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그림책은 출판시장 전체의 크기로 보면 적지 않은 규모임에도 그동안 모든 통계에서 제외되어 왔다. 그 이유는 첫째, 어린이책(아동서)에 묶여 한 몸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의 한국십진분류표(KDC)에도 아직 주제별 구분에 들어있지 않다. 그림책을 찾으려면 다른 책들과 똑같이 총류부터 철학, 종교, 사회과학 순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 사립도서관에서는 그림책 서가를 별도로 운영한다. 분류는 십진분류 체계로 하지만 열람자에게는 작가별, 출판사, 장르별로 도서관마다 다르게 배치해 놓는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런 사정 때문에 그림책의 기본 통계와 축적된 데이터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책을 내며」중에서
수만여 종의 그림책이 이렇게 제자리를 못 찾는 것은 그동안 그림책을 단순히 교육용 보조 도구 등 하위 장르로 치부하고 판매와 소비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지금부터 필요하다. 이즈음에 체계적인 통계와 지표, 평론의 공간이 시작되어야 함이 절실하다. 바탕이 없는 허약한 구조가 방치되면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어려워진다. 예술, 인문, 문학 어느 분야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그림책의 위치를 함께 세워 나가고 싶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조각 맞추듯 시작하려 한다.
---「책을 내며」중에서
지금 눈에 익숙한 최근 그림책의 표지와 본문 삽화를 보면서 발전적으로 계승되어 왔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결국 삽화의 역사는 어린이책의 역사와 함께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100여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문학과 어울리며 성장을 거듭해온 어린이책 그림(표지, 삽화)은 짧지 않은 기간에 여러 작가들을 탄생시키며 그들에 의한 갖가지 조형 활동으로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 우리나라의 미술 문화에서 서양화법을 수용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히고 처음으로 양화 활동이 시작된 것을 1910년대 후반으로 본다면, 결국 어린이책 삽화의 시대는 우리나라 신미술시대의 개막과 거의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1부_그림책 서막 그 후」중에서
동화출판공사가 〈그림나라 100〉을 내면서 밝히고 있듯이 전에 없던 큰 목표를 세우고 출발한 점이 여러 곳에서 눈에 띈다. 그중에서 이 시리즈에 참여한 작가들의 면모는 무척 다양하고 광범위한 것이 특징 중의 하나로 꼽힌다. 화가들 또한 당시 미술계 중진에 속하는 화가들을 대거 영입하여 작업에 착수한다. 특히 화가들 중 일부는 어린이책에 대한 인식을 낮게 평가하며 그림을 납품했다가 인쇄 직전에 되돌려 받고 폐기한 후 다시 그리는 일도 생긴다. 한 화가는 반달곰을 붓으로 그렸다가 펜으로 털 하나하나를 일일이 새기듯 그렸을 때는 이 그림책이 한 폭의 회화 작품이 아닌 어린이들이 오랫동안 보는 책이라는 생각을 뒤늦게 했다는 고백을 했다.
---「1부_그림책 서막 그 후」중에서
1990년대로 넘어가기 전 우리의 정통성을 확인하는 걸출한 작품 하나가 탄생한다. 『백두산 이야기』(통나무, 1988)는 단행본 그림책이 흔치 않던 시기에 마치 평지에서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오른 형상처럼 4년여의 작업 끝에 나왔다.
---「1부_그림책 서막 그 후」중에서
이 소중한 자료들이 더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야 할 의무가 우리들에게 지워졌다면 더 늦기 전에 실물 자료를 발굴해내고 연구자들에 의해 후세에 전해져야 한다.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많은 자료들이 개인 소장품으로 묻혀 있거나 공공기관 서고에서 어린이책 또는 그림책으로 분류되지 않은 채로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1부_그림책 서막 그 후」중에서
1990년대 이전과 다른 새로운 세대의 등장, 다른 장르의 문화 현상처럼 그림책에서도 이들 젊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자유분방하면서 사회의식이 뚜렷한 소재로 작업을 했다. 우리 생활 문화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찾아내 그들만의 독특한 표현 방식으로 서서히 독자 대중 앞에 나서기 시작한다.
---「2부_전성기와 미래」중에서
번역 소개된 그림책과 우리나라 창작 그림책을 눈여겨 살펴보면 차이점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서양의 그림책들이 판타지, 즉 상상력에 기반을 둔 특징이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책들은 가장 아름답고 세련된 일러스트레이션이 옛이야기를 다룬 장르라는 점이다.
---「2부_전성기와 미래」중에서
2010년 전후로 디지털 환경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도구가 등장하고 다양한 시각 매체가 생겨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한국 그림책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을 연결하는 예술이 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그림책이 삶과 사회를 담은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 소통과 공감의 예술로 자리 잡는 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
---「2부_전성기와 미래」중에서
한국 그림책은 다른 나라 그림책에 비해 짧은 기간에 무척 빠르게 성장했다. 100년 이상 걸린 유럽, 미국, 일본의 그림책 역사에 견주어 보면, 한국 그림책이 매체로서, 예술로서 다양한 성장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나온 30년은 놀라울 정도로 짧은 시간이다. 30년의 짧은 시간 동안, 전통문화와 옛이야기로 시작된 한국 그림책의 이야기는 자연, 환경, 인권, 장애, 가족, 노인, 동물, 평화 등으로 점차 다양해져서 그림책 속에 담겼다. 이러한 주제의 다양성은 주 향유 계층인 어린이를 넘어서 청소년, 어른 등 다양한 세대를 그림책의 세계로 인도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림책에 담긴 이야기뿐 아니라 표현 기법, 제작 방법, 출판 방식 등도 다양하게 변화해 왔다.
---「2부_전성기와 미래」중에서
풀어내고 싶고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맞닥뜨릴 때 생기는 일은 풍요롭다고 할 수 있다. 그 인구가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소수라도 그들이 퍼뜨리는 향기는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전업 작가부터 도서관 사서, 학교 교사, 그림책 활동가, 다른 직업에서 일하다 그림책을 발견하고 일을 바꾼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아이와 어른들에게 그림책의 따뜻한 감성을 전하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열정적인 그들로 인하여 작가들은 지칠 때 힘을 얻고 다시 작업에 들어간다.
---「3부_분야별 그림책」중에서
불과 몇 년이 안 된 사이에 어른이 주로 대상이 되는 그림책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일상의 삶, 동물, 고전, 떠남에 대하여, 정년과 노년에 대한 삶, 가족, 연인과의 판타지, 심지어 아마추어의 직접 제작 참여까지 소재와 폭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넓어졌다. 이 분야는 불현듯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여 나온다고 봐야 한다. 또한 현재의 미술, 영화, 만화 등 다른 예술 장르와 함께 영향도 받으면서 서로 교감을 하며 확대되는 것이다.
---「3부_분야별 그림책」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