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본주의와 욕망
- 풍요속의 빈곤
대학이 현대인의 자본주의 생활양식을 놓칠 리 없습니다. 출제 문제가 너무 많아 그 목록만 소개한다 하더라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뿌리는 이렇습니다. 시작은 고전 읽기 돌풍을 일으킨, 서울대 1997학년도 정시논술 문제가 열었습니다. 어른을 위한 동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통해 이러한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인간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현대인의 삶에 대한 성찰을 요구합니다.
“그래, 완전한 곳은 절대로 없다니까.”
여우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여우는 자기 이야기로 말머리를 돌렸다.
“내 생활은 늘 똑같애. 나는 닭을 잡고, 사람들은 나를 잡는데, 사실 닭들은 모두 비슷비슷하고, 사람들도 모두 비슷비슷해. 그래서 나는 좀 따분하단 말이야. 그렇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내 생활은 달라질 거야. 난 보통 발소리하고 다른 발소리를 알게 될 거야. 보통 발자국 소리가 나면 나는 굴속으로 숨지만 네 발자국 소리는 음악 소리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 서울대학교 1997학년도 정시 논술
이 제시문은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인간관계를 동화책처럼 정말 쉽게 전달하고 있지만, 그 의미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2. 자본주의 구조와 개인의 실존’에서 상세히 논의키로 하고, 여기에서는 자본주의 소비 구조를 분석, 문제를 제기하는 단계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외부에서 조달받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식물은 햇볕과 토양의 자양분을, 초식동물은 물과 초목을, 그리고 육식동물은 다른 초식동물을 취합니다. 이를 본능에 따른 욕구라고 이름 짓겠습니다. 극히 일부 생명체를 제외하면, 욕구를 채운 만족 상태에서는 일시나마 휴식을 취합니다. 일단 배부른 사자는 초원에 초식동물이 널브러져 있어도, 사냥에 나서지 않고 잠시 평화로운 초원을 유지합니다. 여분의 고기를 저장할 냉장고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인간에게는 욕구에 욕망이라는 소비기제가 더해지게 됩니다. 이는 자신의 처지가 유난히 풍요롭다고 해서 멈추지 않습니다. 풍요로울수록 오히려 결핍이 강해지는 모순적인 속성마저 지니고 있습니다. 욕구와 욕망은 이렇게 비유될 수 있습니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는 것은 욕구를 채우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햇살 가득한 남도 들녘에서 자란 유기농 쌀’로 밥을 짓고 싶은 마음, 이것은 욕망이 될 것이고, 이는 채워질 수 없는 연쇄 고리를 이루면서 행복과 불행을 끊임없이 교차시킵니다. 이른바 풍요속의 결핍이 생기는 것입니다. 대량생산과 소비를 주도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이러한 욕망에 기름을 붓고, 불길을 연일 당기게 됩니다. 이제 계급의 문제는, 물리적 힘에서 재화의 소비라는 경제 영역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서면, 신은 자신의 자리를 인간의 피조물인 물질, 요즘으로 치면 ‘명품’에게 내주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신에 대한 경건성이 물질에 대한 숭배로 바뀌는 것이지요. 이른바 ‘물신화(物神化)’라는 화두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중략)
9. 평등한 문화 교류는 가능할까?
- 샐러드 볼과 용광로
“베트남 엄마를 두었지만 당신처럼 이 아이는 한국인입니다.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고 세종대왕을 존경하고 독도를 우리 땅이라 생각합니다. 축구를 보면서 대한민국을 외칩니다. 20살이 넘으면 군대를 갈 것이고 세금을 내고 투표를 할 것입니다. … 당신처럼.”
- 동국대학교 2015학년도 수시 논술
문화상대주의는 지구촌 시대에 세계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각 문화는 그 나라나 공동체가 처한 독특한 환경과 역사적·사회적 상황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사회의 환경과 맥락을 고려하여 문화를 판단하는 것으로, 어떤 문화요인도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다는 시각이지요 (네이버 두산 백과). 이를 정면으로 거부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현실을 돌아보면 문화상대주의가 이렇게 ‘고상하게’ 전개되지는 않습니다. 마치 “모든 사람은 평등한 인권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말이 지닌 공허함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문화는 끊임없는 접촉과 교류, 그리고 상호 작용을 통해 창조되고 변형됩니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났을 경우, 결코 평등한 관계만을 전제로 교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국가나 집단 간 힘의 우열 여부, 그리고 주류와 비주류, 다수와 소수집단이라는 현실이 맞물리게 되지요. 인간은 타자가 지닌 ‘힘의 강약’에 따라 그 관계를 설정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한류 열풍’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은연중 우리 민족문화의 우수성이라는 근거 없는 논리로 손쉽게 비약하고는 합니다. 이것이 살짝 지나치면 자기 민족의 모든 것이 타민족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타 문화를 배척하는 자민족이나 자문화 중심주의로 흘러가지요. 흔히 ‘국뽕’이라고 하는데요. 입으로는 다양한 문화를 상대 문화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자고 외치면서도, 언젠가 한국에 불어올 ‘방글라데시 열풍’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내심 비웃기 마련입니다. (중략)
20. 기술과 사회적 욕구
- 닭이 먼저인가, 계란이 먼저인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2006년 ‘올해의 인물’로 ‘당신’을 뜻하는 ‘YOU’를 선정하였다. 타임지는 언론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시민들이 ‘유튜브(U-tube)’와 같은 영상 파일 공유 사이트, ‘마이스페이스(Myspace)’와 같은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아무런 대가 없이 정보를 제공하여 세상을 변화시켰다며, 이 모든 사람들을 ‘YOU’로 지칭하여 ‘올해의 인물’이라고 밝혔다.
- 성신여자대학교 2014학년도 수시 논술, 고등학교 ‘사회’, 비상교육
“기술이 사회를 결정하는가, 사회가 기술을 만들어 내는가?”
어떤 관점에서 타임이 선정한 ‘YOU’를 설명할 수 있을까요. 마치 “닭과 계란 중 무엇이 먼저인가?”처럼 맞물리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하지만 어떤 관점을 취하느냐에 따라 기술과 사회 변동의 주체를 보는 시각이 갈라지고, 미래 사회 전망도 달라집니다.
정보기술(IT)의 급속한 발달은 이제 디지털 혁명으로 불립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지배하기까지 10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지하철에서 책 보는 승객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요.
정보기술이 삶의 방식은 물론 정치, 경제, 문화 등에 깊숙이 침투해서 우리 사회 곳곳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기술이 사회를 결정한다”는 시각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기술 자체가 스스로 지닌 자율성과 효율성에 따라서 부단히 자기 발전을 거듭하고, 그것이 개인의 의식과 사회 구조를 변모시킨다는 것이지요. 이때 기술은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는 자발적 동인(動因)으로 파악됩니다. 실제로 인터넷, 스마트폰 시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의 정치적 참여 방식이나, 경제 활동의 양상, 그리고 언론 환경 등은 급속하게 변했고, 그 방향성의 열쇠를 결국 기술이 가지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YOU’를 만들어 내는 주체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개발된 정보기술이 됩니다. 시공을 뛰어넘는 효율성을 지닌 정보기술이 개발, 보급되면서 사람들의 의사소통 방식이 확장되었고, 사람들은 이러한 기술 발전 경로를 열심히 따라가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YOU’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중략)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