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비유는 적절하지도 않고 상상하기도 싫지만,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린다면, 가령 사랑하는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면 걱정의 시간은 바로 사치가 된다. 이유 여하 막론하고, 그 존재가 사라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함께 시간을 더 보내는 것. 그것이 나의 방식이다. 이 방식은 내가 문학을 대하는 태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정말 문학이 곧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나는 지금 문학을 더 즐길 것이다. 더 읽고, 더 쓰고, 더 문학에 대해 떠들 참이다.
이 세상에서 문학이 사라진다고들 하니, 나는 진심으로 더 쓰고 싶어진다.
--- p.18 「문학이 사라진다고들 하니 더 쓰고 싶어진다 1」 중에서
걸음의 끝에서, 산책의 끝에서 나는 깨달았다. 걸으면서 생각한다는 것을. 걷다가 많은 것이 떠오른다는 사실을. 때로는 걷다가 멈춰 더 깊게 사색할 수 있다는 진리를. 그리하여 ‘산책 중’이라는 말은, 나에게는 ‘사색 중’이라는 말과 동의어라는 사실을.
러시아에서 수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중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나는 ‘산책’이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산책한다. 걸으며 생각한다. 사색적인 산책을 즐긴다. 그렇게 걷고 멈추고 생각하다가, 또 걷고 멈추고 생각하고, 다시 걸을 것이다.
--- p.24 「‘산책한다’는 말은 ‘사색한다’는 뜻」 중에서
그 동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죽음과 더불어 살아왔고, 지금도 공존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함께 살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여기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생각 끝에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 공동묘지를 산책하는 것도 좋은데, 아예 공동묘지가 있는 동네에서 살아보는 건 어떨까?
--- p.60 「다분히 주관적인 공동묘지 산책 예찬론」 중에서
그렇게 나는 여기서 시작할 수 있었다. 한때 ‘양념’이었던 내가 이제는 학생들에게 지루한 대학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바로 그 메일 한 통 덕분에 용기를 얻고 시작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한 통의 메일에 담겨 있던 시작을 돕는 마음, 그 마음이 없었다면 용기를 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확신은 종종 내 안이 아닌, 나의 밖에서 생긴다. 우리는 그 확신을 응원, 격려, 칭찬이라고 바꿔 부르기도 한다.
--- p.92 「시작을 응원하는 마음」 중에서
개인의 독서가 개인의 역사라고 믿는다. 그러니 내가 읽은 책들은 나의 역사이다. 그리고 앞으로 읽을 책들이 나의 남은 역사를 만들 것이다. 멋진 서재에 앉아 새로운 역사를 이뤘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역사는 작은 곳, 척박한 곳으로부터 멋지게 피어오르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 p.120 「서재도 없는 명사의 서재」 중에서
가끔 발코니에 앉아 고양이를 생각한다. 딸은 아직도 이웃 할머니와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걷다가 밖에서 고양이를 마주치면, 잠시 서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존재의 떠남을 생각한다. 마음을 열지 말지 결정하기도 전에, 어느새 끊어져버린 인연에 대하여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이별 뒤,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떠난 ‘우리’ 고양이에 대
해 생각한다.
--- p.139 「이제는 떠난 고양이」 중에서
우리가 공동체 오로빌에서 배워야 할 것은 어쩌면, 다름 아닌 믿음일지도 모르겠다. 여기가 이상향이라는 믿는, 여기가 낙원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그 정신!
낙원을 찾아가기보다는 여기를 멋지게 만들어보고 싶다. 육식을 해도, 선물 경제가 없어도, 심지어 술집이 많아도 행복할 수 있는 그런 마을을 만들어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지금 내딛는 한 걸음에 만족해야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라디오를 끄고, 다시 내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정해진 템포 없이 그 순간을 즐기면서 말이다.
--- p.197 「낙원을 찾아서」 중에서
무언가가 우리의 마음에 소중히 남아 있는 것은 그것이 디지털이기 때문도, 아날로그이기 때문도 아니다. 그냥 그 추억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가 되어서 세상이 각박해졌다느니, 아날로그 시대가 더 인간적이었다느니 하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저 우습기까지 하다. 한 시대를, 어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기술이 아닌 사람인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추억의 알맹이에는 나, 너, 우리와 같은 ‘사람’이 담겨 있다. 그 이외에 더 중요한 것은 없다.
--- p.211~212 「아날로그인지 디지털인지 모를 추억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