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날한시에 모든 놀이터가 문을 닫는 상상을 하면서. 저 바깥에서 승객들이 지루함에 몸서리를 칠 때 그것을 보며 까르륵 웃는 모습을 그리면서. 우리의 규칙이 글로버리를 지배하는 꿈을 꾸면서.
--- p.36, 「글로버리의 봄」 김초엽
그 기나긴 침묵 속에서 마사로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아, 돈 쓰고 싶다.’
마음껏 소비할 수 없게 된 마사로는, 대신 마음의 끝을 지향하기로 했다. 유희처럼. 그것은 쇼핑과 참선만큼이나 먼 일이었지만, 마사로 안에서 둘은 결국 같은 것이었다.
--- p.83, 「수요 곡선의 수호자」 배명훈
내일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될까. 그게 어디인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이제까지와는 다른 곳일 것이다. 동시에 조금도 다르지 않은 곳이겠지. 하지만 어디든 도착할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 p.120, 「우리가 가는 곳」 편혜영
그렇게 한 줄을 더 쓰고, 또 한 줄을 더 쓰고……. 그렇게 열 문장을 썼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오랫동안 쇠사슬에 묶인 채 물속에 가라앉아 있다가 결박을 풀고 수면 위로 올라와 첫 숨을 쉬는 기분이었다.
--- p.142, 「일은 놀이처럼, 놀이는……」 장강명
“촛불, 나, 그거 별로야. 불이 탁 꺼질 때 기분이 이상해, 안 좋아.”
“아니, 뭐가 별로야, 그렇게 반짝 좋은 기분 내면서 사는 거지. 국장님 너무 자기 절제 심해, 너무 교과서야.”
--- p.196, 「첫눈으로」 김금희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은 분명 인형 손바닥이었다. 나머지 조각들을 들어 살펴보았다. 한쪽 가슴이 떨어져 나간 몸체와 관절이 잘린 다리, 구멍 뚫린 몸체가 즐비했다. 크기가 다른 머리와 발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여러 개의 인형이 잘려 나간 것 같았다. 잘린 바비의 사체들이 장판처럼 깔려 있었다.
--- p.216, 「바비의 집」 박상영
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가지들은 제각각 움직였다. 정말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가지 사이로 햇빛이 박자에 맞게 끼어들고 전보다는 수가 줄어든 이파리들이 박수를 치듯 서로 부대꼈다. 송서우는 더 이상의 질문을 떠올릴 생각을 하지 못하고 가지와 이파리들이 추는 춤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 p.273, 「춤추는 건 잊지 마」 김중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