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시작하면서 마주하는 첫 번째 난관을 넘어서는 비결은 바로 호기심이다. 표준화된 정답을 외워서 차를 다루는 대신 이번에는 왜 쓰게 우려졌을까, 왜 싱겁게 우려졌을까 의문을 갖고 다시금 도전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미켈란젤로의 말처럼, 호기심은 우리를 순수의 시간에서 만나게 한다.
차를 오래 마시거나 달리 수업을 받은 것도 아닌데 차 내공이 깊은 분들을 간혹 만난다. 비결이 무엇인가 여쭤보면 공통적으로 돌아오는 대답은 바로 호기심과 용기다. 궁금한 점을 감추지 않고 답을 찾아다니다 보니, 차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더라는 것이다. 누구든 각자가 경험하는 차문화는 교유하는 사람, 사는 지역, 경제적 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틀 속에 갇혀서 차에 대한 관심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그 틀을 깨고 나올 용기와 호기심이 있다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차를 마시면서 유의해야 하는 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순간의 경험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차를 마시는 것은 퍼즐을 맞춰가는 것과 비슷하다. 조각 하나로 큰 그림을 예단할 수 없듯, 하나씩 비교하고 맞춰가며 자신에게 어울리는 그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즉, 어떤 차를 마실 때 몸이 더 편안한지, 그리고 어떻게 우렸을 때 더 맛있게 느껴지는지 관찰하는 경험이 쌓이다 보면 내게 맞는 차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차를 찾아가는 여정은 다양한 차를 경험해보는 데서 시작한다. 6대 차류를 구분하고 대표적인 차를 차례로 마셔보는 정파의 방법도 있지만, 발효차와 불발효차, 향기로운 차와 맛이 깊은 차를 비교해보면서 자신의 취향을 좁혀가는 사파의 방법도 있다. 지름길을 찾는 이들은 한두 번의 경험만으로도 자신이 좋아하는 차와 싫어하는 차를 정해버리기도 한다. 또한 익숙하지 않은 차를 마시는 것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허나 이는 광활한 차의 세계를 돌아보기도 전에 벽을 세우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세상에는 나쁜 등급의 차가 있을 뿐, 나쁜 차는 없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같은 이름의 차라도 등급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백차를 살 때마다 듣는 단골 멘트가 있다. 바로 ‘제다한 첫해는 차로 마시고, 3년을 묵히면 약으로 쓰고, 7년을 묵히면 보물이 된다’는 이야기다. 백차를 많이 판매하기 위해서 상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설도 있지만, 정말 오래된 백차를 마셔보면 한여름 밤 꿈처럼 달콤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그것도 설탕처럼 잔당감(殘黨感) 있는 단맛이 아니라 리슬링 와인처럼 산뜻하면서도 깔끔한 단맛에 은은한 꿀 향기가 입맛을 돋워 주기 때문이다. 여름에 마시는 다른 차들이 말 많은 꼰대 주례 같다면, 백차는 “서로 사랑하라”는 굵고 짧은 한 마디로 주례사를 맺는 노신사 같다.
차를 다루기 위해서는 차, 도구, 그리고 물 세 가지가 있으면 된다. 그렇지만 ‘잘’ 다루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고민이 더해져야 한다. 나의 상태가 어떤지, 함께 차를 마시는 사람의 취향은 나와 어떻게 다른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다시 말해, 최고의 티마스터가 화려한 기술로 좋은 차를 우려내더라도 찻자리에 앉은 이를 고려하지 않은 차는 잘 우린 차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집에서 차를 끓여서 마시기 위해서 꼭 필요한 도구는 직접 가열할 수 있는 탕관(주전자)과 열원이다. 안전과 미관상의 요인을 고려할 때 추천하고 싶은 도구는 유리 탕관과 핫플레이트 인덕션이다. 이를 활용하면 화재의 위험을 줄이면서도 여러 가지 차를 끓여서 마실 수 있다. 특히 떡차 종류를 끓여서 마셔도 좋지만 보이차나 흑차를 우리고 남은 잎을 끓여서 마실 때도 이러한 도구가 유용하다. 취향에 따라서는 느릅나무 껍질이나 둥글레, 작두콩과 같은 대용차를 끓여서 음용수로 마시는 것도 가능하기에 일거양득이라 할 만하다.
저어서 마시는 차는 다른 차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다. 소위 격불이라고 하는 대나무 솔로 가루차와 물을 섞어서 거품을 내는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초심자들은 찻집에서 내주는 것처럼 고운 거품을 내지 못해 몇 차례 도전하다가 저어서 마시는 방법 자체를 포기하기도 한다. 가루차에 먼저 미지근한 물을 조금 부어서 갠 다음 다시 물을 부어서 격불하는 등의 다양한 팁도 있지만, 차를 저어서 마실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거품이 아니라 차가 물과 잘 섞여서 개어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거품이 곱더라도 아래 덜 풀린 차 덩어리가 남아 있으면 잘 저은 차가 아니라는 말이다. 하루아침에 능숙해질 수는 없겠지만, 경험이 쌓이다 보면 차의 고운 거품 위에 내 얼굴이 무수히 비치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
차는 정말 특별한 취미다. 이 정도면 끝이 아닐까 싶을 때 또 새로운 지평선이 나타난다. 대항해시대의 선장이 된 것처럼 한 지역을 탐험하고, 익숙해질 때가 되면 새로운 대양이 펼쳐진다. 다양한 차를 비교하면서 좋아하는 차를 찾아내고, 다루는 법을 익히고, 그에 어울리는 공예품을 구하다 보면 이윽고 차에 어울리는 다식과 음식을 고민하고, 더 나아가 찻자리에 어울리는 꽃과 음악을 찾으면서 인생을 다채롭게 물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듀크 엘링턴의 말을 인용하면서 세상에는 멋진 음악과 그렇게 멋지지 않은 음악이 있는 것이지, 재즈가 됐건 클래식이 됐건 원리는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멋진 음악을 들어서 얻는 순수한 기쁨은 장르를 초월한다는 것이다. 찻자리에 잘 어울리는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국악만 틀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다면, 힘 있는 테너가 부르는 슈베르트의 가곡은 물론, 존 메이어의 곡, 재즈 음악도 찻자리와 더 없이 어울리는 조합이 될 수 있다. 헤비메탈은 아직 도전해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2004년부터 전국으로 차도구를 챙겨 다니면서 다양한 들차회를 경험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곳을 꼽자면 역시 화개천 계곡에서 호중거 오금섭 선생님이 준비해준 찻자리다. 시원한 계곡에 발을 담그고 화개골 다람쥐를 벗 삼아 노차를 마신 오후는 해마다 더운 여름이 되면 떠오르는 추억이 되었다. 모래톱에 화로를 얹고 숯불을 피워 탕관에 물을 끓이는 수고로움이 불편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이렇게 현대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나서 옛 방식으로 차를 다루는 경험은 들차회의 또 다른 매력임에 틀림없다. 물론 풍류를 즐기는 데 번거로운 도구가 꼭 필요하지는 않다. 따뜻한 물을 담을 수 있는 보온병 하나만 있으면 길을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감히 내 인생차라고 할 수 있는 최고의 차는 2014년 크리스마스 아침, 백두산 천지에서 내려와 설경을 바라보면서 중국, 일본 외교관들과 함께 마신 보온병 속 황룡차 한 잔이었다. 중요한 것은 풍류를 즐기고자 하는 마음과 이를 공감해줄 차벗이 아닐까 싶다.
강진 차밭 나들이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다산이 차를 끓이던 다조(茶?)가 남아 있는 다산초당과 그가 혜장 선사와 차를 마시던 백련사 만경루로 향한다. 다산이 걷던 만덕산 산길을 넘어 백련사를 다녀오는 것도 감회가 남다르다. 허나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발길을 옮겨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삼층석탑이 하나 외로이 지키고 있는 월남사지다. 이곳에 서서 산정을 바라보면 왜 산 이름이 월출산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매일 밤, 세상 모든 산에서 달이 떠오르지만 이곳에서 보는 달만큼 아름답게 떠오르는 달은 없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