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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개의 폭력

여섯 개의 폭력

: 학교폭력 피해와 그 흔적의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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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5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232g | 128*188*11mm
ISBN13 9788967358990
ISBN10 8967358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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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MD 한마디

기억을 지워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기억은 아무리 덮어둬도 일상에서 불쑥거리며 튀어나온다. 학교폭력을 겪은 여섯 명의 필자, 그중 다섯은 살아남아 어른이 되었지만 한 명은 영영 10대인 채 남았다. 여기 10년, 20년, 30년이 지나도 괴로운 기억을 꺼내놓는다. - 에세이 MD 김주리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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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개의 폭력』에는 소설보다 더 날것의 사건, 이름을 내 건 내 옆의 동료가 겪은 일이라서 더 눈을 크게 뜨고 읽어야 할 ‘붕괴의 서사’가 담겨 있다.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하고 ‘무사히’ 어른이 된 여섯 사람이 썼다. 아직 학교에 남아 있는 어린 자신에게 용기 있게 다가가 스스로 취재한 내용이기에 ‘복구의 서사’이기도 하다. 이은혜, 황예솔, 조희정, 이모르, 김효진은 당사자이고, 임지영은 유가족이다.
--- p.5

“이게 얼마만이야? 보고 싶었는데…… 은혜야, 우리 아빠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엄마는 집에 돌아왔고. 그동안 많이 힘들었는데 우리 이제 다시 만나자.” K 특유의 친근감과 비굴함을 반반 섞은 얼굴은 여전했다. 그가 상대를 옭아매는 화법도 변함없었다. 동정심을 살 만한 불행한 일을 몇 가지 나열했고, 구걸하듯 상대방의 나약한 마음을 헤집었다. K의 몸과 마음은 불행의 요소들이 똬리를 튼 집약소 같았다. 그건 한 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고, 옆에 있던 나는 한 아이의 심신 속에서 소화되지 못한 불행들을 받아내는 쓰레받기가 되어 있었다.
--- p.15

음악 수업이 끝나고 그 애는 내게 화장실에 같이 가자고 했다. 그동안 혼자 화장실에 가는 것이 싫어 하루 종일 오줌을 참아왔기에, 화장실 같이 가자는 말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 애를 따라 화장실에 갔더니 같은 칸에 들어가자고 했다. 조금 이상한 제안이었으나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문을 닫자마자 그 애가 벽으로 나를 밀쳤다. 위압적으로 변한 그 애는 내가 음악 시간에 노래를 부르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위축된 나는 미안하다고 했고 의기양양해진 그 애는 다음부터 노래를 크게 부르라며 자신이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 p.40

오늘은 12월 19일, 그 녀석들은 저에게 라디오를 들게 해서 무릎을 꿇리고 벌을 세웠어요. 그리고 5시 20분쯤 그 녀석들은 저를 피아노 의자에 엎드려놓고 손을 봉쇄한 다음 무차별적으로 저를 구타했어요. 또 제 몸에 칼등을 새기려고 했을 때 실패하자 제 오른쪽 팔에 불을 붙이려고 했어요. 그리고 할머니 칠순 잔치 사진을 보고 우리 가족들을 욕했어요. 저는 참아보려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걔들이 나가고 난 뒤, 저는 제 자신이 비통했어요.
--- p.59

그 시절 나는 가정폭력을 겪었기에 엄마의 폭력이 드리우지 않은 학교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이름 대신 ‘레드삭스’ ‘대근이 동생’으로 불리며 신체적·언어적 폭력을 당했고, 내 쉴 곳인 학교마저 박탈당했다. 어린 내게 세상의 대부분이었던 집과 학교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된 폭력은 지옥 같은 나날을 안겨주었다.
--- p.113

‘그들은 왜 하필 나를 괴롭히기로 했을까? 만약 두꺼비가 싸우라고 겁박했던 체구가 비슷한 친구와의 싸움에서 내가 이겼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그 전에 두꺼비가 처음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을 때 잘 거절했다면, 싸워보라는 겁박도 안 하지 않았을까? 그 전에 내가 애초에 그림 실력이 없었더라면 두꺼비는 내게 관심을 안 두지 않았을까? 그 전에 중학교 입학하는 날 내게 친한 친구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그 전에 내가 자존감이 조금만 높았더라면, 그 전에 우리 부모가 부부싸움만 하지 않았더라면, 그 전에 아버지가 도박만 하지 않았더라면, 그 전에 IMF가 터지지 않았더라면, 그 전에…… 그 전에…… 그 전에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 p.160

본격적인 학교폭력에 노출된 것은 중학교에 들어가서였다. 사실 이때의 기억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거의 30여 년 만에 기억의 바다에서 건져올리는 것이다. 자크 데리다는 역사란 ‘기억과 망각 사이의 투쟁’이라고 말했는데 집단이 아닌 개인은 상처 앞에서 기억보다는 망각을 선택하기가 쉽다. 나 또한 그 모든 기억을 부둥켜안고서 견디고 싶지는 않았다. 망각은 손쉬운 방법이다. 아니 그래야만 나는 살아갈 수 있었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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