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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조예은 저
2021년 11월 25일
아이와 하루 종일 지내다보면 서로 깔깔 웃고 즐겁게 보내는 시간보다 혼내는 시간이 더 많다는 걸 느낀다. 그러다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바라보듯 나의 감정과 마주하게 되는데 그 감정이 아이로 인한 것일 때보다 나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을 더 들여다보면 내 마음 속에 갖은 응석을 부리며 사랑받고 싶었던 주눅 든 소녀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소녀의 어떤 점을 인정해주고 받아주어야 잘 성장시킬 수 있을지 비로소 내 아이에게 부모다운 부모가 될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러다 「소녀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만나게 되었다. 내 소녀시절을 반추해보며 아니,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착한 여자아이’로서의 면모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나를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어렸을 때는 거침없고 기백 있고 단호하고 의견을 굽히지 않았더라도, 이 시기부터 여성으로 사는 데 필요한 보이지 않는 규칙이 내면화되면서 한 때 맹렬했던 여자아이들의 목소리가 작아지고 심지어는 없어지기도 한다. ‘착한 여자아이’ 되기의 의미를 배우는 것이다. (p20)
타고난 성정도 있겠지만 부모님이 큰 딸로서 걸었던 기대에 알게 모르게 부응하려 노력했던 것이 나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던 것 같다. 큰 딸로서 착하고 성실하고 동생들을 잘 보살피며 예의바른 아이로 자라길 원하셨던 모습 말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고 어떨 땐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임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 스스로 나를 피곤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의례적인 자기혐오의 언어’라고 부르는 팻 토크(fat-talk)를 통해 그동안 나를 스스로 깎아내리면서 남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결국은 나를 모욕하는 것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나의 몸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디어나 매스컴에 나오는 몸매에 기준을 맞추어 얘기했던 것을 아직 몸에 대한 생각이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이 듣고 보았을 텐데 걱정이다. 이것에 대해선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이라 새롭게 배웠고 지금부터라도 팻 토크를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반성했다.
자신감을 키우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을 하나 꼽는다면 실패가 아니라 바로 ‘하지 않는 것’이다. (p182)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실패할 일도 없다. 그래서 시시할 정도로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적당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얘기한다. 나도 출산 후 유연성이 떨어진 몸을 회복하고자 운동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아직 스트레칭 정도에 불과하지만 매일 요가하기를 실천하고 있다. 이제는 좋은 습관이 되어 꾸준하게 작은 성취를 맛보고 있다.
좌절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바꾸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기존에 지녔던 마음의 습관을 버려야 한다. 너무 쉽게 미끄러져 들어서곤 했던 자기 비난의 길에서 스스로 나와야 한다. (p193)
처음 좌절을 겪었을 때는 세상이 다 무너져 내리고, 그 세상에 있던 나도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울면서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던 그 때를 떠올리면 가여워져 등을 토닥여주고 싶다. 그러면서 앞으로 또 좌절은 무수히 겪게 될 테니 너무 슬퍼할 필요 없다고 얘기해주면 눈물이 쏙 들어가고 대신 등골이 오싹해지려나. 몇 번의 좌절을 겪고 난 뒤에는 나를 비난하며 시간 낭비하느니 빨리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는 넘어져도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안다. 우리가 하는 성공이나 실패보다 우리 자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p239)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나 자신에게 가혹했다. 여기서 제시하는 자기 자비의 세 단계처럼 나의 생각이나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친절한 말 해주는 것,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을 어렵게 여겼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그토록 불친절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지 못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냥 나 자체로 충분하다고 내 안의 소녀를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나를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주위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소녀였던 나에게 엄마가 얘기해주듯, 같은 여자로서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책에 나와 있다. 나에게 딸은 없지만 아들들에게 얘기해줄 수 있는 것들도 있고 훗날 주변의 소녀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총 10개의 챕터. 좋은 구절이 너무 많아 뽑아 소개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였다.
'너 그대로는 안 돼'라는 말과 함께 책을 시작한다. 소녀가 가장 처음 마주하는 큰 목표일 대학 입학까지의 경쟁으로 시작해서, SNS와 소녀들의 이야기, 살, 자기 의심, 강박적 고민, 자기 비난, 스트레스와 관련된 소녀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뿐만 아니라 그 후에는 소녀들에게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려주며, 딸을 가진 어머니께 하는 이야기까지.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세심하게 딸들이 타인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고민들을 하나하나 짚어준다.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닐까' 했던 고민들을 '너만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줌과 동시에 너만 힘든게 아니라는 메시지 대신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고 공감해준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이론만을 설명했다면 자칫 지루해질 수 있었겠지만,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조금 더 공감할 수 있게 서술해나간다. 또한, 여성들의 성향으로 인한 상황부터, 사회가 만든 여성들에 대한 틀, 그 속에서 불안과 버거움을 느낄 딸들의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모든 상황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있겠지만, 하나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책을 일부분만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그렇게 스스로를 검열하며 살아야하며,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살기보다는 누군가가 정해준 틀에 맞추어 살아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우리는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타인을 부러워하며 스스로는 돌보지 못할까. 이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 이제는 바뀔 시간이다. 당신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다. 당신이 이상한 것이 아니다. 당신이 이 책과 함께 자신만의 삶을 찾아나갈 수 있길 바란다.
“우리 문화의 해로운 메시지들 때문에 여자아이들이 스스로를 탓하는 것을 듣고 있기란 참으로 우울한 일이다.”
레이철 시먼스, 『소녀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p. 271
이 책의 저자는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소녀들의 심리학』, 『딸 심리학』을 쓴 저자이기도 하며, 미국 바사 대학에서 여성학과 정치학을 전공하였고 20여 년간 청년기 여성을 연구하신 분이다. 이 책에서는 그 20년 동안 저자가 만났던 여성 청소년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으며, 그들이 또 예전과 다른 오늘날의 여자아이들이 얼마나 걱정스러운 삶을 살아가는지, 그 현상과 원인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책에서 오늘날의 여자아이들을 일컬어 '딸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저자는 이들을 걱정스러운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고, 이들을 돕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이 책을 쓴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오늘날을 대표하는 여자아이들은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오늘날 성취를 위해 달리는 여자아이들과 젊은 여성들 중에는 자기 비난과 실패할 거라는 두려움에 정신없이 쫓기는 경우가 너무 많다. 성적표나 자기소개서에선 특별하고 뛰어나지만 실제로는 불안과 버거움을 품고 사는 여성들의 세대를 우리는 기르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자기가 충분히 똑똑하거나 성공하거나 예쁘지 못할 거라고, 충분히 날씬하지도 사랑받지도 재치 있지도 섹시하지도 못할 거라는 기분을 느끼며 사는 여자아이들을 말이다. 이들은 아무리 많은 것을 해내도 자기 그대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 (_p.12)
오늘날의 여자아이들이 이렇게 걱정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체 뭐가 문제일까?
우리 사회가 여자아이들을 대하는 사고방식을 보면 참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걸 느낀다. 우선은 아주 대표적인 것들로 이런 것이 있다. 여자아이들은 이래야 한다는 사고방식. 착해야 하고, 뚱뚱해서는 안되고 예쁜 외모까지 갖춰야 한다. 게다가 또 어떤가? 자신의 성공을 향해 노력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 과정에서 숨을 막히게 하는 경쟁 속에서도 시기, 질투나 부러움 같은 것들을 겉으로 드러내서는 안된다고 배운다. 그리고 또 성적 접촉, 훅업(hook up)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문란해서는 안 되고, 심지어 쿨하면 좋다는 것을 요구받기까지 한다. 이러한 것들은 책에도 많이 표현되어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대목을 읽고 공감하고, 곱씹어 보면서 참으로 열받는 사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에서는 미국 사회를 대표적으로 얘기한 것이지만, 현재 한국도 해당되는 현실의 모습이라고 본다.
“우리 사회는 성공에 관한 해로운 정의를 여자아이들에게 계속해서 던지고, 여자아이들을 속에서부터 좀먹는 스트레스라는 전염병이 퍼지고 있다.”
레이철 시먼스, p. 12
오늘날 젊은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남성들의 일이라 여겨진 직업과 학업 면에서 많은 것을 이루었을지 몰라도, 자존감과 자신감은 낮았으며 행복하거나 힘든 일에 빨리 회복하지도 않았다. 과거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 이유를 한 개인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 지나치게 많이 주어지거나, 한 사람에게 요구되는 역할들이 서로 상충되는 것으로 보았다. 즉, 똑똑하고 착하고 예쁘고 날씬해야 하는 것에 더해 대인관계도 좋아야 하고, 운동도 잘하고 모든 것을 해내는 '슈퍼 휴먼'에 대한 압박 스트레스 때문에 힘든 것이다. 예민한 시기인 성장기에 교실이 아닌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또래나 대중매체와 같은 비공식적 교육의 영향도 큰 몫을 할 것이다.
“여자아이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성공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기대하는 성공 추구의 '방식'이다. 그들이 마땅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규칙들, 성취와 좌절 속에서 스스로를 평가하는 시각, 그 결과 생겨나는 습관과 가치관이 문제다.”
레이철 시먼스, p. 34
저자가 이야기하는 여자아이들이 겪는 혼란스러운 난관들은 다음과 같다. '대학 보내기 공장' 시스템, 소셜 미디어, 살(외모), 자기 의심, 생각, 자기 비난, EP(effortless perfection), 진로, 부모, 대학 이후의 삶. 책에서 이 10개의 주요 단어들은 저자가 각 챕터로 나뉘어서 각 챕터의 초반에서 이야기하고 있고, 딸을 가지고 있는 부모들이라면 깊이 고민해 봐야 하고 바꿔 나가야 할 것들을 각 챕터의 중후반부에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하는 조언들은 비단 딸을 둔 부모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라 생각한다. 자기 비난 대신 자기 자비를 하는 것, 가면 현상을 고백하는 것, 강박적 고민에서 벗어나는 것, 성장형 사고방식을 갖는 것 등등은 대학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에게도 던지는 메시지일 수 있다.
저자는 부모들에게 조언을 건네면서 딸이 변화해 나가야 할 점들을 같이 이야기해보고 고민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부모부터 시각과 생각을 변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자아이들만 힘든 것이 아니라 양육자 또한 자신의 책임을 의심하기 쉽고 자신감 또한 낮아졌다고 한다. 더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해 자녀의 발달을 통제하려 하지 말고 어찌할 수 없는 부분들은 받아들이기를 연습하라고 충고한다. 저자가 말하는 '대학 보내기 공장' 시스템에 강제로 들어가기를 준비하는 시기에 실제로 부모와 내면의 깊숙한 것들을 꺼내 이야기할 시간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10대의 끝을 지나고 보면 그 시기가 얼마나 건강한 생각을 가져야 하는 중요한 시기인지 안다. 청년기의 여성들이 건강한 습관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교육자, 양육자라면 한 번 읽어보고 고민해 보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