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온 세상을 만드셨고 온 세상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계시며 또한 온 세상을 끝내실 수도 있는 분, 바로 정신께서 이곳의 토지에 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을 만들어 움직이고 계신 정신께서 곁에 계시면서 항상 우리를 이끌어주시는데, 어찌 잘 살 수가 없겠습니까?”
--- p.23~24, 「토지정신」 중에서
어떻게 그럴 수가……. 그런 세계가 있을 수가 있지? 모든 게 반대로, 악의적으로 뒤집혀 버린 세계가. 내가 미치기라도 한 건가.
--- p.69, 「거울 세계」 중에서
아침 햇살이 푸르스름하게 반사되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다른 고양이들과 한참 떨어진 그늘 가장자리에 도사린 고양이를 눈치챘다. 단동이와 똑같은 청회색이고, 눈도 같은 녹색이었다. 단지 몸이 마르고 길쭉한 데다가, 곳곳에 털이 지저분하게 뭉쳐 있었다. 마치 귀신 같은 모습이, 불쌍하다기보다는 섬뜩했다.
--- p.87, 「단동이」 중에서
빛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리고 있었단다, 아가.”
--- p.165~166, 「파종선단」 중에서
바람이 내게 전해다 주기를, 여우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더는 꿈에 없고 현실에 존재했다. 나의 호텔 안에.
짐승의 울음이 더는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대로 놔둔다면 내 모든 걸 파괴할 걸 알았다.
이제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어둠 속을 걷기 시작한다.
여우가 아직도 배고파하는 것을 주기 위해서 떠난다.
--- p.200, 「매구 호텔」 중에서
김명식 대리에게는 이상한 명절이었다. 한편으로는 여느 명절과 똑같았다. 김명식 대리는 안방에 들어가 아버지와 형에게 인사를 하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어머니가 내온 과일을 한 쪽씩 집어 먹었다. 그런데 영 몸도 마음도 편치 않았다. 한쪽의 의식은 박영지와 함께 앞치마를 두르고, 전을 부치고, 나물 간을 보고, 접시를 씻고 있었다.
--- p.225, 「여우 구슬」 중에서
깊은 산속의 버려진 저택. 백발금안에 꼬리까지 달린 소녀. 그리고 저절로 켜지고 움직이는 불과 시계. 게다가 밤이면 찾아오는 요괴. 보통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달아났겠지만. 선비는 아니었다.
--- p.237, 「구서담」 중에서
나는 그날 뒤틀림에 반해 버렸어. 까마귀의 세계로 갈 수 있다면 뭐든 내던질 수 있다고 말했지. 그게 전부야.
--- p.312, 「견우도 직녀도 아닌」 중에서
그 여름과 가을에, 열다섯 살의 삼준은 반쯤 정신이 나간 채, 인민군 비슷한 허깨비만 보아도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거기서 그 수라장에서 버텨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 그 무렵이었어……. 내가 신을 만났던 것은.”
--- p.332, 「내가 만난 신의 모습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