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李泰俊)의 호는 상허尙虛.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난다. 개화파 지식인인 부친을 따라 어린 시절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했으나, 이내 양친을 모두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성장한다. 휘문고보 4학년 때 동맹휴교 주모자로 퇴학당하고 일본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1925년에는 도쿄에서 단편 <오몽녀>를 <조선문단>에 투고해 입선한다. 도쿄 조치대 예과를 고학으로 다니지만 1927년 중퇴한 후 귀국한다.
1929년 개벽사에 입사하여 조선중앙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작품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1933년 구인회에 참가했으며, 1930년대 말까지 주로 남녀 간의 사랑과 심리를 다룬 작품을 발표한다. 1940년경 일제의 압력으로 친일 활동에 동원되었고, 1941년 모던 일본사가 주관하는 제2회 조선예술상을 수상한다. 이후 1943년 절필하고 낙향했다가 해방을 맞아 상경한다. 해방 후에는 좌익작가 단체에 가입하여 주도적으로 활동했고, 1946년 <해방 전후>로 제1회 해방문학상을 수상한다. 그는 그해 여름 월북하여, 6·25 전쟁 시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와 종군 활동을 한다. 1956년 구인회 활동과 사상성이 문제시되어 숙청당한 이후에는 정확한 행적이 알려진 바 없으며 사망 연도도 확실치 않다.
1934년 첫 단편집 『달밤』이 출간되고, 한국전쟁 이전까지 『까마귀』 『이태준 단편선집』 『이태준 단편집』 『해방 전후』 등 단편집 7권과 『구원의 여상』 『화관』 『청춘 무성』 『사상의 월야』 등 장편 13권이 출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