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아침을 먹으면서 수은에 관한 옛날 일을 생각하다가 주기율표의 모든 원소에는 각자 흥미롭고 기묘하고 섬뜩한 이야기가 얽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주기율표는 인류의 위대한 지적 업적 중 하나이다. 주기율표는 과학적 업적인 동시에 흥미진진한 이야기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해부학 책의 투명화들이 같은 이야기를 서로 다른 깊이에서 들려주는 것처럼, 주기율표를 이루는 모든 껍질들을 한 겹 한 겹 벗기면서 여러분에게 보여주고자 이 책을 썼다.”
--- p.11 「머리말」 중에서
“주기율표 이야기는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교과서나 실험 안내서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방식으로 주기율표를 이해하게 해준다. 우리는 주기율표의 원소들을 먹고 숨 쉰다. 사람들은 주기율표의 원소들에 거액의 돈을 걸고 잃는다. 철학자들은 주기율표를 사용해 과학의 의미를 찾는다. 주기율표는 사람들을 중독시키고 전쟁을 낳는다. 맨 위 왼쪽 끝에 있는 수소와 아래쪽에 있는 인공 원소들 사이에서 여러분은 거품과 폭탄, 돈, 연금술, 정치, 역사, 독, 범죄, 사랑을 만날 것이다. 심지어 과학도 약간 만날 수 있다.”
--- p.12 「머리말」 중에서
“멘델레예프는 교과서를 쓰고 있었는데, 마감에 쫓겨 자신의 첫 번째 주기율표를 허겁지겁 만들었다. 그는 그 교과서 1권의 원고를 완성했지만, 그때까지 겨우 원소 8개만 다루는 데 그쳤다. 이제 2권에서 나머지 원소들을 모두 다 다루어야 했다. 6주일 동안 마감을 못 하고 꾸물거리다가 어느 순간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그것은 원소들의 정보를 간단하게 표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 주기율표에서 멘델레예프는 규소(14번)와 붕소(5번) 같은 원소 아래의 빈칸에 들어갈 원소들이 앞으로 발견될 것이라고 예측했을 뿐만 아니라, 그 원소들에 임시 이름까지 붙였다.”
--- p.38 「2장」 중에서
“르코크 드 부아보드랑은 자신이 새로운 원소를 발견했음을 즉각 알아챘다. 그는 그 원소의 이름을 옛날에 프랑스 지역을 가리키던 라틴어 지명 갈리아에서 따 갈륨gallium(31번)으로 정했다. … 시료를 정제하는 작업에 몇 년이 걸리긴 했지만, 1878년에 르코크 드 부아보드랑은 마침내 순수한 갈륨을 얻는 데 성공했다. 갈륨은 실온에서는 고체이지만 29.8°C에서 녹기 때문에,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녹아서 액체로 변한다(체온은 약 36.7°C이므로). 갈륨은 액체 상태로 만져도 살이 타지 않는 극소수 금속 물질 중 하나이다. 그래서 갈륨은 종종 마술을 보여주는 도구로 쓰인다. 갈륨은 원하는 모양으로 쉽게 만들 수 있고 알루미늄처럼 보이기 때문에, 많이 쓰는 트릭 중 하나는 갈륨으로 스푼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뜨거운 차와 함께 갈륨 스푼을 손님에게 내놓는다. 그러면 잠시 후 손님은 찻잔에 넣은 스푼이 사라지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 p.40 「2장」 중에서
“우리 태양계도 초신성 폭발에서 탄생했다. 약 46억 년 전에 한 초신성에서 나온 충격파가 지름 약 240억 km의 납작한 우주 먼지 구름(이전에 적어도 둘 이상 존재했던 별들의 잔해)을 지나갔다. 먼지 입자들은 초신성의 잔해와 섞여 거대한 구름을 이루었다. 밀도가 높은 구름 중심부가 불타오르면서 태양이 되었고, 그 주위를 돌던 물질들이 뭉쳐 행성이 되었다. 여기서 만들어진 것은 단지 행성뿐만이 아니다. 책과 벽, 탁자, 음식을 비롯해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은 이 물질들이 재료가 되어 만들어졌다. 심지어 우리 몸도 한때는 별 속에 있던 물질로 만들어졌다.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이 “우리는 별의 물질로 만들어졌다.”라고 말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 p.63 「4장」 중에서
“납을 분석한 패터슨의 실험에서는 중요한 사실이 또 한 가지 발견되었다. 사람들이 납이 들어간 물질(관, 페인트, 가솔린 등)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대기 중의 납 농도가 계속 증가하고, 이것은 우리의 건강과 환경에 아주 나쁜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래서 패터슨은 환경 운동가로 변신했는데, … 패터슨의 노력 덕분에 납이 들어간 페인트는 사용이 금지되었고, 자동차는 납 증기를 내뿜지 않게 되었다.”
--- p.66~67 「4장」 중에서
“1972년, 일본 정부의 보건 위원회는 하기노가 제시한 압도적인 증거를 근거로 이타이이타이병의 원인이 카드뮴(48번)이라고 결정했다. 13년 뒤, 영화 고질라 시리즈 중 〈돌아온 고질라〉에서 일본 군대는 고질라를 죽이기 위해 카드뮴 탄두 미사일을 준비하는데, 이것은 일본인의 마음속에 48번 원소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깊이 박혀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고질라를 탄생시킨 것은 수소 폭탄이었다. 따라서 카드뮴으로 핵무기가 낳은 괴물을 물리친다는 이야기는 이 원소의 이미지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보여준다.”
--- p.126 「9장」 중에서
“화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원소들은 계속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다. 화학자들이 녹는점이나 지각 속에 들어 있는 양을 포함해 원소들의 특성을 많이 알아낸 것은 사실이다. 또, 원소들은 원자 차원에서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게 행동한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생물학과 결합하면, 원소들은 기괴한 행동을 보인다.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평범한 원소조차 자연스러운 장소가 아닌 곳에서 만나면 가끔 깜짝 놀랄 만한 행동을 보인다. 원소들이 우리 몸속에서 엉뚱한 장소에 존재하면, 우리의 마음과 감각을 혼란에 빠뜨리거나 자동으로 일어나는 호흡처럼 중요한 기능을 망가뜨릴 수 있다.”
--- p.145 「11장」 중에서
“주기율표에 영향을 미친 위대한 작가는 괴테뿐만이 아니다. 또 한 사람은 미국의 위대한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다. 괴테와 마찬가지로 트웨인도 과학적 발견에 큰 매력을 느꼈다. 트웨인은 발명과 기술, 반이상향, 우주여행과 시간 여행에 관한 단편 소설을 썼고, 심지어 「악마에게 팔리다Sold to Satan」란 제목의 흥미로운 단편 소설에서는 주기율표의 위험까지 다루었다. 약 2000단어 길이의 이 소설은 1904년 무렵에 경제 위기가 발생한 직후가 시대 배경이다. 주인공은 궁핍한 상황에 지쳐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기로 결정한다. 이 이야기가 주기율표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 소설에서는 악마의 몸이 순전히 라듐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나온다!”
--- p.188 「14장」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기본 상수는 전자와 관련이 있는 미세 구조 상수(알파)이다. … 오늘날 측정된 알파 값은 약 137.0359분의 1이다. 이 값 때문에 주기율표가 존재할 수 있다. 알파는 모든 원소의 원자가 존재할 수 있게 해주고, 또 서로 반응하여 화합물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데, 이 값은 전자가 원자핵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지 않게 하는 동시에 원자핵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절묘한 균형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은 미세 구조 상수 값이 우주에 우연히 나타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학보다 신학을 더 믿는 사람들은 알파는 창조자가 분자와 생명이 탄생하도록 우주를 ‘프로그래밍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1976년에 소련(지금은 미국) 과학자 알렉산데르 실리야흐테르Alexander Shlyakhter가 아프리카 가봉에서 오클로라는 기묘한 장소를 방문한 뒤에 알파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발표하자, 온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 p.229~230 「18장」 중에서
“주기율표의 기둥들은 멘델레예프 시대 이후로 대세가 되었지만, 멘델레예프 자신만 해도 30여 가지의 주기율표를 만들었고, 1970년대까지 과학자들이 만든 주기율표의 종류는 700가지 이상이나 된다. 어떤 화학자는 수소와 헬륨을 떼어내 별도의 기둥으로 만들었다. 현대적인 한 주기율표는 벌집 모양으로 생겼는데, 중심에는 수소가 있고, 거기서 육각형 칸들이 점점 커지는 나선 팔들을 이루며 바깥쪽으로 뻗어 있다. … 화학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들이 기묘한 형태의 주기율표를 일부 소개함으로써 기존의 주기율표와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 좀 아쉽다. 예컨대 팝업 형태의 주기율표 같은 걸 이용하면, 페이지에서 튀어나와 구부러지면서 서로 멀리 떨어진 원소들을 가까이 다가가게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나란히 늘어선 그 원소들을 보면서 그 원소들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영감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 현재의 주기율표는 그동안 그 역할을 충분히 다했지만, 새로운 주기율표를 상상해 다시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다.”
--- p.245~246 「19장」 중에서
“만약 외계인이 지구에 온다면, 우리가 그들과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거나 우리의 주 관심사를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들은 사랑이나 종교, 존경, 가족, 평화 같은 개념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들이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π 같은 수와…… 그리고 주기율표의 성질일 것이다. 나는 그들이 우리가 그 성질을 조직한 독창성에 감탄하길 원한다. 그리고 우리가 만든 여러 가지 주기율표 중에서 그들이 아는 형태도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 p.246~247 「19장」 중에서
“세로줄들과 기둥들과 탑들로 이루어진 우리의 경이롭고 산뜻한 주기율표는 지금까지 그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수행해왔다. 이 주기율표는 별에서부터 백상아리 이빨, 의학에서부터 천연 원자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과학을 파헤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인간사 영역과 과학 영역 모두에서 지금도 새로운 발견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주기율표는 화학과 물리학과 생물학 분야에서 일어나는 많은 발견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범우주적으로 보편적인 것(즉, 외계인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몇 안 되는데, 주기율표도 그중 하나이다. 우리의 모든 정열과 집착이 축적된 보물 창고라는 점에서, 주기율표는 매우 인간적인 것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가 그토록 많은 것을 그 안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늘 경이로움을 느낀다.”
--- p.247 「19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