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들은 언제나 실재한다. 여기, 지도에는 없지만 그래서 시작과 끝의 경계가 어디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마을이 있다. ‘망원동’에는 퀴어들이 산다.
--- p.17 시시선, 「당신이 모르는 퀴어들의 마을」 중에서
계약금을 치를 때 여든이 넘은 집주인은 깐깐하게 굴었다. “남편은 뭐해요?” 지방에 있다고 둘러대자 집에 성인 남자가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 “집 주기 싫은데….” 한마디 하는 것이다.
--- p.37 낭미, 「집들은 언제나 함께여서 지켜졌다」 중에서
창문이 없어 빛도 안 들어오고 환기도 제대로 안 되는 열악한 주거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며칠 만에 반평생 내 몸을 떠나지 않았던 아토피가 말끔히 나았다. 그동안 자유롭
지 못한 환경은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아프게 했구나….
--- p.65 라일락, 「‘딸의 방’을 벗어나서」 중에서
속옷, 치마, 화장품 등은 트랜스젠더 여성인 내가 원하는 젠더 표현을 하기 위해 꼭 필요했지만, 부모님에게 이것들은 ‘아들’이 갖고 있으면 안 될 물건들이었다.
--- p.83 에디,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에디의 동네」 중에서
부동산 주인이 내 주민등록증을 보더니 “여기에는 그런 분들 많이 산다”며 알아서 집주인에게 잘 말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이런 동네’가 아니었다면 나도 쉽게 말할 수 없었을 텐데.
--- p.93 에디,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에디의 동네」 중에서
그래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결국 피가 섞인 가족이 아니라 진짜 공동체로서의 삶이다. 반려동물들과 함께 지낼 수 있고, 삶은 혼자 스스로 일구더라도 힘들고 지칠 때 서로 위로가 되어주는 공동체. 다툼이 있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인격체로 존중하며 살아가는 공동체를 꿈꾼다.
--- p.120 황주, 「반려묘와 함께, 떠돌며 머물며 나를 찾아가는 집」 중에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봉이와 함께 집을 이고 메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살 예정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지금과 같은 한계에 아마도 계속해서 부딪힐 것이다. 고양이를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키우다니, 뭐 하는 짓이냐고 손가락질 받기도 할 것이고, 이방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불이익을 겪을 것이다.
--- p.124 황주, 「반려묘와 함께, 떠돌며 머물며 나를 찾아가는 집」 중에서
‘대출금에 매이면 여행도 못가겠지. 치킨 한 마리 시킬 때도 고민하게 될지 몰라. 하고 싶지 않은 일들도 다 받아서 해야 되겠지.’
내가 그리는 삶이 아니었다.
--- p.142 구정인, 「그때 집을 샀다면 사막에 별을 보러 가지 못했겠지」 중에서
답답했다. 누군가에게 나를 보호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을뿐더러 원하지도 않는다! 행여나 집 안에서 다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책임의 주체는 나다. 그들이 내게 취해야 할 태도가 있다면, 그건 건물 임대인으로서 가진 의무를 상식과 절차에 맞게 임차인에게 제공하는 것뿐이다.
--- p. 157 진성선, 「오늘도 나는 독립합니다!」 중에서
‘이화동 부자집’에서 그야말로 ‘부쟈놀이’를 마음껏 하면서, 나는 집이라는 공간이 삶의 질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는지 다시금 절감했다. 그럴수록 마당 있는 부잣집에 대한 애착이 커졌고, 동시에 혼란에 휩싸였다. ‘이 좋은 환경을 가난한 내가 누리는 게 맞나? 사치와 허영은 아닐까?
--- p.184 이충열, 「무모하고도 행복한 ‘부쟈놀이’ 」 중에서
‘방랑하며 배우는 자’라고도 불리던 그 길 위의 수행자들은 내가 깨기 전인 이튿날 새벽에 바람처럼 또 어딘가로 떠났다. 며칠 후에 나이 지긋한 디가 그들이 ‘자이나교도들‘임을 알려주었다.
--- p.207 길날, 「오래된 농가에서 삽니다 」 중에서
실제 밤하늘 별들이 반짝이는 소리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리 느껴지는 소리를 비롯하여 이곳에서는 참 다양한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도시에서라면 좀체 들을 수 없
는 온갖 새 소리며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방에서 몇 발짝만 걸어 나가도 향긋한 풀 내음과 꽃 내음을 들이켤 수 있다.
--- p.212 길날, 「오래된 농가에서 삽니다 」 중에서
타인이 내 삶으로 파고드는 시린 순간을 아직 잘 견뎌내지 못한다. 삶에 관심을 가지고 싶다고 하면서도 다시 무감동해지는 순간들을 맞는다. 그럴 때 나는 욕실 청소를 하고 밥을 안치고 된장찌개를 끓여 본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작은 일에 마음을 여는 사람들을 피하지 않고 본다.
--- p.233 박목우, 「건반을 눌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중에서
내가 살고 싶은 집은 딱 정해져 있다. 죽을 때까지 빌려 쓸 수 있는 임대주택에서, 적정 주거비를 지출하면서, 공유 자전거와 공유 자동차를 이용하면서, 식구들과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서 잘 살다가 죽는 것이다.
--- p. 265 홍혜은, 「임대주택을 좋아하는 편」 중에서
공간의 퀴어링으로 성별의 식별이 무의미해져 가고, 그로 인해 설명과 증명이 무의미해지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또 다르게 모두가 안전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를 더 안전하게 하는 것은 여성들을 한곳에 몰아넣고 보호하는 방식의 정책이 아니라, 공간 전체를 퀴어링하는 방향의 정책이 아닐까.
--- p.276 임경지, 「자기만의 방과 모두를 위한 도시가 필요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