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서경식 문장술이라는 게 있다면, 그 요체는 ‘짐짓’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딴청’이라고 해도 좋고, 요즘 유행어로 말하면, ‘할많하않’이라고 해도 괜찮겠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서 내가 배운 게 있다면 바로 그 문장술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문장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떤 거대한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개개인의 자세한 사연을 생략하는, 어떻게 보면 군더더기를 과감하게 쳐내는 냉혹한 편집술에 가깝다. 왜 그런가? 그것이야말로 지식인의 세계관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김연수」중에서
『빛의 호위』가 출간되고 1년여 뒤,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출간 기념 강연회에 간 적이 있다. 강연이 끝난 뒤엔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섰고 내내 떨리는 마음으로 내 차례를 기다리기도 했다. 드디어 그의 앞에 섰을 때, 나는 책에 사인을 받은 뒤 가슴에 품고 있던 『빛의 호위』 한 권을 드렸다. 책 면지에는 “文章의 인연에 감사하여, 마음을 담아”라고 썼다. 그가 반가워하며 “조해진 군?” 하고 확인하듯 물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소설집 목차 페이지를 열어 보인 뒤 이 중에서 「사물과의 작별」은 특히 작가님의 형들 덕분에 구상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내 뒤에도 사인을 받으려는 독자들이 꽤 있었고 행사장은 이미 정리 중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은 이미 내게 특별했다. 빛을 찾아 헤맸던 내 긴 여정에서 어떤 때는 출발역이, 또 어떤 때는 환승역이 되어 준 실체를 만난 밤이었으니까. 그가 비록 한국어로 된 내 소설을 읽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를 읽으며 소설을 쓰고 세상을 알아 가는 한국 소설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했다.
---「조해진」중에서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을 읽고 나는 이 ‘연약한’ 저자에게 깊이 감동받았다. 아마 그것은 그 책에서 언급하는 디아스포라란 존재의 삶에 관한 서술보다는 그가 그것을 경험하는 방식, 순전한 그의 실존적인 이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에게 품고 있던 근거 없는 반감을 완전히 해제하게 된 것은 그의 책 곳곳에 등장하는 죽음, 특히 자살에 대한 언급 때문이었다.”
---「서동진」중에서
서경식의 산문은 늘 내게 책 읽기의 열망과 설렘, 고통, 서늘한 긴장이라는 드문 체험을 선사해 왔다. 처연한 슬픔과 학살, 망명, 죽음, 깊은 고뇌, 진지한 지성의 향연으로 채워진 그의 글을 읽는 과정은 항상 고통스럽다. 그러나 서경식의 저작을 읽는 시간은 내게 먹먹한 여운, 근본적인 생각거리를 남기곤 했다. 나는 왜 이토록 서경식의 에세이에 끌리는 것일까? 시대와 인간의 아픔과 상처에 대해 간곡하게 공감하는 마음, 첨예한 논점을 다루면서도 담백하고 아름다운 문체 등 몇 가지 이유를 댈 수 있겠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평생 경계인으로 살아온 그의 삶 자체가 이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사유의 힘을 담은 글을 쓰게 만든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권성우」중에서
서 교수는 세상을 바꾸려면 먼저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 머릿속에 ‘타자에 대한 공감 능력’, ‘타자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문학이 해야 할 일이다, 라고 했다. 문학의 유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가 육박주의인 것이다.
육박주의의 1차적 목적은 서 교수가 지적했듯이 “우리들 대다수가 보지 못하는 것, 보지 않고 지나가 버리는 것”에 눈길을 주게 하고, “보고도 못 본 척하는 태도”를 문제 삼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 세상을 바꾸기 위한 첫걸음이다. 그렇게 해야 타자가 눈에 들어오고 그들에 대한 공감, 그들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이 생긴다. 그것 없이는 아무리 좋은 얘기도, 아무리 절박한 얘기도 하나 마나 한 소리로 빗겨 갈 뿐이다. 그럴 때 절박은 절망이 된다.
---「한승동」중에서
그는 거듭 문제 삼기 위해 ‘증언의 언어’를 택했다. 그러나 그 방식은 자신을 증언한 것과 다르다. 발언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을 관통하도록 통로가 되는 증언. 서경식은 자신의 세기를 증언의 시대라 불렀다. 내 생각은 다르다. 그가 증언의 시대를 산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증언의 시대가 왔다. 증언은 하는 자의 것이지 듣는 자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박혜진」중에서
그런 이야기를 서경식 선생님과 나누다가, “난 이래도 괜찮아.”라고 존재를 ‘인정’받는 경험을 처음으로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일본 사회의 소수자에게 위로를 받는 일본인’이라는 구조는 참 아이러니하며, 자칫하면 소수자를 소비하는 방식(소수자이기에 타인을 잘 공감해 준다든가 하는)으로 빠질 수 있기에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가 느끼는 그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셨고, 나는 내 고통의 맥락을 알아가야 겠다고 결심했다. 처음으로 ‘좋아하는 어른’이 생겼다.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은 그대로였지만 그때 왠지 희미한 빛이 보인다고 느꼈다. 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버스에서 눈물이 났다. 밖에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마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