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세계를 모험하다
스테파노 만쿠소/임화연
더숲/ 2020.11.30.
우리가 식물에 대해 아는 것은 매우 적으며 그것도 몇몇은 잘못된 정보다. 우리는 식물이 움직일 수 없다고 단정한다. 물론 한 세대에서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번식을 통해 점차 확산되어 가기 때문에 <식물, 세계를 여행하다>에서는 여행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식물의 여행이 어떻게 가능한지 호기심을 자극하며 하나씩 예를 들어 설명한다. 저자 스테파노 만쿠소는 세계적인 식물학자로 피렌체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국제식물신경생물학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국제 학술지에 300편 이상의 과학논문을 기고하며 연구활동을 꾸준히 이어 가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매혹하는 식물의 뇌>, <식물을 미치도록 사랑한 남자들>, <식물혁명>, <식물, 국가를 선언하다> 등이 있다.
<식물, 세계를 여행하다>에는 ‘식물은 이동하지 못한다’는 우리의 예상을 뒤엎듯 식물의 여행 이야기를 역사적 사건들과 함께 소개한다. 우리는 식물이 주변 환경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식물은 동물보다 더 민감하게 주변 환경을 인식한다. 나아가 식물의 세상은 철저한 사회적 유기체다. 이런 이야기들을 ‘개척자이자 전투원이자 생존자인 식물들, 도망자들, 새로운 영토를 정복하다, 바다를 누빈 용감한 선장들, 시간을 여행하는 나무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나무들의 생존법, 6장 멸종 동물에게 생존을 맡긴 시대 착오자들’ 등 6개의 주제로 나누어 설명한다.
“체르노빌 출입통제 구역에서 일어난 일은 믿기지 않을 정도다. 아무것도 살 수 없을 것으로 여겨졌던 이 공간은 오늘날 구소련에서 가장 다양한 생물 서식지중 하나가 되었다.(p.33)” 방사능에도 불구하고, 동식물은 과거보다 개체수가 증가하고 품종도 훨씬 다양해졌다. 오늘날 제한구역에서 살쾡이, 라쿤, 노루, 늑대, 프셰발스키 말, 여러 종의 새, 무스, 붉은 여우, 오소리, 족제비, 토끼, 다람쥐뿐만 아니라 1세기가 넘도록 멸종되었던 큰곰까지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식물의 가장 놀라운 능력중 하나는 방사성 핵종을 흡수하여 환경에서 오염을 제거하는 능력으로 알려져 있다. 오염물질 제거 속도는 더딜지라도, 이 기술은 방사성 핵종에 오염된 토지에서 오염을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다.
“흥미롭게도 재래종과는 별개로, 오늘날 우리가 자생식물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많은 식물이 알고 보면 종종 아주 먼 곳에서 건너왔다.(p.54)” 침입 식물이 되는 자격 조건은 다양하다. 씨앗을 다량 분산할 수 있는 능력, 매우 빠른 성장 속도, 환경 조건에 따라서 다양한 생태형을 만들어내는 능력, 복합적인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 인간과 제휴할 수 있는 능력 등이다. 전반적으로 종을 효율적이고 유연하며 저항력 있게 만드는 특징들이다. 새로운 환경에 놓일 때마다 상활별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은 자격 조건 중 지능이라고 설명한다.
수크렁은 1미터가 조금 넘는 키의 여러해살이풀로, 세타케움이라는 이름에서 보여지듯 줄기 끝이 아름답고 부드러운 깃털 같은 이삭이 달린다. 깃털은 처음에는 진한 분홍색을 띠다가 무르익는 동안 색이 옅어지며 다양한 분홍빛 색조로 변하면서 섬세한 색의 향연을 펼친다. 길쭉한 수크렁은 세계 50여 개 나라에 관상용으로 재배될 정도로,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은 종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수크렁은 사하라 남쪽 아프리카 출신으로서 자신의 고향과 기후 조건이 딱 맞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 자신의 영역을 넓혀갈 수 있다.(p.64)” 수크렁의 씨앗은 기적을 일으킨다. 휴면 없이 최적의 조건에서는 즉시 발아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조건이 여의치 않으면 6년 동안 땅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종자 생산량이 많고 자람, 물, 동물, 인간, 탈것, 특히 차량 등의 운반체들 덕분에 종자의 자연 산포가 가능했다. 도로와 그 도로를 통과하는 교통수단 덕분에 사실상 수크렁은 세계 여러 나라를 정복한 것이다.
서부 인도양 아프리카 섬나라 세이셀의 쿠리우스와 프라슬린 단 두 섬의 척박한 땅에서만 분포하는 ‘코코 드 매르만’이라는 야자는 “자연에서 가장 큰 42킬로그램짜리 야생열매와 단일 종자로 최대 17킬로그램이나 되는 가장 무거운 씨앗을 생산하고, 최대 4미터짜리 떡잎과 가장 큰 암꽃을 가지고 있다.(p.103)” 척박한 땅에 사는 이 야자 잎에 떨어지는 비는 떡잎을 통해 식물의 아래로 향한다. 나무의 잎을 따라 흐르는 빗물은 동물 배설물, 꽃가루, 죽은 식물 물질 등 잎에 존재하는 모든 잉여 영양분을 줄기의 가장 아래쪽으로 운반하면서 인산염과 질산염으로 토양을 비옥하게 해준다. 따라서 그 식물 주변의 흙에는 인과 질소가 확실히 더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손이 생존을 보장받는 가장 유리한 전략은 씨앗이 어미나무에 최대한 가까이 떨어지는 것이다. 다른 식물에서 일어나는 일과는 정반대다. 결과적으로 어린나무는 부모의 나뭇잎 그늘 아래에서 성장하는 데 적응해 매우 울창한 숲이 형성되었는데 그들의 그늘에 적응하지 못한 다른 식물 종들은 곧장 추방되었다.
예루살렘에서 남동쪽으로 약 100킬로미터 떨어진 유대 사막의 동쪽이자 사해 계곡의 서쪽 끝에 있는 벼랑에 난공불락의 ‘마사다 요새(궁전)’에서 1965년에 발굴 된 대추야자 씨는 2000년 만에 싹을 틔웠다. “서력기원 초기에 팔레스타인에서는 대추야자 재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수확한 대추야자 열매는 주로 말려서 식용하는데, 건조 후에도 좋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다. 유대의 대추야자 열매는 유대지방 전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 중 하나였다.(p.131)” 이 열매는 맛있는 풍미 외에도 항생제와 항불안제 같은 약재로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그러나 고대에 이처럼 유명했던 이 야자가 이제는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적어도 1100년경까지는 광범위하게 퍼져 존재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이 언제 사라졌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대추야자의 실종의 가장 유력한 원인은 1000년을 기점으로 이 지역을 괴롭힌 기후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11세기에 실제로 그 지역의 기후는 혹독하게 춥고 다습해지기 시작하다 17세기 무렵 정점을 찍었다. 뒤이어 심한 더위와 가뭄이 한 세기 더 이어졌다. 이러한 기후변화는 온도나 배수 및 강수 분포에 변화를 주었다. 이로 인해 대추야자와 같이 물뿐만 아니라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예민한 작물들은 돌이키기 힘든 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한다.
극한 기후의 챔피언으로 소개 되고 있는 바레인의 생명나무는 바레인 본섬의 사막 한가운데 모래 언덕에 있는 키 약 10미터의 나무다. “바레인의 생명나무가 염분이 많고 덥고 건조한 기후의 멕시코 및 남아메리카 출신인 프로소피스 즐리플로라(콩과식물)임을 알고 있다. 뜨거운 열을 아주 효과적으로 발산하고 수분 증발을 최대한 줄이도록 구성된 작은 잎사귀와 믿기 힘든 깊이까지 뻗어 내리는 곧은 뿌리, 대개 흙 속에서 독립적인 생화를 하는 질소 고정 박테리아의 일부가 뿌리와 공생 관계를 맺으며 질소를 고정시키는 능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염분도가 놓는 물에서 비틸 수 있는 고유한 능력 덕분에 이 나무는 식물로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조건에서 생존하도록 창조되었다.(p.168)” 그렇게 염분도가 높은 물일지라도, 그것을 뿌리가 사막의 지하 깊은 곳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물이었다. 생명나무는 이렇게 불리한 환경에서도 500년 동안이나 살아남았다.
“오늘날 미국에는 아보카도 열매를 통째로 삼킬 수 있는 초식동물은 존재하지 않지만, 1만 3천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동물들이 엄청나게 많았다.(p.187)” 그 중에는 4개의 엄니가 있는 코끼리류 곰포테레, 3미터 길이의 아르마딜로인 글립토돈, 마지막으로 현생 코끼리 크기인 메가테리움 같은 거대한 땅늘보가 있었다. 이들이 멸종되자 아보카도는 재규어의 도움을 받았다. 아보카드의 지방질 과육에 매료된 이 육식동물의 이빨은 먹잇감을 잡아 찢는 용도여서 아보카도의 귀중한 씨앗 손상을 막기에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었다. 그 후로 인간에 의해 널리 퍼져나갔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인간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악마와의 거래를 의미한다. 조만간 영혼을 내놓게 될 것이다.(p.188)” 실제로 아보가도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 모든 불행의 시작은 언제나 그랬듯 거대한 씨앗에서 출발한다. 아보카도역시 시장의 구미에 맞게 씨없는 열매로 전략할 지경에 이르렀다. 세계에서 생산된 씨없는 바나나의 99퍼센트는 캐번디시 품종에서 나온다. 최근 새로운 곰팡이 변종이 발견되었는데 캐번디시 바나나 품종은 이에 속수무책인 것으로 밝혀졌다. 유전적 균일성으로 인해 실제로 전 세계 캐번디시 바나나 품종 전체가 위협받고 있다.
“인류의 활동은 인류세가 지구의 여섯 번째 대멸종으로 언급될 정도로 우려되는 종 멸종률의 가속화, 오염률의 기하급수적 증가 등 지구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유감스럽게도 인류의 활동이 지구 환경을 악화 시킨다는 사실은 분명하다.(p.156)” 뉴질랜드 모리셔스의 날지 못하는 비둘기목의 우람한 새인 ‘도도새’가 멸종 된 것처럼 수많은 식물과 동물이 인간에 의해 멸종 되었다. 멸종의 원인으로는 첫째 1만 년 전 농업이 태동하던 시기로, 농업활동에 쓸 경작지를 얻기 위해 인간은 삼림 벌채를 해야 했다. 둘째, 16세기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그에 따른 식물, 동물, 상품, 질병이 뒤섞인 대항해시댜다. 셋째, 산업혁명과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로 이어진 18세기 후반이다. 넷째, 제2차 대전 후 원자력 시대라고 진단한다. 아름다운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환경보전에 앞장서야 함을 새삼 느낀다. 이처럼 이 책은 식물의 보호가 곧 인류의 생존을 위한 일이라고 강조 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설명하는 식물의 그림이나 사진이 제시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도를 나뭇잎으로 표현하여 이해가 어렵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식물의 특성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는 책이라 생각 되었다.
한 해 겨울을 보내고, 새 해 봄을 맞이하는 그 시간의 놀라움은 해마다 새롭다.
계절이 변했음은 느껴지는 공기의 따사로움이 제일 먼저이고,
그 다음에 눈으로 보여지는 산과 나무의 연둣빛 새순이다.
내가 먼저 보는 것은 땅이자 흙이다.
들꽃과 풀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내가 밟고 다니는 흙이 제일 궁금하다.
어떤 꽃이 봄을 알리러 땅을 뚫고 새초롬하게 나올까?
겨울의 추위로 언 땅을 뚫고 나온다는 것은 아주 아주 큰 일이니까.
더 신기한 것은 들꽃과 풀꽃은 누가 심지도 않았는데 싹 틔워 꽃이 핀다.
그것도 같은 자리에 해마다 다른 꽃들이 핀다는거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오묘함!
그 오묘함에 매번 내 눈은 풀꽃 들꽃에게 경이로운 인사를 건넨다.
살아 피어서 예쁘고 대견하구나! 근데 너희들은 어디서 왔니?
이 궁금증은 책 「식물, 세계를 모험하다」읽으면 자연스레 이해된다.
풀 한 포기 나기 힘든 건조한 사막에서도, 추위를 넘어 극한의 동토에서, 화산 폭발한 곳에서도,
심지어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에서도 살아남은 식물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한다.
상상할 수 없는 곳에서 살아남아 싹을 틔운다는 것은 정말 보통의 일은 아니다.
모든 호흡있는 생명들은 홀로 살아 남을 수도, 피어날 수도 없다.
공생할 수 있는 매개체가 꼭 필요하다. 대자연의 룰이기도 한 듯.
바람과 물, 공기는 가장 기본적인 식물 이동의 매개체라 할 수 있다.
식물을 섭취하는 동물들은 가장 손쉽게 땅에 씨앗을 퍼트리는 매개체이지만
시간이 지나 자연의 상황이 바뀌면 멸종될 우려도 있기에
씨앗이 싹을 틔울 수 있는 확률은 떨어진다.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모르는 식물들은 살아남은 곳의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오래전부터 그 땅에서 산 것처럼 토착화 되거나, 다른 종으로 탈바꿈하거나, 적응하지 못해 죽는다.
환경에 도태되지않고 살아남는게 중요하다.
개척자이면서 전투원이고, 도망자들이면서 정복자들인 식물은 그렇게 시간을 거슬러 살아남았다.
식물들 중 나무는 가장 돋보인다. 풀꽃 들꽃 모두가 소중한 존재들이지만.
어쩌면 나무들이 인간의 굴곡진 역사를 잘 대변해주지 않을까?
인간의 흥망성쇠 순간마다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까.
뀌도 미나 디 쏘스피로가 쓴 <나무회상록/2001년>이 생각났다.
인간과 자연의 위대한 스승, 주목(朱木)의 불굴의 생명력과 지혜에 대해 쓴 책이자,
식물학을 아주 멋진 기획과 상상력으로 뽑아낸 걸작이다. 흥미롭게 재밌게 읽은 책이었다.
지브리사에서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마루 밑 아리에티/2010년>도 덩달아 생각났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 각종 식물들로 푸르름이 화면에 꽉 찼다. 웅장한 자연과 대비되는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10cm 소인 소녀 아리에티 이야기는 마음 깊이 짠하다.
자연(동/식물)과 인간의 공생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른다.
"종의 생존은 아주 예민한 문제다. 인류의 활동과 관련된 환경의 변화는
과거에 그랬듯이 앞으로도 훨씬 더 많이 다수의 유기 생명체에게 유해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식물이 자랄 수 없는 환경이면 머지않아 인류도 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자연에서 동/식물, 인간은 유기적인 관계로 맺어져있으니까.
식물의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연의 도움도 필요하겠지만, 인위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지구온난화와 환경 오염, 삼림의 훼손 등 자연이 어떻게 변할지 가늠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모든 생명있는 유기체는 당연 보호되어야 하고, 멸종 위기의 식물들에 대한 대비책도 세워야 할 듯 싶다.
지금은 어떤 분야에서든 장기적인 플랜이 필요할 때이다.
세계 곳곳을 누비는 식물은 아주 똘똘하고 독창적이고 혁신적이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식물의 열일하기는 오늘도 계속 진행중이다.
그래서 놀랍고 또 놀랍다!
들꽃과 풀꽃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평소 식물에 특별한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동성이 전혀 없는 물체를 대표하는 식물의 모험이라는 제목이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책의 제목이 뜻하는 ‘모험’은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식물의 ‘확산’이다. 저자는 식물의 확산 경로, 생존 방법 등을 6장에 걸쳐 소개한다.
1장 ‘개척자이자 전투원이자 생존자인 식물’에선 화산 폭발로 새로 생긴 섬을 개척한 식물 (섬의 첫 이주 식물), 구소련 시절 원전 사고 후 방치된 체르노빌에서 태어나 방사능 핵종과 전투중인 식물들, 히로시마 원폭을 겪고 살아남은 바퀴벌레 마냥 징그럽게 오래도 사는 나무에 대한 이야기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저자는 뭔가 감동을 주려고 했지만 나한테는 전혀 공감되지 않았다.
2장 ‘도망자들, 새로운 영토를 정복하다’는 엄연히 침입식물이지만 우리가 자생식물 혹은 토착식물로 오해하는 종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자생식물로서 한 식물학자에 의해 영국으로 왔다가 영국 전역으로 퍼진 세네시오 스쿠알리더스, 아프리카의 자생식물이었지만 동물사료로서의 가능성을 이유로 이탈리아 시칠리아로 건너온 수크령, 아름다운 꽃 덕분에 전세계로 퍼졌지만 유해식물로 전락한 부레옥잠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3장 ‘바다를 누빈 용감한 선장들’은 바다를 통해 대륙을 이동했을 것이라 추청 되는 코코넛 야자와 칼리피제야자의 항해에 관한 이야기다. 야자열매가 해수에서도 꽤 오랜 시간을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요즘에는 상식의 영역이지만, 그렇지 못했던 시절에 해당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진행된 실험들이 소개된다.
4장 ‘시간을 여행하는 나무들’과 5장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나무들의 생존법’은 척박한 환경을 견뎌온 식물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4장에서 소개된 나무들은 씨앗 상태로 인고의 세월을 보낸 후 싹을 틔운 나무들에 관한 이야기고 5장은 척박한 환경에서 홀로 살아남은 나무들의 이야기다. 여기서 말하는 인고의 세월을 겪은 씨앗이란 200년을 창고에 방치됐던 레우코스페르뭄 코노카르포덴드론, 이스라엘 마사다 유적지에서 발견된 2000년된 대추나무 씨앗, 시베리아 영구 동토층에서 발견된 3만9천년된 실레네 스테노필라이다. 이 씨앗들은 모두 발화에 성공한다. 5장은 무인도와 사막에서 홀로 자란 나무들의 이야기인데, 나무들의 경이로운 생명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시들이다.
6장 ‘멸종 동물에게 생존을 맡긴 시대착오자들’은 특정 동물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통해 번식을 이어가던 식물들이 특정 동물의 멸종과 함께 사라진 사례들을 소개한다. 아무 먼 과거 아메리카 대륙에 살았던 거대 초식동물들과 그들과 공생했던 식물들의 이야기, 전설로 남겨진 모리셔스 섬의 도도새와 그들과 공생관계에 있던 식물들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이 책은 마치 잘 만들어진 자연 다큐멘터리 한편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우리와 식물의 밀접한 관계를 상기시켜 주었으며, 멸종 동물과 함께 세상에서 사라질 뻔 했지만 우리의 식탁에 오름으로서 위기를 탈출한 일부 식물들이 개량 과정에서 씨앗을 잃고 종의 다양성을 잃으면서 처한 위기는 환경 보호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줬다.
견고하게 제작된 양장 커버에 근래에 보기 힘든 컬러 삽화가 삽입된 좋은 책이지만, 삽화가 너무 부족하다. 너무 긴 이름을 가져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는지 감도 오지 않는 식물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삽화가 없어서 휴대폰과 컴퓨터를 옆에 끼고 찾아보면서 봐야했다는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