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하나도 우습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예술에 대한 이야기, 삶의 흐름이 통째로 바뀌어버린 순간의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애를 쓰면서, 나는 2021년, 그러니까 팬데믹 이후를 논해야만 하는 아주 절박한 순간의 대화가 기록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기 때문에. 매우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인 혹은 윤리적인 접근을 시도해야만 하는 대화가 갖는 다층적인 면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진실할 수 있는 순간이 그다지 없다는 것을 경험상 잘 알고 있었다. 절박함이 만들어낸 공기는 그렇게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에게 스며들었다.
--- p.5, 「프롤로그 - 내가 언제까지 인터뷰를 할 수 있을까」 중에서
Q 언제부터 그런 윤리와 가치를 이야기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셨던 건가요?
A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은 들었던 것 같아요. 글을 시작할 때, 작품을 쓰기 시작할 때, 저는 예술가로서 제가 가지고 있는 어떤 미적 가치관 같은 것을 사람들한테 전달하고 싶다는 충동보다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한테 빛을 쬐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사람들을 기록해주고 싶었던 거예요.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글 쓰는 능력이라면 그 능력으로 빛을 쬐어야 하는 인물들을 기록해서 많은 사람들한테 알리고 싶다는 충동. 여기에 좀 더 가까웠던 것 같아요.
--- p.65, 「예술가의 열정 - 05 : 소설가ㆍ김금희 “빛을 쬐어야 하는 인물들의 삶을 기록하는 거예요.”」 중에서
Q 거기에 팬데믹 사태 때문에 불가항력적인 일도 생겼고요. 공연이 중단된 상태라 마음이 어떠실지 걱정을 많이 했어요.
A 당장 공연이 중단된 것에 대해서는 공연계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많이 힘드시니까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평소에 뉴스를 많이 보는데,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역사적으로 전염병이 창궐하고 난 뒤에 늘 급격한 발전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죠. 이렇게 팬데믹 사태 이후로 우리 공연계가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한 생각은 좀 많아졌어요. 그럼 나는 어떤 식으로, 연기를 해나가면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나. 하물며 지금 공연이라는 것 자체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미 극장 안에 카메라만 놓고 다양한 방법으로 바깥에 공개되는 공연들도 생기기 시작했고요. 참 모르겠어요, 지금은. 뭐가 어떻게 될지.
--- p.78, 「예술가의 열정 - 06 : 배우ㆍ고상호 “공연은 살아 있는 생물이에요.”」 중에서
Q 힙합 음악에서의 예술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A 사실 음악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는 결국 모두 같은데요. 그래도 힙합만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자면, 제 기준에서 가사는 확실히 중요해요. 거기서 오는 감동과 희열을 찾는 걸 즐기는 음악가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건 제 개인적인 의견이고, 힙합도 결국에는 음악이라는 거대한 덩어리 중 한 부분이기 때문에 가사만 좋아도 안 되고 비트만 좋다고 해도 안 돼요. 랩 음악가는 랩 안에 뭔가 알맹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전체적으로 잘 만들어져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으로 승화되는 거겠죠. 정말 두루뭉술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지만, 힙합이든 어떤 장르든 음악이 주는 감동은 들으면서 사람들이 ‘오, 좋다’ 하는 순간에 발현되는 것 같아요.
--- p.143, 「예술가의 열정 - 11 : 음악가ㆍ넉살 “개인적인 걸 모두가 느낄 수 있게, 모두가 느끼는 걸 지극히 개인적이게.”」 중에서
Q 저는 단언해요. 아이돌도 예술가들이에요.
A 그렇게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누가 봐도 유명한 사람들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 빛을 못 봤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 자신감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일하다 보면 항상 결과를 보면서 주눅 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저도 이걸 오랜 시간이 걸려서 알게 됐지만, 그때 스트레스도 참 많이 받고 힘들어하면서 깨우친 것 같아요. 좋은 결과를 바라고 하는 게 아니라,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거. 그게 중요하다는 거요. 다른 아이돌분들도 이 점을 다들 알고 계셨으면 좋겠어요. 모르고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서 너무 속상하죠.
--- p.231, 「예술가의 통찰 - 18 : 음악가ㆍ위키미키 최유정 “좋은 것만 보려고 해요. 내가 숨 쉴 수 있도록.”」 중에서
Q 시인은 특이하고 난해한 이야기를 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A 뭐 그럴 게 있나요. 사실 돈이 없으면 못 쓰거든요? 목구멍이 포도청이 되면 어떻게든 글을 쓰고 있어요. 그래서 매번 라디오도 나가고 그러는 거죠. 그리고 저는 매주 로또를 사거든요. 연금 복권이나. 혹시 이게 당첨되면 일을 좀 줄이고 글 쓰는 시간을 늘릴 수 있으니까. 제가 한번은 방송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문자로 “시인이 무슨 로또 이야기를 하느냐” 그러시더라고요. 또 한번은 아나운서분이 노벨 문학상과 로또 1등 중에 뭘 하고 싶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래서 당연히 로또 1등이라고, 왜냐하면 저는 노벨 문학상 상금이 한 3억밖에 안 되는 줄 알고. (웃음) 어우, 제가 생각한 것보다 상금이 많더라고요. 그러면 노벨 문학상 받아야죠. 부가 수입도 있을 테니까. 돈, 상금이라는 건 시를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도구예요. 이런 이야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 p.242, 「예술가의 통찰 - 19 : 시인ㆍ황인찬 “안 그러면 삶에 시가 잡아먹히니까.”」 중에서
Q 뮤지컬 공연에서 가장 예술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A 질문이 참 어려운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평범함이 특별함으로 다가가는 순간. 사실 이런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예술가들의 능력이죠. (찻잔을 가리키며) 이렇게 아주 평범한 걸 보더라도 특별하고 의미 있는 존재로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게 예술가의 역할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림을 그리든, 노래를 만들든, 글을 쓰든 뭐든지. 물론 우리에게는 작품을 만들고 전달하는 게 노동의 현장이기는 해요. 하지만 관객 누구에게는 오늘 이 순간이 굉장히 특별하게 다가갈 수 있는 거잖아요. 그게 바로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한순간이라도, 한 장면이라도 특별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그게 결국 예술인 거예요. 저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는걸요?
--- p.336-337, 「예술가의 통찰 - 26 : 음악감독ㆍ김문정 “예술가들은 평범함이 특별함으로 다가가는 순간을 만들어내요.”」 중에서
Q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 사람들이 더 좋아지셨나요, 아니면 싫어지셨나요?
A 더 좋아졌어요. 더, 더, 좋아졌어요. 사람들이 비슷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여도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에 황홀했어요. 그중에는 저도 포함된 거잖아요. 저뿐만 아니라 제 옆에 있는 모두가, 그리고 제가 알지도 못하는 지구 반대편의 그 누군가도. 사람이 자기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 아니에요?
하나씩 다 반짝거리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그걸 누군가는 저처럼 글로 쓰고, 누군가는 그림으로 그리고, 누군가는 음악으로 만들죠.
--- p.347, 「에필로그 - 대중문화 전문 저널리스트ㆍ박희아 “사람이 점점 더 좋아져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