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이집트 문명을 떠올리면 미라, 피라미드, 스핑크스를 생각한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 박물관은 이집트 최대의 박물관으로 이집트 문명과 관련된 유물과 유적이 많다. 박물관 입구에서부터 스핑크스가 반겨준다.
파라오는 고대 이집트어로 ‘왕’ ‘최고 통치자’를 뜻하며, 인간이 아닌 신으로 숭배되었다. 파라오가 죽으면 영원히 살 수 있도록 궁궐인 피라미드를 만들어 숭배하는 문화가 있다.
이집트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장품은 〈투탕카멘왕의 황금 마스크〉이다. 이것은 어린 나이에 숨진 이집트 제18왕조 투탕카멘왕과 관련된 유물이다. 이 왕의 업적은 특별한 것이 없어 역사상으로 많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그의 미라는 사망 시 20세 이하인 것으로 보아 즉위 시기는 10세나 11세 정도로 추정된다. 나이도 젊고 특별한 업적은 없었다. 피라미드가 아닌 계곡에서 발견되었고, 발견되기까지 묻혀 있던 투탕가멘왕의 무덤과 각종 부속품은 이집트 문명의 규모나 시대상을 보여주는 등, 세기를 떠들썩하게 하였다. 특히 황금 마스크는 찬란하고 화려했던 이집트 문명의 일부를 나타내는 장신구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 p.43~44 「2교시 : 문명의 발달과 사회」 중에서
이곳에는 아테네 디필론 묘지에서 출토된 큰 암포라의 장식이 있다. 기원전 10세기 말 그리스에서 탄생한 기하학 양식을 대표하는 것으로 장식은 간단한 직선 문양, 번개 모양의 마름모꼴, 지그재그 모양 등과 동물, 인물까지도 도형으로 표현되었다. 고전 전기에는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이나 〈아테나와 마르시아스〉처럼 움직임의 순간을 역동적으로 포착한 작품들이 많았다. 〈원반 던지는 사람〉의 경우 원본은 손실되었으나 로마에서 똑같이 복제하여 뮌헨 고대 조각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복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역동적인 자세, 사실적이며 섬세한 묘사로 미론의 청동상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자유롭고 독특한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낸 그리스인들은 인간처럼 생긴 신들을 조각하며 인간 중심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갔다.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라오콘 군상〉은 라오콘과 두 아들이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는 장면을 묘사한 조각상이다. 1506년 로마에서 발굴된 이 작품은 세계 3대 조각상으로, 헬레니즘을 대표하는 세계 최고의 유물이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밀로의 비너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사랑과 미를 관장하는 여신 아프로디테를 묘사한 대리석상으로 현재는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밀로스 섬에서 출토되어 지명에 따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리스 후기인 헬레니즘 시대 작품으로 나선형의 곡선과 흐트러진 드레스의 모습이 묘사되었으며 몸통, 다리, 팔, 발이 각각 조각되어 수직의 말뚝으로 고정된, 전형적인 그리스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 p.61~62 「3교시 :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 속으로」 중에서
다빈치가 왕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인물이라면 그에게 영감을 받았던 라파엘로는 다빈치의 아이디어를 뛰어난 그림 실력으로 표현해낸 인물이었다. 사실적 묘사를 중요시했던 르네상스 화가들의 정점에 서있던 인물이 바로 라파엘로이다. 그의 대표작인 〈아테네 학당〉은 바티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을 꼽으라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려진 부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데아에 대해 설명하는 플라톤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윤리학에 대해 설명하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손가락으로 지상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사상과 르네상스로 떠오른 플라토니즘의 대비와 조화를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는 제자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그리스의 기하학자 유클리드뿐만 아니라 철학자인 디오게네스 등 저명한 학자와 위인들도 그려져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저명한 인물들 사이에 그림을 관람하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는 라파엘로의 모습도 있다는 것이다.
--- p.119~121 「5교시 : 르네상스와 절대 왕정」 중에서
1295년 영국에서는 세계 최초로 의회가 구성되면서 전제 정치에서 의회정치로 발전하는데, 모든 의회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왕이 거주하는 웨스트민스터 궁전에서 열렸다. ‘Palace of Westminster’라는 정식 명칭으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버킹엄 궁전이 건설되기 전까지 영국 왕족들이 지내던 궁전 건물이었다. 1843년의 화재로 당시 목조 건물이던 웨스트민스터 궁전의 2/3 정도가 소실된 이후 현재까지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영국에서 ‘웨스트민스터’라고 하면 영국 의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영국 의회의 국회의사당인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자리해 있기 때문이다. 주요 정부 기관이 밀집한 화이트홀도 이곳에 있어 웨스트민스터는 영국 정부의 심장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의 국회의사당은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함께 ‘웨스트민스터 궁전’으로 불린다. 국회의사당 내부에는 영국의 주요한 사건들을 기록한 그림들과 전시물들이 있다. 대헌장, 권리청원부터 명예혁명까지 역사적인 그날의 모습을 함께 만날 수 있다.
명예혁명은 왜 ‘명예(名譽, Glorious)’로운 혁명일까? 1688년 영국에서 일어난 시민혁명은 다른 혁명과 달리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명예롭게 이루어졌다’라고 해서 명예혁명이라고 한다. 의회는 제임스 2세를 퇴위시키고 잉글랜드의 윌리엄 3세를 즉위시켰다. 이때 일어난 혁명은 영국 의회 민주주의의 시발점이 된다. 이후 어떤 영국의 왕도 의회를 무시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당시 작성된 1689년 권리장전은 영국과 세계 역사에서 중요한 문서이다.
--- p.143~145 「6교시 : 근대 시민사회의 시작과 3대 시민혁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