생 결혼할 생각이 없는데 그럼 나는 평생 '임시'로 '자취'를 하는 건가?
앞으로는 꼭 1인 2묘 가구라고 하자. 작가님, 좋은 표현 잘 쓰겠습니다.
p192. 온전히 독립적이면서도 때로는 함께하는 삶을 위해, 나만의 느슨한 가족을 찾아야 했다.
p238. 비혼이기 때문에 가족계획이 필요하다. 우리는 제도 밖의 새로운 가족을 꾸려야 하니까.
p239. 비혼이라고 말하는 것이, 단순히 결혼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이 아니라 하나의 연대 선언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p242. '페미니즘 세계관' 밖의 사람들
'혼자'서는 정녕 어렵단 말이냐... 살아오면서 마음 한편에서 계속해서 불편하고 불쾌했던 그것이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인식하고나서부터는 나도 이렇게 선을 긋고 살아왔다. 나와는 다른 세계관의 사람들. 내 안의 역사에 끼워넣고 싶지 않은 사람들. 하지만 국경을 나누듯 페미니즘국 안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니 좀 더 느슨하게 관계를 늘려나가는 것도 필요한 듯 싶다. 나의 필요에 의한 관계를 부자연스럽게 엮어 나가려는 것이지만 이기적이어서라기 보다는 혼자 사는 곳이 아닌 사회이기 때문에라고 생각해야겠다.
페미니즘 책들을 보면 공통 키워드로 [연대]가 눈에 띈다.
애초에 혼자 살아가는 사회였으면 페미니즘이고 뭐고 무슨 필요가 있는가. 혼자일 수가 없고 혼자 싸울 수가 없다. 무엇보다 '서로'가 있어야 도울 수 있다.
p235. 아, 나름대로 재밌게 살았는데 마지막에 좀 늦게 발견됐다고 내 삶을 한순간에 '비참한 고독사'라고 규정해 버리다니.
좀 억지스럽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냥 '늦게 발견사' 정도로 해줬으면 좋겠다.
생각하지 못했던 발상이어서 놀랐다. 나름대로 재밌게 살았고 고독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내일 당장 욕실에 갇혀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고 해서 고독사라고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안타까운 사고.정도? 고독사라고 명명된 사람들은 죽음이 발견된 상황과 정황에서 '고독'을 읽어낼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 역시 편견일까?
하지만 나의 예시에서 좀 더 생각해 보면, 나는 남들이 보기에 평범하게 직장 다니며 잘 살고 있는 사람이지만 죽음을 발견해 줄 이가 없을 정도로 실제로는 고독했다.라고 멋대로 재단해서 '고독사'라고 할 수도 있겠구나.. 그렇군. 역시 나의 편견이 맞다.
p246. 이 책에는 '얻고자 하는 자가 얻을 수 있다'는 문장이 나온다. 이 말이 허황된 자기 암시가 아니라 자기만의 방을 향한 투쟁 선언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에게는 집이 필요하니까.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수밖에.
p247. 미래의 내 집은 지금보다 조금 더 넓고, 나만의 느슨한 가족이 자주 찾는 공간이면 좋겠다.
느슨한 가족이라는 말이 위로가 되었다. 혈연이나 제도로 묶인 가족이 아니어도 느슨하게 엮인 사람들로도 괜찮은 거야.
나도 항상 내 집을 꿈꾸지만 그 꿈 뒤에 따라오는 꿈 역시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는 것이 아닌가.
앞으로 느슨하게.를 잊지말고 엮어가면 되는거야.
언젠가부터 나는 에세이 책을 읽지 않았는데
서점이 에세이 책으로 넘쳐났던 적이 있다.
죽고싶지만 떡볶이를 먹고싶어부터였나....
너도나도 자신이 비혼이라며 경험담(차별)을 책과 유튜브로 팔아대던 시절...
그들은 (반드시) 강아지가 아닌 고양이를 키웠고
비건식을 하며 세상의 제도와 고정관념에 대해 비판했는데
나는 참 그들과 결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고양이도 비건도 싫었고 소수가 되어 나는 특별해를 외치는 것이 볼썽 사납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럴수가... 저자의 유튜브를 통해 본 집은
내가 집을 산 시기와 인테리어까지 거의 흡사했고
같은 문화를 겪어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빵빵 터졌으며
게으르게 업데이트 되는 유튜브가 언제쯤 다시 업로드 될지
오매불망 기다리는 중이다.
그들과 나는 완전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성 세입자 월드의 메인 빌런은 주로 주거 환경이 열악한 곳에 출몰한다. 바퀴벌레 이야기가 아니다. '보광동 반지하' 시절, 열어 둔 창문 너머로 정체 불명의 남자가 한참이나 집 안을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심지어 나는 잠을 자느라 그 사실을 까맣게 모랐고 다음 날 옆집 아주머니를 통해 밤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되었다.
"아니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있더라고. 내가 베란다에서 전화하는 척하면서 큰 소리를 내도 꿈쩍을 안 해. 아저씨 거기서 뭐하냐고 물으니 그제야 줄행랑을 치데?" (-32-)
"위대한 업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계획, 다른 하나는 적당히 빠듯한 시간이다."
미국의 한 유명 음악가가 한 말로, 내가 좋아하는 격언이다. 큰일을 위해서는 당연히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나의 고정관념을 바꿔 주었기 때문이다. (-44-)
청소
일상이 흐트러졌을 때 가장 빨리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 50리터짜리 대형 쓰레기봉투를 준비한다. 닥치는 대로 물건들을 쓸어담아 내다 보린다. 절대 물건을 분류하거나 정리하려고 해선 안된다. 무언가에 쫒기듯 단시간에 해치울 것!(-94-)
서재를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최소한의 것들로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주방은 일자형으로 크지 않은 편이라, 물건이 넘치지 않도록 항상 신경쓰고 있다.(-140-)
비혼이라면 모든 걸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걸까?
이 세상의 비혼들은 어떻게 먹고, 어떻게 돈을 모으고, 어떻게 인간관계를 이어가는 걸까?
말 한마디도 안하고 지나가는 '무언의 날'이 점점 늘고 있었다. 이제라도 점을 이어 선으로 만들어야 할 때였다.
온전히 독립적이면서도 때로는 함께하는 삶을 위해, 나만의 느슨한 가족을 찾아 나섰다. (-187-)
'집 있는 여자는 혼자 살아도 된다'라며 나를 지지했던 엄마였다. 그런데 아빠의 돌봄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되자, 앞으로 혼자 살아갈 내가 걱정됐는지 수시로 결혼이야기를 꺼냈다. 엄마가 걱정하지 않도록 빈말이라도 할 만한데,결혼 생각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만큼 내 소신이 뚜렷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엄마가 결혼을 해서 암에 걸린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20-)
저자 김민정은 프리랜서 방송작가이다. 비혼주의자이며,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여성으로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한국 사회 특유의 남성중심주의적인 특징으로 완성된 한국적인 유교적인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30년전 여성에 대한 처우, 차별과 혐오를 본다면,지금 우리는 과거에 비해 여성의 안전을 적극책임지고 있으며, 여성에 대한 안전과 생존에 대한 책임을 사회에 묻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여성 친화적인 삶에 대해서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사회의 안전 인프라는 길을 잃어가고 있다. 저자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될 수 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익숙하지 않는 문화가 잔존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대해서, 생활 관련 문제의식을 에세이 속에 채워나가고 있었다. 여성 홀로 살아가는 집에 흘깃 보는 남성들의 시선, 단순히 호기심이나 장난으로 치부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간직하고 있는 여러가지 상황적인 모순이 존재하고 있으며, 저자 스스로 독립적이 삶을 선택하면서 ,스스로 터득한 삶의 방식이 눈에 띄고 있다.그 과정에서 암에 걸린 어머니,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불안해진 생활을 보충하지 못하는 한계들이 비혼주의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결혼하게 되는 이유가 되고 있었다.
즉 저자 스스로 비혼주의자를 선택한 이유는 나만의 시간, 나만의 집, 나만의 방을 가지기 위한 단순한 동기에서 시작한다. 직장인으로서 살아오면서, 느꼈던 것들을 보자면, 왜 우리 사회가 바뀌지 않는 근원적인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생활을 바꿔 낙다고 있으며, 인테리어 뿐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 또한 자신에게 최적화되고 있다. 불안과 불확실성을 덜어내는 삶이 ,독립ㄷ적읻 삶의 기본이었다. 부모와 자녀의 삶, 서로 동행하면서, 나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기 위해서, 필요한 의식주, 우리 사회가 바뀌어야 할 미래의 문화는 어떤 형태이어야 하는지, 우리 사회가 여성 스스로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여성으로서 , 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로서 ,무엇이 필요한지 이해하고, 내 삶에 대해서 ,하나하나 성찰하며, 같이 고민하는 것, 그 과정 속에서 나만의 삶을 터득해 나갈 수 있다.
김민정 작가님의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 리뷰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을 바탕으로 작성된 리뷰이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민감ㅎ라신분들은 주의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십년 전 자취를 처음 시작했을때 봤다면 좋을 책이에요. 실용적인 정보도 정보지만 누군가가 정서적 지지를 보내오는것 같은 온화함이 느껴지는 책입니다. 표지의 고양이도 귀엽구요 ㅎ 작가님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