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까지 건축가들은 성당이나 왕궁 및 귀족이나 부유층의 집을 주로 지었다. 이런 집들은 주인의 권위와 부유함을 과시하기 위해 매우 화려하고 우아하면서 고풍스럽고 장중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은 폐허가 되었고 모든 것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과거와 같이 화려하고 장식 많은 집은 지을 수가 없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패션이 간단한 기성복으로 바뀌었듯 주택도 실용적이고 간결한 기성주택이 필요해진 것이다.
--- p.29 「내 마지막 집은 오두막(르코르뷔지에)」 중에서
바우하우스는 모더니즘을 주요 이념으로 삼았기 때문에 건축도 개인이나 지역의 특수성을 넘어서는 국제주의 양식을 지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치는 게르만족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므로, 학교에서도 독일 고전건축을 가르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동의할 수 없었던 그로피우스는 결국 사퇴했고 두 번째 교장도 2년 만에 그만두었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교장이 된 미스가 베를린의 낡은 공장을 빌려 다시 학교 문을 열었지만, 나치는 이곳까지 찾아왔다.
--- p.42 「철과 유리의 시대(미스 반데어로에)」 중에서
일그러진 유리 건물을 본 사람들은 예전에 폭탄 맞은 건물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강건한 콘크리트 건물이 쓰러질 듯 위태로운 유리 건물을 지탱하는 모습이 마치 탱고 춤을 추는 한 쌍의 남녀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냉전 시대 폭격이 있었던 곳, 그리고 이제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모습을 모두 담아낸 획기적인 디자인이었다.
--- p.76 「자유롭게 춤추고 싶어(프랭크 게리)」 중에서
퐁피두센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사람들이 “이게 다 지은 건물인가”라는 반응을 보인 것은 이 때문이었다. 숨기고 가려져야 할 모든 설비가 밖으로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피아노는 관습에서 과감히 탈피했다. 건물의 기계요소를 아예 장식으로 활용한 것이다. 건물의 뼈대를 이루는 철골 구조물은 흰색, 에스컬레이터는 노란색, 상하수도는 파란색, 전기는 노란색, 냉난방 설비는 파란색과 흰색 등으로 처리해서 아주 화려했다. 그것은 마치 라디오나 TV 기판을 보는 것과도 같아서 사람들은 그것을 ‘하이테크 건축의 시초’라고 평가했다. 이제 곧 도래하게 될 기계문명의 시대를 예측한 건축이었다.
--- p.98 「가장 오래 가장 튼튼하게(렌초 피아노)」 중에서
크고 멋진 설계사무소는 아니었다. 직원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일거리도 별로 없었다. 허름한 곳에 사무실을 차린 고졸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려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럴 때면 다다오는 작은 스케치북 하나를 옆구리에 끼고 사무소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우연히 작은 공터를 하나 발견하면 그곳에 어울릴 만한 건물을 스케치했다. 그리고 주변을 수소문해 땅 주인을 알아낸 다음, 찾아가 스케치를 보여 주며 말했다.
“빈 땅을 남겨 두지 말고 이런 건물을 지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땅 주인은 “별 이상한 녀석을 다 보겠군” 하는 표정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일한 건축가는 없었기 때문이다.
--- p.118 「빛과 콘크리트의 예술가(안도 다다오)」 중에서
1999년 미국 시애틀에 있는 ‘시애틀 공공도서관’ 신축 프로젝트가 현상설계에 붙여졌다. 이곳은 본래 1906년 철강사업으로 막대한 자본을 축적한 앤드루 카네기의 기부로 지어졌는데 세월이 흐르며 건물이 많이 낡았다. 이에 1990년대 마이크로 소프트 대표 빌 게이츠의 기부로 새로운 도서관을 다시 짓기로 한 것이다. 20세기의 강철왕 카네기에 이어 21세기의 컴퓨터왕 빌 게이츠의 기부로 지어질 도서관 현상설계에 콜하스의 계획안이 만장일치로 당선되었다. 5년이 지난 2004년 도서관이 완공되었을 때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지그재그로 얽힌 은색 건물이 마치 영화에 나오는 로봇 같았기 때문이다.
--- p.141~142 「아시아를 사랑한 건축가(렘 콜하스)」 중에서
하디드는 처음에는 날카로운 예각을 살려 디자인했지만 이후 점차 추상적인 곡선을 사용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아제르바이잔 문화센터’다. 아제르바이잔은 터키 인근 카스피해 연안에 있는 나라로, 흔히 ‘불의 나라’로 불렸다. 곳곳에서 천연가스가 분출되어 땅 위에서 저절로 불이 솟아오르는 지역이 많기 때문인데, 이곳은 불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소련 연방에 속해 있다가 1991년 독립했고, 신생공화국으로서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수도 바쿠에 대규모 문화센터를 짓기로 했다.
2012년 완공된 건물은 놀랄 만큼 아름다웠다. 물결치는 흰색의 유선형 디자인은 땅속에서 치솟는 불 같기도 했고, 화산 폭발 후 땅을 적시는 용암의 모습 같기도 했다.
--- p.163~165 「열정 가득한 걸크러시(자하 하디드)」 중에서
또한 1970년대 유명했던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조성이었다. 현재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혜화동 일대를 대학로라 부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인 경성제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해방 후 경성제대는 서울대학교로 재편되어 관악구 신림동으로 이전했고, 예전에 경성제대 건물이 있던 자리를 새로운 문화의 거리로 조성하면서 여러 건물을 짓는데 그것을 김수근이 담당하게 된다. 잡지사로 유명한 샘터 사옥, 아르코 미술관과 아르코 예술극장 등 현재 마로니에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단아한 붉은 벽돌의 건물은 모두 김수근의 작품이어서, 마로니에 공원은 김수근의 건축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다.
--- p.193 「한국 건축의 빛과 그림자(김수근)」 중에서
치마 밑으로 보이는 버선코처럼 곱게 치켜 올라간 처마 선, 나무 기둥 사이를 메우고 있는 창호지 문, 한옥의 아름다움을 가장 현대적으로 잘 녹여 낸 작품이었다. 이로 인해 김중업은 1965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는다. 중세 시대 전설에 자주 나오는 바로 그 기사인데, 본래는 봉건영주나 국왕
이 기사 작위를 주었다. 유럽에는 아직도 이 전통이 남아서 국가를 위해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 작위를 내리곤 하는데 그것을 김중업이 받은 것이다.
--- p.215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김중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