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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4월 12일
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이은선
아르떼
영화와 요리가 만드는 연결의 순간들
영화전문지 <스크린>, <무비워크>, 중앙일보의 취재 기자를 거쳐 지금은 프리랜서 영화 전문기자로 활동하는 이은선 작가님의 영화와 음식이 함께하는 순간을 담은 영화같은 이야기.
우연히 도서관에서 만나게 된 책.
신간으로 나왔을 때 어떤책일까 궁금했었는데 내 눈앞에 나타나다니.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으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는 눈물이 울컥 나와버렸다.
슬프거나 애잔한 이야기는 사실 없는데 요즘 나의 마음이 그런 듯 하다.
영화를 잘 보는 편이 아니라, 내가 공감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글이 아닌것이 뿐. 영화속에서 수많은 질문과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꽤나 벅차오른다.
기자 활동을 하면서 많이 봤을 영화이지만, 영화 속 음식에도 등장하는 이유와 인물의 마음이 존재한다고 작가님은 전한다. 영화속에 나오는 음식이 전하려는 메세지는 정말 무궁무진할 것이다. 어떤 사연이 존재하고 그 음식을 생각하며 내 삶을 마주해본다.
힘들었을 때 먹었던 음식,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먹었던 음식을 떠올리면서 영화를 보다보면 어느새 위안이 되고 제목처럼 내가 착해지는 기분이 들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여러 영화들이 너무 좋았다. 작가님의 이야기와 어울어져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아 재독하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영화 <와일드> 의지했던 엄마가 돌아가시고 홀로 살아가는 셰릴은 다시 일어나기로 한다.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미국 서부를 종단하는 트레킹을 하면서 수많은 고비들을 만나게 된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도 있었을테지만 하나씩 이겨내가는 과정속에서 ‘잘 살아줘서 다행이다.’ 라고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휴대용 버너에 맞지 않는 가스를 가져온 덕분에 조리를 할 수 없어 죽처럼 데워 먹으려 했던 오트밀은 물에 말아 씹어 먹어야 하는 매일들. 포기하지 않고 잘 이겨내준 셰릴을 보면서 작가님도 나도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맛없는 식은 죽을 먹는다면 삶을 이겨내기 위해 긴 여정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온 셰리를 떠올리고 싶다.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셰릴이 먹던 차가운 죽이 생각난다. 동시에 내가 마주한 이 상황에서 벗어나 누리게 될 따뜻하고 간편하고 즉각적인 안락 역시 떠올린다. 그럴 때 차가운 죽을 기악하며 상황을 극복한다는 멋있는 얘기를 하면 좋겠지만, 아직까지는 일시적인 안온함에 지는 경우가 더 많다. ‘내가 그렇지 뭐’ 라며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절망과 극복 방법과 속도가 있다. 우리가 당장 차가운 죽만 먹으며 고행길을 걸을 수 없지만, 그 길을 걸었던 이들로부터 언젠가 힘이 될 좋은 자극을 받을 수는 있다. 이정도로만 마무리해도 나쁠 것은 없다. p. 54~55
작가님의 인생 영화를 꼽자면 <에드 우드>
흥행작 하나 없는 영화일지라도 진정으로 영화를 사랑하고 주변인들을 사랑하는 영화속 에드 우드 감독의 모습을 보며 작가님은 이 영화를 꺼내본다고 전한다.
우리는 과정들보다 결과만을 바라보며 달려오고 살아오고 있다. 그걸 알면서도 무엇이 나를 살게 하는 것인지는 잊어버린 채 나의 만족보다 타인의 만족과 기대로 삶을 버티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포기는 쉽다. 그렇지만 영화 속 에드 우드 감독은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에 읽는 나도 감동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왜 인생영화인지 나도 꼭 이 영화를 보고 느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세상의 모든 결과물은 애정과 열정과 선한 의도에 비례해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가 기억해주는 위대한 작업을 할 때보다 그렇게 될 리 없는 시시한 작업을 할 때가 더 많다. <에드 우드>에는 그런 모두를 위로하는 마음이 있다. 지치지 않고 무언가를 한다는 것. 그 꾸준한 마음이 실은 가장 대단한 것임을 말하는 목소리가 있다. p. 133~134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것은 바로 영화인 듯 하다. 어떤 메세지를 전해줄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작가님의 생각과 기자활동을 하면서 경험했던 이야기들이 어울어져 근사한 맛집 영화들을 만났다.
마치 영화라는 장르와 인생이야기가 이어져내려가는 흐름이 나에게도 이어지는 듯 하다.
다 읽고나서도 아른아른하다. 영화속 등장인물과 삶을 통해 나를 투영해볼 수 있기 때문인지 조금더 자신감을 갖고 나를 더 사랑해주겠다고 다짐해본다.
책 제목처럼 착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 뿐만 아니라, 더 살아가고 싶은 기분이 드는 책이었다. :)
‘언택트’ 라는 기묘한 단어가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사이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행복, 그러니까 아끼는 사람들과 모여 따뜻한 식사를 함께하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건 최대의 사치로 느껴졌다.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긍정은 멀리 달아났고, 냉소는 가까이에 있었다. P. 65
사람이 자기 자신을 하찮게 느끼게 되는 건 사소한 순간들이 쌓여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돌봄에 있어 대충은 안 된다. 취향 때문에 작은 음식을 선호할 순 있어도, 누군가가 ‘차가운 국을 내놔도 언제나 불평 없는 사람’으로 나를 대하게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자존감을 지키는 비결은 결국 아주 사소한 선택들이 만들어낸다고 나는 믿는다. P.206~207
무대를 사랑하던 재능 많은 소녀의 꿈이 폭압적인 시스템에 저당잡힌 채 쓸쓸하게 빛을 잃어간 시간들도 잊지 못할 것이다. 자신을 기억해달라는 주디의 당부에 미래의 사람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를 잊지 않는 것뿐이다.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서 눈 돌리지 않기로. 옳지 못한 일에 함께 분노하고, 언제라도 따뜻한 달걀 오믈렛과 케이크를 주저 없이 먼저 내밀기로 결심해볼 뿐. P.226
매일 쇼윈도를 통해 이상하리만치 가게 안을 노려보기만 했던 어느 중년 여성도 드디어 입장하고, 사치에와 친구들은 비로소 그의 비밀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된다. 누군가의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를 청할 때는 나보다 상대의 기준을 먼저 파악해야 하는 법이다. 사치에가 계속해서 오니기리만 만들었다면, 이 정갈한 식당의 운명은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p.233
불행하게도 세상의 모든 배움이 온전히 내 것이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P.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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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남이 해준 음식을 그저 먹기만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먹고 싶은 음식을 직접 만들어봐야 흡족하고 나아가 그 음식을 남에게 먹일 때 비로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착해지는 기분이 들어>를 쓴 이은선 작가는 후자다. 그의 본업은 영화 전문기자인데, 영화에 음식이 나오면 전보다 더 집중하게 되고, 그 음식이 먹고 싶어지면 어떻게든 먹어야 직성이 풀리고, 집에서 직접 그 음식을 만들어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초대해 대접하기도 한다고. (이런 사람이 가까운 지인이면 너무 좋겠다 ㅎㅎ)
책에는 저자가 사랑하는 음식에 관한 영화, 영화 속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줄리 앤 줄리아>, <바베트의 만찬>, <리틀 포레스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다> 등 음식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영화들은 물론이고, <무뢰한>, <봄날은 간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등 음식에 관한 영화는 아니지만 음식이 영화 속 인물들의 관계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소재로 쓰인 작품들을 다수 소개한다.
프리랜서로서 팬데믹 시기를 보내며 경험한 정신적인 불안과 위기, 신입 기자 시절 인터뷰를 하면서 겪은 어려움, 고인이 된 친구 박지선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낸 글도 있다. 이 책을 통해 좋은 영화, 맛있는 음식, 그리고 마음이 따뜻한, 좋아하는 대상에 정성을 다하는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