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 저는 아무도 아닙니다." (62p)
이 사람들, 외로운 걸까. (112p)
젊은작가상에서 '음복'으로 강화길 작가님 작품을 처음 접하고 반한 나머지 그녀의 책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중 <다정한 유전>을 통해서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단 구성과 편집이 좋았다. 책이 작고 글씨가 커서 책장 넘기는 맛이 있었다. 휴대용으로 적합했고 부담없이 읽히는 길이였다. 그와중에 강화길 작가님은 문학소녀들을 앞에 깔아주고는 이후 병원으로 장소를 옮겨가 소름끼치도록 불편한 지점을 파고드는 냉철한 시각으로 스릴러적인 요소를 가감없이 쏟아냈다.
다 읽은 후에는 강화길님의 신작을 기다리게 되었다.
공사다망한 달이라 독서라도 마음 가볍고 즐겁게 하자하여
5월 독서모임 선정도서는 각자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에서 고르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책은 ‘2020년 제 11회 젊은 작가상’으로 이름이 익숙한 강화길 작가의
<다정한 유전>이다.
손안의 작은 책이라 부담 없이 골랐는데
가벼운 크기와 무게와 달리 심오한 세계를 담고 있어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등장인물과 줄거리가 이어지지 않아 책 읽는 초반에는 이름과 특징들을 적어가며 읽었으나
소녀들의 이야기와 그 소녀들이 써내는 글이 교차하는 콜라주 형태의 소설이라는 걸 깨닫고 메모들 그만두었다.
복잡한 마음으로 세상을 견디는 여자들,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더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산골 소녀들이 써낸 이야기
자라는 동안 깨지고 망가지고 불안하고 아파하는 이야기들
서로에게 ‘너무나 내 것이라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마음’의 기록들이다.
그들이 겪은 다채로운 일들, 아픔과 치유를 통해 성장하는 소녀들의 이야기는
그녀들만의 것이 아닌 나의 세계와 연결되었다 것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싶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살피느라 누군가를 돌보기 어렵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타인과 세상의 고통을 함께 경험한다.
나의 고통뿐 아니라 타인의 고통도 아프게 앓는다.
작가는 어린 소녀들을 통해 이 ‘공교롭게도 그렇게 연결되어 있는 우리의 삶’이
결국 서로를 보듬는다는 것을 다정하게 말해주고 있다.
소녀들이 쓴 소설 속에서 한 친구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
기분, 수치심, 모멸감, 행복, 거듭해서 기억하고 싶은 일, 잊지 않고 싶은 일을 기록한다.
자신만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맡겨두지 않고 스스로 간직하는 방식으로
‘견딜 만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방식을 배운 또 한 친구도 글을 쓰게 된다.
그렇게 이들은 서로를 읽고, 서로를 쓴다.
본래적인 제한, 공공연한 폭력의 고통을 함께 경험한 소녀-친구들의 이야기는
“서로를 미워하면서 사랑”하는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을 깨닫게 한다.
상대를 향한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은
곧 이해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세파에도 인간을 견디게 하는 마음의 큰 기운인 ‘다정’을 나누게 한다.
오디오북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된 이후 배우 이유영 씨의 목소리가 담긴 오디오북도 꼭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바로 강화길 작가의 다정한 유전 오디오북 출간 소식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구매하게 된 강화길 작가의 다정한 유전. 이 책을 읽고 보니 짧은 분량 안에서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다는 점이 오히려 패착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처음 민영과 진영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읽고 있는 이야기가 누구의 이야기인지 헷갈리기 시작하면서 앞부분만 몇 번이고 다시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기 위하여 이 책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보던 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 글을 작성하기 전 기준으로 다정한 유전에 대한 서평이 무려 70건이 넘음에도 불구하고 구매자 리뷰가 단 한 건도 없다는 점이 무척이나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짧은 분량의 글을 참 오래 읽었다. 몇 페이지 안 되니 쉽게 페이지가 넘어갈 거로 생각했던 자만을 잠시 미뤄두고 반성하며 읽었음에도, 다 읽었음에도 정리가 안 되는 머리 속을 간단평으로 대신해야 한다는 게 마냥 아쉽다. 상대가 강화길이었음을 생각 못한 거지. (이제까지 강화길의 글을 완독한 적이 없다. 절반 이상 넘어간 적도 없다. 그래서 언제나 강화길의 글을 완독하는 게 소설 읽기의 한 목표가 되어버렸다. 한 번쯤은 완독하고 느껴봐야 작가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어찌 되었든, 짧은 글이지만 이 책을 읽고 생각한 것은, 내가 이제껏 강화길의 소설을 완독하지 못해서 짜증스러웠는데, 그냥 나와 쉽게 맞지 않은 작가라고 해야할 듯하다. 글이 나빠서가 아니라, 뭐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저 나와 조금 맞지 않아서 선뜻 완독에 다다를 수 없었다고 말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저자의 책 한 권 끝까지 완독하는 순간을 다시 만나고 싶은 바람이 있다.
기억에 남는 건, 벗어나고 싶은 시골 마을의 소녀들이다. 그 소녀들이 마을을 벗어나려고 애쓰면서 노력했던 건 글을 쓰는 거였다. 어쩌면 글을 쓰는 건 마음을 위로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소녀들이 택한 방식은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시골 마을을 벗어나고, 힘든 부모의 고통을 줄여주려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녀들 스스로의 삶을 이루려는 목표이기도 하고... 교차로 들려오는 소녀들의 목소리에는 아픔과 상처, 고통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면서도 나아가려고 했다. 서로 경쟁하면서, 노력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는 결말은 아니었지만, 현실의 불안과 고통을 벗어나려고 애쓰는 모습에 간절함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