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사소통 능력과 표현 교육
1.1. 표현 교육에 대한 관점
사람은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를 통하여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한다. 말하기와 쓰기를 통하여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고, 듣기와 읽기를 통하여 다른 사람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한다.
그런데 의사소통의 과정에서 이러한 표현 기능과 이해 기능은 밀접하게 상호 관련되어 있다. 우선 언어수행에서 이해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표현 활동에 지장을 초래하여 성공적인 의사소통에 이르지 못하게 되며, 상대방의 의사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의 의사만을 전달한다면 의미 있는 의사소통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표현 활동 역시 상대방의 이해 활동을 전제로 하되 명확하고 분명하게 수행해야만 의사소통의 성공에 이를 수 있으며, 명확한 표현 능력은 화자와 청자 간 또는 필자와 독자 간의 상호적인 의사소통 능력을 확보하는 데에 기반이 된다.
외국어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자신의 생각을 성공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볼 때, 학습자로 하여금 표현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공적인 표현 능력을 갖추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로 나누어 접근이 가능하다. 우선 표현 능력이 문법, 음운, 어휘의 체계적 기반에서 나오는 점진적인 발달로 보는 의견과 표현 기술은 문법적 능력이 아닌 언어 접촉의 환경에서 실제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발달되는 것으로 보는 의견으로 구분될 수 있다. 하지만 두 견해는 상반되게 나뉘기보다는 상호보충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어서 효과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하는 역량을 기르기 위해서는 두 견해 모두 중요하다. 전자는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라고 할 수 있는 언어의 단위, 범주, 문법 기능 등을 인지하고 이들에 관한 규칙을 내재화하는 훈련을 하는 기능 습득의 과정이며, 후자는 내재화된 규칙에 의해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표현하고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며 상호 의사소통을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기능 사용의 과정이므로 이들 모두는 학습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1.2. 의사소통 능력과 표현 능력
Chomsky에 의해 인간은 보편문법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언어의 생득성 가설이 널리 알려졌다. Chomsky에 따르면, 언어 습득은 새로운 문장을 무수히 산출할 수 있게 하는데 이 능력은 생득적이고 추상적인 언어 능력이라고 규정하고, 구체적인 언어 수행의 배후에 언어 능력이 규제하고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70년대 초반에 사회언어학이라는 실용적인 학문이 주류를 형성하면서 Hymes에 의해 언어 능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의사소통 능력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Hymes는 진정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언어 능력’을 넘어서 내용을 해석하고 전달하며 상호 협의할 수 있는 ‘의사소통 능력’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의사소통 능력을 인간이 특정 상황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해석하며 인간 상호 간에 의미를 타협하게 해 주는 능력이라고 보았다. 이후 이러한 사회언어학적 접근은 언어 교육 및 언어 습득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후, 촘스키 학파에서는 ‘언어 학습’을 인간의 성장 과정상에서 일정 시기가 지나고 나서 두뇌의 다른 부분에서 발달을 겪는 연역적 모형으로 설명한다. 즉 규칙을 제시하고 사고의 시간을 거친 뒤 학습자가 스스로 의사소통을 위한 표현을 구사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관점은 외국어 교육에서는 학습자의 연령, 외국어 습득 단계, 학습자의 모국어와 해당 외국어와의 계통적 관계 등을 고려한 학습자 중심의 교수법들이 나오게 되는 바탕이 된다.
사회언어학적 관점의 의사소통 능력을 제2언어 학습과 관련하여 규정한 것은 Canale & Swain(1980)에서 이루어졌다. 의사소통 능력을 아래의 네 가지로 구분하였고 이러한 구분은 언어 교육에서 널리 인용된다.
-문법적 능력(grammatical competence)
-사회언어적 능력(sociolinguistic competence)
-담화 능력(discourse competence)
-전략적 능력(strategic competence)
문법적 능력이란 어휘와 문법에 관한 능력을 말한다. 문법 규칙이나 형태, 구문, 철자, 구두점 등의 사용 능력을 말하며 기존의 언어 능력과 유사하다.
사회언어학적 능력이란 사회적 맥락에 맞게 의사소통을 진행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데, 언어가 사용되는 사회 문화적 규칙에 대한 지식으로 필자나 화자가 의사소통의 목적이나 주제, 독자나 청자에 따라 표현을 달리할 수 있는 능력을 포괄한다. 사회언어학적 능력을 갖추려면 언어 사용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상호 작용의 문화에 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해당 상황에 가능한 다양한 표현들 중에서 한국 문화의 관습에 비추어 어떤 것이 가장 적합한 것인지를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상황에 따른 격식적 혹은 비격식적 표현, 친근하거나 공손한 표현, 직접적 혹은 간접적인 표현 등을 익혀서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담화적 능력이란 의사소통이 전체 담화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파악하는 능력을 말한다. 지시어와 생략, 반복 표현의 삭제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대화나 글을 응결성 있고 일관성 있게 구성하는 능력을 일컬으며, 문장 사이의 상호관계와 연관된 능력을 말한다. 담화를 이어가는 형태적인 응집성과 의미적인 긴밀성 유지하고, 주제(화제)에 맞게 일관된 내용으로 담화를 지속하고, 자신의 생각을 예시, 이유, 가정 등의 방법을 활용하여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담화적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아울러 대화 원리를 이해하여 적절하게 화제를 유지하거나 바꾸고, 상대를 고려하면서 적절한 시간에 대화에 끼어들거나 적절하게 순서를 교대하는 능력도 갖추어야 한다.
전략적 능력이란 언어 수행상의 변인이나 불완전한 언어 능력 때문에 의사소통이 중단되는 경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적, 비언어적 의사소통 전략을 의미한다. 얼굴 표정, 몸짓, 발화 속도, 강세 등을 조절하고, 언어가 막혔을 때 몸짓언어로 의사를 전달하는 등의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하며, 주저함이나, 번복, 시간 끌기, 강조하기, 모르는 표현을 돌려 말하기 등의 다양한 언어적 책략도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어떤 사람이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하면 한국어의 문법을 알고 이를 적절히 사용할 줄 알며, 한국 사회 속에서 통용되는 표현을 이해하고 이를 목적이나 상황에 맞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어떠한 문제에 부딪히게 될 경우 이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Widdowson(1984)는 ‘의사소통으로서의 언어’를 가르칠 것을 강조하면서, 언어 교육에서는 목표어에 대한 지식과 기술과 전략을 사용하여 해당 언어를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효과적이고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언어의 기능을 강조하였다. Bachman(1990)은 Canale & Swain 모델의 의사소통 능력 대신 의사소통 언어 능력을 제안하면서 인지적 언어 습득을 강조한 언어 지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언어 교육에서의 의사소통으로서의 언어 지식과 사용 기술은 두 측면 모두 중요한 요소로 강조되어 왔다.
상호 작용의 성공은 대면하고 있는 화자와 청자(혹은 필자와 독자)가 상대방에게 적절하게 반응하면서 상대와의 관계를 유지하거나 자신이 의도하는 생각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전개시킬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이러한 효율성은 흔히 관례적인 언어 형식과 상호 교섭적 기술로 얻어진다. 상황별로 관례적으로 사용되는 상투 표현에 대한 이해는 다양한 상황에서 이미 준비된 언어로 손쉽게 소통하게 한다. 예를 들면, 전화 대화나 회의 등의 대화 상황이나 특정 장르에 고정적으로 관례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을 익히는 것은 효율적 소통에 유용하며, 상호 교섭적 기술 역시 다양한 의사소통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표현의 의미를 점검하거나 표현을 바꾸는 능력, 실수나 오류를 수정하거나 교정하는 능력 등이 이러한 기술에 포함될 수 있다. 학습자들은 이러한 표현들을 기억하고 사용하는 기술을 수행해가면서 상호 작용 기술을 습득하고 발전시키게 된다.
말하기와 쓰기에서 요구되는 기술은 서로 다르다. 우선, 대면 상황에서의 말하기에서는 어떤 상황에서 전형적으로 쓰이는 언어 형식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목표어 화자들의 전형적인 대화 방식이나 표현 등을 하나의 패턴으로 저장하면 말하기가 더욱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방과 서로를 이해하고 조정하는 교섭적 행위도 매우 중요하다. 공적인 만남이나 토론, 비격식적 대화 등에서 효율적 상호 작용을 하는 언어 기술을 익혀야 한다. 이러한 말하기 기술은 결코 언어적 정확성의 기술만으로는 습득될 수 없으며 다양한 상황 문맥에서 반복적으로 연습되는 과정 속에서 축적된다.
완성된 표현으로서의 쓰기는 문자 언어의 표현 기능으로 맞춤법 지식과 어휘 지식, 구문 지식을 갖추어야 하며, 나아가 목표 언어와 문화에 관한 지식 등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쓰기에서는 완성에 초점을 두어 오류나 부정확성을 용납하지 않으므로, 글자에서 문장에 이르기까지 정확성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이에 쓰기 능력은 지속적인 학습과 훈련을 필요로 하며, 다른 언어 능력을 포괄하는 가장 상위의 능력이라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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