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할아버지와 다람쥐
에바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너무 많아서 고민이에요. 천문학자도 되고 싶고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고 동화 작가도 되고 싶거든요. 그러다 거리에서 동물과 마주치면 불쑥 수의학자가 되고 싶어지지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낯선 할아버지와 맞닥뜨리게 되는데…….
길가에는 개미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사방이 그저 고요했다. 창문이 전부 닫혀 있어서 마치 집 안에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았다. 에바는 그 집 앞으로 살금살금 다가가서 문에 붙은 금속 문패에 새겨진 글자를 읽었다.
“맞춤형 멀티버시티 스쿨 / 무료 입장 및 무료 퇴장!”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금속 문패를 잠시 바라보았다. 대체 뭐 하는 곳일까? 무료 퇴장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람? 퇴장할 때 요금을 받는 데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어쨌거나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바는 자석이 압정을 끌어당기듯, 원래 희한한 것에 마구 끌리는 아이였다. 조심성이 영 없는 건 아니었지만, 썩 많지도 않았고 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문을 두드리려다 안을 살짝 들여다보려고 몸을 숙였다.
“거기로는 못 들어갈 텐데.”
누군가 뒤에서 말했다. 에바는 깜짝 놀란 얼굴로 뒤를 휙 돌아보았다. 흰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할아버지가 사람만 한 피노키오 인형을 팔로 감싼 채 빙그레 웃으며 서 있었다. 몸집이 조금 더 컸다면 산타 할아버지로 착각할 뻔했다.
“고양이 문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그냥 보기만 하려고 했어요.”
에바가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건 고양이 문이 아닌데. 물론 염탐하라고 만든 구멍도 아니지.”
할아버지는 여전히 미소 지은 채 말했다.
“방금 여기로 다람쥐가 들어갔어요.”
“아, 그렇다면 다람쥐 문이겠구나. 집 안이 궁금하다면 이 문을 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할아버지가 손가락을 탁 튕기자, 끼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곧이어 엄청나게 커다란 검은색 벽이 나타났다. 가만 보니 칠판이었다. -14~15쪽에서
이상한 학교
에바는 엄마의 허락을 받고 레이 할아버지와 수업을 하기 시작해요. 할아버지는 먼저 뭐가 되고 싶은지 칠판에다 적어 보라고 하고, 에바는 ‘건축가, 우주 비행사, 댄서, 생물학자, 작가’라고 적는데……. 그걸 보고 할아버지가 이런 질문을 던져요.
“건축가가 되고 싶은 이유는 뭐니?”
“모든 집의 옥상을 식물로 가득 채우고, 난방 시설이나 에어컨이 필요 없는 친환경 건물을 짓고 싶어서요. 야외 활동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공원도 만들고요.”
“그럼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은 이유는?”
“다른 세상을 탐험해 보고 싶어서요. 또, 우리가 이주할 수 있는 행성을 찾고 싶기도 해요. 지구가 멸망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야 하니까요.”
“지구의 멸망을 피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당연하죠. 그래서 생물학자가 되고 싶은 거예요.”
“그래, 좋다. 어쨌든 네가 하고 싶은 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네, 맞아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거죠. 여행도 많이 하고요.”
“훌륭한 계획 같구나. 그런데 세상을 더 좋아지게 하려면 지금의 세상을 잘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죠.”
“지금 세상은 어떻니?”
“어떤 면에서요?”
“모든 면에서.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다고 했지? 그럼 공상 과학 영화에서처럼 다른 행성에 있는 식당에 갔다고 상상해 봐. 그곳의 외계인 식당 주인이 네가 사는 세상에 관해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래?” -31~32쪽에서
마술 가발과 레게 머리
에바는 할아버지와 수업을 하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요.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여러 가지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깨우치지요. 그러다 우연히 자신을 미행하던 사립 탐정 아저씨를 통해 레이 할아버지가 천재 과학자라는 사실과 대기업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사라져 버린 일, 그것 때문에 지금 FBI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요. 에바는 슬슬 의구심에 빠져드는데…….
“우리가 듣는 것을 전부 다 믿어도 된다고 생각하니?”
“절대 안 되죠!”
에바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텔레비전에서는 쉴 새 없이 거짓말을 하는걸요. 특히 광고요! 인터넷에서도 거짓 정보가 엄청나게 돌아다녀요. 사람들도 헛소문을 퍼뜨리기는 마찬가지고요.”
“그러면 누구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전 부모님이 하는 말을 믿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랑 선생님, 그리고 저랑 친한 친구가 하는 말도요.”
“거짓말을 더 많이 하는 게 뭘까? 책, 아니면 텔레비전?”
“당연히 텔레비전이죠. 책은 자기가 직접 고르거나, 아니면 누군가 추천해 주는 걸 읽잖아요. 반면에 텔레비전은…… 화면에 나오는 걸 전부 그대로 받아들이게 돼요. 상당 부분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처음엔 그것들을 철석같이 믿게 된다니까요.”
“그렇다면 넌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보다 책을 읽는 시간이 더 많겠구나.”
“그렇지도 않아요. 읽는 게 더 힘들거든요. 게다가 독서는 왠지 구식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당연히 구식일 수밖에! 책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왔으니까. 책은 이런저런 형태로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존재했거든. 하지만 우리가 정보를 얻으려고 이용하는 다른 것들은 완벽하지가 않아.”
“네, 그래도 점점 더 완벽하게 만들 순 있잖아요!”
“그래, 그럴 순 있지. 내 친구 아이작 아시모프가 상상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혹시 누군지 아니?”
“《아이 로봇》 작가요?” -68~69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