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에 2년간 열정을 바쳤지만, 결국 또 지치고 말았다. 직장을 그만뒀을 때는 다시 오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별했을 때도, 다시 만나자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독서모임은? 내가 그만두면 2년의 흔적도 모두 사라져버릴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 혼자 운영해왔고, 나 혼자 발버둥 쳤다. 그래서 모임을 하고 사람 속에 있어도 늘 힘들고 외로웠다. 그게 너무 화가 나고 서러웠다. 2년을 했는데 사람을 만들지 못했다. 그런 자괴감이 나를 힘들게 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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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책으로 친구가 되었다. 책을 추천하고 그 책을 사보고, 또 서로 빌려주고. 책이 우리 삶 속에 순환되고 있었다. 책으로 놀고, 책으로 이야기하고, 책 덕분에 살아갈 용기를 얻고, 책 덕분에 삶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는 사람도 생겼다. 책으로 치유 받고, 책으로 성찰하고, 책으로 생의 목표를 다시 찾는 사람들. 인생의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을 책 덕분에 드디어 얻은 것이다.
--- p.34
모임 이외의 만남을 거의 가지지 않다보니 어떤 때는 회원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가족 관계도 모를 때가 많다. 그러나 한 번도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나는 그의 나이는 모르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윤대녕이란 건 안다. 나는 그의 직업을 모르지만, 그가 SF소설을 즐겨 읽고 가끔 공모전에 도전한다는 건 안다.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건 그가 여자(또는 남자)라는 것 밖에 없지만, 그가 독서모임을 정말 사랑한다는 건 안다. 그거면 되지 않을까?
--- p.42
내가 만나본 책방지기들은 저마다의 존중과 소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어떤 이는 “동네에 책방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하고 심드렁하게 말한다. 또 “책을 팔기보다 사람들이 모이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라고 당차게 말하기도 한다. 또 다른 이는 “내가 좋아하는 걸 함께 좋아하고 싶어요.”라고 수줍게 고백하기도 한다. 책과 사람에 대한 존중, 생에 대한 소명으로 오늘도 그들은 좋은 책을 찾고, 빚을 내어 책을 들여 놓고, 그 책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견디는 한 책방은 한때 유행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 p.106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배우는 게 아닌, 행복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해서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현상은 긍정적이다. 그래야 배움이 놀이가 될 수 있고, 삶을 더 윤기 나게 만들 수 있다. 읽기나 쓰기가 부담스럽다면 먼저 그림을 함께 그려보는 건 어떨까? 읽기와 쓰기에 지친 독서모임에게도 생기를 더해주는 시간이 될 것이다.
--- p.133
나는 아이를 데려온 부모님께 늘 똑같은 말씀을 드린다. “저는 책을 좋아하게도, 글쓰기를 즐기게도 만들 수 없습니다. 다만 이게 그렇게 끔찍한 일은 아니고, 언제라도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정도로 느끼게 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감상문 한 편 정도는 부담 없이, 잘 쓰든 못 쓰든 쓸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게 제 교육 목표입니다.”
--- p.181
오랜 고민 끝에 나만의 교육철학을 하나를 만들었다. 바로 ‘사적 기능보다 공적 기능을 먼저 발달시켜주자’라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적 기능이라는 건, 개인의 능력이다. 공부를 잘하는 것, 악기를 잘 연주하는 것, 운동 능력이 뛰어난 것 등이 이에 속한다. 이러한 기능을 발달시키려는 이유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다. 내가 잘 살기 위해 키워야 할 능력이다. 공적 기능이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규칙을 지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 상황에 적절한 말과 행동을 사용하는 것 등이다. 이런 능력은 나와 남이 함께 잘 살기 위해 키워야 할 능력이다.
--- p.200
책방을 열기 전부터 나는 동네 책방에서 책을 사는 건 일종의 기부 행위라고 생각했다.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면 마일리지도 쌓을 수 있고, 예쁜 굿즈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다. 그러나 동네 책방을 이용하는 건 다른 의미다. 이 자리에 계속 있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을 산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책을 사는 사람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동네 책방을 운영하는 책방지기들이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좋아하는 책을 마음 푹 놓고 들여놓고 손님을 기다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 p.247
따뜻하고 돌봐주고 싶은 존재가 생기면서 나는 회복되어 갔다. 그즈음 독서모임을 만들었고, 새로 일도 시작했다. 고양이 정도는 책임질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굳게 먹을 수 있었다. 룬 덕분에 수시로 흐려져만 갔던 내가 뚜렷해졌다. 고양이쌤이라는 아이디도 정당해졌다. 나는 자랑스러운 고양이 집사가 되었기에.
--- p.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