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저 독서가 즐겁고, 독서가 좋고, 독서가 취미다. 그게 다다. 밥을 먹는 것처럼 해야만 하는 일이다. 깨달음이나 배움, 성장 같은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즐거우면 된다. 독서는 즐거우면 즐거울수록 좋다. 왜냐하면 독서는 나에게 꼭 해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유쾌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최고의 취미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취미니까 더욱 즐겁게, 더욱 기쁘게, 더욱 알차게 누리고 싶다.
--- pp.5~6
책을 읽을 수 있는 곳. 언뜻 어디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죄송하지만 저희 가게에선 독서를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할 가게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 또 다행히 독서는 무척 간편한 취미라 책만 있으면 할 수 있다. 책 말고는 필요한 도구도 없고, 특별한 지식이나 기술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런 간편함 때문인지, 책을 읽는 것도 언제 어디서나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 하지만 정말 그렇게 쉬운 일일까. 책의 세계에 몰입한 경우는 꽤 섬세한 상태다. 책에는 영상도 소리도 없다. 오직 글자를 읽어야 만들어지는 세계(더구나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를 꼭 붙들고 있는 상태다. 그 열띤 내면과는 반대로 독서를 하는 사람은 고요하게만 보인다. 하는 일이라곤 가만히 종이를 응시하는 것뿐, 몸짓만 놓고 생각하면 명상과 그리 다르지 않다. 하지만 생각보다 무방비하고 약하다. 명상이 그렇듯 자칫 잘못하면 금방 현실세계로 돌아오고 만다.
--- pp.21~22
유력한 후보였던 북카페 탐구는 이렇게 실패로 끝났지만, 실제로 ‘책을 읽을 수 없는’ 환경을 체험해보니 거기에는 몇 가지 힌트가 있었다.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배움과 깨달음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자, 대체 책을 읽을 수 없게 만든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 p.32
“젊은 세대의 독서에 대한 무관심이 심각합니다.” 흔히 듣는 이야기다. 들을 때마다 신물이 나고 화가 치민다. (……) 이런 말이 성립하는 이유는 독서가 ‘유익하고, 바람직하고,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책이라는 게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해 읽는 경우도 있지만, 책 읽기를 좋아하고 독서가 취미인 사람에게는 그냥 취미일 뿐이다. 오락이자 즐거움이다. 독서가 취미인 사람에게 독서는 어디까지나 취미이고, 많은 선택지 중에서 고른 하나의 놀이일 뿐이다.
--- pp.49~50
책과 관련된 상품이나 공간, 행사, 서비스 중에 ‘읽는 시간’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은 극히 드물다. 이것은 이상하고 비정상적이고 약간 무섭기까지 하다. 마치 책이라는 아이템에 ‘읽는’ 기능 같은 건 없다는 듯 등한시되고 있다. 책을 읽는다는 매우 단순하고 기본적인 욕구가 이토록 외면당하는 데는 역시 무슨 까닭이 있지 않을까.
--- p.94
영화에는 영화관이 있다. 골프에는 골프 연습장과 필드가 있다. 음악에는 라이브하우스와 스튜디오가 있다. 스키에는 스키장이 있고, 암벽 등반에는 클라이밍짐이 있다. 스케이트보드에는 스케이트 파크가 있고 요가에는 요가 스튜디오가 있다. 꼭 각각의 장소가 없어도 문화는 존재할 것이다. 저마다 지금까지 존재해왔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 일에 전념할 수 있는 장소’가 있고 없고는 천지 차이다.(……) 그러니까 독서에도 그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 아무 눈치보지 않고 책을 실컷 읽을 수 있는 곳. 독서를 위해 마련된 곳. 책을 읽는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곳. 그런 곳이 있는 편이 없는 것보다는 확실히 좋다.
--- pp.129~130
“이곳은 카페도 북카페도 아닌 ‘책 읽는 가게’입니다.” 선언은 시작에 불과하다. 영화관이라면 어떤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이 같은 것을 떠올리겠지만, ‘책 읽는 가게’는 그렇지 않다. 어떤 기능이 있는지,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지, 저마다 상상하는 게 다를 테고, 애초에 ‘책 읽는 가게’가 제공하는 경험을 구체적으로 기대해본 적 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래서 선언 다음에는 정의가 필요하다. ‘책 읽는 가게’는 누구를 위한 가게인가. 그리고 ‘책 읽는 가게’를 ‘책 읽는 가게’답게 하는 구체적인 구성 요소는 무엇인가.
--- pp.159~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