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웃음도 언제나 무리 내에서만 효력을 발휘합니다. 예를 들어 열차 칸이나 식당에 앉아 있는데 다른 여행객들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리를 들었다고 가정해 보지요. 그들이 배꼽을 잡고 웃는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재미있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같은 일행이라면 당신도 그들처럼 크게 웃겠지요. 하지만 일행이 아니라면 그럴 마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교회 설교 시간에 모두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가운데 혼자 울지 않는 남자가 있어서 그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전 이 교구 신자가 아니니까요!” 눈물에 대한 이 남자의 대답은 웃음에 적용할 경우 더욱 맞는 말이 됩니다. 다분히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것 같지만 웃음은 실제든 가상이든 그 행위를 함께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종의 비밀스러운 유대관계, 심지어 은밀한 공모관계가 유지되고 있음을 암시하거든요. 극장 안이 꽉 찰수록 관중들의 웃음소리는 더 크고 오래 지속된다고 합니다.
--- p.22~23
바로 이것이 파스칼이 자신의 저서 『팡세』에서 한 문장으로 제기한 작은 의문의 해답입니다. 즉 “똑같이 닮은 두 개의 얼굴 각각은 웃음을 불러일으키지 않음에도 서로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있을 때 우리를 웃게 만든다.” 이 말은 이렇게도 쓸 수 있습니다. “대중 연설가의 몸짓은 그 자체로는 하나도 우스꽝스럽지 않지만 반복되면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이 두 문장이 얘기하는 진실은, 살아있는 생명체는 스스로 반복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반복이나 완벽한 유사성이 눈에 띌 때마다 우리는 그 생명체 뒤에 어떤 기계적 메커니즘이 작용하고 있다고 의심하게 됩니다. 똑같이 닮은 두 얼굴에서 받은 인상을 분석하다 보면, 동일한 틀로 찍어낸 두 개의 복제물이나 동일한 도장으로 찍은 두 개의 도장 자국, 한 장의 원화에서 인화된 두 장의 사진 같은, 일종의 제조과정을 연상케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생명을 기계적인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 지금 여기에서는 이것이 웃음을 유발하는 요인입니다.
--- p.56~57
삶의 진지함은 자유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키워온 감정과 골몰했던 열정, 심사숙고 끝에 결정하고 실행으로 옮긴 행동들, 즉 우리 자신에게서 나와서 우리의 것이 된 모든 것, 이것들로 인해 삶은 때로 극적이면서 심각한 면을 띠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희극으로 바꾸어 놓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럴싸해 보이는 자유 이면에 꼭두각시 인형의 줄이 감춰져 있다고 상상하는 것, 그리고 어느 시인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다음과 같은 존재라고 상상하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 운명의 손에 줄을 맡긴 보잘것없는 꼭두각시들.
--- p.113~114
희극성은 사람이 사물과 닮아 있음을 드러내 주는 인간의 한 측면입니다. 그리고 그 특유의 비유연성을 통해 순수한 기계장치인 자동기계, 즉 생명력 없는 움직임을 전달하는 인간사의 한 양상이기도 하지요. 그리하여 즉각적인 교정이 필요한 개인적, 집단적 결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를 교정해 주는 것이 바로 웃음이고요. 웃음은 사람들이나 사건에서 볼 수 있는 특정한 얼빠짐 상태를 잡아내어 진압하는 하나의 사회적 제스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123
지금까지 우리는 희극적 인물이 늘 마음이나 기질의 고집스러움 때문에, 또는 얼빠짐 상태, 다시 말해 자동기계 때문에 실수를 저지른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희극성의 근원에는 일종의 경직성이 있어서 그 희생양으로 하여금 하나의 길만 고집하며 그 길만을 따라가게 만듭니다. 귀를 닫고 아무것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게 하지요. 몰리에르의 작품을 보면 정말 많은 코믹한 장면들이 이런 단순한 유형에 속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작품 속의 인물은 자기 자신의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끊임없는 방해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생각으로 되돌아옵니다! 이런 이행은 서서히 눈에 띄지 않게 이루어져, 아무것도 듣지 않으려는 사람이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는 사람으로, 그리고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는 사람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으로 바뀌어 갑니다. 고집스러운 정신은 결국 자신의 생각을 사물에 맞추는 대신 사물을 자신의 사고방식에 끼워 맞춥니다. 그래서 모든 희극적 인물은 위에서 언급한 망상으로 이르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돈키호테는 희극적 부조리의 일반적인 유형인 것이지요.
--- p.236~237
이런 의미에서 웃음은 결코 공정할 수 없습니다. 인정이 많지도 않지요. 웃음의 기능이란 수치심을 주어 위협하는 것이니까요. 바로 이런 목적을 위해 자연이 가장 선량한 사람에게도 눈곱만큼의 용기나 장난기를 심어 두지 않았다면, 웃음의 기능은 성공하지 못하겠지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자세하게 조사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듣기에 좋은 말은 나오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긴장완화나 감정의 확대와 같은 현상은 웃음의 서막에 불과합니다. 방금 전까지 웃던 사람이 순식간에 웃음을 멈추고 전보다 더욱 고집스럽고 교만해져서는 다른 사람의 인격을 마치 자신이 조종하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여기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교만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의 이기주의를 재빨리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그 이기주의 뒤에는 덜 자발적이지만 더 혹독한 것, 즉 웃음을 보다 면밀하게 분석할수록 점점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이한 비관주의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게 되지요.
--- p.252~253
사회는 이 경직성을 제거해 구성원들로부터 최대한의 유연성과 사교성을 얻어내고자 하지요. 이 경직성이 바로 코믹이고, 웃음은 그것을 바로잡는 중화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 p.41
희극적인 결과를 낳으려면 과장은 목적이라기보다는 수단이어야 합니다.
--- p.48
연설 도중 가장 감동적인 순간에 재채기를 터뜨리는 연설가를 보고 우리는 왜 웃을까요? “고인은 고결하고 뚱뚱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장례식 추모사에서 따온 말로 독일의 한 철학자가 인용한 이 문장은 어디에 희극적 요소가 있는 것일까요?
--- p.76
비극의 주인공은 먹지도, 마시지도, 불을 쬐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앉지도 않아요. 아무리 멋진 대사라 하더라도 도중에 앉는다면 육체의 존재를 상기시키기 때문입니다.
--- p.78
생명체 안에서 작동하는 기계장치가 떠오를 것입니다. 사실상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지요.
--- p.111
엄숙한 어조를 통속적인 어조로 전환하면 패러디입니다.
--- p.164
아이러니는 본질적으로 수사적인 반면 유머는 과학적인 면을 갖고 있습니다.
--- p.168
융통성 있는 악덕보다 융통성 없는 미덕이 웃음거리 되기가 쉽습니다.
--- p.183
비도덕성보다는 비사회성이 웃음을 사는 이유라는 사실을 덧붙여야겠습니다.
--- p.184
무엇보다 웃음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합니다.
--- p.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